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곽수인 – 단원고 2학년 7반

수인이는 부모님이 결혼후 첫아이를 잃고 10년만에 귀하게 얻은 아이이고 집안의 장손이었습니다.
수인이는 체중 4.8kg, 52cm 우량아로 태어났습니다.

 

“네가 힘을 키워서 잘못 된 것을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하면 되잖아.”

 

수인이는 초등학교때 (삼국지)를 셀 수 없을 만큼 여러번 읽었답니다.
그중에서도 힘과 지혜를 갖춘 장비같은 사람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책 읽는 것을 좋아했던 수인이는 한국사와 세계사 그리고 지리를 좋아했습니다.
역사책에 기록 되지 않은 잘못된 역사를 배우고 불평등한 현실과 편견, 끝없이 반복되는 가진자들의 횡포
그리고 무엇보다고쳐쓸 수 없는 한국의 역사가 절망스러워 대학졸업후
다국적기업에 취직해서 평생 떠돌이로 살고 싶다는 수인의 말을 듣고 아버지가 하신 말입니다.

 

평소에 말수가 적고 내성적이었던 수인이는 엄마가 초등학교 5학년때부터 아침, 저녁으로 껴안아주며 허그인사를 나누며 차츰 차츰 변했다합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그날 그날 있었던 일들을 소소하게 터놓고 수다를 떨던 다정다감한 아이로 변했습니다.
엄마에겐 친구같은 존재였죠.
단원고 1학년 1년동안 엄마에게 털어놓은 이야기가 평생 지난 17년동안 나눈 이야기보다 많았다고 엄마는 말씀하십니다.

 

수인이는
키 185cm에 농구 유도 골프 축구 야구등 운동에 탁월한 소질이 있었습니다.

 

(약한자는 관대하게 대하고 강한자와는 당당하게 맞서자) 수인의의 철학입니다.

 

수인이의 꿈은
외국계기업에 취업하여 한국엔 들어오지 않고 실컷 해외를 구경하며 사는 것입니다.
그러나
수인이의 꿈은 설레임에 떠난 수학여행중에 닥쳐온 비극적인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4월 20일에 가족품에 돌아와 23일에 꽃들이 만발한 수원연하장에서 화장후에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이 들었습니다.
수인이가 가족곁을 떠나는 날
4월 23일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이기도 했습니다.
수인이 동생 ㅇㅇ은 오빠가 다니던 단원고에 진학하여 재학중에 있습니다.

 

고잔초. 단원중. 단원고에 같이 다녔던 친구들이 기억하는 수인이는 말 그대로 상남자였답니다
학교에서는 과묵하고 감히 근접하기 어려운 분위기 있는 남자였다고 얘기합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 수인이는 집에 휴대폰을 충전기에 꼽아놓고 떠났습니다
수인이의 마지막 음성은
” 수학여행 잘 다녀오겠습니다” 라는 인사입니다.

국승현 – 단원고 2학년 7반

승현이는 네살터울 여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오빠입니다.
크지도 작지도 않는키에 마른 몸매를 가졌지만 동작이 민첩해 농구를 잘했고,
유별나게 수학을 잘했다고 합니다

 

부모님은
가늘어진 눈꼬리가 살짝 내려가고 입술 양끝에 살짝 보조개가 피는 귀여운 얼굴,
가름한 턱선과 깍아 놓은듯 반듯한 코가 예뻐서 탤런트가 되면 어떠냐고 권한적도 있었답니다.

 

승현이의 꿈은
이공계 대학에 들어가 과학계통의 직업을 갖는게 꿈이었습니다.
조용하고 침착한 승현이는 정해진 규범에서 벗어나지 않고 말없이 자기 할 일을 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어릴적부터 맙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의 영향으로 학교후 학원의 일상을 반복하며
문과 계열보다는 이과계열의 수학과 과학에 특별한 관심과 뛰어난 성적을 유지했습니다.

 

승현이는 단 한번도 메이커 옷을 사달라고 조른적 또한 없었다고 합니다.

 

보라색을 유난히 좋아했던 승현이…..
승현이는
가방도, 옷도, 신발이며 볼펜까지도 온통 보라색이었습니다.
“보라색이 왜 좋아?”
라는 질문에,
“고급스러워 보이잖아요, 기품도 있고”
승현이의 답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밤.
엄마가 수학여행 용돈으로 6만원을 주었을때도 승현이는 3만원을 떼놓았습니다.
“오빠, 내 선물은?”
승현이는 그제사 만원짜리 한 장을 더 집어 지갑에 넣었습니다.
“고마워 나도 오월에 여행가면 오빠 선물 사 올게”
“나 한텐 안 사와도 돼. 고생하시는 엄마, 아빠 생각해서 돈 아껴써라”
승현이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이만원을 서랍에 감추지도 않고 그대로 책상에 올려 놓은 채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보라색 꿈이 되어 그 먼 바다에 남았습니다.
승현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건호 – 단원고 2학년 7반

건호는 외동아들입니다

 

“간지쿵야! 왕 콧구멍! 주먹밥!”
앞장서기 좋아하고 목소리 큰 건호~!
털털한 성격에 잘생긴 외모까지…
친구 좋아하는 건호는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여자친구도 있었구요.
건호의 책상위에 놓인 편지글의 일부를 옮겨드리며 건호이야기와 건호를 잃은 친구들의 아픈상처를 생각해 주었으면합니다.
세윌호참사로 우리가 잃은 건 304명이 아니라 보이는 않는, 드러나지 않는 더 큰 많은 것들을 잃어버렸습니다.

 

●언제나 앞장서기를 좋아하고 목소리 큰 너라서 금방 돌아올 줄 알았어, 근데 우리 애들중에서 꼴찌로 왔잖아. 진짜 많이 기다렸는데…
너가 써줬던 편지들 일찍 버릴걸….
이제 평생 어떻게 버려…
너 생각하면 그냥 미안한 마음뿐이야.
20살 되면 술 한잔 마시면서 과거 이야기 다 풀려 그랬는데 …
우리 사이도 여기서 멈춰버렸네…
벌써 1년, 정말 말도 안돼~!
너 말투가 귀에서 맴돌고 표정. 걸음걸이 하나 하나가 생생한데 왜 너네는 우리랑 다른 세상에 있는거야??●

 

건호는 같은반 이수빈과 참사에서 생존한 또다른 한명과 셋이서 삼총사처럼 친했다 합니다.
이 세명은 서로 미리 이야기 하지 않고 불쑥 집에 찾아가도 괜찮을 정도로 친해서 생존 학생의 집에 거의 주말마다 찾아가 놀고, 자고 왔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전에도 셋이 모여서 치킨을 주문해 먹으면서 놀았습니다.
건호가 떠나고나서 친구는 늘 같이 하교해서 집에가던 건호의 빈자리를 매일 안타까워합니다.
건호는 또다른 친구가 그려준 아기자기한 공룡그림을 SNS의 프로필 사진으로 바꾸어 놓기도 했습니다.
그림을 본 친구들이 놀리는 댓글도 달았지만 건호는 볼이 빨갛고 귀여운 공룡그림이 마음에 들었던 것 같습니다.
건호가 떠난뒤에 빈자리로 남은 건호의 책상위에는 꽃과 함께 공룡그림이 그려진 카드가 한동안 놓여져 있었습니다.
건호를 보고 싶어하는 애틋한 마음의 표현 이였겠죠.

 

●건호야 ~!!여기서의 너처럼 거기서도 항상 당차고.아이들 이끌어주고. 웃는 모습 예쁜 너였으면 좋겠다.
아프지 말고…
아픈적도 별로 없던 너라 걱정은 별로 안됨!
나 잊지말고 나 얼른 갈태니까 우리 다시 만나면 그땐 친구사이로 오래오래 지내자!!
평생 잊지 않을께●

 

아쉽게도 건호는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더이상의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습니다.
외동아들 건호를 황망히 잃어버린 부모님의 아픔을 함께 위로 드립니다.

 

건호는 이강명과 짝꿍지기였으며 지금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기수 – 단원고 2학년 7반

기수는 두 명의 누나가 있다는 것 이외에는 알려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누나가 있다는 사실도 누나가 팽목항에서 기수를 기다리다가
팽목의 상황들이 언론에서 말하는 것들과 너무나 판이하게 달랐고 구조작업도 이뤄지지않고
수습되어 올라온 시신들도 방치되고 있다는 사실을 문자메시지로 알렸고 그것을 사람들에게 알려달라고 호소했습니다.

 

“기수에게
안녕 기수야 ㅇㅇ누나야 누나 친구,
하늘 공원 갈 때마다 얼굴보고 가는데 학교에 와서는 너희반에 들리는 건 처음인것 깉아.
기수 잘지내고 있지?
우리 우영이도 성격이 남자같고 재밌어서 친해지면 좋을텐데..
아직 친해지기 전 이라면 말이라도 함,
너희가 간지 벌써 일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는데 사실 아직까지도 실감이 안나.
그래도 가슴속에서 항상 너네를 생각하고 잊지 않을거란 것만 알아줬으면 좋겠다.”

 

윗글은
2반 희생학생 강우영의 언니의 글입니다.
우영이 언니와 기수의 누나는 친구입니다.

 

속눈썹이 길고 매력적이었던 기수,
언제나 누나 곁에서 보디가드처럼 든든하고 의젓했던 기수,
남들이 다정한 오누이가 아닌 연인관계라고 까지 생각할 정도로 누나와 친했던 기수는 세월호와 함께 우리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기수가 속한 7반은 이지혜선생님과 32명의 친구들이 희생되었습니다.
사지에서 살아 돌아 온 아이는 단 한 명뿐입니다.

 

우리가 이 아이들을 잊지않고 기억하다보면 언젠가는
기수가 온전히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다고 봅니다.

 

기수는 우영이와 함께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수 – 단원고 2학년 7반

몸무게 4.3kg.
우량아로 부모님께로 온 아이.
아빠를 닮아 조용하고 약간은 내성적인 아이.
민수는 외동 아들이지만 응석부리는 성격도 아니었고 차분하고 인내심이 강한 아이였습니다.
어렸을적부터 엄마는 조금 엄격하게 훈육하는 편이었고 반대로 아빠는 달래고 감싸주는 역활을 했다고 합니다.
어렸을적에는 “윤수”라는 이름이었지만 “민수”로 바꾼것은 윤수라는 이름이 아빠와의 관계에 좋지 않다는 이유때문이었다고 합니다.
민수는 생김새도 생활도 모범생이었습니다.
초등6년,중3년.고1년때도 물론 개근상을 받았습니다.
9시 이전에는 꼭 집에 들어오고 숙제등 해야할 일은 꼭 해놓고 놀았습니다.
다른 아이들과는 달리 부모님께 “어머니” “아버지”라며 존댓말을 붙였습니다.
“아들 바보 아빠”
민수와 11명의 친구들…
외동이라 친구가 없을까봐 걱정했지만 민수는 단원중부터 어울렸던 친구들과 늘 함께하고 있었습니다.
민수는 특히 같은반 이수빈과 친했습니다.
같은 연립에 살고 있었고 2학년때에는 같은반이 되었습니다.
“나는 수학 교사가 되고 싶어. 그래서 사범대로 진학할까 생각중이야.”
민수의 꿈은 교원대 수학교육과에 진학하여
수학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Let It Go” 겨울아이 민수가 겨울왕국에 꽂혀서 친구들에게 보내줬던 노래입니다.
단원고에 진학해서 전교5등이내의 신입생에게 주는 장학금을 받았고 1학년 때에는 부학생회장까지 맡았던 민수였습니다.
“엄마 국어랑 사회문제집은 정답좀 지워주세요.수학여행 갔다와서 다시 한번 풀게요”
민수가 수학여행기간동안 엄마에게 내준숙제였지만 민수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벚꽃이 흐트러지게 핀 날 ,
너는 슬프게 사라졌다. 봄비와 함께.
아침에 눈 뜨면 네 방으로 들어가 침대를 바라본다.
혹시 네가 와서 자고 있지 않을까?
살아생전 몸에 꼬릿 꼬릿한 냄새가 난다며 씻으라고 잔소리 했는데
이제는 그 냄새까지도 그리워진다.
사랑했다. 아주 많이…..”

김상호 – 단원고 2학년 7반

“상호는 아침에는 피곤해서 원래 잘 안 웃어요. 그런데 이상하게 그날따라 상호가 “다녀올게요” 하면서 활짝 웃는거예요.그렇게 웃는 걸 처음 보았어요.
상호가 아닌 느낌이였어요. 그래도 그모습 저는 봤으니까…..”

 

상호네는 재혼가정입니다.
엄마와 헤어지고 여섯살때부터 상호는 24시간 돌봐주는 어린이집에서 자랐습니다.
이때부터 상호는 스스로 옷을 입고 스스로 자신의 일을 챙기는 버릇이 들었습니다.
상호가 열살때 갑자기 새엄마와 여동생, 남동생이 새로 생겼는데 애기때부터 엄마와 떨어져 지내서인지 처음엔 경계도 많이 하였다합니다.
처음에는 새엄마를 엄마가 아닌 이모라 불렀지만 이모에서 엄마가 된지 8년. 서로 익숙해졌다고 생각하던차에 때이른 이별이 찾아오고 말았습니다.

 

상호는 여동생을 “달걀”, 남동생을 “감자”라는 별명으로 부르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동생들도 여기에 지지않고 상호가 마른 체격이라고 “오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상호는 부모님이 안계시면 동생들 밥도 알아서 차려주는등 언제나 동생들을 살갑게 챙겨주었습니다.
그래서인지 동생들은 상호가 없는 빈자리를 무척이나 아프게 느낍니다.

 

상호 여동생은 지난해 단원고에 입학하였습니다. 상호어머니는 단원고 교복을 볼 자신이 없어서 처음엔 반대하였지만 딸이 오빠를 그리워하는 마음을 알기에 결국 져주었습니다.
상호 막내동생은 황망히 떠나버린 형이 보고 싶어서 상호침대에서 잠이 들곤 합니다.

 

상호어머니께 상호는 사춘기를 한 두달 짧게 겪기도했지만 그뒤에 오히려 남편보다 더 말이 잘 통하고 듬직했던 아들이 되었다고합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고 조용한 성격이였지만 부모님의 기념일을 잊지 않고 챙겨주던 아이, 화이트데이엔 초콜릿을,
생일엔 케이크와 썬크림을,
삼년전 크리스마스엔 목도리를 엄마에게 사줄 정도로 조용하지만 든든한 아들이였습니다.
또한
집안에서 제일가는 꼼꼼쟁이이기도 했습니다.
엄마 도와드린다고 설거지를 물기하나 남기지 않고 하수구 음식물찌꺼기까지 싹 치우던 꼼꼼쟁이 살림꾼이였다합니다.

 

“애가 애다워야 하는데 상호는 너무 어른 스러웠어요. 저나 아빠가 없으면 동생들 밥도 다차려줬지요.
어렸을 때부터 동생들을 챙겨야 해서 그런지 어리광부리는 걸 본적이 없어요.”

 

일본 애니메이션의 성우 목소리가 듣기 좋고 아름다워서 성우도 해보고 싶었고 일러스트레이터도 해보고 싶었던 상호는 단원고 1학년때는 해부 동아리, 2학년때는 밴드 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시끄러운 걸 싫어하고, 소라스러운 걸 싫어해서 사람 많은 곳을 가지않았던 상호는 처음엔 수학여행을 떠나는 것 또한 싫어했습니다.
그러나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마지막 여행이라며 즐겁게 엄마의 배웅을 받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상호는 사고후 20일이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야 사랑하는 가족들 품에 돌아왔습니다.

 

상호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으며 이지혜담임선생님과 7반 1분단에 짝궁 김정민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상호의 자리에 쓰여진 단원고에 재학중인 상호여동생의 글입니다.

 

“보고 싶은 우리 오빠.
잘 생긴 우리 오빠,
우리 오빠 친오빠,
보고 싶은 우리 오빠.
사랑하는 우리 오빠”

김성빈 – 단원고 2학년 7반

몸무게 4.4kg의 우량아로 때어난 아이.
성빈이는 두살 터울 형이 있는 집안의 막내입니다.
형은 성빈이의 맨토이자 친구였고 수호신이었습니다.
어렸을적 자전거를 타다 다쳐서 수술했던 성빈이는 이렇게 다짐했다고 합니다.

 

“다시는 다쳐서 부모님걱정 끼쳐드리는 일은 하지말아야지”

 

그러나 성빈이는 지금 이세상에 없습니다.
태권소년의 꿈.
성빈이는 어렸을때부터 태권도를 했고 대회에 나가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어릴적 장래희망이 대통령이었던 성빈이는 고등학교에 진학하며 바뀌었습니다.
대학에 진학하여 전기를 공부하여 뛰어난 에지니어가 되는 것이 성빈이의 꿈이었습니다.
성빈이 아빠는 폐암으로 병환을 앓고 계셨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이튼전인 4월 13일 아버지는 “우리아들 수학여행 가기전에
사진 한장 찍어 둬야 겠다며 마지막이 된 가족 사진을 촬영했습니다.
성빈이 외삼촌은
병원에 계신 엄마를 대신해 수학여행 짐을 챙겨주시며 배를타고 수학여행을 가는 성빈이에게 이렇게 말했답니다
“만약에 배가 기울면 무조건 갑판으로 나가야돼. 한번 넘어간 배는 절대 바로 서지 않거든!!”
성빈이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은 폐암 수술을 받은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날이기도 했습니다.
“수학여행 갔다오면 아버지 와 계시겠네.
엄마, 잘 다녀 올게. 그동안 잘 도와주고 있어”
하지만
성빈이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버지도 결국 2015년 7월에 사랑하는 아들 성빈이 곁으로 떠나셨습니다.
어머니는 성빈이와 아버지곁에서 살고 싶어서 경기도 화성으로 이사하셨습니다.

김수빈 – 단원고 2학년 7반

수빈이의 꿈은 수학 선생님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어려서부터 호기심이 많았고 궁금한 것은 직접 접해보려고 하는 겁이 없고 활달한 아이였습니다. 그리고
직접 보고 만진 것들을 그림으로 표현 했는데 안산시에서 개최하는 그림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을 정도로 그림을 잘 그렸다합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뒤에는 수학에 관심이 많았고 학교나 학원 선생님들이 인정 할 정도로 잘했습니다.

 

수빈이의 끼와 재능은 그의 흔적 여기저기에서 나타납니다.
학교 클럽활동으로는 보컬부에서 활동할 정도로 음악적 재능도 뛰어났으며,

 

노래를 시키면 아이들이 김 수 빈을 외쳤고 다른 아이들이 부끄럽다고 안하면 유독 수빈이만 “남자는 자신감이지” 하며
당당하게 앞에 나와 크게 부르곤 했으며, 연구 수업에서 모둠대표로 나와서 발표할 적에는 모든
선생님들이 크게 될 인물이라고 공개적으로 칭찬할 정도로 자신감넘치고 다재다능하고 인기도 많은 분위기 메이커 였습니다.

 

지금도 친구들은 수빈이 어머니를 찾아와서 수빈이 이야기를 어머니께 들려 주곤 합니다.
7반 1분단 박인배와 짝꿍인 수빈이는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20년이 될지 40년이 될지 내일이 될지 오늘이 될지는 모르지만 제가 오빠 있는 곳으로 가서 다시 만나게되면 무조건!!
많~이 친하게 지내요 우리,
우리 수빈이 오빠도 정말 많이 보고 싶다.
사랑해요.♡ 나와줘서 고마워요.
편하게 지내고 있어요.
꼭 다시 좋은 모습으로 만나요!”

김정민 – 단원고 2학년 7반

정민이는 삼남매 중에 맏이입니다.
튀김,떡볶이, 순대등 매운 음식을 좋아하고 그중에 순대볶음은 직접 요리를 해서 친구들을 대접할 정도로
요리실력을 뽐냈던 정민이는 집에서는 어린 동생들을 잘챙기는 의젓한 형이고 오빠였습니다.

 

1학년때는 반장, 2학년에 올라와서는 부반장을 할 정도로 성적도 우수하였고
수준급 피아노 실력과 시크한 미소까지 갖춘 매력적인 아이였습니다.
정민이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반반씩 쏙 빼닮은 미남입니다.

 

‘사랑합니다’
고1때 반장에 당선된후 정민이의 인삿말입니다.
친구들은 정민이의 장단점으로 말수가 적다는것을 이야기 합니다.
이처럼 집에서나 학교에서도 평소 말수가 적고 표현이 무뚝뚝했던 정민이는 수학여행을 가기전에 어머니께 피아노 연주를 해주었습니다.
정민이 어머니는 지금도 정민이의 피아노 연주를 슬픔속에서도 큰 추억으로 간직하고 계십니다.

 

참사후 정민이 친구로부터 받은 동영상속 정민이는 이와는 달리 친구들과 수학여행 장기자랑에 선보일 춤을 추는 모습과 노래를 흥얼거리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정민이 아버지는 정민이가 세월호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기전날 인터넷게임을 자주한다고 혼낸 것이 뭇내 마음에 걸린다고 합니다.
야단 친뒤 떠난 수학여행이라 서로 서먹해져 4월16일 침몰사고 당일 아침에도 아들과 연락 한번 주고뱓지 못한건 아닌지 아쉬워하십니다.
정민이는 아버지가 교회장로이신 독실한 기독교 집안입니다.
정민이를 찾지 못하고 기다림이 길어지자 정민이를 주님곁에 보내는 마음을 기도로 표현한 기도문이 널리알려져 있습니다.

 

학교에서 정민이는
세호와 승환, 민수.현철, 수빈이등과 친했습니다.
정민이는 친구들에게
착하고 너그러운 성품에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노력하고 성실했던 정민이로 기억되고 있습니다.
가끔은 매점책상에 앉아 쿠키런 게임도 했다고 합니다.

 

정민이와 세호는 절친중에 절친입니다.
세호와는 수학여행을 가기전에
세호는 정민이에게 모자를, 정민이는 세호에게 바지를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사고후 짐을 정리하다 정민이가 빌려주었던 바지를 돌려 주었는데
정민이는 자신의 바지가 아닌 아버지의 바지를 세호에게 빌려주었다고 합니다.

 

한 집안의 장남이자 사랑스런 동생들의 의젓한 형, 정민이의 푸른 꿈을 실었던
세월호는 목적지인 제주도에 도착하기전인 진도앞 바다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모든게 그대로인채 1271일이라는 시간이 흐르고 정민이는 분향소에서 네번째생일을 맞았습니다.

 

교실에서 김상호와 짝꿍지기인 정민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나강민 – 단원고 2학년 7반

사고후 23일이 흐른후에 세월호안에서는 서로를 꼭 껴안고 있는 아이 둘이 발견 되었습니다.
두려움과 공포에 떨었을 서로를 달래주고 의지하던 두친구는 마지막 까지도 함께 하였습니다.
서로를 꼭 껴안고 발견 된 아이들이 바로 나강민과 같은 반 친구 이근형 입니다.
잠수사가 아무리 떼어 놓으려 해도 떨어지지 않자 잠수사는 이렇게 달랬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 한테 가자”고…..

 

그제서야 떨어져서 강민이가 먼저 물 밖으로 나왔고 근형이도 따라서 나왔습니다.
184cm 큰 키에 덩치가 있고 평소 친구를 좋아했던 강민이 성격에 아버지는 강민이라면 충분히 그럴줄 알았다고 합니다.
강민이는
유치원때 부모님이 이혼을 하셔서 고모님손에 자랐습니다.
태권도로 단련된 몸으로 체격도 좋고 운동도 잘했습니다.
그러나 집에서는 강민이 아버지 말씀에 따르면 “덩치에 어울리지 않게 귀여운 놈”이었습니다.
아버지와 뽀뽀할 정도로 장난도 잘치고 같이 사우나가서 아버지등도 밀어주는 착한 아들이였다고 합니다.

 

강민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습니다. 워낙 성격도 좋고 운동도 잘하는데다가
강민이가 저녁때 친구들과 운동장에서 놀고 있으면 강민이 아버지가 퇴근길에 같이 어울려
축구도 하고 야구도 하면서 같이 놀아 주고 친구들 야식도 사주고 때론 용돈도 주곤 하셨답니다.

 

토요일이면 친구들이 강민이 집에 대여섯명이 몰려와 잠을 자고 가기도 하는 모텔같은 집이였다고 합니다.
고모는 그런 강민이의 친구들을 위해서 늘 음식준비를 하였습니디.
아버지는 인생 최고의 친구였던 강민이가 너무 보고 싶어서 일하시다가도 화장실에 숨어서 울기도 하고
쉬는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계속해서 휴대폰속 강민이 사진을 들여다 보곤 하신답니다.

 

“통신 안 잡히니까 이따가 전화 할게요” 강민이의 마지막 말입니다.
강민이 어머니는
“5월 5일 엄마 생일에 올라와 주라”는 글을 리본에써서 팽목항에 걸어 놓았으나 올라오지 않자 “자식이 의리가없다”며 투정후에 8일 어버이날에 다시 가서
“카네이션 달아주라”는 소원하자 친구 근형이를 꼭 껴안고 발견 되었다고 합니다. 강민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강민이 아버님은 강민이가 입던 점퍼를 입고 계십니다.
강민이를 생각하며 헤질때까지 입으시겠다 하시며……

박성복 – 단원고 2학년 7반

지난 세월호특조위 청문회에서 어떤 증인이 세월호 단원고 희생학생들을 “철없는 아이들”이었다고 표현했습니다.
오늘 생일을 맞은 성복이를 보고 철없는 아이인지 판단해 보십시요.

 

성복이의 꿈은
카페를 차려서 우리나라 최고의 쎼프가 되는 것 이었습니다.
“성복이가 지난번 겨울 캠프 때 볶음밥 해 줬는데 진짜 맛있었어.
나중에 비빔밥이랑 스파게티도 해준다고 했어.
동생한테 많이 해줘서 잘한데. 성복이가 요리사하면 잘 할것 같아”
친구들이 말하는 성복이입니다.

 

어머니와 친구들, 동아리후배들을 위해 수학여행 목적지인 제주도 감귤 초콜릿을 사오겠다던 꿈도 이뤄지지 못했습니다.

 

성복이는
안산 YMCA 단원고 봉사동아리 TOP 회장입니다.
약간의 불협화음이 있던 동아리를 성복이가 회장이 되며 화합하고 봉사하는 동아리로 만들었습니다.
선배들을 잘 따르고 후배들에게 먼저 다가가 잘 다독여주고 다정다감했던 성복이였기에 가능했습니다.
성복이는 선후배와 친구들과 주말이면 요양원을 찾아 봉사하고 밥 짓고 청소하는 등 이웃사랑을 실천했습니다.

 

성복이는
두살차이 여동생이 있는 맏아들입니다.
집에서는 여동생과도 잘 놀아주는 다정다감한 오빠이기도 했습니다.
끝말잇기를 좋아해서 밤늦도록 동생과 끝말잇기를 하면서 놀다가 엄마에게 혼 나고서야 각자 방으로 돌아가기도 했다고합니다.

 

또한 성복이는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피아노 바이올린 오카리나까지 뭐든지 잘 다루는 재주꾼 이었습니다.
다니던 교회에서는 피아노 반주 봉사를 하기도 했습니다.

 

성복이는
말이 번지르르한 아이가 아니었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을 때는 흥분해서 말을 약간 더듬기도 했습니다.
누군가가 심한말을 듣거나 야단을 맞으면 눈물을 흘리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울면서도 할 말은 했고 남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성복이랑 싸운 사람은 아무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또한 성복이는 후배뿐 아니라 친구들의 고민 상담사이기도 했습니다.

 

부모님은 성복이를 잃고 진실을 감추고 덮고자하는 이 정부와 수많은 투쟁을 해왔습니다.
지난 1주기때에는 어머니가 경찰에 밀려 넘어지며 갈비뼈 4개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기도 했습니다.

 

아빠를 닮아 착하고 마음 따뜻했던 성복이는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이모네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그 돈으로 엄마한테 깜짝 선물을 하기로 했습니다.

 

성복이 친구의 스마트폰에는 잔잔한 반주가 흐르고 (보고 싶다)를 노래하는 성복이를 찍은 동영상이 남아 있습니다.

 

“아무리 기다려도 난 못가 바보처럼 울고 있는 너의 곁에
보고 싶다 보고 싶다 이런 내가 미워질 만큼
미칠 듯 사랑했던 기억이 추억들이 너를 찾고 있지만
이러면 안 되지만 죽을 만큼 보고 싶다”
ㅡ 김범수(보고 싶다)중에서

 

그러나 성복이는 5월 2일에야 223번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부모님품으로 돌아와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박인배 – 단원고 2학년 7반

“아들 인배야 ~!
보고 싶다.
언제까지나 함께 할거라 생각했는데……
우리 아들없는 세상이 너무나 야속하다
사랑하는 아들
불러도 불러도 대답없는 이름 인배
사랑하는아들
착하기만 한 아들,
언제나 함께 아들과 살고 싶었는데
사랑하는 아들 함께 해주지못해 미안하다.
사랑한다 천국에서 기다려
친구들과 행복한 시간 보내고
사랑한다 엄마가”

 

박인배는 4살어린 여동생이 있습니다.
중2때 아버지가 간암으로 돌아가시고 안계셔서 인배는 동생에게는 아빠같은 오빠. 어머니에게는 남편처럼 든든한 가장같은 아들이었습니다.

 

인배는 어머님이 편찮으실때면 직접 밥을 해서 어머니도 드리고 동생도 챙겼고 어머님이 어딜가시거나 장을 보러 시장에 가시면 늘 같이 다녔습니다.
무슨일이든 스스로 알아서 잘했고 듬직하고 믿음직해서 어머님은 참 많이 의지하셨다고 합니다.

 

인배는 어릴때 게임을 많이 좋아해서 프로게이머가 되는게 꿈이였습니다.
그러나 고등학교에 진학해서는 경호원이 되려고 체육관에 다니며 경호학과 진학을 위해 준비를 했으며 수학여행에서 돌아온 다음날인 4월19일에는 대회에 나가려고 준비했다고 합니다.
인배는 같이 희생된 박홍래와 문중식과 같은 도장을 다니며 꿈을 키워왔지만 친구들과 같이 세월호에 꿈을 접어야만 했습니다.
박인배의 짝꿍은 김수빈입니다.

박현섭 – 단원고 2학년 7반

“섭아.
하늘 만큼 땅 만큼 사랑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나의 전부 였는데.
엄마가 많이 사랑한거 우리 아들은 알거야
너 때문에 많이 웃고
너 때문에 그 긴 세월 행복했단다.
엄마 만날때까지 행복하게 잘 지내고 있어
사랑해.”

“섭아섭아”
현섭이는 다섯 살 위 누나가 있는 막내아들입니다.
“짱구는 못말려” 만화를 좋아해서 집에서 현섭이를 부르는 별명은 “짱구” 였습니다.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어려서부터 집에서 누나와 함께 있는 시간이 많았다고 합니다.
누나는 현섭이를 많이 좋아하고 잘 챙겨주었습니다.
누나의 현섭이에 대한 그리움은 책상과 분향소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현섭이의 꿈은
육군 사관학교에 진학해서 멋진 국군 장교가 되는 것이 꿈이 었습니다.
현섭이는 운동도 잘했고 축구와 농구를 특히 좋아했습니다.
교회도 열심히 다녔고 착하고 순한 성격이라서 사춘기도 모르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현섭이는 아이돌 그룹 에이핑크를 좋아했고 멤버중 손나은의 팬이기도 했습니다.
현섭이의 책상위에는 손나은의 브로마이드가 놓여져 있습니다.

32명이 돌아오지 못한 7반 3분단 맨뒤에 이수빈과 짝꿍이었습니다.
7반에는 서현섭과 박현섭 두명의 현섭이 있습니다.

현섭이는 4월 22일 부모님품에 돌아와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서현섭 – 단원고 2학년 7반

현섭이는 누나가 셋이나 있는 막내입니다.
현섭이를 소개하기 위해서 현섭이의 일기를 불러옵니다.

 

2009년 4월
누나에게 물어보니 나는 이천 서씨였다.
헛. 이천 서씨라면 나의 조상은 서희 담판!

 

2010년 5월
5월은 가정의 달이라고 한다.
큰누나는 독립해서 혼자 산다. 작은 누나는 직장에 다닌다. 막내누나는 대학생이다.
아빠는 세상에서 일을 가장 많이 하는것 같다. 엄마는 야간 근무를 할때가 많아서 밤늦게 들어온다.
우리집에선 나랑 멀티만 시간이 많다. 시간이 많으니 리면이나 끓여야 겠다. 멀티는 나눠주고..

 

2010년 12월
친구를 따라 처음교회에 갔다.하나님보다 맘에 드는건 교회에 밴드부가 있다는거다.
기타 때문에 교회에 다녀도 하나님은 봐줄거다. 하나님은 원수도 사랑하니까.

 

2011년 6월
막내누나에게 기타연주를 들려줬다.
<로망스> 누나가 말했다.
“재법인데 다음엔 반주에 맞춰 노래도 들려주라” 내가 바라는 것도 그거다 .
나는 요즘 틈나는데로 기타를 친다. 특히 버즈의 노래는 언제들어도 좋다.

 

2012년 12월
여자친구랑 시험공부를 했다
나가 왜 좋냐고 물었더니 그애가 고개를 옆으로 기울였다.
“너는 미소가 좋아. 다정하고 매너도 좋고, 옷도 잘입고 다니고.
마음도 착해 그리고 잘 생겼잖아”그애가 웃었다. 나도 웃었다.

 

2012년 12월
낯에 요리를 했다.
누나가 먹어보고 식당에서 파는것 같다고 핬다. 나중에 커서 요리사가 되면 어떨까 생각했다.
요즘은 남자 요리사가 인기가 많다.
내가 가고 싶은 학교를 정했다.
1순위로 선택한 단원고에 꼭 붙었으면 좋겠다.

 

2013년 10월
성적이 올라서 상위권에 들었다. 엄마, 아빠가 많이 좋아했다. 이렇게라도 아빠를 기쁘게 해 드릴 수 있어서 좋았다.

 

2014년 4월
드디어 내일 수학여행이다.
행선지는 제주도.인천항에서 배를 타고 출발한다. 밤에는 불꽃놀이도 한다고 했다.
이번에 제주도에 가면 아빠 선물도 사와야겠다. 선물을 주면서 사랑한다고 말할까? 이건 너무 쑥스럽다.
아빠도 나에게 사랑한다는 말을 해준적이 없다. 남자들끼리는 원래 그런거 잘 안한다.
핸드폰에서 버즈의 일기가 흘러 나왔다.
가사가 좋으니 적어 봐야겠다.

 

” 시간이 지나도 변치 않는 건 그댈 사랑하는 일~~안된다고 잊었다고 하지 말아요.~영원히 그대곁에 My Love~☆”

 

현섭이는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성민재 – 단원고 2학년 7반

성민재.
민재는 위로 형이 하나 있는 형제중에 막내입니다.
엄마에게는 딸같은 아들이었고 아빠에게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고 합니다.
시장갈때 마저도 옷매무새를 단정히 할 만큼 패션에 있어서 센스왕이었고,
중학교 졸업식장에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에 맞춰 말춤을 춰 선생님과 친구들 어머니를 배꼽잡게 만들었던 주인공이기도 했습니다.
민재는 집에서 “콩”이라고 불렸습니다.
항상 아기 같아보여 그렇게 불렀다고 합니다.

 

민재의 꿈은
건축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건축가가 되어 이층집을 지어 부모님과 위아래층에서 같이 살고 싶어했습니다.
학교에서는 같이 희생된 4반 강신욱과 중학교부터 절친이었고 봉사동아리 TOP에서
주말이면 복지관, 노인정. 쓰레기줍기등 이웃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였습니다.

 

분향소에 들어서면
입술끝이 위로 올라가며 백만불짜리 미소를 지닌 매력적인 아이가 눈에 들어옵니다.
민재는 일명 SKY를 꿈꾸며 공부도,꿈도 높게가진 아이였습니다.
학교 생활,교우관계도 좋아 친구들 또한 많았다는 아버지의 전언입니다.
교실에서도 분단 맨앞자리를 차지할 정도로 매사에 적극적인 아이였고 초콜릿 과자를 좋아했던 흔적도 보입니다.

 

너무나도 보고픈 우리아들 민재,
수학여행 떠난지
벌써 두달이 되어갔내,
이제 막 꽃봉우리를 피울 나인데
우리 민재는 꽃다운 인생을
살아보지도 못하고
넓은 바다 쪼그만 세월호에 긷힌채로
고통과 두려움을 마지막 기억인채로
멀리 떠나게 해서 아빠가 미안해
넓고 넓은 바다에
점보다 작은 공간에서
삶에 대한 마침표를 찍었지만
민재와 친구들이 남긴 의미는
그 어느 누구도 절대로 마침표를
지을수가 없을거야
엄마,아빠가 평생 같이 하니깐
민재야 부디 좋은 곳에서,
파도 없는 곳에서
친구들과 못다 이룬 꿈
이루길 기원할께
사랑해 아들 우리 민재
2014년 6월 13일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밤 민재는 엄마의 핸드폰에 엄마가 드라마를 보며 즐겨 듣던 노래를 다운받아 주었습니다.
” 엄마, 이 노래 엄마가 드라마 볼 때 좋아하던 거 잖아요. 밤에 잘 때 꼭 들어요. 나 보고 싶을때 없다고 울지말고. 킥킥 ”
이승철 ( 그사람 )
그사랑 잊을수 없는데 그사랑 잊을수 없는데
그사람 내 숨 같은 사람 그런 사람이 떠나 가네요ᒺ
그사랑아 사랑아 아픈 가슴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아
사랑했고 또 사랑해서 보낼수
밖에 없는 사람아 내 사랑아

 

오늘도 엄마는
민재가 다운 받아준 노래를 들으며 잠이 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그 사람을 떠 올리며 이 깜깜 하고 적막한 밤을 이겨내는 중입니다.

 

민재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손찬우 – 단원고 2학년 7반

찬우는 위로 13살 많은 형이 있는 늦둥이 막내입니다.
전혀 생각도 못했던 때에 태어난 찬우가 부모님에게도 특별했지만 형에게도 아주 특별했다고 합니다.
형은 찬우가 먹고 싶다고 하거나 갖고 싶다고 하는 것이 있으면 모두 사줬습니다.
세상에 하나 뿐인 동생 찬우를 형은 정말 예뻐하고 좋아 했다고 합니다.

 

찬우는 요리사가 되는것이 꿈이었습니다.
꿈을 위해 요리 학원도 다녔으며 한식과 일식을 학원에서 배웠는데 생선 다루는 것이 어렵지만 재미있었다고 하였다 합니다.
가끔 친구들을 집으로 불러서 찬우가 음식을 만들어 줬는데 음식 간도 제법 잘 맞춰서 맛있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도 찬우는 성격도 좋아서 친구가 많았고 일단 한번 알게 된 친구와는 깊이 사귀었습니다.
찬우 어머니는 찬우가 꿈에라도 나오면 예전처럼 예쁘다고 쓰다듬어 주고
오래오래 같이 이야기하고 싶은데 찬우는 교복입은 모습으로 아주짧게 다녀가서 너무너무 아쉽다고 하십니다.

 

분향소나 교실에서 마주하는 찬우 어머니는 아직도 많이 힘들어 하시고 늘 통곡으로 찬우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찬우는 4월 20일에 돌아와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송강현 – 단원고 2학년 7반

강현이는
이란성 쌍둥이입니다.
불과 몇분 사이에, 의사의 손에 의해 오누이 순번이 바끤것이죠.
얼굴이 가름한 여동생에 비해 강현이는 얼굴이 네모나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때론 몇분차이 동생과 티격태격도 했지만 늘동생에게 져주고 동생을 위하는 듬직한 오빠이기도 했습니다.

 

지방에 근무하시는 아빠와 주말에만 보기도 했지만 항상 잠은 엄마의 손을 잡고 동생과 함께 엄마양쪽에서 잠이 드는 행복한 가정이었지요.

 

강현이는
서든어택이라는 게임을 좋아하고 때론 친구들의 고민상담을 하여주고 운동은 축구를 즐겨했습니다.
학교 축제때에는 9반 이보미의 노래하는 영상을 촬영하여 보미와 소통했던 흔적들이 나옵니다.
또한 세월호침몰을 최초로 신고했던 최덕하와 같은반 친구인 양철민과는 절친했던 친구사이였습니다.

 

강현이의 꿈은
서든어택의 고수답게 프로게이머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친구들의 컴퓨터 프로그렘을 손 봐주는 단골이었고 미니 홈피도 멋지게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서든어택의 계급은 이등병부터 시작하여 쓰리스타삼성장군까지 캐릭터를 키 울 정도 였습니다.

 

세월호 침몰후 17일 만에 돌아 온 강현이를 그리워하는 친구들의 애타는 심정을 옮겨봅니다.

 

“강현아,
지금도 편하게 잘 지내고 있지?
아침부터 하루종일 너랑 같이있어서 너무 좋았어.
너도 편하고 좋았지?
지금도 전화해서 나오라고 하면 나올 것 같고, 카톡하면 바로 욕하면서 답장해 줄거 같은데 왜 아직까지 안오는 거야.
수학여행이 너무 길다 그치?
하고싶은 말도 많고 해줄 것도 엄청 많은데 이걸 누구한테 해줘야 되나싶다.
마지막 보내주는 길에는 너랑 같이 있어 좋아서 눈물 참으려고 했는데 어쩔 수 없이 나온다.
그럼 거기서 잘지내고 다음 생에도 나랑 만나서 지금처럼 지내다가 같이 하늘나라 가자.
강현아 진짜로 미안하고 사랑해.”

 

강현이네도 불행중 다행으로 쌍둥이지만 같은 학교에 다니지 않아 더 큰 화는 면했습니다.

 

강현이 짝꿍은 이정인이며 강현이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심장영 – 단원고 2학년 7반

장영아, 아빠 만났니?

 

[여기 와 있어]
심장영의 생일시

 

…내 생일이라서
내가 여기왔잖아.
엄마가 데리고 왔잖아.
잘 지내고 있는거지?
누나들도 보고 싶었어.
다들 보고 싶었어
이렇게 보니까 좋다.
날마다 생일이면 좋겠네.

 

…중략…

 

사실 바다는 조금 차갑더라.
지금은 다 지나서 괜찮긴 해.
지난밤에 깔깔 웃으며 같이 놀던 친구들 모두 무서워 울고 있을때
내가 무턱대고 나서서 괜찮다고,괜찮을 거라고
노래를 먼저 불렀어.
좋아하는 아이돌 노래,
가사를 우스꽝스럽게 바꾼 노래.
그냥 가사를 아는 노래
앞머리 넘기면서 노래를 부르며 힘껏 괜찮아졌어.

 

지금 여기는 따뜻하고 동시에 시원해
타이즈 내복 같은 거 이젠 입지 않아!
그러니 엄마,누나들도 힘껏
괜찮아지면 좋겠어,
나 지금 노래 불러
들려?

 

시간이 지금보다
더 지나면
훌쩍 지나면
‘그렇게 힘들었던 시절도 있었다’
서로 눈을 보면서 서로 이마를 쓰다듬으며
서로 꾹 안아 주면서 서로 손등을 겹치며
이야기 할 수 있겠지.
사랑한다고 말하고 들을 수 있겠지.

 

그때쯤 엄마 손은 더 거칠어 있을까,
누나들은 아줌마가 되어 있을까.
무엇이든 좋으니까, 장영이 생각하면서
오래 건강하게 있다와
그래야 좋아 할거야.

 

장영이는
친구왕으로 불맅 정도로 친구도 많을 뿐아니라 집에서는 엄청난 효자아들 이였습니다.
늦게까지 운전하고 들어오는 엄마의 발 마사지를 해주고 설거지를 해도 깨끗하고 반듯하게 하는가하면
뒷정리도 깔끔하였다 합니다
“엄마 밥은?”하며 엄마의 식사를 먼저 걱정하는 아이였습니다.
계단을 오를 때면 엄마가 힘이 들까봐 엉덩이를 손으로 받쳐주기도 하는 효자 아들이었습니다.

안중근 – 단원고 2학년 7반

중근이는
7개월만에 태어났습니다.
태어나자마자 인큐베이터에서 세상을 만났고 그무렵 암투병중이던 어머니께서 세상을 떠나서 엄마의 얼굴을 보지 못했습니다.
형과 아빠 중근이 세남자의 생활은 중근이가 중학교 1학년때 끝이 났습니다.
새엄마와 두살 많은 누나가 새로 생긴겁니다.
듬직하고 속 정깊은 중근이는 새환경에 금방적응하였으며 엄마. 누나의 이름을 부르는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엄마와 함께 주방에서 함께 음식을 만들고 누나의 심부름에는 한걸음에 달리는 중근이였습니다.

 

중근이..
처음엔 이름 때문에 다가왔고, 너무 늦게 돌아와 다가왔고. 분향소에 놓인 두산베어스 야구 유니폼때문에 다가온 중근입니다.

 

“엄마 고백할게 있어. 엄마가 새엄마라는 이름으로 내 곁에 왔을 때. 나 엄마한테 내내 반말했잖아.
막 아무거나 사달라 하고.버릇없이 굴었잖아. 엄마. 나 일부러 그랬어,
나 하루 빨리 엄마에게 다가가려고 그랬어. 하루빨리 엄마 아들 되려고 그랬어,
정말이지 엄마가 그리워서 그랬어.외로워서 그랬어.
엄마 , 다시 고마워 천번 만번 고마워
짧았지만, 내 엄마가 되어줘서 고마워 내 응석 내 잘못 다 받아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
캄캄한 저 어둠을 뚫고 거기까지 들리게 크게 한번 불러보고 싶은 엄마 사랑해! ‘중근이의 생일시 중에서'”

 

아빠를 꼭 빼어닮은 7반 중근이는 야구선수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큰 덩치 만큼 운동을 좋아해 야구와 축구등을 즐겨했습니다. 중학교때는 친구들과 매일 야구만하다가 어깨 인대를 크게 다쳤습니다.
부모님은 중근이에게 야구를 그만둘 것을 종용했지만 중근이는 틈틈이 야구를 계속했다고 합니다.
중근이는 프로야구팀 두산베어스 팬이였습니다.
또한 중근이는 베이스기타를 잘 쳤습니다.
아빠는 그런 중근이의 모습이 부럽고 자랑스럽기도 하였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전 아빠는 아들에게 “베이스 기타를 치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중근이는 아빠에게 기타 코드표를 건네주며 연습하라 하고는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진도체욱관에 “21번 안중근”이라는 글씨가 새겨진 두산베어스 유니폼을 걸어놓고 하염없이 아들을 기다렸습니다.
21번은 중근이의 반 출석 번호입니다.

 

부상때문에 접은 야구선수 대신에 경찰대학에 가겠다는 꿈을 피력하기도 했던 중근이.
덩치에 맞지않게 엄마에게는 수다쟁이처럼 조잘조잘 이야기를 잘했던 중근이.
동네방네 엄마,아빠 이름 걸고 외상 지고 다니던 넉살 좋은 중근이.
자주 다투고도 5분을 넘기지 못하고 화해하는 변덕쟁이 형과 중근이.
어리석기로 용감했던 형제사이를 늘 화해의 손을 연결해준 똑똑이 누나와의 추억등을 묻은 채로…..

 

긴 기다림의 끝.
날마다 팽목항 등대에 나가 중근이를 외치던 아버지의 염원에 보답하듯, 중근이는,
6월 8일 밤11시 20분에 ‘292’번으로 발견돼어 부모님과 누나와 형의 곁으로 돌아와 지금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네 얼굴을 보지도 만져보지도 못하고 그냥 보냈어야 해서 가슴이 찢어지게 아프구나.
아들이 없는 생일 파티를 하는 슬픈 시간을 보냈지.
금방이라도 ” 배고파요, 밥 주세요” 하며 네가 문을 열고 들어올 것만 같은데……”

양철민 – 단원고 2학년 7반

철민이는 집안의 외동아들입니다.
너무나 사랑하고 착하고 귀한 아이였기에 부모님은 철민이를 소중히 간직하고자 하십니다.
부모님의 의견을 존중하여 제가 알고 있는 간단한 이야기만을 올립니다.

 

지난 2015년 2월 22일 철민이 생일날,

 

건우에 비해 알려지지 않는 철민이의 이야기를 찾고자 어제 하늘공원,
오늘 학교,분향소를 찾았지만 특별한 것을 찾지못해 케잌올린후 다시 하늘공원을 찾았다가 철민이 생일을 축하하기위해
모인 친구들 30여명과 마주쳤습니다.
이녀석이 이렇게 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철민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도 인기가 좋았고 웃음이 많았으며 화가나면 얼굴이 사과처럼 빨개져서 고릴라라는 별명이 붙었다고 합니다.
“철민이를 만난 우리들이 행운아예요” 라고 말하며 울먹이는 친구들에게서 철민이의 성품과 교우관계를 엿볼 수 있습니다.
친구들이 말하는 철민이의 여자친구는 2반 강수정이였는데 안타깝게도 이번 사고로 같이 희생되었습니다.
천국에서 영원한 여자친구로 인연을 이어가겠죠…..

 

철민이는 선부중학교를 졸업하였습니다.
중학교때부터 친했던 정원석_장진용이 단원고로 같이 진학하였고 같이 희생되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긍정맨으로 통했고 축구할때는 주장으로 리더를 하였으며
부모님께 생일 선물을 사드리려고 알바를 하는등 효심깊은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33명의 7반 아이들이 떠난 수학여행.
7반은 단 한명의 아이만 살아서 돌아왔고 이지혜선생님 교탁 바로앞에 앉았던 철민이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철민이는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오영석 – 단원고 2학년 7반

“이쁜아들 미안해.
엄마아들로 태어나줘서 고맙고
이쁜아들 먼저 보내서 미안해.
만나는 그날까지
너가 부르는 그날까지
만나는날 너늘 꼭 안고 안 놓을거야.
사랑해 내새끼.”

 

외동 아들 오영석.

 

어렸을때부터 부모님과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랐습니다.
영석이는 축구선수가 되는것이 꿈이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반대하여 그때 영석이는 많이 실망하였다고 합니다.
한때 부모님의 몸이 안 좋으셨을때가 있었는데 그때 편찮으신 부모님을 돌보면서 간호조무사가 되겠다고 결심했다고합니다.
어머니가 의사가 아니고 왜 조무사냐고 묻자 영석이는 환자를 직접 도와주는 일을 하고 싶고
환자들이 즐겁게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힘쓰는 일이 보람있고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며 아픈 사람들을 즐겁게 돕고 싶다고 하였답니다.

 

삼겹살과 치킨을 좋아해서 치킨을 시켜도 두마리를 시켜 먹고 삼겹살을 먹을 때면 상추쌈을 싸서 엄마 입에 넣어드리기도 했던 영석이였습니다

 

영석이는 용돈을 한 번도 그냥 받아 본적도 없었습니다. 화장실 청소도 하고, 설거지도 하면서 엄마를 도와 드렸습니다.

 

어른이 돼서 돈 많이 벌면 부모님을 세계일주 시켜주겠다던 영석이는 세월호 침몰후 닷세만인 4월20일에 부모님의 품에 돌아와 지금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강명 – 단원고 2학년 7반

강명이의 꿈은
특전사 부사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거기서 시작해 언젠가는 고급 장교가 되고자 했습니다.
강명이는 중학교때까지는 매우 소심하고 소극적인 아이였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ROTC 출신으로 군장교가 된 사촌형을 운명처럼 만나고부터 강명이의 모든것이 바뀌게 됩니다.
자신에게 없는 자존감을 찾아 나서고 자신에 대한 믿음, 신뢰, 당당함을 찾고자 군인의 꿈을 정하고 친구와 함께 체육관을 찾았습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특전사의 구호를 가슴에 새기고 꿈을 향해 한걸음한걸음 내딛으며 행복한 꿈을 꿨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이 확정되며 강명이는 친구 다섯명과 의기투합하여 장기 자랑으로 춤을 추기로 하였습니다.
어렸을적 의기 소침하며 나서기를 주저했던 성격이 군인의 꿈을 꾸며 변해가는 모습에 스스로 대견하기도 놀라기도 했답니다.

 

“안 가면 안 되겠니?”
“미안해요. 집안 형편 생각 않고 고집피워서, 하지만 정말 가고 싶어요.”
넉넉치 않는 집안 살림에 수학여행 보내는 걸 주저했던 부모님도 소극적이고 내성적인 강명이가 운동에 공부에 춤까지,
씩씩해져가는 강명이를 보며 안도하며 여행가서 입을 옷과 가방 살 돈까지 주었습니다.
“철 없는 건 이번이 마지막이예요. 다음에 커서 꼭 보답할게요”

 

강명이는 마음깊이 아로세기며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음악에 맞춘 절도 있는 춤연습에 열중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한층 더 성숙한 모습의 자신을 꿈꾸며….

 

강명이는 세월호 참사후
4월 24일에 돌아와 지금은 안산 하늘공원에
절친 박인배와 나란히 곁에 잠들어 있습니다.

 

☆벌써 여름이 지나고 가을이 오는것 같아.
항상 우리랑 따로 운동했지만 인배친구라 해서 많이 눈여겨 봤어.
운동도 항상 나오고 인배랑도 잘 놀았잖아.
거기서도 혹시 운동계속하고 있어?
하고있다면 열심히 하고…
안하고 있다면 무슨일을 하던 잘할거라 생가할께.
다음에 만날때 웃는 얼굴로 보자.☆

이근형 – 단원고 2학년 7반

남윤철선생님과 이근형학생은 교내 보컬부 지도교사와 학생으로 사제지간이기도 합니다.

 

“사랑합돠”
4월 16일 오전 9시 30분 근형이는 엄마에게 이렇게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상하게 생각한 엄마는 아들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근형이는
“배가 충돌 한 것 같다. 배가 가울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오전 9시 42분 근형이는 “살아서 갈거예요, 기다려요 “라는 마지막 문자를 엄마에게 남겼습니다.
그러나 그날 근형이는 세월호에서 나오지 못했습니다.

 

근헝이에게는 두살 많은 형과 다섯살 남동생이 있었으며 근형이는 늦둥이 남동생을 그렇게도 아꼈다고 합니다.
엄마, 아빠에게도 애교 많고 씩씩한 딸같은 둘째아들 이었습니다.
맞교대로 24시간 일한 아버지가 집에 돌아와 소파에 누워 텔레비젼을 보고 있으면 아빠를 깔아 뭉개며 장난치기를 좋아 했습니다.

 

근형이는 사곤후 23일이 지난 5월 8일 어버이날에 부모님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근형이의 지갑에는 3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한 달 용돈이 5만원인 아빠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아들에게 쥐어 준 돈 이였습니다.
아버님은 이 돈을 보고 엉엉 울었다고 합니다.

 

지상하고 배려심 많은 근형이는 언제나 엄마와 동생이 자신보다 먼저였던 가족의 보호자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유명했던 ” 동생바보” 근형이,
다섯살 난 동생의 똥 기저귀를 갈아주고,
맘마 먹여주고, 안아주고, 업어주고, 뒹굴며 놀아주고….
학교에서는 같은반 수빈이와 함께 보컬부에서 활동했습니다.

 

근형이의 꿈은
과학선생님이 되는 것 이었습니다.
학원에 보내지 않아도 열심히 공부하는 노력파였던 근형이는 성적도 우수하였습니다.
그러나 근형이를 태웠던 세월호는 근형이의 꿈을 앗아가 버리고 말았습니다.

 

근형이는 짝꿍 이민우와 함께 1분단 맨 앞자리에 자리하고 있으며 지금은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마지막 순간에도
어쩌면 너 없이 자랄 동생 걱정을 했을 것 같은
동생바보 근형아.
정말 사무치도록 그립구나.
보고 싶고 만지고도 싶은데
어디로가야 널 한번이라도
안아볼수 있을까
내 아들로 살아줘서 고맙고
더 잘해 주지 못해서 미안했어.
사랑한다.
내 소중하고 특별한 아들아.”

 

세월호가 바닷속에 잠긴후 23일간 진도의 하늘을 올려다보며 한없이 울었던 부모님,
지난해 분향소에서 뵌 아버지는 소중한 보물이자 희망을 잃어버리셨다며 또다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안타까워하셨습니다.

이민우 – 단원고 2학년 7반

간지좔좔 이민우.
민우는 위로 누나가 있는 남매중에 막내입니다.
부모님이 이혼을 하셨기에 민우는 가족의 중심이었고 연결고리였습니다.
누나는 속마음을 잘 표현하지 않는 성격이지만 민우는 막내답게 애교도 부릴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어렸을때부터 바닷가 할아버지댁에서 지내서인지 부지런하고 어른스러웠습니다.

 

새벽부터 일어나서 직접 밥을 짓기도 했고 수영도 잘하고 물에 익숙했습니다.
민우의 어렸을적 꿈이 어부였을 정도로 바다를 잘아는 민우였기에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을 때도 아버님은 당연히 민우가 헤엄쳐서 나올 거라고 생각하셨답니다

 

그러나
구명조끼를 입고 4층 선미에서 서 있는 희미한 사진속 모습이 민우의 살아생전 마지막 모습으로 남겨 졌을 뿐입니다.
민우 아버지는 민우를 잃고나니 그 빈자리가 너무 크고 민우가 ” 아빠 나 용돈 주면 안돼?”하고 조심스럽게
조르던 목소리가 가장 듣고 싶다고 하십니다.

 

모든 부모님들이 그러 하듯이 민우를 다시 한번 만날 수 있다면 딱 한 시간 만이라도 만날 수 있다면
따뜻한 밥 한끼 먹여서 보내는 것이 민우 아버님의 소원 입니다.

 

7반 1분단 맨앞자리에 앉았던 민우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수빈 – 단원고 2학년 7반

수빈이는 7반 반장입니다.
출산 예정일보다 한 달 일찍 태어나 인큐베이터 신세를 진 아이.
해마다 학교에서 체육과목 상장을 쓸어모으고. 고1 체육대회 계주에서는 “역전의 용사”가 된 아이.
수빈이는 축구에서도 알아주는 명 플레이어 였습니다.
반장이었던 수빈이는 공부도 참 잘했습니다.
체육이 부전공 이었다면 주전공은 수학이였습니다.
새벽 네시까지 책상머리에 앉아 수학문제를 풀 던 아이였습니다.

 

“엄마, 나중에 내가 돈 많이 벌면 뭐해줄까?”
“시골에 땅을 사줘. 강아지도 기르고 야채도 키우게”

 

수빈이는 엄마뿐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도 이런 질문을 자주했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해줘야 할 게 많아서 수빈이는 부자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수학 선생님과 은행원. 회계사를 두고 뭐가 될지를 고민하던 아이였습니다.
“짜수” “간지짜수”
짠돌이 수빈이의 별명입니다.
셈이 강했던 수빈이는 함부로 군것질을 하거나 용돈을 함부로 쓰지 않고 통장에 넣어두고 사용했습니다.
당연히 친구들에게 “짠돌이 수빈”이 줄임말인 “짜수”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수빈이 보다 세 살 어린 남동생은 형을 무서워 하면서도 좋아했습니다.
모든것을 잘하는 형이었기에 형을 우상처럼 따랐습니다.
키 178 센티미터에 얼굴도 잘생긴 형은 공부뿐만 아니라 잘하는게 참 많았습니다
수학을 잘해서 학교에서 장학금을 받아오고, 운동을 잘해서 친구들과 축구를 자주했습니다.
학교에서는 포켓볼 동아리 활동을 하는등 정말 다재다능한 아이였습니다.
또한 성격도 좋아서 주변에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사실 수빈이는 수학여행코스를 미리 다녀왔습니다.
중 3때, 고등학교 진학하면 공부만 할거라며 가족여행을 제주도로 다녀왔고 수학여행코스도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간다고 한껏 들 떠 있었습니다.
4월 15일 수빈이 엄마는 버스를 타고 수학여행을 떠나는 수빈이와 친구들을 학교에서 손을 흔들며 배웅했습니다.
그것이 수빈이와의 마지막 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수빈이는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끝내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같은 학교에 다니는 수빈이 여자친구도 세월호를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한 생존학생은 수빈이 엄마에게
“내가 구명보트를 타고 나오는데 수빈이가 안에서 구해달라며 객실 창문을 두드리고 있는것을 봤다”고 했습니다.

 

“세월호 진상규명 어깨까지 감싸며 약속했었는데….”

 

세월호 참사후 대통령은 청와대에서 유가족을 만났습니다.
만남이 끝나고 청와대를 나오는 순간 기자들이 모여있는 앞에서 수빈이 어머니에게 다가와 어머니의 어깨를 감싸며
진상규명을 약속하는 연기를 펼쳤습니다. 가족이 원하면 언제든 만나겠다고 약속도 하였습니다.
모두가 알다시피
대통령의 약속은 진도실내 체육관의 TV모니터 두 대 외에는 그어떤 약속도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수빈이 어머니는 단식투쟁부터 삼보일배, 특별법 서명운동등 수빈이와 친구들을 위해 투쟁하셨습니다.

 

수빈이는 5월 1일에 엄마의 품에 돌아와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고등학생이 돼서 같이 밖에 나가서 팔짱끼고 다니면 애인 같고 정말 좋았는데….

 

철없는 엄마를 만나서 고생만 했는데…이제는 정말 잘해주고 싶었는데…”

이정인 – 단원고 2학년 7반

정인이는
어렸을적부터 아빠와 연년생 여동생과 함께 살았습니다.
아빠와는 스킨쉽을 하며 지낼정도로 친하게 지냈고 컴퓨터게임도 좋아해 대회에 나가서 상을 받을 정도로 게임 마니아였습니다.
특히 서든어택이라는 게임의 고수 였습니다.
정인이는 학교에서 점심시간의 영웅으로도 불리웠습니다.

 

축구를 좋아하고 별명인 날쌘돌이처럼 빠르게 드리볼로 상대진영을 헤집고 들어가 골을넣은 모습에
친구들은 환호성을 지르고 정인이를 빗대어 점심시간의 영웅으로 불렀다고 합니다.

 

정인이의 꿈은
페션모델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키178cm에 늘씬한 몸매, 영화배우 이종석과 너무 닮아서 학교에서도 인기가 많았답니다.
중학교 1학년때부터 5년간 모델의 꿈을 키워왔으나 세월호침몰과 함께 모든 꿈이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4월 16일
오전 9시17분에 정인이는 아빠와 마지막 통화를 하였습니다.
” 아빠. 배가 40도에서 60도로 기울고 있어,119에 전화해줘”
아빠는 119에 전화후 학교에 전화하였고, 30여분후에 재차 확인전화을 하여 구조와 생존여부를 확인하였으나
학교측에서는 이정인이라는 학생이 학교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어처구니 없는 답변을 들어야 했습니다.
정부나 학교나 엉망진창.우왕좌왕 행정력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4월 22일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온 정인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인이 여자친구는 여동생이 다니는 고교의 1년선배입니다.
가끔씩 여자친구와 가족들이 만나 정인이의 빈자리를 채우고 있습니다.

 

정인이 아버지는
안산합동분향소 가족대기실을 늘지키고 있습니다.

 

☆제발 간절히 보고싶은 내친구 정인아,
나 너 믿는다. 너 이렇게 떠날애 아니잖아, 지금껏 봐왔던 이정인은 그래,
악착같이 버틸거야,
절대 어디안가.
슬픈일 생기지 않게.
애들 더이상 무너지지 않게 해줘.
기적처럼 살아 나와줘…..
제발, 제발 와주라…
부탁할께~!
너랑 영석이랑 같이 있어야 우리가 웃지…
견뎌줘, 무섭고 춥고 죽고 싶어도 살아서 돌아와줘..
제발….
너네 오기만 하루 하루 기도하고 빌고 또 비는 우리들이 비참하지 않게…..
아무렇지 않게 웃으면서 와줘…
교복 참 멋있었는데 또 보여줘 제발,
정인아 믿을께,
조금만 제발….☆

이준우 – 단원고 2학년 7반

“너는 남자아이라서 사랑한다는 표현도 서툴렀고,감정도 크게 앞세우지 않았지.
오히려 감정표현이 솔직한 엄마(장순복)가 힘들어 하면 살며시 다가와 어깨를 두드리며 위로해줬지,
“괜찮아 질거예요.든든한 엄마의 아들이 있는데 앞으로 힘들어 하지 마세요”
위로해주던 준우,

 

늦은밤 공부하느라 지쳐있어도 불켜진 엄마방을 보면서 “먼저 주무세요.
제가 알아서 공부하고 잘깨요. 직장다니는 엄마가 나보다 힘들잖아요”라며 오히려 엄마를 걱정해주던 모습들…
엄마는 너를 지켜주고 싶었고, 준우는 엄마를 지켜주고 싶었는데….”
현관문을 열고 ‘다녀왔다’ 며 씨익 웃고 들어오던 너의 모습에 하루가 행복했다. 그런 너를 안아주고 ,뽀뽀해주면
“아들 멋져요?
그렇게 좋아요?
그럼 하고 싶은데로 하세요”라며 잠시 움직이지도 않고 서 있었지.
네가 “엄마의 아들이라서 기쁘다”고 했던말이 오늘도 귓가에 멤도는구나.”

 

7반 준우는. 4월이 지나도 물에서 나오지 않았습니다.
진도에서 애타게 아들을 기다리던 엄마는 다른 엄마들로부터 “팽목항 등대에 가서 이름을 부르면 돌아온다”는 이야기를 듣고
5월1일 엄마 아빠는 팽목항 등대에서 준우를 부르며 사랑한다고,돌아와 달라고 외쳤고 준우는 이틀뒤에 엄마에게 돌아왔습니다.

 

엄마가 준우생일날 선물을 주려하자
“나를 낳아줬는데 뭔 선물이냐”며 소리를 내지를 정도로 효자아들 준우,
남의 일도 자신의 일처럼 잘 챙기던 준우,
자신의 시간을 쪼개어서라도 친구에게 도움을 주는 착한 준우,
이처럼 준우는 착하고 어른스러웠습니다.

 

준우의 꿈은
보안전문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누군가 해킹을 하면 그걸 잡아내는 좋은 해커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던 준우는 1학년때에는 과학부장을 맡기도 했습니다.

 

준우는
5반 큰김건우. 이재욱. 김제훈, 최성호등과 함께 일명 5인방중의 한 명입니다.
서로의 단점을 보완해주고 서로를 격려하던 고등학교 친구들입니다.

 

2학년 수학모의고사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할 정도로 수학을 잘했던 준우에게 소꿉친구가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생일선물을 뭘로할까 라는 물음에 준우는 수학문제 풀도록 A4용지 500매를 선물해 달라고 했답니다.
하지만 준우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고 A4용지는 준우가 직접 받지 못했습니다.
효자아들 준우는 현재 모습이 좋다며 학생증 사진을 가장 마음에 들어했고 학생증 사진은 영정사진이 되어
A4용지 500장과 함께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잠이 들어 있습니다.

이진형 – 단원고 2학년 7반

*이제 1년 밖에 안됐는데 많은 사람들이 잊고 있는것 같아서 넘 슬프다.
그날 전원 구조됐다는 얘기듣고 안심하고 학원에 갔는데…아니라는 말듣고 밤에 많이 울었어…
할수 있는게 정말 아무것도 없어서 그냥 다들 무사하게만 해달라고 기도만 했는데 어쩜 그렇게 착한 언니 오빠들을 데려가건지 모르겠어 …
진짜 구조만 제대로 했다면 이런일이 없었을덴데…
그래도 나보다 슬픈 사람들이 많은것 같아서 이젠 힘들어도 힘든티 내지 않고 슬퍼도 슬픈티 내지않고 있어.
벌써 1년이 지났지만 3년,10년이 지나도 평생 잊지 않을거야”

 

진형이는
“뚱이”. “짱구”. “만능스포츠맨”. “성대모사의 달인”등 별명도 많았습니다.

 

또한 진형이는
축구와 야구를 무척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중학교를 거쳐 단원고등학교에 입학해서도 학교축구부에서 활동을 했고 게임도 축구게임을 즐겨했습니다.
야구는 삼성라이온스를 좋아했고 축구는 수원 삼성을 해외는 첼시FC를 응원했습니다.

 

아버지는 진형이와 진형이 형한테 무섭고 엄하게 대하려고 하였지만 진형이는
아버지가 일하는 밤시간에 “어디신가” “비오는데 별일 없으신가”라며 농담도 하고,
아버지가 주무시면 곁으로 가서 “안자고 있는거 안다”며 같이 PC방에 가자고 혹은 찜질방에 가자고 졸랐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일하느라 바빠서 진형이를 데리고 자주 놀러다니지 못했지만 방학이면 야구장,
축구장에 함께 갔고 찜질방에도 가고 PC방에 가서 하룻밤세워 게임을 한 적도 있다고합니다.

 

진형이 아버님은
밤에 일할때 진형이가 전화하던 때가 생각날 때가 가장 그립고 힘들다고 하십니다.

 

진형이에게는 21명의 친구들이 있습니다.
초중고는 각기 다르지만 마음이 통했던 친구들입니다.
이들은 수학여행을 다녀와서 단체기념 사진을 찍자고 하였지만 단원고에 재학중이던 네명중에
박준민. 박현섭. 이진형이 희생되었습니다.
이들의 친구들 18명은 희생된 세명이 모두 돌아온 이후 영정사진을 들고 단체사진을 찍어 약속을 지켰습니다.

 

진형이의 꿈은
단원고에 진학후 남윤철영어 선생님을 만난이후 영어를 잘하는 사회학자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Maroon5의 payphone가 좋아 모닝콜로 지정해두기도 하고 즐겨 들고 게임중에 서든게임의 제왕이였던 진형이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전찬호 – 단원고 2학년 7반

“16년 8개월 21일동안 너무도 행복했단다”. 아들.
엄마는 아직도 찬호가 수학여행가있는 것 같고, 금방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잘 다녀왔습니다” 하고 들어와서
엄마에게 안길 것만 같아서 찬호방을 그대로 두고 있단다. 모든 것이 그자리에 있는데 우리찬호만 그자리에 없구나.”

 

찬호는 6살위에 형이 있는 막내입니다.
애교가 많고 엄마를 좋아해서 집에서는 딸같은 아들이었다고 합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 큰병을 앓아 신장 하나를 때어내야 했는데도 부모님이 걱정하실까봐 아픈 내색도 하지 않는 착하고 순한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찬호는 엄마볼에 뽀뽀를 하고 “걱정하지 말라”며 여행을 떠났습니다만
세월호는 침몰하였고 사고후 5월 14일이 돼서야 찬호는 물 밖으로 나왔습니다.
아버지는 팽목항 신원확인소에서 아들을 끌어안고 그동안 참아왔던 눈물은 쏟아내야 했습니다.

 

“젖막내”
어렸을때부터 지금까지 부모님곁에서 잠을 잔 찬호를 부모님은 이렇게 불렀습니다.
중학교 친구들이 단원고를 지원해 단원고를 지원했지만 찬호 혼자만이 단윈고를 배정받았습니다.

 

가족과 함께 여러번 가 본 제주도 여행이었지만 새로 사귄 친구들과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제주도 여행이라고
설레였던 찬호는 세월호안에서 장기자랑으로 친구들과 유행하는 춤을 추기로 하고 연습도 열심히 했습니다.
지금 찬호아버지 전명선님은 416가족대책위 위원장을 맡아 진실규명을 위해 열심히 뛰어다니고 계십니다.
찬호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동수 – 단원고 2학년 7반

☆동수야, 엄마야
항상 엄마를 먼저 생각해주고
챙겨주던 듬직한 내아들.
너무도 그립구나.
이 현실을 받아드려지지는 않지만
너무도 너무도 울 동수 사랑하는거 동수도 알지. 아들 너무 보고 싶다.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

 

오늘는
단원고 명예 3학년 7반 정동수학생의 생일입니다.

 

간지남, 완벽 그지체 정동수
꽃미남,재간둥이 전찬호,
이 둘은,
희생학생이 가장 많은 7반 1분단 맨뒷자리 햇살ㅈ들어오는 창가에 나란히 앉은 짝꿍지기입니다.
키 185 센티미터, 몸무개 95키로그렘 ,
듬직한 덩치에 순한 표정의 동수,
동수는 여동생이 한명있는 남매중에 맏이입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의 품에
1997년 7월 19일 아주 작은 아이로 엄마 아빠의 품에 왔습니다.

 

여동생이 태어나고 성장하며 방이 둘인
동수는 늘 거실에서 지냈습니다.
그러면서도 동수는 늘 불평한마디 없었고 동생을 엄마처럼 돌보고 아끼고 배려하는 착한 오빠였습니다.
2013년 8월 동수네 가족은 경기도 시흥으로 이사를 갔고 도디어 동수에게도 방이 생겼습니다.
시흥에서 안산 단윈고까지 버스를 타고 40여분이나 걸리는 먼곳으로 이사를 갔지만 동수는 자기 방이 생겼다고 좋아핬습니다.
동수는 자기방을 고작 8개월 밖에 쓰지 못했습니다.

 

“엄마, 배가 45도나 기울었대요.괜찮겠죠?”

 

동수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문자입니다.
세월호가 가라앉던 4월16일 오전 9시 6분.
동수는 엄마에게 휴대전화로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직장에서 일을하다 10시가 넘어서 뒤늦게 문지메시지를 확인한 엄마는 부랴부랴 동수에게 전화를 했지만 연락이 되지 않았습니다.

 

“왜 덩치도 큰게 맞고 다니느냐”

 

덩치도 큰 동수가 중학교때 친구로부터 맞고 오자 엄마가 이렇게 묻자 동수는 이렇게 대답했다고합니다.
“친구를 어떻게 때려요.”
이렇게 착하고 순진했던 동수….

 

겨울바람 맞아 통통부은 입술이며 힘들게 학교통학을 하면서도 엄마에게 불평없이 항상 엄마를 먼저 생각해주던 동수는 가끔 엄마의 꿈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하루는 교복을 하복으로 갈아 입고가고, 명절에는 찾아와서 혼자 밥 챙겨먹고,
또 한번은 통닭을 먹겠다고 찿아왔다고 합니다.

 

동수의 꿈은
공과대학에 진학하여 로봇을 만드는 공학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도 동수는 로봇제작 동아리 다이나믹스에서 활동했습니다.

 

5월 6일 학생증이 든 지갑과 휴대전화를 주머니에 넣은 채로 돌아온 동수는 지금은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있습니다.

 

세월호 2차청문회.
동수아빠 정성욱님은 동수의 마지막사진을 공개했습니다. 2년이 흐르도록 아무런 진전없는 세월호참사의 진실을 꼭 밝혀달라는 절규였습니다.

최현주 – 단원고 2학년 7반

5월의 마지막날 입니다.
악몽같던 정권을 바꿔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세월호에서는 미수습자들이 돌아오고 있습니다.

 

오늘은
단원고 명예 3학년 7반 최현주학생의 생일입니다.
현주는 네살터울 여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맏이입니다.
햇볕에 그을린 피부, 곱슬기 없는 결 좋은 머리카락, 조그맣고 균형잡힌 코와 입술, 쌍커풀진 눈커풀과 큰눈은 새까맣게 빛납니다.

 

현주는
숫기 없고 수줍음이 많으면서도 명량하고 말이 많지 않지만 무뚝뚝한게 아니라 얌전하고, 온순하고, 나서지 않되 속 깊고,
허술한 빈틈을 보이면서도 정리 정돈을 잘하고 청결에도 신경을 많이 쓰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오죽 깔끔했으면 엄마가 설거지를 몇번 부탁했다가 더 이상은 안 시킬 정도였다고합니다.
한번 설거지를 시작하면 그릇 하나하나를 어찌나
꼼꼼하게 닦는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였습니다.

 

현주는 어려서부터 네살 어린 동생을 살뜰하게 챙겼습니다.
어릴때부터 어딜가든 꼬옥 두손을 잡고 다닐 정도로 남매간 우애가 깊었고 사춘기가 지나면서도 동생과 같은 취미를 공유하며
의젓하게 동생을 지키고 돌보며 두 남매간의 우애는 변함이 없었습니다.
영화와 애니메이션을 감상하고 (인셉션)이나 (겨울왕국)등 처럼 완결된 영상물을 함께 보기도 했지만
주로 일본 애니메이션시리즈를 즐겨보았다고 합니다.
이처럼 현주는 동생에게 아빠처럼 듬직하고 의젖한 오빠였습니다.

 

동생과 애니메이션을 보다 엄마의 퇴근시간에 맞춰 현관앞에 기다리고 있다가 엄마가 문을 열면 넙죽 큰절을 올리며
“어마마마~”하고 애교있는 인사를 하곤 했으며 치킨을 좋아했는데 먹고 싶어지면 엄마의 꽁무니를 쫒아 다니면서
콧소리로 “누나~ 누니임”이라 부르며 아양을 떨던 귀여운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소화력이 왕성한 시기답게 햄버거는 최소 세개를 먹어야 기분이 좋아졌다고 합니다.

 

현주의 꿈은
순하고 여리고 작은 동물을 돌보는데 소질이 있어서 동물관련 일을 하고 싶다고 했습니다.
집에서도 “몽순”이라는 갈색 푸들을 키웠습니다.

 

학교에서는
고우재, 박시찬, 박선균, 정동수, 조찬민등과 함께 로봇동아리 다이나믹스에서 동아리 활동을 했습니다.

 

가족과 함께 노래방에 가면 리쌍과 거북이의 노래를 즐겨 부르고 엄마와 동생앞에서 랩을 따라부르며 웃음을 선사하던 현주.
현주는
이처럼 따뜻한 사랑을 따뜻하게 사랑할 줄 아는 아이였습니다.
믿음을 받고 자라 믿음을 주는 아이였습니다.

 

가장 많은 희생자가 발생한 7반.
이지혜 담임선생님과 짝꿍은 김기수입니다.
어른이 되고 싶었지만 별이되어 버린 현주는 지금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허재강 – 단원고 2학년 7반

♡넌 엄마의 보물이야.나의 멋진 아들 재강아 엄마가 다음에 너 있는 곳에 가서 꼭 아들을 찾을거야. 그때까지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

 

7반 허재강의 꿈은 동물 학자였습니다.
어렸을 적부터 집에서 곤충을 키웠으며 크면 오지로 가서 동물을 연구하는 일을 하겠다고 엄마에게 입버릇처럼 말했다고 합니다.
중3 여동생과도 한번도 신경질을 부리거나 싸운적이 없는 착하고 순진한 성격의 소유자였다고 합니다.
지난 겨울 가족들과 산천어 낚시를 갔을때가 마지막 가족여행이 되어 버렸으며 4월16일 오전 8시46분과 9시44분에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배가 기울어졌고 물이 들어온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너무나도 침착한 목소리여서 별일 아니겠지 라고 생각했던 어머니는 아직도 자신을 탓하시고 계십니다.
다음은 재강이의 생일을 꼭 챙기고 싶다는 친구의 전언입니다.

 

☆재강이는 중학교때부터 선생님들께 칭찬도 많이받고 공부도 열심히 했구요 모든 친구들과 두루두루 친해서
인기도 많았어요 제가 고민이 있을때 잘 들어주고 학교가 달라서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어도 전혀 어색함이 없을 정도로 좋은 친구였어요
중3때 부모님과 말다툼을 했다고 저에게 말해주었는데 집에서 화를 내고 나왔어도 죄송한 마음이 든다고 얘기를 했고
항상 부모님을 생각하는 마음도 가지고 있었어요 키우던 도마뱀을 보여주겟다며 신나서 전화통화를 햇던 것도 기억나네요..☆

 

세월호사고는 가족뿐 만이 아니라 주변 친구들, 또래친구들 또래자녀를 키우는 대한민국전체의 아픔이자 아직 끝나지 않는 고통인 것입니다.
재강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 많이 그립다 녀석아. 넌 누나 보고 있지? 못난 누나지만 앞으로도 지켜봐주라. 다음주면 1주기야. 어이없지 널 잃은 후 시간은 멈춰버리길 바랬어. 야속하리 만큼 시간은 빨리간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