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고하영 – 단원고 2학년 9반

하영이는 삼남매 중 막내입니다. 자립심 있고 주도적인 성격으로 어릴 때부터 스스로 계획을 세워 행동할 정도로 야무졌습니다. 성숙한 성품으로, 친구들을 이끄는 리더십을 발휘했고 친구들을 잘 챙기는 배려심도 있었습니다.

 

하영이는 밴드 보컬로  전교생 앞에서 마골피의 노래 비행소녀를 부를 만큼 노래를 잘했습니다.

하영이는 독서를 즐겼습니다. 그리고 성적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공부를 잘했습니다. 하영이의 꿈은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영이는 엄마에게 친구 같은 딸이었습니다. 엄마는 딸이 떠난 것이 마음 아파, 아직 딸이 늘 앉아서 공부했던 책상을  치우지 못했습니다.

하영이에게는 절친한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같이 우정 반지를 맞추고, “비슷한 나이에 결혼해서 비슷하게 아이를 낳고 아이들을 친구 맺어주자”고 약속했던 사이였습니다. 하지만 하영이와 친구들은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하영이는 친구들과 함께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하영이 부모님의 편지

“보고 싶은 하영아. 엄마, 아빠는 이런 꿈을 꾼다.우리가 나중에 늙어 죽어서 하늘나라에 가면 우리 딸은 17살의 예쁜 모습 그대로겠지 우리 곁을 떠난 날 그 모습 그대로 우리를 반겨 주겠지…”

권민경 – 단원고 2학년 9반

민경이는 장난기 많고 발랄한 성격으로,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민경이는 늘 엄마를 위했습니다. 엄마가 힘들까 봐 걱정했고, 엄마를 잘 도왔습니다. 민경이는 엄마에게 다정했습니다. 엄마에게 자주 사랑한다고 했고, 엄마가 제일 좋아하는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민경이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민경이는 “내가 가능하게 만들면 돼. 안되는 건 없으니까! 피곤하면 아무것도 되지 않는데 이 악물면 다 되는 것 같아. 난 할 수 있다”는 다짐을 적으며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2014년, 민경이는 <착한 엄마를 따라서 기부하기는 꼭! 자원봉사는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다른 나라가서도 꼭! 엄마랑 심야영화보기> 라고 버킷리스트를 작성했습니다.

 

-민경이 친구의 편지

“이렇게 예쁜 내 친구를….. 인터넷에서 보니까 너희들은 아직 피지 않는 꽃에 비유하는데 더럽고 때 묻은 세상에 안 보내기 위해 하나님이 먼저 부르신 거라고…… 민경아 그곳에서 행복해야 해, 살찔 걱정 없이, 밥은 많이 먹고 좋아하는 가수나 취미 같은 것도 맘껏 하고! 진짜로 더 즐겁고 Happy한 날만 계속 돼야해…. 9반 1분단 2번째 권민경 영원히 기억할게

너를 기억하는 친구가”

 

-민경이 아버지의 편지

그리운 민경아! 어느덧 널 보낸 지도 1년,
세월은 흘러가도 영원히 내 마음속에 살아있고..
네가 너무 보고 싶구 그립다, 이쁜 너의 모습,너의 목소리, 너무너무 그립다.
뽀뽀도 잘해주었는데 이제는 마음속에만 존재하겠지…
넌 영원히 이 가슴속에 살아서 존재한다.
한 없이 무능한 아빠가

김아라 – 단원고 2학년 9반

아라의 꿈은 약사가 되는 것입니다. 아라는 약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낫게 해주는 “황금손”이 되기를 꿈꾸었습니다.

아라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특히 과학과 영어를 잘해, 교과 성적 우수상도 많이 탔습니다.

아라는 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아라 아버지는 휴일마다 아라가 좋아하는 음식을 만들어 주었습니다. 아라는 짜장면, 짬뽕, 탕수육, 낚지볶음, 잡채밥을 맛있게 먹으며 좋아했습니다.

 

아라도 아버지를 사랑했습니다. 퇴근하신 아버지에게 “아빠, 힘들어서 어떡해. 아빠가 고생하는 거 나 다 알아. 이 담에 내가 아빠 호강시켜 줄 때까지 건강해야 돼” 라고 말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아라는 지금 세상에 없습니다.

 

아라가 자라 짝을 만나면 선물하려고 아라 아버지가 담근 인삼주는 주인을 잃어 버렸습니다.

 

-아라 아버지의 편지

“미안하다.

꼭 너의 억울함을 풀어줄게.끝까지 끈질기게 싸울게.잠시 하늘 나라에서 천사로 있다가 다시 내 딸로 태어나서 못 받은 사랑 더 많이 받아야지…”

아빠.

김초예 – 단원고 2학년 9반

초예는 친한 사람들에게는 곧잘 장난을 치는 명랑하고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마음이 따뜻한 초예는 사람들을 돕는 간호사를 꿈꿨습니다.

초예는 가족들에게 다정했습니다. 여동생 둘에게  초예는 엄마 같은 언니였습니다. 맞벌이로 바쁜 아빠 엄마를 대신해 동생들의 식사와 간식을 챙겨 주었고 공부도 가르쳤습니다.

초예는 엄마에게는 친구 같은 딸이었습니다. 모녀는 함께 장을 보고, 산책을 하곤 했습니다. 초예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그런 나날이 계속될 거라 여겼습니다.

그러나 4월 15일 밤, 전화로 잘 자라고 했던 것이 마지막 인사가 되었습니다.

초예는 지금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초예 어머니의 편지

초예야! 초예야!
“우리 큰딸”하면 “응, 왜? 엄마, 아빠” 이렇게 대꾸해주던 딸의 목소리를 이제는 들을 수가 없구나.
엄마, 아빠가 힘든 것 같으면 우리 큰딸이 “엄마, 아빠 사랑해” 하고 안아 줬는데, 이제는 아무리 불러도 우리 딸이 보이지 않는구나.”

김혜선 – 단원고 2학년 9반

혜선이는 밝고 활기차고 애교 넘치는 성격이었습니다.

 

혜선이는 마음이 따뜻했습니다. 어려운 사람을 보면 그냥 지나치지 않았습니다. 불우 이웃 돕기 모금함을 보면 주머니를 털어 기부를 했고 힘겹게 일을 하는 어르신을 보면 일을 도왔습니다.

 

혜선이는 친구들에게 다정했습니다. 친구들에게 몇 시간 동안 친절하게 춤을 가르쳐 주었고, 생일이면 마음을 담은 선물을 했습니다.

 

혜선이는 가족을 위하고 사랑했습니다. 혜선이는 아버지의 생신에 직접 구운 케이크를 선물하곤 했습니다. 엄마의 마음을 잘 헤아렸고, 엄마를 위해 집안일을 했습니다.

 

혜선이의 꿈은 해양대학교에 입학하여 배를 만드는 조선공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혜선이는 아마 세월호에 오르자마자 호기심 가득한 눈으로 구석구석을 보았을 것입니다.

 

혜선이를 잃고, 혜선이 부모님은 길을 걷다 교복을 입은 여학생만 봐도 혜선이 생각에 눈물이 흘리십니다. 재잘거리며  같이 다니는 학생들만 봐도 “내 딸이었으면 얼마나 좋을까”하는 생각에 가슴이 무너져 내립니다. 이는 세월호참사로 사랑하는 아이들을 잃은 모든 부모님들의 공통 된 아픔이자 고통이며, 결코 끝나지 않을 상처입니다.

 

-혜선이 부모님의 편지

“그리운 딸 혜선아!
잘 지내고 있지?
어제밤 꿈에 힘든 너의 모습 마음이 아팠어
수능이 다가와서 너의 마음이 힘든 게 아닐까 생각하고 싶어.
세상의 고통일랑 다 잊고 친구들과 행복한 하루하루가 되길 바래.

영원한 내사랑 혜선

박예지 – 단원고 2학년 9반

예지는 힘들게 일하시는 엄마 아빠를 늘 먼저 생각하는 효녀였습니다.
부모님이 바쁘시면 예지는 남동생한테 밥을 차려주고는 부모님께 밥상을 찍은 사진을 보냈습니다.

예지는 부모님께 뭘 사 달라고 조르는 법이 없었습니다. 오히려 용돈을 모아 아빠에게 중고차를 사 드렸고, 외할머니에게는 영양 크림을 사 드렸습니다.

예지의 꿈은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지는 미쳐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예지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오경미 – 단원고 2학년 9반

오구오구 오경미,
경미의 꿈은 건축가였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늘 “건축가 돼서 돈 많이 벌어 집을 사주겠다”고 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큐브 맞추기에 빠져 살았습니다. 초등학교 친구들과 밴드를 만들어 열심히 전자 기타를 치러 다니기도 했습니다. 단원고에 입학해서는 연극부 활동을 하는 등 평소에는 얌전한 모범생이지만, 동시에 하고 싶은 것은 적극적으로 찾아서 하는 성격의 소녀였습니다. 집에서는 부모님 말씀 잘 듣고, 일곱 살 어린 여동생도 잘 돌보았습니다.

 

경미는 세월호가 침몰하기 전이었던 4월 16일 오전 6시 46분 쯤 휴대전화로 배 위에서 찍은 바다 사진을 엄마에게 보냈습니다. 경미로부터 온 마지막 연락이였습니다.

세월호참사로 희생된 1반 한고운과 경미는 초등학교 6학년 때부터 단짝입니다. 이 둘은 사고 일주일 째인 4월 22일, 나란히 부모님 품에 돌아와 같은 날 같은 병원에서 장례를 치른 후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이보미 – 단원고 2학년 9반

길거리 무대에서 발탁되어 안산 YMCA 청소년 음악 단체 활동도 했던 보미, 가끔은 뾰로퉁한 표정으로 혼자만의 시간을 즐기기도 했지만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만은 살갑게 표현할 줄 알던 보미,

“헤에~”
쑥스러울 때도, 멋쩍을 때도 그리고 미안할 때도 짓던 미소가 트레이드 마크인 보미였습니다.

 

보미는 꿈과 욕심이 많았습니다. 노래 뿐만 아니라 공부도 전교에서 손꼽을 정도로 잘했습니다. 마음도 착하고 따뜻했습니다. 강아지를 좋아했던 보미는 4년 전 어렵게 엄마의 허락을 얻어 강아지 한 마리를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다섯 살 많은 언니와 자기 이름의 돌림자를 따서 강아지 이름을 이보들이라고 지었을 정도였습니다. 보미는 보들이를 마치 자신의 동생처럼 돌보며 키웠고 수의사의 꿈도 보들이를 키우면서 갖게 됐다고 합니다.

 

보미는 세월호참사 9일 만인 4월 25일, 엄마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가족들이 자신을 쉽게 찾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 였는지 보미의 목에는 학생증이 걸려있었습니다.

 

2014년 7월 24일 서울시청 앞 서울광장에서 열린 “세월호 100일 추모 시낭송음악회”에서 가수 김장훈씨가 뮤직비디오를 공개했습니다. 보미가 2014년 2월 단원고 졸업식에서 선배들을 위해  거위의 꿈을 부르는 모습이 담긴 동영상에
김장훈 씨가 따로 녹음한 자신의 목소리를 더해 듀엣곡으로 만들었습니다. 김장훈 씨는 무대 위에서 뮤직비디오 속의 보미와 함께 거위의 꿈을 불렀습니다.

 

9반 최혜정 선생님의 교탁 바로 앞 짝꿍 세희와 함께 앉았던 보미는 지금 안산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이수진 – 단원고 2학년 9반

이수진….
이 아이를 어떻게 여러분들께 소개 할까요. 단원고를 찾아오는 분들께 9반에 들러 꼭 소개해드렸던 아이. 사진 속의 천사 같은 환한 반달 미소로 반기는 아이…
“수진아~!”
부르면 금방이라도 뛰어 나올 듯한 아이…

 

수진이는 1997년 3월 6일 우렁찬 울음을 터뜨리며 엄마 아빠와 이 세상과 만났습니다. 아기 시절 수진이는 잘 먹고 새곤새곤 잘 잤지만 한편으론 무척 예민하고 까다롭기도 했다고 합니다. 인형 같은 여동생과 아들이라 부를 만큼 아끼는 남동생이 태어나면서 솜사탕처럼 부드럽고 달콤한 수진이가 되었습니다.

엄마 아빠에게는 언제나 보석 같은 맏이었고, 엄마와 쇼핑을 즐기고, 옷을 센스 있게 골라주고, 고민을 함께 나누며 마음까지 코디 해주는 엄마의 만능 코디네이터였습니다.
바쁘신 아빠에겐 늘 따뜻한 마음으로 응원하고 기다려주는 속 깊은 딸이기도 했구요. 엄마가 안 계실때면 기꺼운 마음으로 아빠의 식사 당번을 자처했고, 동생과는 성격이나 취향이 달라서 자주 다투지만 언제나 모든 걸 함께 나누는 자매였습니다.

 

목 끝까지 단추를 채운 교복과 단정하게 묶는 머리가 잘 어울리는 수진이,
수진이의 어릴적 꿈은 수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환공포증이 있다는 것을 알고는 고심 끝에 새로운 꿈을 찾았습니다. 세계를 돌며 지구촌 어려운 사람을 돕는 국제 구호 전문가가 그것입니다.

 

글로벌 소녀 수진이는 한복을 좋아해서 학교에서는 <다도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또한 바른생활부(선도부)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이처럼 수진이는 미소가 예쁘고 친구들을 사랑했던 아이, 우리 주변에서 늘상 보는 천진난만하고 밝은 성격의 그런 아이였습니다.

이 사 (00중학교 2학년 5반 이수진)

 

아쉬움과 설레임이 교차하는 마음
태어나서 지금까지 자라온
나의 집
언제나 펀안하고 다정한
시골 할머니 마음처럼
우리 가족을 지켜주었다.

 

포근하고 따스하고 구름 속 같이
아늑한 곳

 

이제는
발걸음을 다른 곳으로
향해야 한다.

 

새 보금자리는
새로운 시작을 알리듯
당당하게
우리 가족을 맞는다

 

수진이가 중학교 2학년때 쓴 시입니다.

 

“이제 새로운 곳으로 영원히 ‘이사’ 가 버렸구나. 구름속 같이 포근하고 아늑한 곳에서 편히 쉬어라”는
어머니 말씀을 기억해 주십시요.
택배로 돌아온 커리어를 끌어안고 통곡하시는 어머니의 눈물을 기억해 주십시요.

 

수진이는
사고후 38일만에 276번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가족의 품에 돌아와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이한솔 – 단원고 2학년 9반

한솔이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 남매 중 맏딸입니다.

한솔이는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남동생을 잘 챙겨주는 든든한 맏딸이었다고 합니다. ‘딸바보’아빠는 ‘동생바보’ 한솔이가 너무 예뻐서, 언제나 직접 한솔이 간식을 챙겨 주었고, 한솔이가 원하는 것은 뭐든지 사주셨습니다.

어머니가 한솔이를 보면서 “어떻게 내 배속에서 저런 애가 나왔는지 모르겠다. 정말 기적 같다”고 할 정도로 소중하고 착한 딸이었습니다.

 

한솔이의 꿈은 경희대 호텔조리학과에 진학하여 한솔이의 이름을 건 빵집을 차리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제과제빵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직접 구운 쿠키와 케이크를 부모님 생신에 내어 놓기도 했습니다.

 

공부 할 땐 하고 놀 땐 놀 줄 아는 똑부러진 성격의 한솔이는 노래와 춤도 잘춰  슈퍼스타k에 출전하여 예선을 통과하기도 했던 만능 재주꾼이었으며, 먼저 다가가는 성격 덕분에 주변에 친구도 많았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일주일 전, 한솔이는 버스에서 내리다 다리를 삐끗하여 오른쪽 다리 인대를 다쳐서 깁스를 하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할 때 한솔이가 다리 깁스 때문에 탈출을 못 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한솔이 아버지는 너무 괴롭고 힘들다고 하십니다.

 

사고 후 한솔이 친구들도 한솔이의 아픈 다리 때문에 탈출을 걱정하는 친구들의 글을 쓰며 기도하였지만 끝내 한솔이는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전날 수학여행을 잘 다녀오겠습니다 하며 인사하고 떠났는데 이게 무슨일인지 모르겠다” 하시던 어머니, “타임캡슐도 만들고, 크리스마스에 명동가고, 경희대에 같이가자”며 친구들과 약속했던 한솔이.

 

맨날 걸을 때 씽크홀에 빠지던 한솔이는 끝내 싸늘한 주검이 되어 친구들과 부모님 곁으로 돌아왔습니다. 딸바보 아버지는 한솔이가 깁스 때문에 집에 벗어 두고 간 오른쪽 신발 한 짝을 가슴에 끌어 안고 펑펑 우셨습니다.

 

“맨날 늦더니 평소처럼 너 올 때까지 기다릴 테니까 얼굴 보여줘야 돼. 우리 뚱순이..” 친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고 한솔이는 보름이 지난 5월 1일에 돌아와 지금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해화 – 단원고 2학년 9반

혜화는 적극적인 학생이었습니다. 한의사를 꿈꾸며 스스로 세운 계획대로 성실히 공부했습니다.

 

혜화는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드럼 연주와 피아노 연주를 즐겼습니다. 혜화는 밝고 명랑한 성격이었습니다. 통솔력 있고 야무져 교회에서는 유치부 보조 교사로 역할을 다했습니다.

 

혜화는 다정한 성품으로 주위 사람을 잘 챙겼습니다. 가족들의 생일이면 혜화는 집안에 풍선을 붙이고 미역국에 오첩 반상을 차렸습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는 기념품을 선물할 사람들을 세아렸습니다.

 

혜화는 어머니와 가까웠습니다. 혜화는 저녁이면 어머니께 그날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하게 이야기하곤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그런 혜화가 사랑스러워 미소 짓곤 했습니다.

 

해화는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임세희 – 단원고 2학년 9반

세희는 두 살 터울 남동생이 있는 남매 중 맏이입니다.

어린 세희는 울보였다고 합니다. 아빠가 눈을 마주치기라도 할라 치면, 엄마가 화장실을 가려해도 안거나 업어야 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이런 세희를 엄마는 “껌딱지”, 할머니는 “효녀”라 불렀답니다. 엄마가 집안 대소사로 시댁에 내려갔을 때, 세희 덕분에 물 한 방울 손에 대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세희는 고지식하고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약속 시간은 지켜야 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스트레스를 풀기 위해 점핑클레이를 시작하였고 어버이날에는 카네이션과 꽃바구니를 만들어 부모님께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 1학년 때에는 점핑클레이 자격증을 따기도 했습니다.

 

또한 세희는 화장품과 미용에도 관심이 많았습니다. 아빠의 흰 머리카락을 염색해 줬고, 얼굴 팩도 붙여주곤 했답니다.

 

세희의 꿈은 화장품 등에 향을 더하는 조향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부터는 향수를 직접 만들어 보고싶다고 이야기 하기도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일주일 앞두고도 서울대에 가서 조향사 관련 강의를 듣고 왔습니다.

 

세희는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공부를 마치고 매일 밤 12시가 넘어서 돌아왔지만 맞벌이하는 엄마와 아빠를 도와 집안일도 마다하지 않는 효녀였습니다. 설거지 하는 엄마를 뒤에서 껴안으며 “사랑한다”고 말하는 애교쟁이기도 했고, 뭐 하나 사 달라고 투정도 부리지 않았습니다.

 

세희는 4월 15일 밤 엄마에게 “배가 출항한다”는 문자를 보냈는데 이 문자는 딸로부터 온 마지막 연락이 되었습니다. 16일 아침 세월호가 침몰한다는 다급한 소식을 들은 엄마는 애타게 전화를 걸었지만 세희는 받지 못했습니다.

 

세희의 짝꿍은 거위의 꿈을 부른 이보미 입니다. 2분단 맨 앞자리에서 최혜정 선생님과 마주하고 있습니다.

 

“아가씨, 엄마. 아빠 커피 한잔이요” 하면.

“네~ 난 예쁜 딸이니까” 하면서 엄마 아빠 취향에 맞게 타주던 커피 한잔이 그립다. 따님이 보고 싶고. 보고 싶어서 발길이 분향소로 향했는데. 갈 수가 없었어. 눈물이 멈추지 않아서 도중에 먼발치에서 보고만 오기를 수십 번. 미안해.”

 

진도체육관에 있는 엄마의 머리 위를 찾아와 서너 차례 맴돌다 동 트는 여명 속으로 사라진 노란 나비가 찾아 온 날. 2014년 4월 25일 0시 11분, 신원 미상 169번으로 세희는 돌아왔습니다.

 

오후 3시에 DNA가 끝나고 한낮이 되도록 가족을 찾지 못하는 169번을 보고 “저 아이의 부모는 어째서 자식도 못 알아보고 그럴까”라고 생각했던 엄마,
그런데 그 아이가 세희라니…
엄마는 목 놓아 울었습니다.
“딸을 몰라봐서 미안하다”며 울었고, “모습을 보여 주고 이렇게 만질 수 있어서 고맙다”고 또 울었습니다.

 

세희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다빈 – 단원고 2학년 9반

7월의 마지막 날 생일을 맞은 다빈이는 다섯 살 많은 언니가 있는 자매 중 막내입니다.

다빈이의 어릴 적 꿈은 소설가였습니다. 부모님이 책을 많이 사주어 자연스럽게 책을 좋아했고 친구들이 ‘책벌레’라는 별명을 붙여줄 정도로 책 읽는 걸 좋아했습니다. 책을 한 번 잡으면 다 읽을 때까지 엄마가 아무리 불러도 꼼짝도 하지 않았습니다. 밥을 먹으면서도 티브이를 보면서도 시험 기간에도 교과서 앞에 소설책을 펼쳐 놓고 그걸 먼저 읽었습니다. 특히 판타지 소설을 즐겨 읽었다고 합니다. 중학교 때부터는 직접 소설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로맨스와 판타지 그리고 최근엔 추리 소설까지 분야도 다양했습니다.

 

또래 아이들처럼 빅뱅을 좋아하고 <붉은 노을<, <스틸얼라이브> 등을 듣고 또 듣고.. 피아노와 기타 연주도 잘했습니다. 피아노는 체르니100번을 넘자 좋아하는 노래들을 직접 연주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종이학,  종이장미, 봉제인형, 목도리, 비즈팔찌 등 손으로 하는 것은 뭐든 잘했으며 흥미도 남달랐습니다.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제과제빵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빵을 만드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생긴 꿈입니다. 손재주가 좋아 빵을 잘 만들었고 동아리에서 만든 빵을 집에 가져와 가족들과 나눠 먹곤 했답니다.

 

학교에서는 성격이 늘 조용했으며 온순하고 착해서 남을 잘 배려해서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다고 합니다. 다른 사람을 배려할 줄 아는 따뜻한 마음을 소유한 다빈이가 있었기 때문에 주변이 평화로웠던 것 같다는 1학년 담임 선생님의 추억에서 다빈이의 따뜻한 성품을 느낄 수 있습니다.

 

영상 찍는 것도 좋아해 친구들과 밤 늦게까지 영상 찍고, 사진 찍고, 회의하며 만든 작품으로 교내UCC대회에 출품하여 최우수상을 받기도 했던 다재다능한 다빈이였습니다.

막내딸인 다빈이는 집에서도 주관이 뚜렷하고 온순한 아이로 맞벌이 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도 잘 도운 효녀였습니다.

 

세월호가 기울기 직전인 4월 16일 오전 7시 10분경, 엄마는 다빈이와 통화하면서 “맛있는 거 많이 먹고 수학여행 잘 다녀와라”고 말했습니다.
그게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4월 24일 가족의 품에 돌아온 다빈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다혜 – 단원고 2학년 9반

슬픈 생일식.
2015년 다혜의 생일에는 다혜를 “무조건 예뻐하던”아빠가 곁에 있었으나 지금 다혜 아빠는 하늘나라 다혜 곁에 있습니다.
대장암 수술을 받은 뒤 점점 상태가 좋아지고 있었던 다혜 아빠는 다혜를 잃은 뒤 암이 재발하였고, 2015년 10월 사랑하는 다혜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다혜의 꿈은 치과기공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평소 엄마는 건강하고 체격이 좋으니 경찰이나 군인을 하라고 말했지만 다혜는 혼자 몰래 다른 꿈을 꾸고 있었습니다. 다혜의 꿈은 엄마가 다혜의 유류품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것입니다.

 

“가족은 다혜의 보물 1호”

다혜는 어릴 적부터 여섯 살 많은 언니와 단짝처럼 지냈습니다. 고민이 생기면 늘 언니에게 먼저 털어 놓았고, 언니는 아르바이트로 용돈이 생기면 늘 다혜에게 맛있는 것을 사주곤 했습니다. 나이 차이는 좀 있었지만, 엄마와 아빠가 맞벌이를 해 늘 집에서 단둘이 어울려 놓았고 그러다 보니 자매 사이도 좋았습니다.

 

다혜는 일을 하느라 힘든 엄마를 대신해 집에서 청소와 설거지, 빨래를 도맡았고 식당을 운영하다 늘 통통 부어 있는 엄마의 손을 주물러 주던 마음씨 고운 아이였습니다. 아빠가 투병 중일 때에는 아빠의 저녁 식사를 꼭 챙겨주던 다혜였습니다.

 

4월 16일,
세월호참사가 일어나자 다혜의 가족들은 진도로 내려가 다혜가 돌아오기를 애타게 기다렸습니다. 하지만 4월이 다 가도록 다혜는 나오지 않았습니다. 엄마는 이러다 다혜를 영영 못 찾는 거 아니냐며 불안해 했습니다.

하지만 언니는 “다혜는 반드시 내 생일이 지나기 전까지 돌아온다”고 했고, 다혜는 거짓말처럼 언니의 생일날인 5월 4일 가족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다혜는 “다윤이”라는 고양이를 키우고 있었습니다. 다윤이가 새끼 세 마리를 출산하는 걸 직접 돕기도 했답니다.

 

다혜는 경기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었지만, 아빠 곁인 안산하늘공원으로 자리를 옮겨 지금은 아빠와 함께 있습니다.

배향매 – 단원고 2학년 9반

향매는 언니와 열두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막내로, 중국에서 태어났습니다.

한국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했으며 한번 듣기만 하면 곧바로 따라했습니다. 향매는 2011년 한국에 왔습니다. 그리고  금방 친구들을 사귀며 무리 없이 적응했습니다. 향매는 꾸밈 없이 밝은 성격이었고 늘 다른 사람들을 배려했습니다.

 

향매는 향료를 만드는 조향사를 꿈꾸었습니다.

 

2014년 설 즈음, 향매는 가족들과 가족사진을 찍었습니다. 사진 속 향매는 좋아했던 노란색 스웨터를 입고 있으며 까만 매니큐어를 바르고 있습니다. 그것이 향매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향매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조은정 – 단원고 2학년 9반

은정이는 밝고 활기찼으며 눈물이 많은 여린 성격이었습니다. 하지만 소신대로 행동하는 당찬 면도 있었습니다.

 

은정이는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특히 2반 양온유와 친했습니다. 둘은 중학교 때부터 같은 교회를 다녔습니다.

 

은정이는 어른스럽고 성숙했습니다. 집안 형편을 생각해 교회 공부방에서 구형PMP(휴대용 멀티미디어 플레이어)로 인터넷 강의를 들으며 공부했습니다.

은정이는 공부를 잘 했습니다. 줄곧 전교 10등 안에 들었고, 성적우수상도 많이 받았습니다.

 

은정이의 꿈은 약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소도시에서 약국을 운영하고 싶어했습니다.

 

수학여행 날 아침, 은정이 아버지는 일찍 일을 나서며 잠든 은정이의 손을 잡고 기도 후 이마에 뽀뽀를 해줬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와 딸의 마지막 인사가 됐습니다.

진윤희 – 단원고 2학년 9반

윤희는 의젓하고 어른스러운 아이였습니다. 집안 형편을 생각해  뭘 사 달라고 조르지 않았고 운동화  바닥이 다 닳을 때까지 신으면서도 불평 한번 하지 않았습니다.

 

윤희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윤희의 메모장에는 엄마, 아빠, 동생이 가장 소중하다고 적혀 있었습니다.

 

윤희는 세무사나 회계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수학여행 날, 윤희 아버지는 윤희에게 새운동화를 사줬습니다. 윤희는 이 운동화를 신고 기쁜 마음으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2016년 2월, 윤희 어머니께서는 안산분향소로 옮겨진 유품들 속에서 윤희가 끌고 갔던 캐리어를 찾아 품에 안고 통곡하셨습니다. 윤희아버지께서는 동거차도 인양작업현장을 하염 없이 바라보며 긴  한 숨을 지으셨습니다.

 

윤희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정 – 단원고 2학년 9반

민정이는 아빠를 일찍 여의고 엄마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민정이는 엄마에게는 가장 소중한 보석이었으며,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민정이의 꿈은 엄마처럼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한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민정이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민정이가 하늘나라에서 아빠와 행복하기를 기원합니다.

 

– 민정이가 남긴 편지
♤2012년 5월 7일 엄마께, 사랑해요 엄마. 어버이날이네요.
난 어린이 날에 친구들이랑 재미있게 놀았는데 엄마도 어버이날에 행복했으면 좋겠어.
갈수록 사고 싶은 것도 많고, 사야될 것도 많아져서 엄마한테 부담만 늘리는 것 같아서 엄마한테 미안해.
16년 동안 나 무탈하게 잘 키워줘서 고마워.앞으로 엄마한테 잘할게.
엄마가 요즘 여기저기 많이 아픈 것 같아서 너무 속상해. 그런 모습 볼 때마다 내가 빨리 한의사가 돼서 엄마를 편하게 해주고 싶어.
엄마, 어버이날 축하하고 많이 사랑해.
앞으로 엄마한테도 나한테도 좋은 일만 일어났으면 좋겠다.
엄마 딸 민정 올림 ♡

최진아 – 단원고 2학년 9반

진아는 외동딸 입니다. 진아 가족에게 진아는 어렵게  얻은, 하늘에서 내려준 선물이었습니다.

 

진아 부모님께서는 외동딸 진아를 지극정성으로 키웠습니다. 진아는 부모님께 삶의 전부였습니다. 진아는 순하고 착하게, 부모님의 기대대로 자랐습니다.

 

진아가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진아 부모님께서는 진아 방을 새롭게 꾸며 주었습니다. 그러나  방 주인인 진아는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외동딸 진아를 황망히 잃고 진아 아버지는 세 번이나 쓰러지셨습니다. 아이가 살아 있을 거라고, 국가에서 구조할 거라고 기대했던 시간 동안 진아가 겪었을 고통을 생각하면 진아 부모님께서는 마음이 괴롭습니다.

편다인 – 단원고 2학년 9반

다인이는 마른침을 삼키고 첫 대사를 뗐습니다.
“사장님 이게 도대채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제 무대 밖 세상은 온전히 사라지고 다인이는 비정한 엄마로 변신해 있습니다.

 

연극제가 끝나고, 다인이는 뮤지컬 배우라는 꿈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친구들은 ‘다인이는 뭐든 한다면 해내잖아!’ 라고 하며 다인이를 응원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후, 다인이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다인이가 떠나고 다인이 부모님께서는 마음이 아프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