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구태민 – 단원고 2학년 6반

태민이는 활달하고 명랑한 성격이었습니다.

 

태민이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축구나와 달리기를 즐겼습니다.
축구할 때 태민이 포지션은 수비수였습니다.

달리기를 잘 해 학교에서 운동회가 있을 때는 언제나 계주 선수로 나갔습니다.

 

태민이는 동생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둘은 자주 같이  어울리곤 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 태민이는 고민을 들어주는 상담사였습니다.
함께 고민하고, 용기를 주는 친구였습니다.

 

태민이는 한양대학교 입학후 ROTC나 카투사가 되겠다고 걔획했습니다.

하지만 태민이는 지금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권순범 – 단원고 2학년 6반

순범이는 막내 아들로, 엄마의 생일날에  태어났습니다.

매년 순범이는 엄마와 함께 생일 파티를 했습니다. 케이크에 불을 붙이고 서로의 축하했습니다.엄마는 순범이에게 용돈을, 순범이는 엄마에게 양말을 선물해 주곤 했답니다.

 

순범이는 여리고 섬세한 성격으로,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일을 마치고 늦게 집에 들어 오는 엄마를 위해 집안일을 하곤 했습니다.

 

순범이는 밝은 성격으로, 운동도 잘했습니다.

 

순범이는 모델을 꿈꿨습니다.어린 시절 누군가로부터 “순범이는 모델 하면 좋겠네” 라는 말을 듣고 모델의 꿈을 키웠습니다.

 

순범이가 떠난 후, 순범이 어머니는 일을 그만두고 순범이와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진도에서, 국회에서, 청운동에서, 광화문에서,  투쟁의 장소에는 어김없이 순범이 엄마를 볼 수 있습니다.

 

-순범이 어머니의 편지

“오늘 밤은 가슴이 답답해.
오늘 하루 참 힘들었는데 잠은 오지 않네. 국회 앞에서 하늘을 쳐다보니 별이 반짝인다.
마치 우리 아이들 같아.
아들아, 넌 나를 보고 있겠지 ? 나는 순범이 보고 싶어 미칠 것 같아.
세상 어떤 것보다 소중한 아들, 항상 옆에 있어줄 거지 ?
아들아, 사랑한다. 하늘땅만큼.”

 

윗글은 2014년 7월 국회앞에서 특별법제정을 위해 농성한던 때에 순범이 엄마가 쓰신 글입니다.
국민을 위한다는 국회는 이후 철저히 유가족과 국민을 특별법과 시행령으로 우롱했습니다.

 

모델의 꿈, 막내아들 순범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엄마, 아빠들의 힘이 부족하네, 세상이 야속하다. 이러다가 진상규명을 제대로 못 하는 게 아닐까 싶어.
나중에 아들을 만나면 뭐라고 말해야 할지 모르겠다. 아들이 친구, 선생님들과 함께 힘을 합쳐서 도와주면 안될까? 너희는 천사잖아.”

김동영 – 단원고 2학년 6반

동영이는 착실하고 책임감 강한 아이였습니다.성실하게 공부해 성적이 좋았습니다.

 

동영이는 부모님을 위하는 아들이었습니다. 바쁜 엄마 대신 설거지를 했고,김밥 집 하시는 부모님을 생각해, 돈을 절약하려고 걸어서 학교에 다녔습니다.부모님의 결혼 기념일마다 꽃을 선물했습니다.

 

하지만 동영이는 일찍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엄마는 동영이가 하늘에서는 부디 행복하기만 바라시며 머리 맡에 동영이 사진을 두신 채, 잠을 청하신답니다. 차마 아들의 사망 신고도 하지 못하셨습니다.

 

-편지

“사랑하는 동영아”
생일 축하해. 2월에 동영이 말고 다른 친구들도 생일 맞았는데 동영이가 2월의 마지막 생일 주인공이야.
또 지숙이랑 제훈이 생일 지나고 며칠 만에 맞는 생일이고~~그러고보니 오늘은 동영이 혼자만 생일이니까 많은 축하 다 받고 있겠네^^
6반 친구들과 함께 즐거운 생일 파티도 열고~~지난 번 꿈에서는 장가 보내달라는 말로 엄마 슬프게 했으니까
오늘밤 꿈에서는 사랑한다 말하고 꼬옥 안아드리렴.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하고 사랑한다 동영아 잊지 않을게. 너와 친구들의 억울함, 꼭 밝혀줄게.

김동협 – 단원고 2학년 6반

동협이는 학교 연극부에서 활동을 했습니다. 연기에 재능이 있었던, 배우가 꿈인 아이였습니다.

 

“나 울거 같은데…살고 싶은데…나 하고 싶은거 많은데….지금 전기가 끊겼고요. 아, 진짜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해경이 거의 다 왔다고 하는데….저 살고 싶어요. 진짜…”

세월호가 기울던 4월 16일 오전 9시 22분 동협이는 급박한 배안의 상황을 휴대전화 동영상에 이렇게 남겼습니다.

그리고 누나에게 전화를 해 “지금 배가 기울고 있는데 다른 가족은 걱정하니까 말하지 말라”고 부탁했습니다.

동협이는지금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동협이 부모님의 편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
널 지켜주지 못한 못난 부모가
이리 애닳게 너를 부른다.
지금쯤 좋은 곳에서 행복하게 있을 나의 분신…..
그곳에서는 나처럼 못난 애비 마나지 말고
좋은 부모 밑에서 너의 꿈 이루며 행복하게 지내렴.
– 못난 애비가

김민규 – 단원고 2학년 6반

“엄마, 난 사는 게 너무 행복해”

민규가 엄마에게 자주 하던 말입니다.
학교 생활도 재미있게 하고 주말이면 친구들과  놀러다니며
행복해했습니다.

민규는 다정다감한 아들이었습니다.
엄마가 우울해 보이면 기분 풀어주려고 개그를 보여주었습니다. 엄마가 아프면 뛰어가 약을 사오곤 했습니다.

 

민규의 꿈은 엄마에게 펜션을 사 줄 정도로 성공한 사업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대학에서 경영학을 전공하고 회사에 다니며 돈을 모아 40대중반이 되면 사업을 시작하겠다고 구체적인 미래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러나 민규는 지금 하늘나라에 있습니다.

 

-민규 어머니의 편지

“사랑한다, 아들아,
짧은 생이었지만 엄마 아들로 와줘서 정말 고마웠어. 사랑하고 보고 싶고 만지고 싶다.
내 아들 민규.”

김승태 – 단원고 2학년 6반

승태는 맏아들입니다.축구를 좋아했고 가수 엠씨더맥스의 팬 이었습니다.

승태는 가족과 편안하고 단란하게 지냈습니다.

 

그러나 승태는 세월호 참사로 세상을 떠나, 안산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승태 부모님은 승태가 떠난 걸 믿을 수가 없어서 밤에 잘 때도 현관문을 잠그지 않고 불도 끄지 않습니다.승태가 당장이라도 “엄마, 아빠 다녀왔습니다” 하고 들어 올 것 같기 때문입니다.
승태가 그리워서 승태가 입던 겨울 점퍼를 입고 도보순례를 하셨습니다.

 

-승태 어머니의 편지

“소중한 내 아들 김승태.
오랜만에 와보는 교실이 왜 이리 낯설은지.
우리 승태가 있어야 할 곳에 엄마가 와있네.
그곳에서 잘 지내고 있는 거지?
너무 보고 싶어.
어디선가 승태가 엄마하고 부르며 아무일 없는 것처럼 나타나 엄마 품에 꼭 안길 것 같구나.
그곳에 서 많은 사랑 받으며 늘 행복했으면 좋겠다.
사랑한다 아들.”

 

-승태 동생의 편지

“오빠 난 오빠가 살아 올 거라고 믿어
오빠 강하잖아
그리구 나랑 내 친구들다 기도 많이 했어.
다처서라도 돌아와 줘 제발!!!
지금 눈물 참고 있다.
금방이라도 울 것 같다 나…
제발 오빠 돌아와줘…
사랑해♡
오빠만 믿을게.”

김승혁 – 단원고 2학년 6반

승혁이는 삼 형제 중 막내였습니다. 큰 형은 세 살 많았고, 둘째 형은 승혁이와 일란성 쌍둥이였습니다. 둘은 표정, 머리, 얼굴, 입는 옷까지 거울로 반사되는 모습같이 꼭 같았습니다. 둘은 늘  친구처럼 붙어 지냈습니다.

 

승혁이는 다정다감한 성격이었습니다.  엄마를 위해 커피를 타 주곤 했습니다. 직장에서 돌아온 아버지께 발 마사지를 해드리곤 했습니다.

 

엄마와 아빠는 그런 승혁이에게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엄마와 아빠 사이에 기어 들어오는 승혁이에게  ‘엄마 아빠는 빵이고, 승혁이 너는 잼이야.’ 라고 하며 누르는 식이었지요. 그 때마다 승혁이는 비명을 지르는 시늉을 하며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승혁이는 안산 하늘 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승혁이가 세상을 떠난 이후, 승혁이의 큰 형은 둘째 동생과 집안이 걱정됩니다.

작은 형은 세상을 떠난 쌍둥이 형제에게 미안합니다.

승혁이의 어머니는 남은 두 형제를 위해서도 꿋꿋이 이겨 내려고 노력하십니다.

이태민 – 단원고 2학년 6반

태민이는 바쁜 부모님을 대신해 어릴 적부터 어린 동생들을 돌봤습니다.동생들을 위해 요리를 했고, 청소와 빨래를 했습니다.

 

태민이는 요리를 잘 했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요리 학원을 다녔지요.

태민이의 꿈은 호텔 요리사였습니다.

 

2013년 엄마의 생일날, 태민이는 엄마에게  함박 스테이크를 요리해 주며, 다음번에는 더 근사하게 만들어 주겠다고 웃으며 약속했습니다.

그러나  태민이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4월15일 아침, 태민이는 엄마에게 “잘 다녀올께”라는 말을 남기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태민이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태민이 어머니께서 태민이의 장례를 치른 후, 태민이의 꿈을 꾸었습니다.
꿈에서 태민이는 ” 나 때문에 울지 말라”며 엄마를 위로하고 작별 인사를 했습니다.

-태민이 어머니의 편지

“엄마 왔어. 우리 아들 엄마 보고 있니?
너무 마음이 아프네.오랜만에 학교 너의 책상을 보니 열심히 너의 꿈을 펼치고 있어야 할 우리 아들의 빈자리가 너무 아프다.
사랑해, 우리 아기 엄마 맘 잘 알지?
너를 너무 사랑해. 엄마가 널 볼 수 있는 그날까지 잘 지내고 있어. 알았지.”

전현탁 – 단원고 2학년 6반

현탁이는
누나가 있는 남매중에 막내입니다.
인터넷커뮤니티 뿜뿌에서 건9왕이라는 아이디로 활동했으며
2014년 4월15일 자신의 생일날에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수학여행을 가는 15일이 내 생일이다. 곧 주민등록증이 나온다” 라며 기대감을 나타냈던 현탁이였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몇일전부터
현관에 여행가방을 놓고 갖고 갈 물건들을 하나씩 정리하곤 웃으며 떠나던 모습이 현탁이의 마지막 모습이 되어 버렸습니다.
넉넉하지 못한 살림에 용돈으로 2만원을 쥐어주며 “제주도는 물도 맛있으니까 많이 사먹어” 라고 보냈지만 그대로 간직한채 돌아온 현탁이입니다.
300mm 신발을 신을 정도로 덩치가 컷던 믿음직했으며,
유명메이커 옷을 못 사줘도 떼 한번 안쓰던 아이였습니다.

 

학교 주변에서 부모님이 세탁소를 하여도 부끄러워 하지 않고 “엄마 난 괜찮아”라며 되려 엄마를 위로하던 효자 아들이었습니다.
이런 현탁이를 엄마는 밥만 먹고도 감기한번 안걸리고 건강하게 잘 자라주어 편하게 해준 아이였다고합니다.

 

엄마는,
수학여행 전날 생전 처음으로
편지를 쓰고 싶어
“듬직하게 잘 커줘서 고맙고 엄마는 네가 있어 정말 행복하다”라고 썼답니다.

 

엄마는 현탁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팽목항에 내려갔을때 캄캄한 바다를 향해

 

“행복은 이걸로 끝이다, 이놈아~!”
라며 외쳤습니다.

 

2015년 안산에서 광화문까지 도보행진 이틀째 날,
여의도에서 현탁이를 가슴에 품은 채로 하늘만 바라보시던 어머니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어머니가 들려주신
현탁이의 꿈은
“아나운서 손병수씨를 좋아해 아나운서가 꿈이였어요….”입니다.

 

꿈을 향해 전진하던 현탁이의 꿈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사라져 버렸고 보름후에야 엄마품에 돌아온 현탁이는
친구들과 함께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박새도 – 단원고 2학년 6반

새도는  삼남매의 막내입니다.

새도는 어머니가 집에 오시면 “다녀오셨어요” 하며 가방과 손에 든 짐을 받아드리는 다정한 아들이었습니다.
책을 쌓아 놓고 엄마와 함께 진로를 고민하기도 하는 평범한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새도의 방에 남은 많은 책들이 새도를 기다리는 것만 같고,
이 모든 일이 그냥 꿈이라서 깨어나 집에 오면 새도가 언제나 그렇듯이 “다녀오셨어요” 하고 맞이해 주기를 바라십니다.

새도 어머님께는 새도에게  해 주지 못한 것이 너무 많아 아쉽고, 이제 새도를 볼 수 없어 슬프고, 이렇게 새도를 빼앗겨버린 현실이 너무나 분하고 억울합니다.

이세현 – 단원고 2학년 6반

“사랑하는 우리 세현이
눈도 예쁘고 코도 예쁘고 안예쁜곳이 없던 너. 우진이랑 잘 지내고 있어?
너의 그 보석같은 파란눈이 너무 보고 싶다.
우리 야자도 같이 했었는데, 은근 뺀질이~
꿈에서 또 야자하자. 물론 공부하면서 열심히 노는걸로!!
보고싶다.이세현”

 

지난 8월 교실이전을 하던 날 세현이 할머니의 절규가 생각납니다.

 

세현이의 어머니는 러시아분 이셨습니다.
하지만 세현이가 돌 무렵 러시아로 돌아가셨고 이후 세현이는 할머니와 아빠와 함께 자랐습니다.

 

치킨. 비타민 워터. 얼음 아이스크림과 초콜릿을 좋아했던 세현이는 겁이 좀 많았다합니다.
고양이를 보고도 겁을 먹었고 아버지가 운전을 할때에도 꼭 안전벨트를 메고 가족의 안전벨트를 챙기던 아이였다합니다.

 

세현이의 꿈은 회계사가 되는것이였습니다.
세현이에게는 초등학교 5학년에 다니는 여동생이 있는데 세현이는 어린 여동생을 살뜰하게 챙겨주고 아주 많이 배려하는 착한 오빠였습니다.

 

세현이는 친구들과 노는 것을 정말정말 좋아했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해서는
본인이 스스로 관리를 해서 공부시간과 노는 시간을 나눠서 관리할 정도로 영특했다합니다.
세현이는 진혁, 성빈이와 함께 동네에서 초등학교에서 부터 친하게 지냈지만 세월호 사고로 세친구 모두 희생되었습니다.
회계사가 꿈이였던 세현이는 아버지께 회계사가 어떤일은 하는지 어떻게 하면 회계사가 될 수 있는지등을 물어 보았다고 합니다.

 

세현이 아버지는 일을 하시다가 오후가 되면 세헌이를 보러 분향소에 한두시간정도 있다가 들어오십니다.
세현이 없이 눈뜨는 아침이 가장 괴로운데 아직도 인양도 안되고 세현이에게 해 줄 말이 없어져서 더욱 많이 힘들다고 하십니다.
5월 1일 가족의 품에 돌아온 세현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원석 – 단원고 2학년 6반

고작 열 일곱, 여덟해를 사랑하는 엄마,아빠곁을 다녀간 아이들…

 

이 아이들이 생일이면 더욱 사무치게 보고픈 오늘을 맞이한 가족들…

 

시 : 신호현

 

국군장교의 꿈

 

국군 장교가 되어
엄마와 누나를 지켜주고
나라를 지키겠다는 아이야

 

엄마의 퇴근길
찻길에서 팔짱 끼어주고
누나 마중을 다녔던 아이야

 

비오는 날에
파지 줍는 할머니
파지 줍고 모셔드린 아이야

 

친구 차비 없다고
자신의 차비를 내어주고
집까지 터벅터벅 걸어온 아이야

 

16일에 친구들과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른 친구 구하러 간 아이야

 

늦둥이로 태어나
남을 위해 대견히 살다가
하늘로 떠난 장한 나의 아들아

 

하늘 나라 장교가 되어
어두운 이 나라 지키고
통일 조국앞에 우뚝 서거라

 

6반 정원석을 소개한 시입니다.

 

얼마나 개탄스러운 나라인지..위기대응책도 없는 썩은 나라인지…
원석이를 DNA가 세번이나 맞지않는데도 다른사람이 원석이를 데려가 이틀을 장례치르고 서야 원석이는 비로소 엄마, 아빠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5남매의 막내아들 원석이를 부모님은 이렇게 떠나보낼 수 있었습니다.

 

원석이는 누나가 넷이나 있는 5남매의 막내입니다. 여자들 많은 집에서 혼자 남자라서 원석이는 엄마랑 누나들 안전을 항상 걱정했습니다.
중학교 때는 엄마와 누나들에게 세상이 험하니 호신술을 배워야 한다며 가르쳐드렸습니다.
주짓수를 배워서 엄마와 누나를 지켜주겠다고 큰소리를 치기도 했습니다.

 

원석이는 엄마가 퇴근하는 시간에 마중 나와서 같이 걸었고, 찻길은 위험하다며 엄마를 길 안쪽으로 걸으시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원석이는 그렇게 엄마랑 같이 팔짱도 끼고 손을 꼭 잡고 걸어서 집에 돌아오는 다정한 막내였습니다.

 

원석이는 가족들뿐 아니라 누구에게나 예의바르고 배려가 깊은 아이였습니다.
비 오는 날 길에서 비를 맞으며 파지 주우시는 할머니를 보고, 원석이는 함께 파지를 주워드리고 할머니를 부축해서 댁까지 모셔다 드렸다고 합니다.
친구가 차비가 없다고 해서 자기 차비를 주고 학교에서 집까지 걸어온 적도 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기 시작했을 때도 원석이는 다른 친구들과 함께 갑판까지 나왔습니다.
그러나 원석이는 선실 안에서 잠자고 있던 친구를 데리고 나오려고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원석이는 그렇게 마지막 순간까지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다음은 38세에 늦둥이 원석이를 얻었던 어머니 박지민님의 글중에 한부분입니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고 살았습니다.

 

정치라는 건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내가 왜 그렇게 살았는지 후회만 할 뿐입니다.
내가 너무 무식하게 살아서 내 아들을 잃은거 같아 엄마는 가슴을 치고 또 칩니다.”

박영인 – 단원고 2학년 6반

영인이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볼링부에서 활동하였으며 밝고 쾌활한 성격이었습니다.

영인이는 가족들과 사이가 가까웠습니다. 영인이와 부모님은 여행도 많이 다녔습니다.

 

영인이는 축구를 좋아했습니다.
어머니도 영인이가 원하는 건 뭐든지 해주셨지만 축구화를 사 달라고 했는데 사주지 못했습니다.
어머니는 못 사주셨던 축구화를 사서 팽목항에 두고 영인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러나 영인이는 아직까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그리고 영인이가 수하여행을 떠날때 가져갔던 가방만 먼저 돌아왔습니다.
어머니는 그 가방 안에서 나온 영인이의 교복과 운동복을 깨끗하게 빨아 두었습니다.

그러나 영인이는 아직 돌아오지 못하고 부모님은 2017년 11월 20일,1314일만에 영인이 없는 장례식을 치러야 했습니다.

 

“영인아
늘 제일 먼저 와서 우리 반 문지기를 담당했는데.
왜 아직 안 오니?
너 아침에만 문열 고 집에 갈 땐 단속 안 했잖아.
그러니까 얼른 와.”

황민우 – 단원고 2학년 6반

민우는 삼남매 중 막내입니다.

어렸을 병을 앓았지만 커서는 튼튼해져 축구부에서 활동할 정도로 건강해졌습니다.

민우는 장난스러운 성격이었습니다. 가끔 아빠의 사무실에 와서 대표 의자에 앉아 “아빠, 여기가 내 자리야.” 하며 장난을 치곤 했지요.

 

민우는 체육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민우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경기도 평택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민우의 가족들은 민우가 그립습니다. 민우 아버님께서는 나라에 화가 납니다. 때로는 모든 것을 다 접고 산에 들어가고 싶다는 생각도 하십니다. 민우 할머니께서는 지금도 민우의 아침밥을 지으시며 우십니다.

서재능 – 단원고 2학년 6반

재능이는 유쾌한 성격이었습니다. 친구들을 웃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부모님에게는 뭐든 스스로 잘 하는,  대견한 아들이었습니다.

 

재능이의 꿈은 한국외대에 진학하여 스페인어, 영어, 체코어를 공부하여 최고의 외교관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재능이는 여름방학에는 유럽여행을 가족과 함께 갈 예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재능이는 그러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재능이 어머니의 편지

☆재능아 오늘 너 생일이라 너무 미안하다 너와 할 일이 많아,
추억 만들 일도 많고 갈 곳도 많고 해주고 싶은 것도 많은데
네가 너무 일찍 아주 멀리 가버렸어.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우리 아들 하늘 나라에서 친구들과
멋진 생일 파티 하길 바래.
사랑해
우리 멋진아들.착한아들, 예쁜 아들…
ㅡ엄마가ㅡ ☆

선우진 – 단원고 2학년 6반

우진이는 남매 중에 맏이였습니다.우진이는 엄마에게는 믿음직한 아들, 동생에게는 듬직한 오빠였습니다.다정한 성격으로 엄마에게 손편지로 자주  마음을 전했습니다.

 

우진이의 꿈은 축구해설가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새벽에 유럽축구를 보면서 해드폰을 끼고 모니터 앞에 앉아 해설을 하곤 했습니다.

 

우진이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동생에게  “엄마 말 잘 듣고, 금요일까지만 기다리면 돼”라고 말했고 “우진아, 안 가면 안 돼?”하며 붙잡는 엄마에게는
“괜찮아. 갖다올게”라며 고개를 숙이며 인사를 하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우진이가 떠난 후, 우진이 어머님은 우진이가 한 소절 부르고 엄마가 또 따라 불렀던 노래, <10월의 어느 멋진 날에>를 듣곤 합니다.

이다운 – 단원고 2학년 6반

다운이는 밝고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었습니다. 가족들을 위하고 친구들을 배려했습니다.

 

다운이는  남매 중 맏이였습니다. 여동생과 사이가 좋아 늘 같이 다니곤 했습니다.

 

다운이의 꿈은 대중의 사랑을 받는 뮤지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다운이는 노래도, 기타 연주 실력도 뛰어났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때에는 “슈퍼스타K”오디션 무대에 서기도 하였습니다.

다운이는 리더십이 있었습니다. 보컬부, 볼링부에서 다운이는 친구들을 이끌곤 했습니다.

 

다운이는 자립심과 독립심이 강했습니다. 중학교 3학년 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스스로 용돈을 벌었습니다.그 돈으로 가족들과 선생님들의 선물도 샀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다운이는 뇌종양 수술을 받은 같은 반 박진수를 문병갔습니다. 그리고 진수에게 “수학여행 갔다와서 다시 들를게. 기다리고 있어. 노래방에가서 내 노래 들려줄게. 너 완전히 뿅 갈거다” 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다운이와 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친구들이 보고 싶다”던 진수는 2015년 6월 16일 다운이와 친구들 그리고 선생님 곁으로 떠났습니다.

 

지금 다운이는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신호성 – 단원고 2학년 6반

호성이는 형제 중 막내입니다.

호성이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는 것을 좋아하였고 배려심이 있으며 생각이 깊은 성격이었습니다.

 

호성이는 독서를 즐겼고, 글짓기를 좋아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담임이셨던 국어선생님을 존경해, 국어 선생님을 꿈꿨습니다.

 

호성이는 엄마에게 살갑고 다정한 아들이었습니다,

빌라의 반장인 엄마가 저녁에 관리비를 받으러 다니면 손전등을 들고 엄마를 졸졸 쫒아다니며 ” 엄마 조심 조심” 이라고 했습니다.

엄마가 아프면 자신도 아프다며,  “엄마하고 나하고는 연결되어 있잖아.
그래서 그래” 라고 했습니다.

엄마는 호성이에게 ” 우리 아들은 공기야, 엄마가 숨쉴수 있는 공기! 아들 없으면 엄마는 못 살 거 같아” 라고 자주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호성이는 일찍 세상을 떠나,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건계 – 단원고 2학년 6반

건계는 두 남매 중  막내입니다.
건계는 태어났을 때 심장이 좋지 않았습니다. 생후 보름에 병원 수술대에 올라 백일 때까지 중환자실에 누워있었습니다. 그리고 한 차례 시술,에  3차 수술을 받았습니다. 다행히도 건계는 잘 회복하였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건계는 속이 깊고 배려심 있는 성격으로, 부모님을 잘 도와주었습니다.

 

건계의 꿈은 그래픽 디자이너였습니다.  그림을 그리는 것을 좋아했고, 미술 학원도 열심히 다녔습니다.

 

수학여행이 가까워갈 즈음, 건계는 떠나기 이틀 전부터 벌써 짐을 싸기 시작했을 정도로 신이 나서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건계는 돌아오지 못하고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녹색 편지 – 도종환 (건계)

 

봄 4월. 어린잎에 연둣빛이 은은히 감돌면 제가 다녀간 줄 아세요.
느티나무 잎이 붉게 물들어 빛깔 고우면 제가 색칠을 하고 있는 줄 아세요.
까치집 둥지에도 가만히 앉았다 가고, 우듬지 끝을 흔드는 바람에 섞여 다녀가기도 할게요.
누나가 나 대신 엄마에게 얼마나 자주 전화하는지 볼게요.
가만히 있다 눈물을 주르르 흘리곤 하는 아빠를 누나가 얼마나 자주 안아드리는지 볼게요.
엄마와 아빠가 서로를 얼마나 위로하고 사랑하는지 창문으로 들여다보곤 할게요.
내가 좋아하는 녹색 양말을 신고 녹색 모자를 쓰고 가만히 왔다가곤 할게요.
엄마와 아빠와 누나와 친구들이 나를 기억해주는 동안 나는 아직 살아 있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사랑하는 거예요.
기억하는 게 나를 살아 있게 하는 거예요.
그러면 나도 바람으로 다가가고 별빛으로 반짝이며 있을게요.
엄마가 제 가슴에 새겨준 문자처럼 사랑해요 많이많이 사랑해요.
내가 해드릴 수 있는 마지막 말
엄마, 아빠, 누나 사랑해요.

김승환 – 단원고 2학년 6반

승환이는 2남 1녀중 둘째였습니다.

승환이는 순한 성격이었고 부모님의 충고에 귀를 잘 기울였습니다. 성격이 밝았고 사교성이 좋아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습니다.자기 주관이 뚜렷하고 똑 부러지는 면도 있었습니다.

 

승환이는  TOP보컬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이 동아리의 ‪남현철, 김수빈, 이다운, 김민수, 김정현등이‬  세월호참사에서 희생되었습니다.

 

승환이 선배는 승환이를 항상 웃는 얼굴로 먼저 인사해주던 아이로 기억합니다. 여리고 감성적이고 순수한 성격으로, 간식을 건네며 미소를 짓곤 했다고 합니다.

승환이 아버님이 승환이에게 마지막으로 받은 연락은 출발 전에 “이제 수학여행 출발해요.조심히 다녀올께요”라는 문자였습니다.

승환이 아버님께서는 승환이가 성격이 순해서 어른들이 가만히 있으라고 하면 가만히 있었을 거라고 하며, 마음 아파하십니다.

최덕하 – 단원고 2학년 6반

덕하는 평소 온순하고 착했으며 항상 스스로 모든 일을 알아서 처리하는 성격이었다고 합니다.
학생회장을 맡았을 정도로 책임감과 리더쉽도 있었습니다.

덕하는 검도를 잘 했습니다. 검도2단이었지요.

덕하의 꿈은 경호원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8시 52분께 전남 소방본부 119 상황실에 다급한 신고가 들어왔습니다.
신고한 사람은  최덕하였습니다.
덕하는 모두가 우왕좌왕하는 상황에서 담임이신 남윤철선생님의 지시대로 침착하게 말했습니다.

덕하의 신고는 174명이 생존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하지만 정작 덕하는 일주일 뒤인 4월 23일 4층 선미에서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 상태로 발견 되었습니다.

 

덕하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덕하 엄마의 편지

“엄만 우리 덕하가 119에 최초로 신고 했다는 것을 늦게야 알았어. 우리 아들 참 자랑스럽고 믿음직 스럽고 장하다.
그리고 아직 배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너 친구들 모두 구해줘. 이제 여기는 잊고 아직 물속에 있는 네 친구들을 부탁해.
배 안에 남아 있는 사람들 다 구해주시라고, 다 건져주시라고 하느님께 부탁해줘.
영원히 사랑한다 아들아.”

이영만 – 단원고 2학년 6반

영만이는 기도와 식도가 붙어있는 ‘기관지 식도루’라는 병을 안고 태어났어요.
영만이는 기도가 작아서 음식물을 삼키기 힘들어했고
한 번은 사과 조각이 목에 걸려 위험한 순간을 맞기도 했지요.
가까스로 고비를 넘기기도 했고요.

엄마는 그 후 2년여간 섭취한 음식물이 행여나 기도로 넘어갈까 싶어 영만이를 쿠션에 앉혀서 재웠답니다.

 

약하게 태어났지만 자라서는 언제 그랬냐는 듯  5km 마라톤에서는 4등을 할 정도로 튼튼했습니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던,  영만이.
미국 항공 우주국 NASA에서 우주를 연구하는 우주학자를 꿈꾸었던 영만이는,

지금은 평택 서호추모관에 잠들어 있습니다.

홍종영 – 단원고 2학년 6반

종영이는 쌍둥이 형제 중  형입니다.

쌍둥이 동생과는 중학교때까지는 함께 같은 학교에 다녔으나 고등학교는 서로 다른 학교로 배정되었습니다.

 

종영이는 책임감이 강하고 꼼꼼하며 빈틈없는 성격이었습니다.

 

종영이의 꿈은 법조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종영이는 “홍종영의 주거권법”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홍종영의 주거권법
1조 (자유)
1.나와 동생은 같은 이집의 주거자로서 평등한 대우를 받는다.
2.나와 동생의 차이를 인정하면서 서로 도와주고 감싸준다.
부칙: (하지만 자신의 자유를 누리고자 할때 부모님과 동생에게 피해를 주게 된다면 제한될 수 있다)

 

종영이는 기독교로, 신앙심이 깊었습니다. 주일이면 꼭 교회에 갔고, 교회 성가대에서도 활동했지요. 기독교 동아리인 CIC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종영이는 2반 허다윤과 친했습니다. 둘은 성격이 정반대였지만 잘 맞았습니다. 둘은 매일 같이 등하교를 했습니다. 자주 같이 어울렸고 공부도 같이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둘은 함께 학교까지 이동했었습니다.

종영이의 가족들은 종영이의 시신이 안산으로 돌아와 안치 되었을 때, 옆자리에 다윤이가 안치될 수 있도록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다윤이는  지금까지도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남현철 – 단원고 2학년 6반

현철이는 글쓰기와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기타도 잘 쳤습니다.

“사랑하는 그대여” 라는 노래를 작사했을 정도로 음악적 재능 또한 뛰어 났습니다.

현철이는 배려심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가족들과 친구들을 항상 배려했지요.

현철이의 꿈은 영어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아버지의 소망

 

-단원고 남현철 군 아버지-

 

이제사
4대 독자 우리 아이
살려 달라 하지 않아요

 

아이만 찾을 수 있다면
양지 바른 곳에 묻어 주고
평생 봉사하고 살 거예요

 

가난해도
부모 노릇 못해도
불평 없이 살아온 아이

 

배려심 많고
리더십 강한 아이
영어 선생님 꿈꾸던 아이

 

형체 알아볼 수 없어도
꼭 찾아 한 번만이라도
부등켜안아 보고 싶어요

이장환 – 단원고 2학년 6반

장환이는 다정다감한 아이었습니다. 가족들에게 따뜻했고, 가족들에게 웃음을 주었습니다. 때로는 가족들의 목이나 등에 차가운 손을 대며 장난을 치곤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장환이네는 큰 집으로 이사를 했습니다.  장환이는 신이 나서 친구들을 많이 집에 불렀습니다. 친구들도 신이 났습니다.

정환이 엄마는 친구들에게 삼겹살을 구워 주기로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장환이와 친구들은 아무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장환이는 사고 후 4월 20일, 엄마,아빠의 결혼 기념일 날에 돌아와 지금은 하늘 공원에 잠들어있습니다.

-장환이 어머니의 편지

☆요 며칠 잠깐 잠깐 엄마한테 왔다가줘서 고마워.
꿈의 내용은 기억이 안 나지만 너의 얼굴은 또렷이 기억나는구나.
보고 싶다. 아들.그렇게 잠깐씩 이라도 자주 왔다 가줘라.
친구들과도 잘 지내고 있으렴. 엄마 가는 그날까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