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김건우 – 단원고 2학년 5반

건우는 할머니와 고모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건우는 적극적이고 밝은 성격으로 교우 관계도 좋았습니다.

2학년 5반에서는 서기 역활을 맡아 “교과 선생님들께 출결 확인받기와 결석 및 지각생 파악, 학급게시판 관리”를 맡았습니다.

건우는 운동을 잘 했습니다.줄넘기 대회, 자전거 대회에 나가 상을 탔고,  학교 축구부로 활동했습니다.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는 4월18일 금요일에는  축구부 형들과 축구를 할 계획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오전 9시 50분경 건우는 초등학교 6학년때 담임선생님과의 통화에서는 “무섭다”라고 했지만 비슷한 시간 엄마와 통화하면서는
“엄마, 난 안전 하니까  걱정 하지 마. 구조대 다 왔어. 소리도 들려.나가서 전화할게”라며 엄마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건우는  4월 19일에야 세살 많은 형과 부모님곁으로 싸늘한 주검이 되어 돌아왔습니다.

 

건우는 지금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건우 어머니의 편지.

엄마는 아직도 우리 아들이 제주도에 있을 것만 같은데…제주도 가면 만날 수 있는 걸까? 학교 끝날 시간 되면 지금도 엄마는 전화기를 자꾸 쳐다보고 있어 ” 엄마 어디?” 하고 전화 올 것만 같아. “오늘 저녁 반찬은 뭐야? 엄마,”하고.
지금도 자꾸 뒤돌아보게 돼.

김건우 – 단원고 2학년 5반

건우는 형제 중 맏이입니다.

 

건우는  불합리한 것을 싫어하고  비판적인 사고를 할 줄 아는 아이었습니다.

한번 잡은 일에는 끝까지 파고드는 기질도 있었습니다.

친구를 소중히 여겨 친구에게는 마음을 다 내어주었습니다.

 

건우는 드럼연주를 좋아했습니다.

건우는 단원중 시절 8명의 멤버로 결성된 ADHD멤버 드럼연주자였습니다.
이들 멤버들 중 단원고로 5명이 진학하였고 5명 모두 안타깝게도
세월호의 비극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박수현,홍순영,오경미,이재욱,김건우)

 

화성효원추모공원, 건우의 유골함 앞에는 생전 건우가 사용하던 드럼 스틱 두개가 가지런히 놓여있습니다.

김민석 – 단원고 2학년 5반

민석이는 아들 둘 형제중에서 동생입니다.
민석이 아버님은 직장때문에 지방에 내려가 계시는 일이 많아서 아이들을 살뜰하게 챙겨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두아들을 언제나 믿고 든든하게 생각하셨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 났을때 민석이 아버님은 직장에 계셨는데 설마 식당에서 식사하면서
남의 일처럼 텔레비젼을 보았던 그 배가 민석이가 탄 배일줄은 생각도 못 했다고 하셨습니다.
아버님은 황급히 진도로 내려가셨고 지옥같은 기다림끝에 민석이가 마침내 물 밖으로 나왔을 때에는 정신을 잃고 쓰러지셨다고 합니다.
아버님께 사고 소식을 가장 먼저 전한 사람은 민석이 형이였습니다.
참사이후 민석이 형은 동생이 없는 집이 너무 괴로워서 이모님댁에서 지내고 있다고 합니다.
민석이 아버님은 참사후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제정을 위해 민석이와 친구들을 위해 투쟁하셨고 삭발투쟁에도 동참하시었습니다.

김민성 – 단원고 2학년 5반

민성이는 남을 배려하는 온순한 성격이었습니다.

 

민성이는 태권도. 합기도. 킥복싱까지 운동에 열심이었습니다.
수학여행 가면 운동을 며칠 못한다고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늦도록 운동을 했을 정도입니다.

 

민성이의 꿈은 특공 무술을 하는 특수부대의  직업 군인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멋있는 직업군인이나 청와대 경호원이 되어서 엄마 아빠께 꼭 효도 할게요”를 입버릇처럼 말하곤 했답니다.

 

자신의 생일날 친구들이랑 맛있는 것 먹으라고 준 용돈을 모아서 아빠의 생일선물을 사 온 효자아들이었습니다.

민성이는  봉사활동 동아리 TOP에서 활동했습니다.
복지시설에 가서 어린아이 돌보기, 노인 목욕 봉사 등 여러 봉사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수학여행 3일전, 아빠는 무언가 불안감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민성이의 기대어린 표정에 애써 마음을 다잡았습니다.

수학여행 날 아침, 아빠는 민성이에게 물었습니다.

“아들, 용돈 얼마주면 돼?”

민성이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알아서 주세요. 갔다오면 바로 내생일이니까 또 생일상 차려줄 거 잖아요”
그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러나 약속했던 생일날이 되어도 민성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민성이는  지금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성현 – 단원고 2학년 5반

성현이는 내향적인 성격으로, 침착하고 단정한 아이였습니다.

성현이는 베드민턴과 볼링을 좋아했습니다. 성현이는 볼링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성현이는 성실한 성격으로 성적이 우수했고 특히  역사,한국사에 관심이 많았습니다.
어머님은 성현이가 역사를 좋아하니 역사 선생님이나 박물관 직원이 되는 진로가 좋을 것 같다고 조언하였습니다. 어머니의 말씀을 듣고 성현이는 역사 선생님이 되는 길을 긍정적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역사선생님의 꿈을 향해 전진하던 성현이는  사랑하는 동생을 남겨둔 채로 하늘 나라로 떠났습니다.

 

성현이는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완준 – 단원고 2학년 5반

완준이는 내향적이고 조용한 성격으로, 어머니께 사랑한다고 자주 표현하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완준이는 독서를 즐겼습니다. 특히 명탐정 코난과  소년탐정 김전일을 좋아했습니다.

 

완준이는  외동이었습니다. 형제가 있는  친구들을 부러워했습니다.수학여행을 떠나기 한 달 전에 동생이라며 푸들 “아롱이”를 집으로 데려와 길렀습니다.

아빠를 잘 따랐던 완준이는 아빠처럼 좋은 아빠가 되는 것을 꿈꿨습니다.

그러나 완준이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세월호참사에 희생되었습니다.

 

완준이는 세월호가 기울자 자신의 휴대폰으로 사진을 촬영했으며 119와 122에 신고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러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습니다.
복원된 완준이의 휴대폰에는 “가만히 기다리라”는 어른들의 말을 믿고 장난치던 친구들의 모습들과, 물이 차 오르자 구명조끼를 착용하고 불안해하며 기다리는 아이들의 모습이 사진으로 남아 있습니다.

박성호 – 단원고 2학년 5반

성호는
우주를 좋아하고 별자리를 찾거나 별 이름 외우는 걸 즐겼고 하늘 사진을 많이 찍었습니다.
또한
역사를 좋아해서 역사는 늘 백점 만점을 받고 싶을 정도로 관심있는 분야에는 성실하게 파고드는 노력파 성호였습니다.
집중력이 강하고 “축구잘하는 박성호”로 불리울 정도로 초등학교 때는 축구선수를 꿈꿀 정도로 축구를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성호에게 엄마는 멘토였습니다.
삶의 태도나 진로 신앙적인 모든면에서 성호를 이끌어 주셨습니다.
반면 엄마에게 성호는 “젊잖고 예의 바르고 반듯한 아이,
요리를 해도 먹어주던 기쁨을 줬던 아이”
어머니 정혜숙님이 기억하는 성호의 모습입니다.
“엄마 사랑해. 엄마 나중에 효도할께요,”
뽀뽀도 해주고, 안아주고, 조그만 선물이라도 하려고 애썼고, 때론 편지도 써서 건네주던…
잘하지는 못하지만 스스로 만든 요리로 엄마를 기쁘게 해주려 애썼던 효자 아들이었습니다.
따로 귀가하는
두 누나들의 늦은 귀가길에는 한 명, 한 명 버스정류장까지 마중나가 배웅해 오는 착한
누나들의 든든한 보디가드이기도 하였습니다.

 

성호를 따라다니는 수식어에는 “신선” “미륵보살” “아낌없이 주는 나무” “힘이 되어 주는 존재”등이 있을 정도로 타인을 배려하고 친근하게 대하며 누구에게나 사랑받는 존재였습니다.

 

이런 성호도 “아이유빠돌이”였다고 하네요.
아이유 CD를 사 모으고 노래를 들으면서 열렬히 좋아하는 평범한 청소년이기도 했습니다.

 

성호가 초등학교 6학년 시절
미국산 쇠고기 파동이 일어났을 때
“먹거리가지고 장난치는 사람은 참 악한 사람들이다”
“엄마는 그런데 왜 참여 않느냐~!”라며 따져 물었을 정도로 물질적인 것보다는 사회적인 문제에 관심 또한 많았습니다.

 

사제의 꿈을 키우는 성호가 존경하는 세사람을 써본적이 있습니다.
엄마. 이태석신부님, 노무현전대통령.
첫번째 엄마는
“신앙에 모범이 되고 멘토 역활을 넘치게 해주신 분이어서”
두번째 이태석신부님은
” 전생애를 남을 위해 헌신하는 삶이 존경스러워서”
세번째 노무현전대통령은
” 자기 목숨을 걸어서라도 정의를 증거하는데 주저하지 않는 삶을 살았던 분이어서” 였습니다.
성호는 그중에서 이태석신부님처럼 살고
싶어했습니다.

 

아픈 사람의 벗이 되고, 정의를 위해 앞장서며 성인으로 살려고 노력하는 삶을 살고자 했던 성호의 꿈은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성호에게는,
여덟명의 중학교 단짝 친구들이 있었습니다.
여덟명이서 단원고에 진학하자고 약속을 했었고 모두 진학하였으며 이번 세월호 사고로 여덟명 모두 희생되는 안타까운 비극을 맞았습니다.

 

“4107083”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는 봉안함 번호입니다.
성호에게 메겨진 이세상에서의 마지막 번호이지요..
사제의 길을 걷고자 했던 성호,
하느님곁에서 영원한 사제의 길을 걷는 성호를 상상해봅니다.

김인호 – 단원고 2학년 5반

인호는 꿈이 많이 아이였습니다.
경찰 , 소방관 , 군인, 사육사…무엇이 될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인호는 꼼꼼하고 세심했습니다.  마음이 따뜻하고 항상 남을 먼저 배려했습니다.
늘 동생이 다칠까 신경 쓰고, 힘든 엄마를 위해 대신 밥을 하고 엄마 다리를 주물러 주곤 했습니다.

 

인호와 엄마가 길을 걷다 지나가는 빨간 스포츠카를 보고, 엄마가 예쁘다고 말하자 인호는 엄마에게  나중에 사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4월 7일은 엄마의 생일, 손목시계를 선물하며 다음에는 스포츠카를 사주겠다는 했습니다.

 

4월 15일 세월호에 오르기전 인호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말했다합니다.
엄마는 친구들과 마지막 추억을 쌓을 수 있는 시간이라며 인호에게 수학여행 잘 다녀오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인호와 친구들을 태운 세월호는 진도앞 바다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운동신경이 좋았던 인호였기에 살아 돌아 올 거라고 믿었지만 인호는 마치 잠든 것 같은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인호는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인호가 선물해준 시계를 차고 계십니다.

 

-인호 어머니의 편지

사랑하는 아들 인호야 잘 지내지?
넘 보고 싶다
넌 천국에서 잘 지내지 .
자꾸 눈물이 난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내가 너무 싫어.
너를 위해 눈물 밖에 흘릴수 없네…
엄마 안 보고 싶니?
엄마는 우리아들 너무너무 보고 싶은데..ㅠ
할말은 많은데 우리 아들 엄마가 또 잔소리 한다고 싫어할까봐 오늘은 좀만 울고 좀만 잔소리 할게.. 사랑한다 사랑한다.
그리고 미안해. 정말 너무 너무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사랑한다. 우리 인호”

“우리 그냥 잠깐 헤어진 거야.
조금만 기다려.
그때는 우리 다시 헤어지지 말자.
친구 많이 사귀고, 하고 싶은 거 다 하고.
아프지 말고. 사랑해.
그리고 미안해.
지켜주지 못해서………….엄마가.”

박홍래 – 단원고 2학년 5반

홍래는 형제 중 막내입니다.

명랑하고 쾌활한 성격이었으며 사교성이 좋았고 활발했습니다.어른을 공경했고 예의 바른 아이었습니다.

 

홍래는 형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둘은 항상 같이 운동하고 같이 놀고, 같이 놀았습니다. 부모님을 위한 깜짝 파티와 선물도 같이 준비했습니다.

결혼기념일이면 둘이 같이 만든 케이크를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홍래는 이종격투기를 좋아했습니다. 이동 격투기 관람을 즐겼고 서두원 선수의 팬이었습니다. 체육관을 다니며 이종격투기를 배웠고,  6월에 이종격투기대회에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

하지만 홍래는 세월호 사고 8일째인 4월 23일에야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홍래의 형은  동생에게 마지막 선물을 하려고 서두원 선수 소속사에 전화를 걸었습니다.

서두원 선수는 5월31일 경기를 이기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그리고  2014년 5월31일. 원주치악체육관에서 경기 시작 15초만에 상대선수를 KO시킨 서두원선수는경기가 끝나자 홍래의 형을 링 위로 불러 끌어 안고 뜨거운 눈물을 흘렸습니다.

박진리 – 단원고 2학년 5반

박준민 – 단원고 2학년 5반

준민이는 바리스타가 꿈이었습니다. 2013년 여름방학때 엄마와 함께 카페에 갔다가 이런 꿈이 생겼다고 합니다.

 

그 해 9월부터 바리스타 학원에 다니기 시작하더니 2014년 1월에 바리스타 3급자격증을 땄습니다.
집에 커피 뽑는 기계를 사다 놓고 엄마에게 항상 커피를 만들어주곤 했습니다.그리고 5월12일에는 바리스타 2급 자격시험을 볼 예정이었습니다

 

4월 16일 오전 9시 6분 세월호가 점점 기울자 준민이는 휴대전화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자꾸만 끊겼습니다.
9시40분. 가까스로 준민이는 엄마 목소리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엄마에게 건 스물여섯번째 전화였습니다.
준민이는 엄마에게 무덤덤하게 “나.구명조끼 입고 있고 곧 배 밖으로 나갈 거야” 라며 엄마를 안심시켰습니다.
하지만 준민이는 4월 23일이 돼서야 사고 당일 엄마와 통화했던 그 시간인 9시40분에 엄마 품에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아침마다 준민이와 동생을 뽀뽀로 깨웠습니다.
준민이가 떠난 후, 엄마는 준민이와 동생을 뽀뽀로 깨웁니다.
순서가 동생이 먼저로 바뀌었을 뿐, 동생이 일어나면 준민이 방으로 가 책상 위에 세워놓은 준민이 사진을 보며 “준민아 잘 잤어?”하고 묻습니다.

 

세상에서 엄마가 최고라고 하던 준민이를 보낸 엄마는 매일 밤 준민이가 잠들 던 침대에서 준민이의 교복 재킷을 덮고 잠이 들곤 합니다.
준민이의 여동생 또한 오빠가 잠든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갈 때마다 “사랑한다”는 편지를 써두고 온다고 합니다.

“”모든 걸 다 줄 만큼 사랑한 금쪽같은 내 새끼. 엄마에게 다정다감했던 아들, 외출할 땐 팔짱을 끼라며 팔을 내어주던 아들,
나가 있을 땐 항상 문자와 전화로 엄마를 안심시키더니 마지막까지 아무 일 없을 거라며 엄마에게 나오겠다고 전화했었지. 그게 너와의 마지막이 될 거라곤 꿈에도 생각지 못했어.”

서동진 – 단원고 2학년 5반

동진이는 외동아들입니다.
외가에서도 첫 손주 첫 조카였고 친가에서도 첫 손주 첫 조카여서 귀여움과 사랑을 독차지 했습니다.
버스커버스커와 버즈의 노래처럼 밴드의 노래를 즐겨불렀고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 실용음악학원에 다니며 기타도 배우고 보컬수업도 들었습니다.

 

동진이의 꿈은
싱어송라이터가 되는 것 이었습니다.
기타도 치면서 노래도 부르고 작곡도 하고 춤도 추는 그런 사람이 되고 싶었습니다. 음악에 관한것들은 무엇이든 좋아하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도 사물놀이 동아리에서 북을 쳤고
학교수업이 끝나면 두군데의 아르바이트를 거쳐 댄스학원과 보컬학원으로 직행할 정도로 자신의 꿈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리던 아이였습니다.

 

아버지를 닮아 훨씬한 키에 장난기 많고 다정다감하며 또 어느때는 마음을 움직이는 위로를 건내고, 세심하게 주변사람들을 챙겼기에 동진이 주변에는 늘 웃음과 친구들이 넘쳐 났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2014년 4월 15일 아침,
동진이는 학교가는 길에
자신이 직접 만든 2단 도시락을 싸들고
이 소녀의 집 앞에 찾아왔습니다
소녀는 동진이에게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그럼 난, 5단 도시락을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하지만 끝내 동진이는 살아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4월 27일에야 싸늘한 주검으로 돌아온 동진이.
이 소녀와 어머니는 동진이 장례식이 치러진 고대병원 장례식장에 5단 도시락을 싸가며 눈물의 약속을 지켰습니다.

 

장례식후,
동진이에게 이 소녀는 동네에 피어난 봄꽃을 꺾어 동진이집 우편함에 매일 놓아두는 것으로 동진이를 맞이해야만 했습니다.
안산 와동의 모든 봄꽃들이 이 소녀와 친구들의 마음으로 옮겨져 동진이네 우편함을 가득 채웠습니다.
소녀의 봄, 엄마의 봄, 안산의 봄은 슬픔의 봄으로, 꽃들은 슬픔을 담고 꽃 피울 수 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주변의 많은 이들과 한 소녀, 친구들과 부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던 동진이는 지금은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오준영 – 단원고 2학년 5반

준영이는 남매중 맏이입니다.

준영이는 엄마에게 살갑고 애교 많은 아들이었습니다.준영이는 학교 갈 때면 엄마에게 하트를 날리고, 일하는 엄마한테  힘내라는 메세지를 보냈습니다.음식을 하다가 손을 데인 엄마를 위해 냄비장갑을 만들어 주기도 했지요.

준영이는 저녁마다 엄마와 만나 같이 집에 돌아왔습니다.  자기 방이 있었지만 늘 안방에서 엄마와 함께 잠을 잤습니다. “네 방에 가서 자라”고 하면, “군대 가기 전까지만 엄마 곁에서 잘게”라고 했다고 합니다.

 

준영이는 가족을 사랑했습니다.  가족들을 위해 집안일을 했고, 선물을 사곤 했습니다.

준영이는  아빠는 집을 지키는 사람이라 “지킴 빠곰”,엄마는 집안을 충전한다고 “충전 마곰”,동생은 집안의 희망이라고 “희망 아곰”,자신은 집안의 꿈이라며 “꿈돌 곰돌”이라고 별명 지어 불렀습니다.

 

준영이는 야구를 좋아했습니다.
안산 “강소야”(강한 소년들의 야구) 에 들어가서 활약했고, 베니본즈를 좋아해 등번호 25번을 달았습니다.

 

준영이의 꿈은 세무공무원이었습니다.

 

준영이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나고 8일째, 자신의 생일날인 4월 23일 차가운 바다 속에서 올라왔습니다. 준영이는 지금 천국에 있습니다.

이석준 – 단원고 2학년 5반

석준이는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한글을 만화를 보면서 깨우쳤고 일본어도 일본 만화를 보면서 배웠습니다.

석준이는 검도를 잘 했습니다. 석준이 아버지께서는 아들들과 같이 길을 걸을 때면 든든한 보디가드 두 명을 옆에 두고 걷는 것 같고,  세상 부러울 게 없었습니다.

석준이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남동생을 살뜰히 챙겼고, 아빠에게 애정 표현을 자주 했습니다.
아르바이트해서 모은 돈으로 아빠에게 스마트폰용 장갑을 선물하기도 하였습니다.

 

석준이 아버지께서는 석준이가 운동을 잘하나  꼭 살아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며 기다렸지만, 석준이는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석준이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함께 수학여행을 떠났던 친구들과 고이 잠들어 있습니다.

 

아빠는 아들의 억울한 죽음의 진실을 밝히기 위해 투쟁의 현장에 늘 가까이 있습니다.
청와대에서, 광화문에서, 진도에서, 정읍에서. 울산에서, 전국 어디에서든 석준이의 진실을 찾고자 발걸음을 옮깁니다.
간담회에서 , 광주 법정에서, 시위에서 서 계십니다.

이진환 – 단원고 2학년 5반

진환이는 남매중 맏이 입니다.

진환이는 밝고 온화한 성품이었습니다. 명랑함으로 주위 사람들을 웃게 했었지요.

 

진환이는 학교 친구들 사이에서 인기가 많았습니다.
마음이 따뜻했던 진환이는  친구들을 잘 배려했습니다.
차비가 없는 친구에게 차비를 빌려주고 정작 자신은 걸어서 오고 따돌림 당하는 친구들을 지나치지 못하고 꼭 챙겨주는 아이였습니다.

 

동생에게는 진환이는 때로 친구같고, 때로 아빠같은 오빠였으며, 항상 동생을 이해하고 안아주는 따뜻한 오빠였습니다. 엄마에게는 든든한 맏아들이었습니다.

 

겨울방학 때 진환이는 떡볶이가게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하였습니다.
진환이는 특유의 성실함과 온화함으로 첫 사회생활을 훌륭히 해냈습니다.
수학여행을 가기전까지 아르바이트로 모은 돈으로 아빠와 동생에게 선물을 사 주었고 수학여행 경비도 직접 냈습니다.

 

진환이는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전화를 걸어
“구명조끼 입고 있어. 선생님이 대기하라고 해서 대기하는 중이야. 엄마 다른 친구들도 통화해야 된데….”
라고 했습니다.

진환이는 사고후 7일만인 4월 22일 안산으로 돌아와 하늘공원에 잠들었습니다.

김도현 – 단원고 2학년 5반

도현이는 남매중 막내입니다.

도현이는 음악을 좋아했습니다.어릴 적부터 친했던 이다운에게  기타를 배웠고 피아노도 잘 쳤습니다. 몇 날 며칠을 아르바이트를 한 돈으로 악기를 사기도 했습니다.

 

도현이는 소탈하고 밝은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같이 음악을 듣고 악기를 연주하곤 했습니다.

 

도현이는 친구들과 무대에 서는 날을 꿈꿨습니다. 엄마와 함께 안산 문화예술의 전당을 지날 때면 도현이는 “친구들이랑 나중에 저런 무대에서 공연도 하고 싶어요”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도현이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도현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도현이는 커다란 가방에 그간 연주했던 곡들을 담은 노트북을 넣었습니다.

도현이 어머님께서는 지금도 이따금 도현이가 연주한 곡을 듣곤 하십니다.

이창현 – 단원고 2학년 5반

창현이는 남매 중 막내입니다.

창현이는 활동적이고,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달리기를 즐겼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까지 800m 달리기 선수를  했습니다.

 

창현이는 정 많고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친구들이 힘들어하면 다독여주고, 때로는 충고도 해주곤 했습니다.

창현이는 여행을 좋아했습니다.  매년 친구들과 함께 도보여행을 다녔습니다.
수학여행을 갈때도 창현이는 생전처음 가보는 제주도여행에 한껏 들떠있었습니다.

좋아하는 국밥이 나오면 말 우는 소리를 내며 장난을 쳤던 창현이. 창현이는 국밥집 사장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창현이는  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있습니다.

창현이 부모님은 창현이와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노력하고 계십니다.

이홍승 – 단원고 2학년 5반

홍승이는 장남이었습니다.

섬세한 성격으로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패션을 좋아해, 쇼핑으로 스트레스를 풀었고 개성있는 스타일을 연출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홍승이는 가수 나비를 좋아했습니다. 나비의 ‘잘 된 일이야’를 즐겨 불렀습니다.

홍승이의 장래희망은 “미용사”였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열심히 미용을 배웠습니다.

 

홍승이는 친구들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홍승이는 친구들에게 직접 만든 생일케이크를 선물하곤 했습니다. 친구들은 홍승이가 만들어준 케이크의 달콤한 맛을 지금도 추억하곤 합니다.

홍승이는 재미있는 별명이 많았습니다.친구들은 홍승이가 징징댄다고 인형 이름인 ‘콩순’이라는 별명을 붙여주었습니다. 짙은 눈썹을 두고 ‘송충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홍승이도 지지 않고, 자기를 ‘송충이’라고 놀리는 친구를 ‘애벌레’라고 부르며 놀렸습니다.

 

홍승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인태범 – 단원고 2학년 5반

태범이는 삼남매 중 막내였습니다.

 

태범이는 다정하고 애교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누나에게 긴 편지를 쓰곤 했고,가족들이 퇴근할 때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을 나가곤 했습니다.

 

태범이는 글쓰기와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태범이는 같은 반인 창현이와 친했습니다. 둘은 자주 어울렸습니다.

 

태범이가 세상을 떠난 후, 태범이 아버님은 큰 충격을 받으셨습니다.  그래서 태범이 아버지께서는 얼마 후, 중병으로 세상을 떠나셨습니다.

 

태범이와 아버지 인병선님은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나란히 한 유골함에 잠들어 계십니다.

정이삭 – 단원고 2학년 5반

이삭이는 성실하고 착실한 성격이었습니다. “후회하지 말자”라는 좌우명으로 학교와 교회를 열심히 다녔습니다.

심성도 고와,  편찮으신 어머님을 잘 돌봐 드렸습니다.

이삭이의 꿈은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삭이는 4월20일에 돌아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조성원 – 단원고 2학년 5반

성원이는 삼남매의 맏이입니다.

성원이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가족들과 대화하고 어울리는 시간을 좋아했습니다.

성원이는 동생들을 예뻐했습니다.  특히  막둥이를 잘 돌봤지요. 막둥이도 형을 잘 따랐습니다.
성원이는 엄마와도 친밀했습니다.  엄마와 이야기도 많이 했고 시간을 많이 보냈습니다.

성원이는 활달한 성격으로 친구가 많았습니다. 선후배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친구들은 밝고 쾌활한 성원이가  만화 영화 둘리에 나오는 케릭터 마이콜 같다고 해  성원이를 “마이콜성원” 이라고 불렀습니다.

 

성원이는 담임 선생님이신 이해봉 선생님을 존경했습니다.
중앙대학교에 진학하여 이해봉 선생님처럼 역사 선생님이 되는 것이 성원이의 꿈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인천항을 출항하기 전날인 4월15일 저녁에 성원이는 어머니와 통화를 했습니다.
어머니는 안개가 많이 끼고 날씨가 좋지않아 출항이 미뤄졌다는 말에 어쩐지 불안하다고 하였으나 성원이는 어머니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머니가 들은 성원이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성원이는 우리들곁을 떠났습니다.

 

-성원이 동생의 편지

To 조성원오빠
바보, 똥꾸멍, 오징어 오빠야….
오빠 차가운거 겁나 싫어 하잖아
맨날 나한테 보일러 틀어 달라 하잖아….
이젠, 앞으론 그러지 말고 따뜻하게 손난로 써야돼.
오빤 특별히 두개니까
혼자 다 써야된다.
성원이동생오징어 .

김진광 – 단원고 2학년 5반

진광이는 삼남매중에 막내입니다.
누나에게 사랑받고, 귀여움받으며 자랐습니다.

진광이는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자기 것을 채우기 위해 욕심 부리지 않고, 배려심이 깊은 아이였습니다. 주위 사람들을 위해 열심히 노력했고, 사람들의  마음에 잘 공감해주었습니다. 신앙심 또한 깊었습니다.

 

진광의 좌우명은 “갈고 닦은 인격은 무엇보다 강하다”입니다.
진광이는  좌우명대로 누구보다도 친구를 위할 줄 알았습니다.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고 상담도 성심성의껏 해 주었습니다.  인터넷 카페에선 “안산 상담원”으로 통할 정도였습니다.

 

진광이는 운동을 좋아했고 노래와 춤을 즐겼습니다.

 

진광이의 꿈은 합기도장 관장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진광이는 합기도 전국대회에 출전하여 준우승을 차지할 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지녔습니다.
국내에서 무술강사로 경험을 쌓은 뒤, 교회나 선교 기관과 협력하면서 외국에 나가 태권도나 합기도를 가르치며 선교 활동을 함께하는 미래를 꿈꿨습니다.

 

진광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진광이 누나의 편지

“내 동생 사랑한다. 무척.
누나도 너 보고 싶어 죽고 싶었는데
아직 살아있다.
엄마.언니.친구들…
내 주변에 있는 사람들 잘 살다가 갈 거야 너한테…. 조금만 기다리고….
사랑한다
사랑한다는 말 밖에는 해줄 수 있는 게 없어서…
누나 그래도 사는 날까지 살아 보련다.!”

 

-진광이 친구의 편지

*항상 사랑하고 잊지 않고 기억하고 있으며 많이 보고 싶다*

천인호 – 단원고 2학년 5반

인호는  막둥이로, 부모님과 누나들의 귀여움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마음이 따뜻했던 인호는 주변에 친구도 많았고 선배에게 귀여움도 많이 받았습니다.

 

인호는 학급에서는 총무를 맡았고 제과 제빵 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인호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인호 누나의 편지

“인호야 누나야”
잘 지내는 건지 너무 보고 싶다.
어디 아프지 말고 겨울이 왔는데 감기도 조심하고. 많이 춥다.
잘 지내고 우리 또보자.
다음 생에도 누나 동생해주라.
그땐 더 잘해줄게. 하고 싶은 말이 많은데 미안해. 사랑한다 내 동생.
진짜 너무 보고 싶다. 아프지마 그곳에선.
사랑해.

최남혁 – 단원고 2학년 5반

남혁이는 맏아들입니다.

남혁이는 어린 여동생을 잘 돌봤습니다.
어린 여동생을 살뜰하게 챙겨줬고 공부도 가르쳐주곤 했습니다.

 

남혁이는 주도적이고 적극적이며 착실했습니다. 시간관리도 잘 했고,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남혁이의 꿈은 고려대학교에 입학하여 검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혁이의 꿈과 미래를 세월호는 침몰시켜 버렸습니다.

남혁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남혁이 어머님의 편지

“사랑하는 우리 아들 잘있지?
날씨가 너무 덥다.
네가있는 그곳은 어때?
이 여름이 지나고 나면 가을이 오겠지.
그럼우리 아들 생일인데
니가 없는 생일 엄마는 너무 아프다.
마음이 아프다
해맑게 웃는 아들 모습이 그립다.
잘 지내고 또 올게. 사랑해 혁아.”

 

-남혁이 동생의 편지

“요즘 오빠가 더 보고 싶어져”
항상 보고 싶었지만 5일뒤면 오빠 동생 생일이야.
동생 생일날에 꼭 꿈에 나와서 축하해 줘야해!
나중에 만나서 그때 사줬던 토스트 사주는거다~♡
난 오빠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 사줄테니,
언제나 사이 좋은 남매로 지내자.사랑해.♡

김한별 – 단원고 2학년 5반

한별이는 형제 중에 막내입니다.

다정한 성격으로, 부모님께서 퇴근하고 들어오면 한별이는 다가와 안마를 하곤 했습니다.

한별이는 노래를 잘했고, 친구들이랑 노래방에 가는 걸 좋아했습니다.
게임도 좋아했습니다.

한별이는 마음이 넓었습니다. 양보를 잘 했고, 친구들이 놀리거나 화를 내도 한별이는  흥분하지 않았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한별이는 예배가 끝나고 교회에서 밥도 먹고, 구석구석 교회 살림살이도 들여다보고는 목사님께 “그동안 돌봐 주셔서 감사했습니다”라고 인사했습니다.
목사님은 뭔가 이상했지만 철이 드는구나 생각하고 잘 커 줘서 고맙다고 답하셨습니다.

 

하지만 이게 한별이의 마지막 인사였습니다.

한별이는 4월 20일에 가족의 품에 돌아와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한별이 친구의 편지

한별아, 너희 교실, 너의 자리에 문득 발걸음이 멈춰졌어.
이것도 인연이겠지?너희의 땀 냄새도 하나 없는 교실에 에어컨이 돌아가고 있어.누구를 위한 걸까? 그래, 너는 이름처럼 큰 별이 되었을 거야.
별나라에서 나 만나면 모른 체 하기 없기!!

 

-어느 정치인의 편지.

“한별아 안녕,
나는 너를 직접적으로 알고 있지는 않지만 지난해 분향소에서 네 얼굴을 한참동안 본 적이 있다.
오늘 교실을 둘러보다가 네 얼굴과 이름이 눈에 띄어 앉았다.
너희들의 안전을 지켜주지 못한 정치인중 에 한 명이라 죄스러운 마음이다.
너희들의 밝은 미소와 최후의 순간에도 친구들과 웃고 떠들며 잠시 후에는 나갈 수 있겠지 하는 믿음이 산산히 부서졌지.
그때의 동영상을 잊을 수 없다.
진상규명과 함께 안전한 사회를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마.”

문중식 – 단원고 2학년 5반

중식이는 형제 중에 맏이였습니다.

중식이는 건강하고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중식이는 엄마에게 다정다감하고 동생을 잘 보살폈습니다.아빠와 친밀해 같이 목욕탕에 함께 가서 서로의 등을 밀어 주곤 했습니다.

 

중식이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축구를 좋아했으며 킥복싱, 격투기를 즐겼습니다.
초등학교 때 태권도 3단과 명예 사범증을 땄고, 2012년 코리안비트복싱대회 준우승과 2013년국민생활체육인천광역시 한국최강자전 최우수상등을 수상할정도로 뛰어난 실력을 뽐냈습니다.

 

꿈도 국민대 경호과에 진학하여 경호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계속해서 좋아하는 운동을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중식이는  돌아오는 어버이날, 어머니께 지갑을 사준다고 약속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 약속은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산산조각나고 말았습니다.

 

중식이는 친구들과 천국으로 떠났습니다.

최민석 – 단원고 2학년 5반

민석이는 형이 한명있는 형제중에 막내입니다.
민석이는 반듯한 아이였습니다.
어찌나 고지식한지 횡단보도가 아니면 절대 길을 건너지 않았고 같이 길을 가는 엄마가 차가 오지 않으니
그냥 건너도 괜찮다 말해도 그럼 횡단보도 왜 만들었겠냐며 오히려 핀잔을 주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어릴적 다른 친구들이 장난감을 찾을때 책을 찾을 정도여서 상식이 풍부했고 뭐든 물어보면 척척 대답하는 만물박사였습니다.

 

효율성을 중시하고 학생은 학생답게 입어야 한다며 옷은 검정색 아니면 흰색등 단색 계열만 입고 다녔습니다.

 

민석이의 꿈은
경찰관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병역문제가 해결돼야 경찰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고 가산점을 받을 수 있는 의경을 가겠다고 벌써부터 진로를 정해놓은 상태였습니다.
민석이를 아는 사람들은 분명히 훌륭한 경찰이 될 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민석이 자리에는 책이 한권 놓여져있습니다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
민석이는 게임정보 사이트 “루리웹”의 이용자입니다.
닉네임 “하루카씨”로 활동했습니다.
민석이가 가장 좋아하는 애니메이션인 아이돌마스터의 주인공에 한 명인 *하루카*라는 이름을 닉네임으로 삼아서
루리웹이라는 인터넷 애니메이션과 게임전문 커뮤니티에서 활발하게 활동하였습니다.
수학여행을 가기 전날에도 민석이는커뮤니티에 “만화를 볼 시간도 없는데 3박 4일간 제주도에 묶이게 됐다”며 글을 올렸습니다.

 

(“충사….죠죠…러브라이브….다음주까지 기다려야 겨우 볼 수 있겠네요. 어우 뭔 제주도를 3박4일로 가는지…”( 2014.4.15. 00:52:52) )

 

참사가 일어난뒤 민석이가 쓴글에는 민석이를 걱정하는 댓글들이 수백개씩 달리기 시작했습니다.
“돌아와” “새글 빨리써라” “네가 좋아하는 작품,3부 엔딩까지 나왔다.” “댓글 좀 달아봐” “사랑한다”
“부탁합니다, 제발 살아 있어주세요”
“그리고 사람들이 한마음 한 뜻으로 기다리고 있어요.
살아있다면 한 마디만…..”

 

4일만에 돌아온 민석이 장례가 치러지던 4월24일 같은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던 분이 민석이가 마지막으로 쓴 글에
보고싶다고 했던 애니메이션과 최신작품을 모두 구비하여 휴대용 게임기와 함께 가족들에게 전달했습니다.
민석이가 쓴 글에는 최대한인 3,000개의 댓글이 달렸고, 회원들은 민석이가 이전에 쓴글들을 찾아서 추모의 댓글을 쓰곤 했습니다.
민석이는 20일에 가족품에 돌아와 지금은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이해봉 담임선생님과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마지막글을 남기고 엄마에게 선물할 감귤초콜릿을 많이 사 오겠다는 꿈을 가지고 떠난 수학여행은 끝내 비극으로 끝나 버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