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고우재 – 단원고 2학년 8반

우재는 남매 중 맏이였습니다. 적극적인 성격이었고, 치킨과 피자를 좋아하였고, 가수 윤도현의 노래를 즐겨 들었습니다.

 

우재는 기계에 관심이 많았고 무언가를 분해하고 조립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로봇동아리에서 활동하며 재미있는 로봇을 만들곤 했습니다.

 

우재는 4월 20일에  수습되었습니다. 사고 한 달 전에 사준 휴대폰과 충전기를 주머니에 넣고서.

추락 사고로 구조도 받지 못하고 아버지를 떠나보낸 우재 아버지는 아들마저 구조의 손길 한번 받지 못하고 떠나보내고서 땅을 치셨습니다.

어떤 모습이든 아빠 곁에만 있어주면 좋겠다는 아빠는 지금도 우재가 떠난 이유만은 알아야겠다며 싸우고 있습니다.

 

우재아빠는 세월호가 인양되어 목포신항으로 옮겨진 지금도 진도 팽목항을 지키고 있습니다.

김대현 – 단원고 2학년 8반

대현이는 형제 중에 맏이였습니다.

대현이는 깔끔한 성격으로 정리정돈을 잘 했습니다.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는 뚝심 또한 있었다고합니다.조용한 성격으로 혼자 사색하기를 좋아했습니다.

 

대현이의 꿈은 소방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대현이는 사고 후 20일만인 5월 5일 어린이날에 250번 번호를 달고 올라왔습니다. 가족들은 대현이 시신 발견 소식에 마음 아파 하셨습니다.

 

대현이는 광주영락공원에서 화장된 후 안산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안치되어 있습니다.

김동현 – 단원고 2학년 8반

동현이는남매 중 맏이였습니다.운동선수였던 부모님을 닮아, 동현이는 운동신경이 좋았습니다. 식구들은 날쌔게 움직이던 동현이를  “우리집 다람쥐”라고 불렀습니다.

 

동현이는 아프신 어머니를 위했습니다. 어머니를 위해 집안일을 성실히 했고, 자라서는 의료인이 되어 어머니를 치료하고 싶어했습니다.

 

동현이는 달리기를 잘했고 축구 경기 때에는 수비수를 도맡았습니다. 학교에서는 제과제빵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수학여행날 밤, 동현이는 갑판 위에서 엄마한테 문자를 보냈습니다.
(동현아 사랑해. 엄마가 듣고 싶은데)라는 엄마의 문자에
(ㅋㅋ 나도 사랑혀요)라고 답했습니다. 그것이 동현이의 마지막이었습니다.

김영창 – 단원고 2학년 8반

“우리 영창이요? 순해요. 순하디 순해서 쑥맥 같은 아이예요.

그렇다고 그게 다는 아니에요. 한 번 하겠다고 마음먹으면 악착 같은 데도 있어요.

끝까지 해내고 만다니까요.”

 

“영창아, 엄마한테 항상 뽀뽀해주던 아들이 그립고 그립다.
늘 착했고 형편이 어려워도 불만 없이 혼자 헤쳐나가려고 애썼던 듬직한 아들이었는데, 너를 이렇게 떠나보내서 미안해, 비록 눈에는 보이지 않고 귀에도 들리지 않지만 항상 엄마 곁에 영창이가 있다고 믿어.
우린 운명이잖아”

 

지금부터_노력하면_나중에_꼭_성공한다

 

8반 5번 영창이의 좌우명입니다.
건축학과에 진학하여 건축가를 꿈꿨던 영창이는 이와 같은 좌우명을 정하고 열심히 노력하던 아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장난감을 사주면 설명서 없이도 잘 조립했고 게임기나 집안의 가전제품을 모두 뜯어 보고 똑같이 조립하기도 했습니다.
잘 안 돼도 궁리해가며 밤을 꼬박 새서라도 그날 밤으로 해내야지 편히 잠드는 아이였습니다.

영창이는 네살 터울 여동생이 있는 맏아들입니다.
동생과는 가끔 티격태격했지만 늘 져주는 다정한 오빠이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영창이 거라며 사 준 것도 동생이 탐내고 갖고 싶어 하면 동생에게 줘버리고, 고장 나면 고쳐주고, 해달라는 거 다 해 주고, 동생 말이라면 다 들어주는 든든한 오빠였습니다.

 

영창이는 운동은 축구를 좋아했으며 음식은 뭐든 잘 먹는 아이였지만 햄버거나 갈비를 좋아했답니다. 과일은 사과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세월호 침몰 후 영창이는 부모님의 애타는 기다림에도 불구하고 좀처럼 나오지 않았습니다.
전남 진도에서 아들을 기다리는 엄마, 아빠의 속은 까맣게 타들어 갔습니다.
시간은 계속 흘러 세월호가 침몰한 지 16일이 지난 5월 2일 아침,
기다리다 못한 엄마와 아빠는 다시 팽목항을 찾았습니다.

 

그리고 바다가 보이는 곳에 영창이가 그토록 좋아하던 사과를 놔두고 영창이에게 빨리 나와달라고 말했습니다.
부모님의 간절함이 통했을까요. 아니면 사과를 먹고 싶었을까요.
그날 오후 거짓말처럼 영창이는 227번이라는 번호표로 엄마, 아빠 품에 돌아왔습니다.
휴대전화 가방 등 다른 물건은 발견되지 않았지만 영창이는 주머니에 학생증을 넣고 있어서 아들임을 쉽게 확인 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영창이의 손톱은 망가져 있었습니다.
우리가 민간잠수사의 증언에서 알 수 있듯이 영창이도 마지막까지 탈출하기 위해 온 힘을 다해 벽을 긁고 위로 오르기 위해 안간힘을 썼습니다.

 

엄마, 아빠는
“마지막까지 무엇을 그렇게 긁었을까” 하시며 울먹이셨습니다.
결국엔 차가운 몸으로 돌아온 영창이…
영창이 아버님은 삭발을 하셨고 온 몸으로 영창이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고자 하셨습니다.

1주기 때 광화문에서, 노원경찰서에서 뵌 아버지의 모습과 교실남천화분에 물을 주시던 애틋한 부정이 떠오릅니다. 영창이의 자리에는 여동생의 오빠를 향한 글도 있습니다.

 

2분단 김응현 선생님의 교탁 바로 앞에 자리했던 영창이는 지금은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제훈 – 단원고 2학년 8반

8반 제훈이는 착한 아이였어요. 화를 낸 게 손에 꼽을 정도였다니 얼마나 착한 성품을 가졌는지 알 수 있지요.

어느 날 엄마가 제훈이에게 물었대요.

“제일 친한 친구가 누구야?”

엄마들은 내 아이의 절친이 누구인지 궁금하니까요.
그런데 제훈이가 대답을 피하더래요. 다시 물은 엄마의 물음에 제훈이의 대답은 참 뜻밖이었지요.
“친구는 순위를 정하면 안되는거야.”

아마도 누군가와 제일 친하다 하면 나머지 친구들에게 미안해서이지 않았을까요?

 

8반 반장이면서 봉사 동아리 TOP에서 활동하던 제훈이는 가족들에게도 늘 다정다감 했대요. 배우 이민호를 좋아했던 엄마를 위해 사진과 출연 드라마의 노래들을 엄마 휴대전화에 넣어주었고, 생신 날에는 이민호 그림을 그려 깜짝 선물을 하였답니다.

 

두 살 차이 남동생은 그런 형을 엄마, 아빠보다 착한 형이 더 좋다고 했다니 제훈이가 동생에게도 얼마나 자상하고 따뜻한 형이었을지 짐작이 가요.

늘 팝송을 흥얼거리고 여러가지에 관심이 많던 제훈이는 글짓기에서도 뛰어난 실력을 발휘해 2학년 때는 글짓기 대회에 나가 수상하였고, 과학경진 대회에서도 상을 받았지요.

 

고운 성품으로 가족들에게는 커다란 기쁨이었으며, 친구들과는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던 제훈이는 세월호 침몰 일주일이 지난 4월 23일에야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 돌아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었습니다.

김창헌 – 단원고 2학년 8반

“18년 동안 넌 우리에게 너무 큰 행복을 줬지. 네가 내 아들이라는 것 자체가 듬직했고, 넌 내 희망이자 내 전부였어. 그런데 너를 위해 아무것도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엄마가 돼버렸어.
미안해. 정말 미안해. 힘없는 엄마라서 미안해.
아무리 자격 없는 엄마지만, 널 열 달이나 내 배에서 품고 18년 간 떨어진 적 없었는데 마지막 인사도 못 했구나.
엄마는 하고 싶은 말도, 듣고 싶은 말도 너무 많은데, 단 한번만이라도 꿈에 나와 엄마랑 이야기하자. 창헌아, 꼭꼭 알았지? ”

 

엄마, 아빠의 생일이나 결혼기념일이 되면 늘 깜짝파티를 해주고,

보쌈을 좋아하는 엄마, 아빠를 위해 몰래 보쌈을 사다가 침대 아래에 숨겨두고 엄마, 아빠가 일을 늦게 마치고 집에 들어 오면 마치 아무것도 준비하지 않은 것처럼 능청을 떨었던 창헌이.

창헌이는 그러다가 갑자기 숨겨뒀던 보쌈이나 케이크를 꺼내오곤 했습니다.
또 풍선으로 집을 예쁘게 꾸미기도 했습니다.

 

평소 과묵하고 무뚝뚝해 보였지만 맞벌이를 하며 고생스럽게 자기와 여섯 살 어린 남동생을 키우는 엄마아빠를 생각하던 배려심 많은 아이였습니다.

 

2학년 8반 9번 김창헌, 좌우명 “후회없이 살자”

창헌이의 꿈은 치과 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치과 의사가 돼서 결혼도 안하고 엄마, 아빠 모시고 좋은 집과 차를 사주고 영원히 함께하겠다고 했답니다.
여섯 살 차이 나는 동생도 하루하루 형과의 추억을 떠올리며 살고 있습니다. 엄마,아빠도 모르는 둘만의 비밀도 많았는데 이젠 혼자만 알아야 하니까 너무 속상하고 힘들다고 합니다.

 

창헌이는 5월 1일 가족들에게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꿈에 나타나 바다를 가리키며 ” 나 여기 있으니까 살려달라”고 말한 다음 날이었습니다. 희생 학생 가족들은 지금도 고통의 나날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든든한 버팀목 형을 잃고 힘들어 하는 동생과 아빠라는 이유로 내색도 못하는 아빠, 날마다 그리워하는 엄마. 창헌이네 가족 모습입니다.
창헌이는 지금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박선균 – 단원고 2학년 8반

“코드왕 선균이”

“균이”로 불리우는 선균이는의 좌우명은 “단 한번뿐인 인생 즐기며 살자”였습니다.  물론 카톡 상태 메시지도 “열심히 살자” 였구요.

평소 로봇 조립과 종이접기 등을 취미로 삼으며 학교에서는 동아리 Dynamics 회장으로 후배들의 존경과 선배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던 책임감 있는 동아리 회장이었습니다.

 

웃는 모습이 귀여웠고, 예쁜 마음과 뭐든 열심히 성실하게 실천하던 모습. 항상 예의 바르게 인사를 해주던 모습이 선배들이 기억하는 선균이의 모습입니다.
물론 대학과 미래의 꿈도 기계공학과에 진학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집에 오면 방문을 닫고 방에서 종이접기와 조립하는 게 일상이었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아빠하고 무척 친했다고 합니다. 아빠가 퇴근해서 집에 오면 친구처럼 하이파이브를 했다고 하네요. 그렇게 친구처럼 지냈던 아빠의 생신은 바로 운명의 4월 16일이었습니다. 선균이가 수학여행을 가기 위해 탑승한 세월호가  진도 앞 맹골수도에 침몰한 날입니다.
선균이의 축하 전화를 기다렸던 아버지는 부랴부랴 진도로 향해야 했고 비극의 한복판에 서야 했습니다.

 

친구처럼 다정다감했던 선균이는 25일 만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너무 늦게 돌아온 탓에 아버지만이 선균이의 마지막 모습을 기억 할 뿐 가족들은 선균이가 수학여행을 들뜬 마음으로 떠나던 모습을 마지막으로 기억하고 계십니다.
선균이는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하늘나라 수학여행 중에 있습니다.

 

♧거기에선 맛있는 것도 많이 먹고 잘 놀고 있지?
누나가 매일 찾지 않는다고 미워하고 그러는 건 아니지?
책상에서 아직도 네 냄새 나는 것 같아 좋다.
이렇게 나마 너와 함께 할 수 있어 행복해.
아 참..너는 내 생의 best of best 야~!

그냥 너무 미안해 너한테 해줄 말이
이것 밖에 없어서 미안해.
그냥 다 미안해.
자꾸 너 찾는 것도 미안해.
그리고 이 나쁜 어른들 꼭 혼내줄게.. 꼭.
아~!
그리고 전에 우재랑 같이 꿈에 나와줘서 고마워.
오랜만에 너희 미소 보니까 너무 행복했고 마음이 편해졌어.
고마워 정말.
ㅇㅇ누나 ♧

지상준 – 단원고 2학년 8반

상준이는 책을 무척 좋아했습니다. 용돈으로 책을 사 읽는 것을 즐겼습니다. 가끔은 소설을 쓴다며 글을 끄적이기도 했답니다.

 

상준이는 생각이 깊은 아이였습니다. 철학적인 질문으로 가족들을 놀라게 할 정도였습니다.

 

상준이는 바람을 좋아했습니다. 초저녁에 부는 신선한 가을 바람이 볼을 스치면 기분이 좋아진다고 했으며 바람을 느낄 수가 있다며 인라인 스케이트를 즐겨 타곤 했습니다.

 

상준이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하루는 엄마에게 다가와 세 번이나 “사랑한다”고 했습니다. 엄마가 기뻐하자 상준이는 쑥쓰러워 하며 “하루에 사랑한다는 말을 세 번 들으면 암에 걸리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상준이가 좋아하는 바람이 잘 불어오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상준이는 현재 잠들어 있습니다.

 

-상준이 어머니의 편지

“너는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가고 싶지 않다고 몇 번이나 말했지.
무언가 나쁜 예감이 들었던 거니? 엄마도 보내기 싫었지만 다녀와서 친구들이 재미있게 웃고 떠들고 추억을 이야기하는 데에, 함께하지 못 할까 봐 수학여행을 보냈단다. 지금에 와서 땅을 치며 후회하고 있어. 하지만 하나 뿐인 너는 돌아오지 않는구나.”

박수찬 – 단원고 2학년 8반

“든든한 내아들 수찬 ~!
친구들하고 재미 있게 잘 놀고 있지.
이곳에서 보다 더 행복해야 해. 사랑해.

엄마.”

 

“일단 꿈을 꾸어라”

수찬이의 목표입니다.
수찬이는 누나와 남동생이 있는 3남매 중에서 가운데입니다.
세월호참사가 일어났을 때 수찬이 동생은 충격을 받아 울고 있는 엄마와 누나를 대신해서 답장이 없는 형에게 계속해서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빨리 와라”
“제발 부탁이다”
“힘을 내”
“살 수 있어”
“제발 살아 있어라”
“살아라”
“가족 전체가 함께 울고 있다”고 말하며 수찬이 동생은 형에게 제발 살아서 돌아오라고 간절히, 간절히 부탁했습니다.

그러나, 수찬이는 끝내 동생의 메시지에 답장을 보내지 못하고 세월호와 함께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친구들을 잘 챙기며 그림을 잘 그렸던 수찬이. 수찬이의 꿈은 애니메이션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수찬이는 아빠가 계시지 않는 집안의 엄마의 보호자였고 누나와 동생의 든든한 보디가드이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기억하는 수찬이를 옮깁니다.
아기였을 때 울보였던 아들, 어떤 운동이든지 잘하는 아들, 친구들에게 인기 많던 아들, 무뚝뚝하지만 속 깊은 아들, 늘 힘이 되어주는 아들, 비싼 거 사달라고 한 적 없는 아들, 세계사를 좋아했던 아들, 착하고 예의 바르다며 어디서나 칭찬받던 아들, 친구들과 놀다가도 엄마가 걱정할까 봐 저녁 여덟 시가 되면 집에 들어 오던 아들, 아침이면 갓 태어난 강아지 마냥 눈도 못 뜨고 꾸물대던 아들, 이제 열심히 공부해야겠다고 책을 사달라던 아들, 아무리 생각해봐도 가끔 짜증냈던 것 외에는 속 썩인 일이 없었던 착한 아들.
엄마의 모든 것이었던 아들이 지금은 영정 속에 있습니다.

 

수찬이는 평택서호추모공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박시찬 – 단원고 2학년 8반

시찬이는 한겨울에 태어났다고 자기가 지은 별명이 손이 시려워 “꽁”, 발이 시려 워 “꽁”, “꽁꽁군”입니다.
인터넷에서나 게임을 할 때도 이 닉네임을 사용했습니다.

 

그러나 “꽁꽁군” 시찬이는 겨울이라는 차가운 느낌과는 달리 다정하고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한 살 위인 누나를 많이 좋아해서 언제나 누나 말을 잘 듣고 양보하는 동생이었으며, 어머니한테는 속을 터 놓고 얘기 할 수 있는 친구 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아빠하고 꼭 껴안고 사진을 찍기도 하는 애교쟁이 막둥이기도 했습니다.

 

시찬이의 꿈은 항공 정비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박선균, 고우재, 최현주, 김동수, 조찬민등 과 함께 로봇 동아리 Dynamic활동을 하기도 했고, 컴퓨터를 아주 잘했으며, 비행기를 좋아했기에 당연히 항공정비사의 꿈을 키웠습니다.

 

시찬이는 친구들과 후배들도 잘 챙겨줬는데, 학교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엇나가는 친구들도 편견 없이 다정하게 대해주었습니다. 시찬이에게 많이 의지했던 친구가 나중에 참사 소식을 듣고 깜짝 놀라 당일 날 바로 팽목으로 달려와 시찬이 곁을 지켜주기도 하였습니다.

 

시찬이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백승현 – 단원고 2학년 8반

“우리 승현이가

평소 검정 옷을 좋아 했는데

엄마 꿈에는 하얀 후드티를

입고 왔어.

우리 아들이 천사가 됐나봐…

사랑해. . .”

 

“재미있는 인생을 살아보자”

2-8반 14번 백승현의 좌우명입니다.

 

승현이 부모님은 늦은 나이에 결혼 후 두 번의 유산 끝에 귀한 승현이를 얻었습니다. 승현이가 동생을 보고 싶다고 하였지만 임신 8주 만에 동생을 유산한 후 승현이 하나 만을 위해 헌신하셨습니다.

 

승현이는 예의 바르고 바른 성품으로 자랐습니다.

“엄마가 일이 많아서 그러는데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거 한번 도와줄래?”

몇 년 전 중학생이던 승현이에게 엄마가 이렇게 부탁하자 이날부터 승현이는 재활용 쓰레기 버리는 일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매주 목요일 저녁이나 밤에 학교에 갔다가 집에 돌아오면 병과 종이 등 재활용 쓰레기를 종류 별로 모았습니다. 승현이는 엄마가 이것저것 심부름을 많이 시켜도 불만 한 번 하지 않는 효자였습니다.

집안 일도 자주 도와줬고 엄마가 힘들어 보이면 엄마의 어깨를 주물러 주기도 하였습니다.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요”라고 자주 표현 하였으며 늘 주변 사람을 먼저 배려하는 착한 성품의 승현이였습니다.

 

키187cm. 훤칠한 키에 시원한 외모의 승현이는 모델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또한 형제 없이 외동으로 자라서 인지 동물에 관심이 많아서 동물조련사의 꿈도 가지고 있었습니다.

 

맞벌이를 하시던 부모님은 2014년 4월 1일에 조그마한 가게를 냈습니다. 외동아들 승현이가 대학에 들어가면 돈이 많이 필요할 것 같아서였습니다.

 

하지만 보름 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승현이는 세월호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수학여행 가기 이틀 전, 자전거를 타다 인도의 솟아난 보도블럭에 자전거가 걸려 넘어지며 손목을 다쳐서 깁스를 했던 승현이를 수학여행을 보낼까 말까 고민하다가 한번 뿐인 수학여행이라는 생각에 보냈다가 사고를 접한 부모님의 심정은 오죽하실까요.

 

모델, 동물조련사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효자 아들 승현이는 5월 6일에서야 부모님의 품에 돌아와 지금은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승현이의 짝꿍은 제세호입니다.

 

세월호 참사 후 엄마의 꿈속에 하얀 후드티를 입고 분향소 가족 대기실로 엄마를 찾아왔던 승현이는 2015년 8월 15일 작년 자신의 생일날 아침에도 엄마의 꿈속에 다녀 갔다고 합니다.

 

*기억나? 엄마는 너한테 항상 “우리 아들 없으면 못 살아 “라고 입버릇 처럼 말했는데. 네가 없으니 난 점점 미쳐가고 있는 것 같아.
아직도 엄마의 하루는 우리 아들 사진 보고 그리워하고 울고 또 우는 게 전부란다. 이대로 아들 없이 살아갈 자신이 없네.
이래저래 미안해. 아들.
부디 거기서는 외롭지 않고 행복하길 바라.
엄마가*

안주현 – 단원고 2학년 8반

8반 주현이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 두 형제의 맏이입니다. 주현이는 기타도 잘 치고 손재주가 좋아서 프라모델도 능숙하게 조립하던 재주꾼이었습니다.
운동도 좋아해서 중학교 때는 축구부 활동도 했습니다.

 

주현이의 꿈은 자동차를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한양대학교 자동차공학과에 진학해서 자동차 연구원이 되는 것이 주현이의 장래 계획이었습니다.
사람들이 좋아하는 자동차, 더 우수한 자동차를 만들기 위해서, 주현이는 많은 문물을 경험하기 위해 외국 여행도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이모와 함께 호주에 여행가서, 색다른 외국 자동차들도 구경하고, 프라모델도 더 많이 모아올 생각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 주현이는 여행가서 친구들에게 들려주기 위해서 기타 연습을 열심히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때에도 기타를 가지고 갔습니다.
참사 2주째인 4월 29일에 주현이는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주현이 기타는 주현이와 함께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주현이가 이루지 못한 자동차 연구원의 꿈은 주현이 동생이 물려받아서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승민 – 단원고 2학년 8반

“아들 사랑해
너무 너무 보고 싶은데
울 아들은 엄마 꿈에도 안오네
민아 매일 매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잘 있을거라 믿지만
그래도 봐야 될 것 같다.
아가야 오늘은 꿈속에 놀러와.
사랑해 사랑해”

 

승민이의 책상에 놓여진 엄마의 메모입니다.
승민이가 태어난 건 기적이나 마찬가지였습니다.
몸이 약한 엄마는 승민이 앞으로 두 번이나 유산을 했고 승민이를 임신 했을 때도 6개월까지 자주 병원 신세를 졌다고 합니다.

 

승민이는 홀어머니의 외동아들입니다.
승민이 어머니는 몸이 약해서 자주 편찮으십니다.
그래도 승민이가 곁에 있어서 힘든 줄 모르고 살아오셨다고 합니다.
마음이 따뜻했던 승민이와 엄마는 서로에게 위로와 버팀목이 되어 주는 존재였고
엄마에게 승민이는 세상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존재였습니다.

 

승민이는 언제나 자기 일보다 어머니를 먼저 생각했던 효자아들 이었습니다.
자기 몸이 아파도 몸에 열이 40도까지 올라도 어머니가 걱정하실까봐 내색도 하지 않는 착하고 속깊은 아들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때 승민이는 몹시 들떠 있었다고합니다.
어머니도 좋아라하는 승민이를 보고 덩달아 신이나서 할 수 있는 한 넉넉하게 여행준비를 해서 보냈습니다.

 

승민이의 꿈은
컴퓨터 그래픽이나 게임 관련 직업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엄마의 발소리만으로도 알아채고 대문을 먼저 열어 주고 일하고 들어 오시는
엄마의 어깨를 손끝에 힘을 모아 어깨를 꾹꾹 주물러 주던 승민이.

 

초등학교때는 신종인풀루엔자 때문에 못가고, 중학교 때는 조류독감때문에 못갔던 수학여행을 이제야 간다며 들떠있던 승민이,
하지만
4월 15일 수학여행을 떠나서 18일 금요일에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왔어야 할 승민이는
참사 일주일 뒤인 4월 23일 오늘 같이 생일을 맞이한 준민이와 함께 차가운 몸으로 어머니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승민이 어머니는 세월호 선원들에 대한 공판에서 피해자 진술을 하시며

 

외아들 승민이를 황망히 잃어버린 심정을 토로하시다 쓰러지기도 하셨습니다.

이승현 – 단원고 2학년 8반

가슴이 힘들게 뛰고나면 더 신난다고 주일이면 근처 강서고 운동장에서

 

준형이등 친구들과 함께 축구를 즐겨했던 승현이 였습니다.

 

​승현이는 수학여행을 가기 하루 전날 아빠와 마지막 통화를 했습니다.
그리고 승현이의 아빠는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에 하루하루 힘든 시간을 보냅니다.
아이들이 배에서 마지막 순간을 맞이했던 모습만 떠올리면 마음이 미어지고,
제대로 보도하지 않은 언론에 대한 분노도 치밉니다.

 

승현이의 아빠는 십자가를 지고 안산에서 팽목항, 대전까지 걸었고,
교황에게 이례적으로 교황과 같은‘프란치스코’라는 세례명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세월호를 인양해 실종자를 찾아달라고 진실을 밝혀달라고

 

삼보일배를 하고 계십니다.

이재욱 – 단원고 2학년 8반

“천진난만한 웃음속에 드러나는보조개, 간지러운 웃음소리,
튼실한 허벅지,
어설픈 기타리스트,
우리집 에너자이저 재욱이….
살랑살랑 뺨에 스치는 바람으로,
둥실 웃는 뭉게구름으로,
따스한 햇볕으로,
수드득 떨어지는 빗방울로,
사람들의 웃음 속에,
세상의 모든것들로 돌아 온 아이….”
표현은 다를지 몰라도

 

세상 모든 부모님들이 자식에게 느끼는 감정일 것 입니다.
재욱이 엄마는 재욱이를 윗글과 같이 표현 했습니다.

 

3.3kg으로 태어난 재욱이는
해보고 싶은 것도, 꿈도 많았습니다.

 

야구선수를 꿈꾸었는가 하면, 또 동물과 자연을 좋아해 동물사육사를 꿈꾸었고, 용감한 소방관이 되고 싶어 하기도 했습니다.

 

최근에는 신구대학교 조경학과에 진학하여 환경을 아름답게 꾸미는 환경조경사가 되고 싶다고 했다합니다.

 

재욱이의 목표는 “즐기자”입니다.
재욱이 책상위 시간표와 목표란에는 “즐기자” 세글자로 간단명료하게 목표를 써놓았습니다.
초긍정 아이,
친구들사이에서도 재욱이는 인기가 좋았습니다.

 

재욱이는 머리가 좋고 재능도 많았습니다.
학원에 한 번도 가지 않았지만 시험 때마다 반에서 1~2등의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친했던 “5인방(최성호_이준우_김제훈_김건우(5반 큰건우)친구들과는
학교 폭력과 청소년 자살을 주제로 한 동영상 UCC을 만들어 유튜브등에 올리기도 했습니다.

 

성격도 순하고 착했고 집에서는 가족과 말다툼을 하거나 싸운 적이 없을 정도였습니다.
한 살 많은 누나도 잘 따랐습니다.
재욱이는 미래에 대한 꿈을 누나와 상담할 정도로 터놓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수염이 나기 시작하자 면도를 할까 말까 고민하던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기대와 귀여움을 독차지했던 재욱이는 세월호 침몰 사고가 난 지 8일 만인 4월 23일 가족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8반 2분단 김응현선생님 교탁 바로앞에 짝꿍 김영창과 나란히 앉았던 재욱이는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2015년 jtbc에서 방영한 세월호 참사 당시 활약했던 민간잠수사의 이야기를 들으며 우리는 분노하였습니다.

 

아이들은 살아있었고 살기위해 벽을 부수고 뚫고 안간힘을 썼습니다.

 

재욱이는
평소에도 엄마와 아빠에게
“우리가 가족이어서 너무 행복히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그러나
행복했던 재욱이의 일상과 꿈을 못난어른들이 깨버렸습니다.

이호진 – 단원고 2학년 8반

●오빠 너무 보고싶다.
그곳에서는 나보다 좋은 동생 만나서 놀고있으면 내가 오빠 보러갈께.
미안해.고마워 그리고
무척이나 사랑해.●

 

호진이는 1남 2녀중 장남이였습니다.
밝은성격이라 친구도 많았고 공부욕심도 많아서 공부를 열심히 했을뿐 아니라 성적 또한 우수했습니다.
부모님의 기대를 단 한번도 저버리지 않는 든든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호진이에 대한 이야기는
초등학교 1학년때 담임선생님이셨던 우지원선생님의 기억속에서 어릴적 모습을 찾아보았습니다.
하얀 피부에 내성적인 성격을 가졌으며,
부끄럼이 많아서 앞에서 하는 걸 엄청 싫어했으며,
온순하기도 하여 친구들과도 잘지냈다고 합니다.
절친으로는 같이 별이 된 김승태와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사이였습니다.

 

*저는 중3 여동생만 있는 줄 알았는데 초5 여동생이 또 있더라구요
바로 아래 여동생과는 정말 많이 싸웠는데 막내동생과는 둘도없는 사이였답니다.
내성적인면이 많았지만 그래도 활발한면도 많아서 동생들과도 잘 놀아주었답니다.
컴퓨터를 굉장히 좋아해서 컴퓨터관련일을 하는 직업을 갖고 싶어했답니다.
그래서 구체적으로 어떤회사라고 대기업을 목표로 공부도 했답니다.
컴퓨터에 관심이많아 자기 용돈을 모아서 컴퓨터를 사서 분해도 해보고 싶어했구요*(우지원선생님)

 

어머니의 기억속 승태는
“어느 부모에게나 자식은 특별하겠지요.
그런데 호진이는 딸보다 살가운 아들이였다”
라고 기억하셨습니다.

 

삼겹살을 좋아하고
귤과 요구르트를 매일 입에 달고 다녔을 정도로 좋아했던 호진이,
호진이의 꿈은
대학교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하기를 원했습니다.

 

사춘기…
서로 싸우기도 많이 했던 오누이지간이였지만 싸우면서 많은 정이 들었었나봅니다.
호진이의 책상과 분향소등에는 동생 ㅇㅇ의 오빠에 대한 미안함과 그리움의 글들과 평소 오빠가 좋아했던 과자들,
심지어 즐겨먹던 취향의 라면까지도 동생의 마음을 담아 빼곡히 쌓여 있습니다.

 

호진이는 세월호에 오르기전 내일 생일을 맞을 8반 장준형이와 삼보일배를 하셨던 이호진님의 아들
이승현과 함께 찍은 마지막 사진을 남기고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우리 잘생긴 호진이♡
잘지내? 보고 싶어 너 빈자리가 많이
느껴져 미안하고 보고 싶고해
예전에는 맨날 장난치고 그랬는데
보고 싶어 진짜
미치도록 그립다 호진아
나중에 하늘가면 재밌게 놀자
사랑해 호진아.
잊지 않을께
사랑해 이호진
정말로 잊지 않을게
보고 싶다 호진아……☆

임건우 – 단원고 2학년 8반

“잘 자. 사랑해, 좋은 꿈 꿔, 알라뷰” 하고 인사하던 우리건우. 이젠 동생이 네 사진 앞에 인사한다.
“형아. 잘 자. 사랑해. 좋은 꿈 꿔. 알라뷰”하고….
우리 건우 잘 자.사랑해.좋은 꿈 꿔.알라뷰.

 

건우는 열살어린 남동생이 있는 형제중에 맏이 입니다.
정 많고, 낮에 맛있는 걸 먹으먼 꼭 엄마, 아빠거 챙겨놓고,
공원을 걷다 들꽃을 보면 “엄마한테 갖다 주자, 우리 엄마 들꽃 좋아 하잖아”며 엄마 서랍에 들꽃을 꺽어다 놓고,
아빠 속옷 서랍에는 빵이나 귤등 먹을 걸 넣어 두기도 했습니다.

 

겨울에는 엄마 퇴근 시간에 맞춰 보일러를 틀어놓고 온 방에 이불까지 깔아놓고 “엄마 몸 녹여”라던 엄마의 첫 애인이자 영원한 애인같은 아들 건우.
열살 터울인 남동생은 대학생 때부턴 자기가 키운다고 부모님은 노후준비나 하라던 효자였고,
결혼하면 아이를 다섯명 낳아서 할머니와 부모님께 즐거움을 많이 드리고 싶다뎐 든든한 효자아들 이였습니다.

 

엄마는 두 번의 수술끝에 건우를 낳았고 십년후에 건우의 동생이 생겼습니다.
건우는 동생을 끔찍이 사랑했습니다.
형을 잃은 동생은 지금도
“형아. 방에만 있으면 심심하겠다”면서 건우의 사진을 컴퓨터 책상 의자에 올려 놓기도 하고,
사진속의 건우와 묵찌빠도 하고 씨름도하며 형을 그리워하기도한다고 합니다.

 

매일 아침 7시30분,
직장에 다니는 엄마는 항상 건우보다 10분 일찍 집을 나섰습니다.
4월15일,
건우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는 왠지 모르게 건우가 캐리어를 끌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모습을 보고 싶었습니다.
10분 일찍 집을 나서 엄마는 집근처 버스정류장에서 건우와 친구들이 신나게 이야기를 나누며 골목길로 사라지는 모습을 행복하게 바라보았습니다.
그게 엄마가 본 건우의 마지막 모습이였습니다.

 

“하고 싶은거 하면서 살자”

 

건우의 좌우명입니다.
건우는 상상력이 풍부한 아이였다고합니다
어릴때부터 만화가나 게임을 만드는 사람이 되겠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영화《변호사》를 본 후에는 변호사가 되겠다는 꿈을 가졌습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에는 열심히 공부하겠다는 다짐을 했는데 그 꿈조차도 시도해보지 못하고 하늘의 별이 되어 버렸습니다.

 

게임도 잘하고 친구도 많았던 건우,
8반 1분단 맨앞자리 창가에 박시찬과 짝꿍이였던 건우는 5월 1일에서야 가족의 품에 돌아와 지금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임현진 – 단원고 2학년 8반

현진이는 집안의 장손이자 외동아들입니다.
현진이를 아는 친구들의 이야기를 먼저들어 보겠습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특히 레알마드리드의 광팬이었으며 패가수스처럼 날개를 단 듯 날렵하고 빨랐습니다.
평소에는 조용하지만 목소리가 매력적이고 시크하면서도 착한 현진이었으며 재밌고 웃기고 쿨한것 같지만 은근 엉뚱하고
웃을때 보조개가 생기고 화도 안내고 사교성도 좋은 현진”이로 기억합니다.”
현진이의 부모님 또한 현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만을 바랐던 만큼 현진이는 자유롭고 항복했습니다.

 

현진이의 꿈은
중학교때까지는 운동선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다 단원고에 진학하며 공부에 취미를 붙이게 되었고 현진이의 꿈도 실내건축디자이너로 바뀌게 되었습니다.

 

염마와는 찰떡모자로, 아빠와는 친구같은 아들로 지내왔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났던 현진이는 2014년 4월16일아침,
전날 저녁 보고싶다는 아빠의 카톡 메시지에 “me too”라고 답했고.
8시52분 배가 기운 상태에서도 출근하는 아빠가 걱정 할까봐 내색조차 하지 않았습니다.
9시4분에 다시 소식을 묻는 아빠에게 (구명조끼)”챙겨입었어”라고 말했습니다.
그시각 아들과 통화하는 수화기 넘어로는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이 들렸답니다.
그러나 현진이는
사고후 21일만인 5월6일 되어서야 뭍으로 나왔습니다.

 

시고당일
[울아들 인천항에서 세월호 여객선타고 제주도로 수학여행가는 도중 짙은 안개때문에 암초에 부딛쳐 침몰 사고~!
전원 구조 됐다는데 아직 걱정이네요]라고 카카오스토리에 올렸던 아빠는.
5월6일에는
[울 애기가 아직까지 배 속에서 안나오고 있습니다.엄마 아빠하고 헤어지기 싫은가 봅니다.
사랑하는 우리애기 하루 빨리 따뜻하고 편안한 곳에 가서 친구들하고 편히쉬었으면 좋겠 습니다.
사랑하는 우리애기~!
엄마 아빠도 영원히 현진이를 ♡♡♡]이라고 남겼습니다.

 

그날오후,
현진이는 학생증,도서관회원증,카드,휴대전화,그리고
현금 55,350원을 가지고 나왔습니다.
현진이는 효자였습니다.
용돈을 주면 안쓰고 모아서 엄마에게 가스레인지와 전자레인지를 선물하기도 하였습니다.
현진이 방은
아직도 멈춰버린 2014년 4월16일 그대로 입니다.
부모님은 노란현수막에
“아이들이 국가다 아이들이 안전하게 살수있는 미래를 만들어야 한다”는 문구를 만들어 안산 시내에 걸어 놓았습니다.

 

엄마가 식당일 늦게 끝마치고 나왔을때 식당밖에서 엄마를 기다리다 자전거에 태워 돌아오곤했던 현진이..

 

“엄마를 자전거에 태운채 안다..엄마의 행복. 추운데 왜 왔어. 이렇게 늦게. 하면서도 꽃처럼 피어나던 엄마의 환한 얼굴. 엄마는 우리 아들 허리 날씬한데.
멋져 하면서 등에 뺨을 댔지.
엄마 안 무겁냐? 엄마 안 무거워.하면서도 걱정하는 엄마 말 때문에 씽씽 더 힘차게 페달을 밟았던 걸 엄마는 알고 계실까….”

 

5월 9일에 태어났던 현진이는 5월 6일에 깊은 바다에서 돌아와 태어났던 5월 9일에 하늘로 돌아갔습니다.
현진이는 안산하늘공윈에
잠들어 있습니다.

장준형 – 단원고 2학년 8반

초등학교 2학년부터 엄마를 대신해 자신과 동생 삼남매를 길러주었던 큰 고모님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엄마”라 불러줬던 아이.
“네”
“할 수 있어”
를 입에 달고 열심히 살던 “긍정대장”준형이
주말이면 복지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성당에서는 학생회 활동 을 하며 신부님을 도와 미사를 보조하는 복사를 맡았습니다.
준형이에게는 두 남동생과 여동생 하나가 있습니다.
동생들에게
“나중에 알바해서 너희 용돈을 주겠다”며 장남으로서의 책임감을 보여주었고,
가족들에게는
고등학교를 졸업하면 운전면허를 따서 “전용기사”되어 주겠다고 약속도 하였습니다.

 

*지금을 즐겨라*
준형이의 좌우명입니다.
준형이의 꿈은 카톨릭대 간호학과에 진학하여 남자 간호사가 되는것이였습니다.
할머니께서 일곱차례나 수술을 하셨고 작은 고모님이 간호사로 일하시는것이 영향을 주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준형이는
동생들과 작은고모님댁 조카들을 끔직히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집에서 작은 고모님댁까지 5~6km를 40~50분여를 걸어와 만나고. 돌아갈 차비를 줘도 받지 않고 걸어서 돌가가기도하고,
피자,치킨등 먹거리가 생기면 꼭 가족 모두가 나눠 먹을 수 있도록 챙기기도 했다합니다.

 

착하고 사랑 많은 준형이는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1학년, 어느날 준형이는 여자친구가 생겼다며 작은 고모직장에 데려와 거리극축제 보러간다며 고모님께 애교를 부리며 용돈을 졸랐습니다.
그때에 고모님에게 비친 여자친구는 바로 3반 깨박김시연 이였습니다.
물론 잠깐 사귀는 관계였구요.

 

99.23%
몸에 있는 점의 위치가 같고 유전자가 99%이상 일치 한다하여 손에 묵주 쥐어주고 입관까지 끝냈던 준형이 장례식,
세번이나 DNA가 일치한다던 국과수,
하지만
하루가 지나자 더높은 수치의 가족이 나타났다며 달려온 국과수,
준형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안 가족들은 다시 팽목으로 내려가 다시 일주일여의 기다림끝에 비로소 준형이를 만날 수 있었고 복시옷을 입힌후에 장례를 치렀습니다..
일주일에 두번의 장례식을 치러야했던 가족들…
준형이를 잃은것도 억울한데 정부의 허술한 관리체계까지 경험한 아버지 장훈님은 지난 일년간 정부와 싸우셨고 지금은 가족대책위 진상분과위원장을 맡고 계십니다.

 

오늘 준형이 생일은
홍콩 천주교 정의평화위원회 위원 20여분과 함께 분향소에서 같이 하였습니다.

 

다음은 작은 고모님이 작년에 저에게 보내주신 준형이에게 보내는 편지입니다

 

《사랑하는 준형아…
보고싶은 사무엘…
도대체 얼마나 시간이 흐른걸까?
너의 목소리 …마지막으로 다녀와서 뽀뽀해줄께요… 개념있게 다녀올께요…하고 간게 그냥 어제인 것 만같다…
준형아..고모보다 먼저 세례받고 성체 모실때마다 고모에게 부럽죠? 라며 놀리던 너의 웃는 모습이 그립다…고모가 세례받는날 우리준형이가 복사서 주었는데…
지금은 주님곁에서 가족들 지켜보고 있겠지?
일년중 항상 이날이되면 몇일전부터 사고 싶은걸 이야기했었지…비싸지도 않은것들인데 …생일날되면 꼭 하나는 사줘야되는 거라고 고모에게 애교부리던 우리사무엘…
큰고모에게 “엄마’라 이야기못하던 니가 무엇을 느낀걸까? 세월호에 타던 그때 “엄마 다녀올께요” 라는 말에 눈물 흘리던 큰모고 얼굴도 생각나고…
여자;친구 생기면 피자에 치킨에 작은고모는 친구니까 소개해줘야한다고 데리고오던 너의 모습도 떠오르고… 오늘밤에 만날수 있을까? 너를 보내고 하루하루 시간은 속절없이 흐르고..
너를;위해 그무엇도 해줄수없는 작은고모인 내가 꿈속에서라도 만날자격은 되는걸까? …
보고 싶다 그립다…아니 말로 표현이 안된다..
그냥 미사안에서..기도안에서 … 그때만이라도 만나자…사랑해…》

 

4월30일에 돌아온 준형이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선우 – 단원고 2학년 8반

선우는 두 형제중 맏이로, 남동생을 아꼈습니다.

선우는 조용하고 선한 성격으로 교우 관계가 좋았습니다. 축구와 농구를 즐겼습니다.

 

선우네 식구들은 화목하고 사이가 좋았습니다. 선우는 식구들과  같이 모여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매일 같이 식사를 하고, 이야기를 하곤 했습니다.

선우는 밖에서 친구들과 놀다가도 가족들이 모이는 식사 때면 집에 돌아갔습니다. 그래서 친구들은 집에서 매끼를 꼬박꼬박 먹는 선우를  ‘삼식이’ 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그러거나 말거나 선우는 엄마가 퇴근하는 길이면 다른 일을 하다가도 뛰어가 엄마를 마중나갔습니다. 그리고 같이 가족들과 같이 저녁을 먹으며 엄마가 만든 음식이 제일 맛있다고 말했습니다. 좋아하는 유부초밥이나 갈비, 비빔국수를 먹을 때면  엄마에게  애교도 부렸습니다.

선우의 꿈은 평범한 회사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선우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지금 평택서호추모공에 잠들어 있습니다.

죽은 아이를 기리는 노래 (말러 5장)

 

이렇게 폭풍이 부는 험한 날씨에
나는 절대로 밖에 아이들을 내보내지 않았는데
그 아이들을 끝내 놓쳐버렸다
나는 한마디 말도 안했는데

 

이렇게 폭풍이 부는 험한 날씨에
나는 절대로 밖에 내보내지 않았는데
나는 아이들이 병이라도 앓을까 걱정했지만
그것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폭풍이 부는 험한 날씨에
나는 절대로 밖에 내보내지 않았는데
언젠가는 죽으리라 두려워했는데 이제는
그 두려움도 없어졌구나.

 

이렇게 폭풍이 부는 험한 날씨에
나는 절대로 밖에 내보내지 않았는데
그 아이들을 끝내 놓쳐버렸구나
나는 한마디 말도 안했는데

 

이렇게 폭풍이 부는 험한 날씨에
이렇게 비바람치는 날씨라고 그들은
잠들고 있겠지
그 아이들은 엄마곁에 있듯이
폭풍의 두려움도 없이
하느님 곁에
엄마곁에 잠들고 있겠지
잠들고 있겠지….

김재영 – 단원고 2학년 8반

“매 순간에 최선을 다하며 살자”
재영이의 좌우명입니다.

 

” ‘초보 엄마’에게 넌 태동이라는 생명의 신비함을 알려주었지.
핏기 묻은 너를 가슴에 안았던 그 벅찬 순간이 아직도 생생하단다.
그런 우리 아들이 지금 엄마 곁에 없다는 이 현실이 믿기지가 않는다.

 

고등학교에 입학해 꿈이 생긴 너는 열심히 공부하기 시작했지.
입학식을 한 첫날부터 야간자율학습을 한다는 아들의 말에 엄마는 놀라고 대견하다는 생각을 했단다.
그리고 1년 동안 하루도 빠지지 않고 너 자신과의 약속을 지켜나가는 모습을 보며 네가 너무 자랑스러웠단다.
우리 아들의 꿈은 구글에 입사해 컴퓨터 프로그래머가 되는 것이었지.
스티브 잡스의 책이 나오자마자 사달라고 하더니 베개 옆에 두고 읽던 너의 모습에서 청년으로 성장해가는 것을 봤단다.

 

‘으뜸 단원인 상’을 받고 설레어하는 아들을 보며 엄마는 든든했단다.
사랑하는 아들아, 정말 미안하구나. 그런 너를 엄마가 지켜주지 못해서.
얼마나 힘들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보냈을지….
그 순간 엄마는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저 무능한 부모가 되었단다.”

 

재영이는 컴퓨터를 좋아했습니다.
컴퓨터 부품을 주문해 집에서 뚝딱뚝딱 컴퓨터를 조립했을 정도였고 컴퓨터 게임도 잘했습니다.

 

이런 재영이의 꿈은
컴퓨터공학을 전공하여 구글에 입사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는 스마트폰을 사주면 아들이 게임만 할까봐 폴더폰을 사줬답니다.
대학에 들어가면 스마트폰을 사주겠다고 했고. 그런 엄마의 말도 잘 따랐습니다.
재영이는 고등학생이 되면서 열심히 공부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늘 엄마에게 “나중에 좋은 대학에 합격해서 단원고에 현수막이 걸릴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하곤 했답니다.

 

재영이에게는 3살 어린 여동생이 있습니다.
엄마는 아들과 딸을 데리고 방학 때마다 이곳저곳 가족여행을 다녔습니다.
재영이가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제주도로 가족여행을 갔습니다.

 

재영이는 어릴때부터 평발이었다고 합니다
.지난해 수학여행을 떠나기 몇일전까지만 하여도 교정화를 신었지만 교정이
완료되어 새운동화를 신고 4월15일, 재영이는 두번째 제주도 여행을 떠났습니다.
2년 전 가족여행 때 그렇게도 좋아했던 제주도를 친구들과 다시 찾게 됐다고 들떠있었던 재영이였습니다.

 

하지만
인천항을 떠난 세월호는 4월16일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했습니다. 지난해 4월22일 엄마에게 돌아온 재영이는 지금 경기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전현우 – 단원고 2학년 8반

현우는 남매 중 맏이였습니다.  여동생을 아껴 항상 잘 챙겨주었습니다. 항상 여동생 손을 잡고 다녀서 동네에서도 동생 잘 돌봐주는 오빠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현우는 듬직하고 어른스러운 성격이었습니다.

 

조기축구팀의 감독이자 축구심판이었던 아버지는 현우와 가까웠습니다. 조언자이자 든든한 버팀목 역할을 했습니다.

수학여행 날, 현우는 아빠께서 사 주신 신발을 신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리고 잘 다녀오겠다고 인사했습니다.

그러나 현우는 부모님을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현우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제세호 – 단원고 2학년 8반

세호는 털털한 성격으로, 웃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세호는 성실하고 듬직한 학생이었습니다. 바둑, 수영, 연기를 배우고, 주말이면 등산을 가며 몸과 마음을 단련했습니다.

맛있는 음식을 좋아했던 세호의 꿈은 요리사였습니다.경희대학교 조리학과를 목표로, 성실히 노력했습니다.

 

사고 후 세호 아버님은 특별법 제정을 위해서 또 진실규명을 위해서 “416약속지킴이”에 참여해 달라고 호소하셨습니다.

 

-세호 누나의 편지

 

많이 그립다, 녀석아. 넌 누나 보고 있지? 못난 누나지만 앞으로도 지켜봐주라. 다음주면 1주기야.
어이없지 널 잃은 후 시간은 멈춰버리길 바랬어. 야속하리 만큼 시간은 빨리간다. 시간이 빠른건지 내가 더딘건지 너무빨리 지나간다.
지금도 똑같은 마음이지만 되돌리고 싶은 마음뿐이야.

다 그대로인데 너만 없어,그게 정말싫다.
사랑하는 우리 애기 마지막 본것도 1년이 다되가. 너는 누나 매일 보고 있지?
그렇게 믿고 있고 믿고 싶어.
나도 너 보고 싶은데 ..
누구보다 보고 싶고 누구보다 그리운데 …
그립다고 몇십번, 수억 만번을 악써봐도 왜 너는 없는거니…
누나 정말 이제는 지쳐 …
사는게 사는것 같지도 않아…
오늘은 너무 많이 투정부려서 미안하고 그만큼 더 보고 싶고 아주 많이 사랑하고 또 사랑해. 내사랑 .

조봉석 – 단원고 2학년 8반

봉석이는 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그래서인지 애교가 많았고 재롱도 잘 부렸습니다.

 

봉석이네  집안은 늘 화기애애했습니다. 매일 저녁 가족들과 저녁을 먹고, 이야기를 나누며 화목한 시간을 보냈습니다.봉석이도 친구들과 운동을 하다가도 저녁 시간이 되면 집에 돌아가곤 했습니다.

 

봉석이는 축구, 야구, 농구, 등 공놀이를 좋아했고 노래부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봉석이의 꿈은 경찰관이 되는것이었습니다.

4월 5일 친구들과 생일파티를 하며 흐드러지게 피어난 벚꽃나무아래서 추억을 쌓았던 봉석이는 이제 더이상 친구들과 함께 할 수 없습니다.

조찬민 – 단원고 2학년 8반

찬민이는 막내아들이었습니다.찬민이는 초등학교 6년, 중학교 3년을 전부 개근할 정도로 성실한 성격이었습니다.

 

찬민이는 알뜰했습니다. 얼마 안돼는 용돈을 쪼개서 저축을 했습니다.

 

찬민이는 요리를 잘 했습니다.  특히 동그랑땡을 잘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음식을 만들어서 형과 함께 나눠 먹었습니다.

찬민이는 엄마를 잘 도왔습니다. 엄마가 힘드실까봐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했습니다. 찬민이는 “엄마가 아프지만 않으면 다 괞찮다”는 효자 아들이었습니다.

 

찬민이 아버지는 밤낯으로 일을 하느라 찬민이와 시간을 많이 보내지는 못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두달 전, 찬민이와 좋아하는 회를 같이 먹은 게 찬민이랑 아버지가 함께한 마지막 추억입니다.
아버님은 찬민이가 곁에 있을 때 좀 더 살뜰하게 챙겨주지 못한 것이 너무나 후회스럽습니다.

 

찬민이는 세월호 침몰후 33일만에야 주검이 되어 돌아와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었습니다.

 

-찬민이 어머니의 편지

“내 아들 찬민.오랜만에 엄마가 찾아왔네. 미안하구나.
외롭지 않게 해주겠다고 약속 해놓고 이렇게 오래토록 외롭게 했네..
내 아들 찬민.사랑하는 아들 찬민.친구도 많은 내 아들 찬민
사랑한다. 사랑한다.”

최수빈 – 단원고 2학년 8반

수빈이의 부모님은 수빈이를 조용히 가슴에 담고자 하십니다.
따라서 수빈이에 대해서는 적을 수가 없습니다.
이를 이해하고, 수빈이를 기억하여 주셨으면 합니다.

최정수 – 단원고 2학년 8반

정수는 성품이 선했습니다. 무거운 손수레를 끄는 어르신들을 보면 밀어 드리고, 어려운 친구를 도왔습니다.

 

정수는 엄마에게 다정한 아들이었습니다. 비오는 날이면 엄마에게 전화해 우산 가져갔는지 물었고, 주말이면 피곤한 엄마를 위해 요리를 했습니다. 엄마의 생신 때마다 미역국을 끓였습니다.

 

정수는 영화와 연극을 좋아했고, 연극부 활동을 했으며 방송사 피디를 꿈꾸었습니다.

4월 16일 아침, 정수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엄마, 저없으면 어떡해요?” 라고 말했습니다. 엄마가 놀라서 그게 무슨 소리냐 묻자 애써 태연한 목소리로 “배가 미쳤나 봐요.물이 들어오고 컨테이너가 떨어지고…”라고 했습니다.

그것이 정수의 마지막이었습니다.

 

지금 정수는 평택 서호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최진혁 – 단원고 2학년 8반

진혁이는 긍정적이고 적극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정이 많은 성정으로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진혁이는 가족들을 배려하는 성숙한 성격이었습니다.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을 챙기곤 했습니다.

진혁이의 꿈은 과학자였습니다. 그리고 러시아에 가서 기차여행을 해보고 싶어했습니다.

 

엄마가 새로 사 준 운동복을 입고 수학여행을 떠난 진혁이는 세월호참사 14일만에야  돌아와 안산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홍승준 – 단원고 2학년 8반

늦둥이인 승준이는 집안에서 귀여움을 받으며 자랐습니다.
승준이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으며 약속한 건 기필코 지켰습니다.

축구를 좋아했으며 최진혁과 친했습니다.

승준이의 꿈은 공군사관학교에 진학하여 파일럿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승준이의 부모님께서는 막내 아들을 손 한번 써보지 못하고, 국가로부터 구조의 손길 한번 받지 못하고 황망히 잃어 버린 것에 슬퍼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