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곽수인 – 단원고 2학년 7반

수인이는 부모님이 첫 아이를 잃고 10년 만에 얻은  얻은 아이입니다.

수인이는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었습니다.하지만 엄마에게는 친구처럼 다정다감했습니다. 수인이는 매일 엄마와 수다를 떨곤 했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수인이는 한국사와 세계사 그리고 지리를 좋아했습니다.

 

수인이는 삼국지의 장비 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습니다.’약한 자는 관대하게 대하고, 강한 자와는 당당하게 맞서자’ 가 수인이의 좌우명이었습니다.

 

수인이의 꿈은
외국계 기업을 다니며, 해외에서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인이의 꿈은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수인이는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수인이가 가족 곁 떠난 날은  수인이 부모님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습니다.

김건호 – 단원고 2학년 7반

건호는 외동아들이었습니다.

진호는 앞장서기 좋아하고 목소리가 컸습니다. 성격이 털털하고 활달했습니다.

 

건호에게는  늘 삼총사같이 어울려 다니는 친한 친구 둘이 있었습니다.

셋은   주말마다 모여 같이 놓았습니다. 치킨을 먹고, 장난을 치며 신나게 떠들었지요.
친구들은 건호에게 아기자기한 공룡그림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건호는 그 그림을  SNS의 프로필 사진으로 삼았습니다.

건호가 떠나고, 친구는 건호의 책상 위에 꽃과 함께 공룡그림이 그려진 카드를 올려 두었습니다.

 

-건호 친구들의 편지

 

●언제나 앞장서기를 좋아하고 목소리 큰 너라서 금방 돌아올 줄 알았어, 근데 우리 애들중에서 꼴찌로 왔잖아. 진짜 많이 기다렸는데…
너가 써줬던 편지들 일찍 버릴걸….
이제 평생 어떻게 버려…
너 생각하면 그냥 미안한 마음뿐이야.
20살 되면 술 한잔 마시면서 과거 이야기 다 풀려 그랬는데 …
우리 사이도 여기서 멈춰버렸네…
벌써 1년, 정말 말도 안돼~!
너 말투가 귀에서 맴돌고 표정. 걸음걸이 하나 하나가 생생한데 왜 너네는 우리랑 다른 세상에 있는거야??●

 

●건호야 ~!!여기서의 너처럼 거기서도 항상 당차고.아이들 이끌어주고. 웃는 모습 예쁜 너였으면 좋겠다.
아프지 말고…
아픈적도 별로 없던 너라 걱정은 별로 안됨!
나 잊지말고 나 얼른 갈태니까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땐 친구사이로 오래오래 지내자!!
평생 잊지 않을께●

김기수 – 단원고 2학년 7반

기수는 든든하고 의젓한 성격이었습니다. 기수는 누나와 친했습니다. 둘은 다정한 오누이였습니다.

 

-2반 희생학생 강우영 언니의 편지.
“기수에게
안녕 기수야 ㅇㅇ누나야 누나 친구,
하늘 공원 갈 때마다 얼굴보고 가는데 학교에 와서는 너희반에 들리는 건 처음인것 깉아.
기수 잘지내고 있지?
우리 우영이도 성격이 남자같고 재밌어서 친해지면 좋을텐데..
아직 친해지기 전 이라면 말이라도 함,
너희가 간지 벌써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사실 아직까지도 실감이 안나.
그래도 가슴속에서 항상 너네를 생각하고 잊지 않을거란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기수는 우영이와 함께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수 – 단원고 2학년 7반

민수는 조용하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차분하고 인내심이 강했지요.

민수는 모범생이었습니다.학창 시절 내내 개근상을 받았습니다.9시 이전에는 꼭 집에 들어왔고, 매일 미루지 않고 계획대로 공부했습니다. 성적이 좋아 성적 장학금을 받았고 부학생회장도 맡았습니다.

 

민수에게는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같은 반 이수빈과 친했습니다.

민수의 꿈은 교원대 수학교육과에 진학하여 수학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며, 민수는 엄마에게 국어 문제집 정답과 사회문제집 정답을 지워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문제집을 한 번 더 풀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민수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민수 어머니의 편지

“벚꽃이 흐트러지게 핀 날 ,
너는 슬프게 사라졌다. 봄비와 함께.
아침에 눈 뜨면 네 방으로 들어가 침대를 바라본다.
혹시 네가 와서 자고 있지 않을까?
살아생전 몸에 꼬릿 꼬릿한 냄새가 난다며 씻으라고 잔소리 했는데
이제는 그 냄새까지도 그리워진다.
사랑했다. 아주 많이…..”

김성빈 – 단원고 2학년 7반

성빈이는  형제 중 막내입니다. 성빈이는 형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형은 성빈이의 멘토이자 친구였습니다.

 

성빈이는 태권도를 잘 했고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전기를 공부하여 뛰어난 에지니어가 되는 것이 성빈이의 꿈이었습니다.

성빈이 아빠는 폐암을 앓고 계셨습니다. 성빈이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은 폐암 수술을 받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성빈이는 “수학여행 갔다오면 아버지 와 계시겠네.엄마, 잘 다녀 올게. 그동안 잘 도와주고 있어” 라고 하며 집을 나섰습니다.

하지만 성빈이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도 결국 2015년 7월에 사랑하는 아들 성빈이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이틀 전에 다같이 찍은 가족사진은 마지막이 되었습니다.

김수빈 – 단원고 2학년 7반

수빈이의 꿈은 수학 선생님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궁금한 것은 직접 접해보려고 하는 겁이 없고 활달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직접 보고 만진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 했는데 안산시에서 개최하는 그림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다합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뒤에는 수학에 관심이 많았고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이 인정 할 정도로 잘했습니다.

 

수빈이의 끼와 재능은 그의 흔적 여기저기에서 나타납니다.
학교 클럽활동으로는 보컬부에서 활동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도 뛰어났으며,

 

노래를 시키면 아이들이 김 수 빈을 외쳤고 다른 아이들이 부끄럽다고 안하면 유독 수빈이만 “남자는 자신감이지” 하며
당당하게 앞에 나와 크게 부르곤 했으며, 연구 수업에서 모둠대표로 나와서 발표할 적에는 모든
선생님들이 크게 될 인물이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할 정도로 자신감넘치고 다재다능하고 인기도 많은 분위기 메이커 였습니다.

 

지금도 친구들은 수빈이 어머니를 찾아와서 수빈이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려 주곤 합니다.
7반 1분단 박인배와 짝꿍인 수빈이는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20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내일이 될지 오늘이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오빠 있는 곳으로 가서 다시 만나게되면 무조건!!
많~이 친하게 지내요 우리,
우리 수빈이 오빠도 정말 많이 보고 싶다.
사랑해요.♡ 나와줘서 고마워요.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꼭 다시 좋은 모습으로 만나요!”

김정민 – 단원고 2학년 7반

정민이는 삼남매 중에 맏이입니다. 정민이는 어린 동생들을 잘챙기는 의젓한 형이고 오빠였습니다.

 

정민이는 요리를 잘 했습니다. 직접 요리를 해서 친구들을 대접할 정도였습니다. 정민이는 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순대볶음을 대접하곤 했습니다.

 

정민이는 늘 성실히 최선을 다하는 성격으로, 공부를 잘 했습니다.

평소 말수가 적고 조용한 성격으로, 너그럽고 따뜻한 성품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정민이는 세호와 승환, 민수.현철, 수빈이등과 친했습니다.

특히 세호와는 각별한 사이로, 서로에게 옷을 빌려주곤 했습니다.

 

그러나  정민이는 세월호 참사로 친구들을 다시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정민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민이 어머니는 정민이를 그리워하며 정민이의 피아노 연주를 추억합니다.

정민이 아버지는 인터넷게임을 자주 한다고 정민이를 혼낸 것이 아직도 못내 마음에 걸립니다.

박성복 – 단원고 2학년 7반

지난 세월호특조위 청문회에서 어떤 증인이 세월호 단원고 희생학생들을 “철없는 아이들”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생일을 맞은 성복이를 보고 철없는 아이인지 판단해 보십시요.

 

성복이의 꿈은
카페를 차려서 우리나라 최고의 쎼프가 되는 것 이었습니다.
“성복이가 지난번 겨울 캠프 때 볶음밥 해 줬는데 진짜 맛있었어.
나중에 비빔밥이랑 스파게티도 해준다고 했어.
동생한테 많이 해줘서 잘한데. 성복이가 요리사하면 잘 할것 같아”
친구들이 말하는 성복이입니다.

 

어머니와 친구들, 동아리후배들을 위해 수학여행 목적지인 제주도 감귤 초콜릿을 사오겠다던 꿈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성복이는
안산 YMCA 단원고 봉사동아리 TOP 회장입니다.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던 동아리를 성복이가 회장이 되며 화합하고 봉사하는 동아리로 만들었습니다.
선배들을 잘 따르고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 잘 다독여주고 다정다감했던 성복이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성복이는 선후배와 친구들과 주말이면 요양원을 찾아 봉사하고 밥 짓고 청소하는 등 이웃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성복이는
두살차이 여동생이 있는 맏아들입니다.
집에서는 여동생과도 잘 놀아주는 다정다감한 오빠이기도 했습니다.
끝말잇기를 좋아해서 밤늦도록 동생과 끝말잇기를 하면서 놀다가 엄마에게 혼 나고서야 각자 방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고합니다.

 

또한 성복이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피아노 바이올린 오카리나까지 뭐든지 잘 다루는 재주꾼 이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는 피아노 반주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성복이는
말이 번지르르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는 흥분해서 말을 약간 더듬기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심한말을 듣거나 야단을 맞으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울면서도 할 말은 했고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복이랑 싸운 사람은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성복이는 후배뿐 아니라 친구들의 고민 상담사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성복이를 잃고 진실을 감추고 덮고자하는 이 정부와 수많은 투쟁을 해왔습니다.
지난 1주기때에는 어머니가 경찰에 밀려 넘어지며 갈비뼈 4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아빠를 닮아 착하고 마음 따뜻했던 성복이는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이모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엄마한테 깜짝 선물을 하기로 했습니다.

 

성복이 친구의 스마트폰에는 잔잔한 반주가 흐르고 (보고 싶다)를 노래하는 성복이를 찍은 동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난 못가 바보처럼 울고 있는 너의 곁에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런 내가 미워질 만큼
미칠 듯 사랑했던 기억이 추억들이 너를 찾고 있지만
이러면 안 되지만 죽을 만큼 보고 싶다”
ㅡ 김범수(보고 싶다)중에서

 

그러나 성복이는 5월 2일에야 223번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부모님품으로 돌아와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나강민 – 단원고 2학년 7반

사고후 23일이 흐른후에 세월호안에서는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아이 둘이 발견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을 서로를 달래주고 의지하던 두친구는 마지막 까지도 함께 하였습니다.
서로를 꼭 껴안고 발견 된 아이들이 바로 나강민과 같은 반 친구 이근형 입니다.
잠수사가 아무리 떼어 놓으려 해도 떨어지지 않자 잠수사는 이렇게 달랬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한테 가자”고…..

 

그제서야 떨어져서 강민이가 먼저 물 밖으로 나왔고 근형이도 따라서 나왔습니다.
184cm 큰 키에 덩치가 있고 평소 친구를 좋아했던 강민이 성격에 아버지는 강민이라면 충분히 그럴줄 알았다고 합니다.
강민이는
유치원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고모님손에 자랐습니다.
태권도로 단련된 몸으로 체격도 좋고 운동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강민이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놈”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뽀뽀할 정도로 장난도 잘치고 같이 사우나가서 아버지등도 밀어주는 착한 아들이였다고 합니다.

 

강민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습니다. 워낙 성격도 좋고 운동도 잘하는데다가
강민이가 저녁때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고 있으면 강민이 아버지가 퇴근길에 같이 어울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면서 같이 놀아 주고 친구들 야식도 사주고 때론 용돈도 주곤 하셨답니다.

 

토요일이면 친구들이 강민이 집에 대여섯명이 몰려와 잠을 자고 가기도 하는 모텔같은 집이였다고 합니다.
고모는 그런 강민이의 친구들을 위해서 늘 음식준비를 하였습니디.
아버지는 인생 최고의 친구였던 강민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일하시다가도 화장실에 숨어서 울기도 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계속해서 휴대폰속 강민이 사진을 들여다 보곤 하신답니다.

 

“통신 안 잡히니까 이따가 전화 할게요” 강민이의 마지막 말입니다.
강민이 어머니는
“5월 5일 엄마 생일에 올라와 주라”는 글을 리본에써서 팽목항에 걸어 놓았으나 올라오지 않자 “자식이 의리가없다”며 투정후에 8일 어버이날에 다시 가서
“카네이션 달아주라”는 소원하자 친구 근형이를 꼭 껴안고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강민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강민이 아버님은 강민이가 입던 점퍼를 입고 계십니다.
강민이를 생각하며 헤질때까지 입으시겠다 하시며……

이준우 – 단원고 2학년 7반

“너는 남자아이라서 사랑한다는 표현도 서툴렀고,감정도 크게 앞세우지 않았지.
오히려 감정표현이 솔직한 엄마(장순복)가 힘들어 하면 살며시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줬지,
“괜찮아 질거예요.든든한 엄마의 아들이 있는데 앞으로 힘들어 하지 마세요”
위로해주던 준우,

 

늦은밤 공부하느라 지쳐있어도 불켜진 엄마방을 보면서 “먼저 주무세요.
제가 알아서 공부하고 잘깨요. 직장다니는 엄마가 나보다 힘들잖아요”라며 오히려 엄마를 걱정해주던 모습들…
엄마는 너를 지켜주고 싶었고, 준우는 엄마를 지켜주고 싶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다’ 며 씨익 웃고 들어오던 너의 모습에 하루가 행복했다. 그런 너를 안아주고 ,뽀뽀해주면
“아들 멋져요?
그렇게 좋아요?
그럼 하고 싶은데로 하세요”라며 잠시 움직이지도 않고 서 있었지.
네가 “엄마의 아들이라서 기쁘다”고 했던말이 오늘도 귓가에 멤도는구나.”

 

7반 준우는. 4월이 지나도 물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진도에서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던 엄마는 다른 엄마들로부터 “팽목항 등대에 가서 이름을 부르면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5월1일 엄마 아빠는 팽목항 등대에서 준우를 부르며 사랑한다고,돌아와 달라고 외쳤고 준우는 이틀뒤에 엄마에게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준우생일날 선물을 주려하자
“나를 낳아줬는데 뭔 선물이냐”며 소리를 내지를 정도로 효자아들 준우,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잘 챙기던 준우,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서라도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착한 준우,
이처럼 준우는 착하고 어른스러웠습니다.

 

준우의 꿈은
보안전문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해킹을 하면 그걸 잡아내는 좋은 해커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준우는 1학년때에는 과학부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준우는
5반 큰김건우. 이재욱. 김제훈, 최성호등과 함께 일명 5인방중의 한 명입니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서로를 격려하던 고등학교 친구들입니다.

 

2학년 수학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수학을 잘했던 준우에게 소꿉친구가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생일선물을 뭘로할까 라는 물음에 준우는 수학문제 풀도록 A4용지 500매를 선물해 달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준우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A4용지는 준우가 직접 받지 못했습니다.
효자아들 준우는 현재 모습이 좋다며 학생증 사진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고 학생증 사진은 영정사진이 되어
A4용지 500장과 함께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잠이 들어 있습니다.

국승현 – 단원고 2학년 7반

승현이는 남매중 오빠입니다.

승현이는 조용하고 침착하며 착실한 성격이었습니다. 농구를 잘했고,수학과 과학을 잘했습니다. 승현이의 꿈은 이공계 대학에 들어가 과학계통의 직업을 갖는 것이었습니다.

 

승현이는 보라색을 유난히 좋아했습니다. 가방도, 옷도, 신발이며 볼펜까지도 온통 보라색이었습니다.

 

승현이는 부모님이 수학여행에서 쓰라고 주신 돈의 반을 남겨두고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승현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박인배 – 단원고 2학년 7반

인배는 듬직하고 믿음직했습니다.

인배는 어머니를 잘 도왔습니다. 어머니께서 편찮으시면 잘 간호했고

집안일도 열심히 했습니다.

 

인배의 꿈은 경호원이었습니다. 경호학과 진학을 위해 도장에서 열심히 운동했습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4월19일에는 대회에 나갈 예정이었습니다.

-인배 어머니의 편지

“아들 인배야 ~!
보고 싶다.
언제까지나 함께 할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아들없는 세상이 너무나 야속하다
사랑하는 아들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 인배
사랑하는아들
착하기만 한 아들,
언제나 함께 아들과 살고 싶었는데
사랑하는 아들 함께 해주지못해 미안하다.
사랑한다 천국에서 기다려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고
사랑한다 엄마가”

박현섭 – 단원고 2학년 7반

현섭이는  막내아들이었습니다.”짱구는 못말려” 만화를 좋아해서 집에서 현섭이를 부르는 별명은 “짱구” 였습니다.

 

현섭이는 누나와 가까웠습니다. 둘은 함께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남매는 서로를 잘 챙겨주었습니다.

현섭이는 순한 성격이었으며, 축구와 농구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교회를 다녔습니다.

 

현섭이는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를 좋아했고 멤버중 손나은의 팬이기도 했습니다. 현섭이의 책상위에는 손나은의 브로마이드가 놓여져 있었습니다.

 

현섭이의 꿈은 육군 사관학교에 진학해 멋진 국군 장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현섭이 어머니의 편지

“섭아.
하늘 만큼 땅 만큼 사랑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전부 였는데.
엄마가 많이 사랑한거 우리 아들은 알거야
너 때문에 많이 웃고
너 때문에 그 긴 세월 행복했단다.
엄마 만날때까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사랑해.”

최현주 – 단원고 2학년 7반

5월의 마지막날 입니다.
악몽같던 정권을 바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세월호에서는 미수습자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7반 최현주학생의 생일입니다.
현주는 네살터울 여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맏이입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곱슬기 없는 결 좋은 머리카락, 조그맣고 균형잡힌 코와 입술, 쌍커풀진 눈커풀과 큰눈은 새까맣게 빛납니다.

 

현주는
숫기 없고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명량하고 말이 많지 않지만 무뚝뚝한게 아니라 얌전하고, 온순하고, 나서지 않되 속 깊고,
허술한 빈틈을 보이면서도 정리 정돈을 잘하고 청결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오죽 깔끔했으면 엄마가 설거지를 몇번 부탁했다가 더 이상은 안 시킬 정도였다고합니다.
한번 설거지를 시작하면 그릇 하나하나를 어찌나
꼼꼼하게 닦는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였습니다.

 

현주는 어려서부터 네살 어린 동생을 살뜰하게 챙겼습니다.
어릴때부터 어딜가든 꼬옥 두손을 잡고 다닐 정도로 남매간 우애가 깊었고 사춘기가 지나면서도 동생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의젓하게 동생을 지키고 돌보며 두 남매간의 우애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인셉션)이나 (겨울왕국)등 처럼 완결된 영상물을 함께 보기도 했지만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시리즈를 즐겨보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주는 동생에게 아빠처럼 듬직하고 의젖한 오빠였습니다.

 

동생과 애니메이션을 보다 엄마의 퇴근시간에 맞춰 현관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엄마가 문을 열면 넙죽 큰절을 올리며
“어마마마~”하고 애교있는 인사를 하곤 했으며 치킨을 좋아했는데 먹고 싶어지면 엄마의 꽁무니를 쫒아 다니면서
콧소리로 “누나~ 누니임”이라 부르며 아양을 떨던 귀여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소화력이 왕성한 시기답게 햄버거는 최소 세개를 먹어야 기분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현주의 꿈은
순하고 여리고 작은 동물을 돌보는데 소질이 있어서 동물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집에서도 “몽순”이라는 갈색 푸들을 키웠습니다.

 

학교에서는
고우재, 박시찬, 박선균, 정동수, 조찬민등과 함께 로봇동아리 다이나믹스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노래방에 가면 리쌍과 거북이의 노래를 즐겨 부르고 엄마와 동생앞에서 랩을 따라부르며 웃음을 선사하던 현주.
현주는
이처럼 따뜻한 사랑을 따뜻하게 사랑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믿음을 받고 자라 믿음을 주는 아이였습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7반.
이지혜 담임선생님과 짝꿍은 김기수입니다.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별이되어 버린 현주는 지금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허재강 – 단원고 2학년 7반

재강이는 유순한 성정이었습니다. 여동생과도 한번도 싸운적이 없을 정도입니다.

 

허재강의 꿈은 동물 학자였습니다. 동물을 좋아해 곤충을 길렀으며 크면 오지로 가서 동물을 연구하는 일을 하겠다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4월16일 오전 8시46분과 9시44분, 재강이는 어머니께 전화를 걸어
“배가 기울어졌고 물이 들어온다”고 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침착한 재강이의 목소리에 별 일 아닐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재강이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재강이 친구가 남긴 말

재강이는 모범생이었어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선생님들께 칭찬도 많이 받았어요.

재강이는 모든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했어요. 인기도 많았고요.
재강이는 제게도 잘해줬어요. 제 고민도 잘 들어주었지요. 오랜만에 만나도 어색하지 않은, 가까운 사이였어요.

재강이는 항상 부모님을 생각했어요. 언젠가 한 번은 부모님과 말다툼을 하고 난 후, 부모님께 죄송하다는 얘기를 하곤 했습니다.

키우던 도마뱀을 보여주겟다며 신나서 전화통화를 햇던 것도 기억나네요.

 

-재강이 누나의 편지

많이 그립다, 녀석아. 넌 누나 보고 있지? 못난 누나지만 앞으로도 지켜봐주라. 다음주면 1주기야. 어이없지 널 잃은 후 시간은 멈춰버리길 바랬어. 야속하리 만큼 시간은 빨리 간다.

 

-재강이 어머니의 편지

넌 엄마의 보물이야.나의 멋진 아들, 재강아 .엄마가 다음에 너 있는 곳에 가서 꼭 아들을 찾을거야. 그때까지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서현섭 – 단원고 2학년 7반

현섭이는 누나가 셋이나 있는 막내입니다.
현섭이를 소개하기 위해서 현섭이의 일기를 불러옵니다.

 

2009년 4월
누나에게 물어보니 나는 이천 서씨였다.
헛. 이천 서씨라면 나의 조상은 서희 담판!

 

2010년 5월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큰누나는 독립해서 혼자 산다. 작은 누나는 직장에 다닌다. 막내누나는 대학생이다.
아빠는 세상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것 같다. 엄마는 야간 근무를 할때가 많아서 밤늦게 들어온다.
우리집에선 나랑 멀티만 시간이 많다. 시간이 많으니 리면이나 끓여야 겠다. 멀티는 나눠주고..

 

2010년 12월
친구를 따라 처음교회에 갔다.하나님보다 맘에 드는건 교회에 밴드부가 있다는거다.
기타 때문에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은 봐줄거다. 하나님은 원수도 사랑하니까.

 

2011년 6월
막내누나에게 기타연주를 들려줬다.
<로망스> 누나가 말했다.
“재법인데 다음엔 반주에 맞춰 노래도 들려주라” 내가 바라는 것도 그거다 .
나는 요즘 틈나는데로 기타를 친다. 특히 버즈의 노래는 언제들어도 좋다.

 

2012년 12월
여자친구랑 시험공부를 했다
나가 왜 좋냐고 물었더니 그애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너는 미소가 좋아. 다정하고 매너도 좋고, 옷도 잘입고 다니고.
마음도 착해 그리고 잘 생겼잖아”그애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2012년 12월
낯에 요리를 했다.
누나가 먹어보고 식당에서 파는것 같다고 핬다. 나중에 커서 요리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요즘은 남자 요리사가 인기가 많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를 정했다.
1순위로 선택한 단원고에 꼭 붙었으면 좋겠다.

 

2013년 10월
성적이 올라서 상위권에 들었다. 엄마, 아빠가 많이 좋아했다. 이렇게라도 아빠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2014년 4월
드디어 내일 수학여행이다.
행선지는 제주도.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다. 밤에는 불꽃놀이도 한다고 했다.
이번에 제주도에 가면 아빠 선물도 사와야겠다. 선물을 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까? 이건 너무 쑥스럽다.
아빠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적이 없다. 남자들끼리는 원래 그런거 잘 안한다.
핸드폰에서 버즈의 일기가 흘러 나왔다.
가사가 좋으니 적어 봐야겠다.

 

”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건 그댈 사랑하는 일~~안된다고 잊었다고 하지 말아요.~영원히 그대곁에 My Love~☆”

 

현섭이는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성민재 – 단원고 2학년 7반

민재는  엄마에게는 다정한 아들이었고 아빠에게는 든든한 내 편이었습니다.

 

민재는 집에서 “콩”이라고 불렸습니다. 민재가 막내라 귀여워하는 뜻에서 그렇게 불렸습니다.

 

민재는  공부를 잘 했습니다.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늘 언제나 옷을 깔끔하게 입고 다녔고, 중학교 졸업식장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춰 모두를 웃음짓게 할 만큼 유쾌한 성격이었습니다.봉사동아리 TOP에서 이웃을 위해  열심히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민재의 꿈은 건축가였습니다. 훗날에는 부모님과 같이 이층집에서 살고 싶어했습니다.

 

-민재 아버지의 편지

너무나도 보고픈 우리아들 민재,
수학여행 떠난지
벌써 두달이 되어갔내,
이제 막 꽃봉우리를 피울 나인데
우리 민재는 꽃다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넓은 바다 쪼그만 세월호에 긷힌채로
고통과 두려움을 마지막 기억인채로
멀리 떠나게 해서 아빠가 미안해
넓고 넓은 바다에
점보다 작은 공간에서
삶에 대한 마침표를 찍었지만
민재와 친구들이 남긴 의미는
그 어느 누구도 절대로 마침표를
지을수가 없을거야
엄마,아빠가 평생 같이 하니깐
민재야 부디 좋은 곳에서,
파도 없는 곳에서
친구들과 못다 이룬 꿈
이루길 기원할께
사랑해 아들 우리 민재
2014년 6월 13일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밤 민재는 엄마의 핸드폰에 엄마가 드라마를 보며 즐겨 듣던 노래를 다운받아 주었습니다.
” 엄마, 이 노래 엄마가 드라마 볼 때 좋아하던 거 잖아요. 밤에 잘 때 꼭 들어요. 나 보고 싶을때 없다고 울지말고. 킥킥 ”
이승철 ( 그사람 )
그사랑 잊을수 없는데 그사랑 잊을수 없는데
그사람 내 숨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떠나 가네요ᒺ
그사랑아 사랑아 아픈 가슴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아
사랑했고 또 사랑해서 보낼수
밖에 없는 사람아 내 사랑아

 

오늘도 엄마는
민재가 다운 받아준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사람을 떠 올리며 이 깜깜 하고 적막한 밤을 이겨내는 중입니다.

 

민재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손찬우 – 단원고 2학년 7반

찬우는 위로 13살 많은 형이 있는 늦둥이 막내입니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때에 태어난 찬우가 부모님에게도 특별했지만 형에게도 아주 특별했다고 합니다.
형은 찬우가 먹고 싶다고 하거나 갖고 싶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사줬습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동생 찬우를 형은 정말 예뻐하고 좋아 했다고 합니다.

 

찬우는 요리사가 되는것이 꿈이었습니다.
꿈을 위해 요리 학원도 다녔으며 한식과 일식을 학원에서 배웠는데 생선 다루는 것이 어렵지만 재미있었다고 하였다 합니다.
가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서 찬우가 음식을 만들어 줬는데 음식 간도 제법 잘 맞춰서 맛있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찬우는 성격도 좋아서 친구가 많았고 일단 한번 알게 된 친구와는 깊이 사귀었습니다.
찬우 어머니는 찬우가 꿈에라도 나오면 예전처럼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고
오래오래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찬우는 교복입은 모습으로 아주짧게 다녀가서 너무너무 아쉽다고 하십니다.

 

분향소나 교실에서 마주하는 찬우 어머니는 아직도 많이 힘들어 하시고 늘 통곡으로 찬우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찬우는 4월 20일에 돌아와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송강현 – 단원고 2학년 7반

강현이는 게임 서든어택과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친구들이 많았고 특히 세월호침몰을 최초로 신고했던 최덕하와 같은반 친구인 양철민과는 절친한 사이였습니다.

 

강현이에게는 이란성 쌍둥이인 동생이 있었습니다. 둘은 사이가 좋았습니다. 때로는 티격태격하기도 했지만 서로를 위했습니다.

-강현이를 그리워하는 친구의 편지

 

“강현아,
지금도 편하게 잘 지내고 있지?
아침부터 하루종일 너랑 같이있어서 너무 좋았어.
너도 편하고 좋았지?
지금도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면 나올 것 같고, 카톡하면 바로 욕하면서 답장해 줄거 같은데 왜 아직까지 안오는 거야.
수학여행이 너무 길다 그치?
하고싶은 말도 많고 해줄 것도 엄청 많은데 이걸 누구한테 해줘야 되나싶다.
마지막 보내주는 길에는 너랑 같이 있어 좋아서 눈물 참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나온다.
그럼 거기서 잘지내고 다음 생에도 나랑 만나서 지금처럼 지내다가 같이 하늘나라 가자.
강현아 진짜로 미안하고 사랑해.”

심장영 – 단원고 2학년 7반

장영이는 어머니에게 다정했습니다. 장영이는 늦게까지 일하시는 어머니의 발 마사지를 해주곤 했습니다. 같이 계단을 오를 때면 엄마가 힘이 들까봐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주기도 했습니다.

 

장영이는 친구왕으로 불맅 정도로 친구가 많았습니다. 깔끔한 성격으로 어떤 일이건 단정하게 마무리했습니다.

안중근 – 단원고 2학년 7반

중근이는 어릴 때 어머니를 여의었습니다. 그리고 중학교 1학년 때 아버지의 재혼으로 새엄마와 누나가 생겼습니다. 이후,중근이는  곧 새 가족들과 가까워져  엄마, 누나과 같이 음식을 만들고, 이야기를 나누곤 했습니다.

 

중근이는 베이스기타를 잘 쳤습니다. 중근이 아버지는 그런 중근이가 자랑스러웠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중근이는 아버지에게 베이스 기타를 가르쳐 드리겠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기타 코드표를 건네주었습니다.

 

중근이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중학교 때 야구를 하다가 어깨 인대를 크게 다쳐 야구선수의 꿈은 접고, 대신 경찰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중근이는 두산베어스 펜이었습니다. 중근이의 가족들은 중근이를 그리워하며,  “출석번호 21번 안중근”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진도체욱관에 걸어놓았습니다.

-중근이 부모님의 편지

“네 얼굴을 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냥 보냈어야 해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구나.
아들이 없는 생일 파티를 하는 슬픈 시간을 보냈지.
금방이라도 ” 배고파요, 밥 주세요” 하며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데……”

양철민 – 단원고 2학년 7반

철민이는 웃음이 많고 긍정적인 성격으로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화가 나면 얼굴이 빨개져서 고릴라라는 별명이 있었습니다.

리더십이 있어 축구 주장을 하곤 했습니다.

 

철민이는 부모님께 생일 선물을 사드리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하는 다정한 아들이었습니다.

오영석 – 단원고 2학년 7반

영석이는 외동 아들로, 부모님과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영석이의 꿈은 간호사였습니다.환자들이 치료를 잘 받을 수 있도록, 즐겁게 돕고 싶다고 했습니다.

 

영석이는 치킨과 삼겹살을 좋아했습니다. 치킨을 시킬 때면 두 마리를 시키곤 했고 삼겹살을 먹을 때면 상추쌈을 시원스레 먹곤 했습니다.

 

영석이는 집안일을 성실히 했습니다.  화장실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했습니다.

 

어른이 돼서 돈 많이 벌면 부모님을 세계일주 시켜주겠다던 영석이는 지금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영석이 어머니의 편지

“이쁜아들 미안해.
엄마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이쁜아들 먼저 보내서 미안해.
만나는 그날까지
너가 부르는 그날까지
만나는날 너늘 꼭 안고 안 놓을거야.
사랑해 내새끼.”

이강명 – 단원고 2학년 7반

강명이는 ROTC 출신으로 군장교가 된 사촌 형을 보고, 같은 길을 꿈꿨습니다.

친구들과 체육관을 다니며 꿈을 향해 한걸음한걸음 내딛었습니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공연으로, 강명이는 친구 다섯 명과 춤을 추기로 하였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춤 연습에 열중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그런 강명이에게  수학여행에서 입을 새 옷을 사 주었습니다.

 

강명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절친 박인배와 나란히 곁에 잠들어 있습니다.

 

-강명이 친구의 편지

☆벌써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것 같아.
항상 우리랑 따로 운동했지만 인배친구라 해서 많이 눈여겨 봤어.
운동도 항상 나오고 인배랑도 잘 놀았잖아.
거기서도 혹시 운동계속하고 있어?
하고있다면 열심히 하고…
안하고 있다면 무슨일을 하던 잘할거라 생가할께.
다음에 만날때 웃는 얼굴로 보자.☆

이근형 – 단원고 2학년 7반

“사랑합돠”4월 16일 오전 9시 30분 근형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불길한 느낌을 받은 엄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근형이는”배가 충돌 한 것 같다. 배가 가울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전 9시 42분 근형이는 “살아서 갈거예요, 기다려요 “라는 마지막 문자를 엄마에게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날 근형이는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근형이는 부모님께 장난기 많고 다정한 둘째 아들이었습니다. 근형이는 퇴근 후에 소파에 누워 텔레비젼을 보고 계시는 아버지를 몸으로 깔아 뭉개며 장난치기를 좋아 했습니다.

 

근헝이에게는 형과 어린 남동생이 있었습니다. 근형이는 형제들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특히 남동생을 잘 돌보았습니다. 동생에게 이유식을 먹여 주고, 안아 주고, 업어주고, 놀아주곤 했습니다.

근형이는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이었습니다. 과학 선생님을 꿈꾸며, 성실히 노력했습니다.

 

근형이는 사고 후 23일이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에  발견되었습니다.

발견 당시, 근형이의 지갑에는 3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근형이 아빠가 아들에게 준 용돈이었습니다.

근형이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근형이 아버지의 편지

“마지막 순간에도
어쩌면 너 없이 자랄 동생 걱정을 했을 것 같은
동생바보 근형아.
정말 사무치도록 그립구나.
보고 싶고 만지고도 싶은데
어디로가야 널 한번이라도
안아볼수 있을까
내 아들로 살아줘서 고맙고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사랑한다.
내 소중하고 특별한 아들아.”

이민우 – 단원고 2학년 7반

민우는 남매중 막내였습니다. 민우는 애교가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민우는 수영도 잘하고 물에 익숙했습니다. 그래서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민우 아버님은  민우가 헤엄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하셨답니다.그러나 민우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민우 아버지는 민우를 잃고 나니 그 빈자리가 너무 크게 느껴집니다.단 한 시간만이라도 민우를 다시 보고, 따뜻한 밥을 먹이는 것이 민우 아버님의 소원 입니다.

이수빈 – 단원고 2학년 7반

수빈이는 축구를 잘 했습니다. 매년 체육과목 상장을 받고, 체육대회 계주에서 활약했습니다. 축구 경기에서도 활약했습니다.

반장이었던 수빈이는 공부도 잘 했습니다. 특히 수학을 잘 해 성적 장학금을 받곤 했습니다.
수빈이의 남동생은 형을 잘 따랐습니다. 무엇이든 잘 하는 수빈이를 우러러보았습니다.

 

수빈이는 알뜰했습니다. 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성실히 저금을 했습니다. 수빈이 친구들은 이런 수빈이를  “짠돌이 수빈”, 줄여서 “짜수”라고 불렀습니다.

 

수빈이는 주변 사람들에게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 뭐해줄까’ 라는 질문을 자주 했습니다.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줘야 할 게 많아서 수빈이는 부자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세월호 참사 유가족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기자들이 모여있는 앞에서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다가와  진상규명을 하겠다고 했습니다. 가족이 원하면 언제든 만나겠다고 약속도 하였습니다.그러나 이 모든 것은 연기였습니다. 대통령의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후, 수빈이 어머니는  수빈이와 친구들을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이정인 – 단원고 2학년 7반

정인이는 게임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을 정도로 게임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게임 서든어택의 고수 였습니다.

정인이는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체육시간마다 빠르게 드리볼로 상대진영을 헤집고 들어가 골을 넣고는 했습니다.

정인이의 꿈은 패션모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중학교 때부터 모델의 꿈을 키웠습니다.

 

정인이는 4월 16일, 오전 9시17분에 아빠와 마지막 통화를 하였습니다. 그리고
” 아빠. 배가 40도에서 60도로 기울고 있어,119에 전화해 줘” 라고 했습니다.
아빠는 119에 전화후 학교에 전화하였고, 30여분후에 재차 확인전화을 하여 구조와 생존여부를 확인하였으나 학교 측에서는 이정인이라는 학생이 학교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들었습니다.

 

-정인이 친구의 편지

☆제발 간절히 보고싶은 내친구 정인아,
나 너 믿는다. 너 이렇게 떠날애 아니잖아, 지금껏 봐왔던 이정인은 그래,
악착같이 버틸거야,
절대 어디안가.
슬픈일 생기지 않게.
애들 더이상 무너지지 않게 해줘.
기적처럼 살아 나와줘…..
제발, 제발 와주라…
부탁할께~!
너랑 영석이랑 같이 있어야 우리가 웃지…
견뎌줘, 무섭고 춥고 죽고 싶어도 살아서 돌아와줘..
제발….
너네 오기만 하루 하루 기도하고 빌고 또 비는 우리들이 비참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와줘…
교복 참 멋있었는데 또 보여줘 제발,
정인아 믿을께,
조금만 제발….☆

이진형 – 단원고 2학년 7반

진형이는 축구와  야구를 무척 좋아했습니다.학교 축구부에서 활동했고 게임도 축구게임을 즐겨했습니다.야구는 삼성라이온스를 ,축구는 수원과 삼성과 첼시FC를 응원했습니다.

 

진형이는 아버지와 친했습니다. 방학이면 같이 야구장, 축구장에 함께 가곤 했습니다.

 

장난기 많은 진형이는 아버지가 일할 때 전화해 “어디신가” “비오는데 별일 없으신가”라며 농담을 했습니다. 그리고 주무시는 아버지를 깨우며  PC방에 가자고 ,찜질방에 가자고 졸랐습니다.
지금도 진형이 아버님은 진형이와의 대화가 떠오를 때가 가장 힘듭니다.

 

진형이에게는 21명의 친구들이 있었습니다.이들은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단체기념 사진을 찍자고 하였지만 친구들 중 박준민,박현섭,이진형이 희생되었습니다.남은  18명은 희생된 세명이 모두 돌아온 이후 영정사진을 들고 단체사진을 찍어 약속을 지켰습니다.

 

진형이는 유머러스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 “뚱이”, “짱구”, “성대모사의 달인”등 별명도 많았습니다.

 

-진형이 친구의 편지

*이제 1년 밖에 안됐는데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것 같아서 넘 슬프다.
그날 전원 구조됐다는 얘기듣고 안심하고 학원에 갔는데…아니라는 말듣고 밤에 많이 울었어…
할수 있는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다들 무사하게만 해달라고 기도만 했는데 어쩜 그렇게 착한 언니 오빠들을 데려가건지 모르겠어 …
진짜 구조만 제대로 했다면 이런일이 없었을덴데…
그래도 나보다 슬픈 사람들이 많은것 같아서 이젠 힘들어도 힘든티 내지 않고 슬퍼도 슬픈티 내지않고 있어.
벌써 1년이 지났지만 3년,10년이 지나도 평생 잊지 않을거야”

전찬호 – 단원고 2학년 7반

찬호는 형제 중  막내입니다. 집에서 가족들에게는 애교가 많고 응석이 많았습니다.

 

찬호는 성정이 순하고 늘 부모님을 배려했습니다. 자신이 아플 때에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내색도 하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찬호는 엄마볼에 뽀뽀를 하고 “걱정하지 말라”며 여행을 떠났습니다만 세월호는 침몰하였고 사고 후 5월 14일이 되어서야 찬호는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팽목항 신원확인소에서 아들을 끌어안고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은 쏟아내야 했습니다.

 

찬호 아버지께서는 세월호 친상규명을 위해 열심히 활동하셨습니다.

 

-찬호 어머니의 편지

“16년 8개월 21일동안 너무도 행복했단다”. 아들.
엄마는 아직도 찬호가 수학여행 가 있는 것 같고, 금방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들어와서 엄마에게 안길 것만 같아서 찬호방을 그대로 두고 있단다. 모든 것이 그 자리에 있는데 우리찬호만 그 자리에 없구나.”

정동수 – 단원고 2학년 7반

동수는 남매 중 맏이였습다. 동수는 동생을 아끼는 착한 오빠였습니다.

 

동수는 순하고 인내심이 강한 성격이었습니다. 힘들어도 불평하지 않았고 친구가 시비를 걸어도 싸우지 않았습니다.

 

동수의 꿈은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로봇을 만드는 공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 배가 45도나 기울었대요.괜찮겠죠?”

동수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문자입니다.
일을 하다 10시가 넘어서 뒤늦게 문지메시지를 확인한 엄마는 부랴부랴 동수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이후, 동수는 가끔 엄마의 꿈에 나타습니다. 한 번은 교복을 하복으로 갈아 입고 가고, 명절에는 찾아와서 혼자 밥 챙겨먹고,또 한번은 통닭을 먹겠다고 찿아왔다고 합니다.

 

-동수 어머니의 편지

☆동수야, 엄마야
항상 엄마를 먼저 생각해주고
챙겨주던 듬직한 내아들.
너무도 그립구나.
이 현실을 받아드려지지는 않지만
너무도 너무도 울 동수 사랑하는거 동수도 알지. 아들 너무 보고 싶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김상호 – 단원고 2학년 7반

상호는 동생들과 친했습니다. 상호는 여동생을 “달걀”, 남동생을 “감자”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동생들은 지지않고 상호를 “오이”라고 불렀습니다.

상호는 언제나 동생들을 살갑게 챙겨주었습니다. 동생들에게 요리를 해 주었고 귀여워했습니다.

 

상호 어머니께 상호는 듬직한 아들이었습니다.상호는 부모님의 기념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었고, 화이트 데이엔 초콜릿을,생일엔 케이크와 썬크림을, 크리스마스에는 목도리를 선물했습니다.

 

상호 여동생은 지난해 단원고에 입학하였습니다. 상호어머니는 단원고 교복을 볼 자신이 없어서 처음엔 반대하였지만 딸이 오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기에 결국 져주었습니다.
상호 막내동생은 황망히 떠나버린 형이 보고 싶어서 상호침대에서 잠이 들곤 합니다.

 

상호는 집안일도 꼼꼼하게 잘 했습니다.
물기하나 남기지 않고 설거지를  하고, 하수구 음식물 찌꺼기까지 싹 치우던 살림꾼이었습니다.

 

상호는 성우도 해보고 싶어했고 일러스트레이터도 해보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상호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상호여동생의 편지

“보고 싶은 우리 오빠.
잘 생긴 우리 오빠,
우리 오빠 친오빠,
보고 싶은 우리 오빠.
사랑하는 우리 오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