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강승묵 – 단원고 2학년 4반

승묵이를 잃고 오랜 기간 힘들어 하셨던 승묵 어머니는, 여러분들의 응원과,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의지로 지금은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아픔 속에 마냥 슬퍼만 하던 여린 엄마가, 강인한 엄마로 거듭날 수 밖에 없는 이 나라의 현실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 용기와 실천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

 

하늘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시는 부모님을 지켜보며 승묵이가 참 많이 자랑스러워 할거라고 믿어봅니다.
여러분들도 승묵이 부모님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계신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들께, 커다란 응원과 위로를 부탁드립니다.

 

-승묵이 이모의 편지

*** 사랑하는 승묵아, 네가 떠나고 맞는 두 번째 생일을 온마음 모아 축하해.

아빠의 페이스북에서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쓰여있는 너의 사진을 처음 본 날, 이모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안경을 쓰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V 하고 사진을 찍은 한 소년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그냥 마음이 무너져 내리더구나. 눈사람 앞에서 하트 하던 사진은 또 어떻고.  그 사진을 본 후부터 눈사람을 보면 자동으로 수줍던 너의 미소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흘러내려. 그렇게 너는 이모도 모르는 사이에 이모 가슴에 깊이 새겨졌단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아무 연고도 없던 너를 가슴에 품은 걸 보면 예전 생에 너와 나는 깊은 인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고는 해. 승묵아, 얼마 전에 친구들이 대학에 입학한 거 알지? 너랑 친구들 대신 엄마랑 친구 엄마들이 입학식에 참석하셨었지. 친구들과 공부 열심히 해서 제일가는 하늘나라 작곡가가 되렴. 이모가 응원할게.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하고, 사랑한다 승묵아♡ ***

강신욱 – 단원고 2학년 4반

세상에는 어쩔 수 없이 일찍 어른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신욱이도 그런 아이였습니다.

 

신욱이는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누나와 함께 어려운 형편에서 생활했습니다.
그러던 중, 할머니가 돌아가셨습니다.

이 때부터 신욱이는 어른스러워졌습니다.

신욱이는 전단지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일당 2만원을 받고 사무실 벽의 페인트를 벗기는 작업을 해 용돈을 벌었습니다.

아버지께서 용돈을 줘도 그만큼 안 줘도 된다고 할 만큼 속이 깊었습니다.

2학년 학급총무를 맡기도 했던 신욱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늘 학급성적 3등이내에 들 정도로 공부도 잘했습니다.

 

친구들에게 신욱이는 가끔 보더라도 늘 한결같은 편한 친구, 추진력과 리더십을 갖춘 친구였습니다.

 

4월 15일 저녁. 신욱이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아빠, 안개가 많이 끼어서 배가 출발을 못할 거 같아.나 그냥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문 안에서 걸어 잠그지 말아…..”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하고 안산으로 돌아올 것 같다고 얘기했던 신욱이.

그러나 신욱이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신욱이는 지금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강혁 – 단원고 2학년 4반

혁이는 남매중 막내입니다.
뽀얀 피부에 오동통한 살집, 방긋방긋 잘 웃는 데다 성격도 온순해서 부모님은 혁이를 볼 때마다 행복했습니다.

 

집에서 혁이는 ‘간쟁이’라고 불렸습니다. 부모님께서 운영하시는 가게에서 판매하는 보쌈 양념의 간을 기가 막히게 잘 본다고 해서 붙여진 애칭입니다.

 

혁이는 오준영과 친했습니다.

 

혁이는 수학여행을 가지 않겠다고 했습니다.수학여행설문지란에 가지 않겠다고 자신이 서명하고 싸인도 했습니다. 하지만 혁이 부모님은 수학여행에 다녀 오라고 혁이를 설득했습니다. 그러자 혁이는 고집을 접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왠지 잃어버릴 것 같다며 휴대폰을 두고 갔지요. 그래서 혁이 부모님은 혁이의 마지막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혁이 어머니께서 매일 밤마다 아토피 약을 꼼꼼히 발라주던 혁이는,

지금 엄마 곁을 떠나,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혁이 아버지의 편지.

“사랑하는 나의 아들 혁아 ,지금 뭐하고 있니?
축구는 하고 있니?
점심은 먹었니? 혁이가 보고 싶어 했던 월드컵은 보고 있니?
2010. 남아공 월드컵 때,박수를 치고, 탄성도 지르며 빨개지던 혁이 얼굴이 생각나 눈물 짓는다.
언제나 밝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천사 혁아.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 아빠 곁을 떠나 다시는 못 올 그곳으로 머나먼 수학여행을 갔니? 엄마는 네가 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수학여행을 보냈다고 자책을 하고 눈물 짓는다.”

김웅기 – 단원고 2학년 4반

웅기는 삼형제중 늦둥이 막내입니다. 어머니에게 정말 감사했고, 선물 같았던 아이였지요.

웅기는 가족들과 사이가 좋았습니다.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형들을 어려워했지만, 한편으로는 부모님처럼 여기며 잘 따랐습니다.

 

웅기는 평소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이었습니다.하지만 친한 친구들과 있을 때는  수다스러웠습니다.

 

무한도전을 즐겨봤고 유재석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웅기의 마지막 말은 “사랑합니다. 모든 분들을…”이었습니다.

웅기는 수학여행 하루 전날 아버지가 사 준 줄무늬 남색 남방을 입고 4월 29일에야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웅기 아버지는 웅기 영정을 가슴에 품고 십자가를 메고 진도에서 광화문까지 도보행진을 하였으며, 어머니께서는 국회와 청운동, 팽목에서 웅기와 친구들을 위해서 싸우셨습니다.

-웅기 조카의 편지

“정말 기억하지 않고 싶다고 해서 모른척 하고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못 본 척 하는 비겁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피지도 못하고 진 우리 삼촌 모두가 잊어도 내가 기억할게.

애기 삼촌 , 이 세상 모두가 삼촌을 잊어도 우리는 삼촌의 억울함을 절대 잊지 않을게, 사랑해”

 

-웅기 어머니의 편지

“안녕, 아들.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너무 미안해서 다른 할 말이 없어.
엄마가 할 수 있는 게 없네.할 수 있는 만큼 하는데 까지 해볼게.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김정현 – 단원고 2학년 4반

정현이는 형제 중에 막내입니다.
정현이 엄마는 정현이를  ‘알랑꽁꽁’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는 정현이를 사랑하는 마음에서 붙인 애칭입니다.  그만큼 정현이는 엄마의 보물이었습니다.

정현이는 별을 좋아했고, 기타를 잘 쳤습니다.

이승철. 버즈. 신해철. 김광석을 좋아했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축구를 좋아해 국가대표 축구선수를 꿈궜습니다.

고등학교 때부터는 공부에 취미를 붙여  열심히 공부를 했습니다.

특히 세계사 교과서를 모두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역사를 좋아했습니다.

한국교원대 역사교육학과에 들어가 역사선생님이 되는 것이 정현이의 꿈이였습니다.

 

정현이는 보컬부의 이다운과 친하게 지냈습니다. 둘은 초등학교 때부터 친구였으며  보컬부 활동을 같이 하며 깊은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정현이는 2014년 네가지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1;학교성적 Top 50위 안에 들기
2:솔로 탈출하기
3:용돈 50만원이상 모으기
4:역사교과 만점받기
그러나 세월호의 침몰로 정현이의 꿈과 목표는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정현이는 세월호 사고 후 9일만인 4월 24일에야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정현이는 지금 친구들과 함께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현이 어머니의 편지

“어느 날은 엄마에게 발톱 잘라 달라고 아기처럼 애교도 부리고 어느 날은 같이 꼭 껴안고 누웠다가 엄마에게 팔 베개를 해 주던 내 아들아. 이런 아들을 어떻게 장가 보낼까 했는데….
나의 왕자님 정현. 꽃 한번 활짝 피워보기도 전에 내 품을 떠난 아들아. 너를 생각하면 뼈와 살이 찢기다 못해 녹아 없어지는 것 같구나.
너의 손을 잊을 수가 없어.만져보기라도 할 수 있으면….널 언제나 안아볼 수 있을까.그날이 빨리 왔으면..천국에서 만날 그날이..”

 

-정현이 후배의 편지

“오빠 잘 지내고 있어? 우리 못 본지도 오래 됐다,그치?
수학여행 가기 전날에 실감 안 난다고 했잖아. 나는 서울랜드 간다고 들떠있고 그러다가 내일 보자며 그랬잖아. 나는 오빠 보려고 다음날….
복도 기웃기웃 거렸는데 오빠 보지도 못하고 수학여행 보냈어….

내가 진짜 오빠한테 미안해. 한번이라도 볼 걸…너무 보고 싶어…..
오빠는 축구할때랑 공부할때가 제일 멋있었어. 인사한다고 서로 장난도 치고 한국사도 얘기하고 나 공부하는 것도 체크해주고. 비록 같이 지낸 시간이 짧았지만 나한테 소중하고 잊을 수 없는 기간인 거 같아. 좋은 추억 남겨줘서 고마워요.

오빠. 우리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요.내가 세상 누구보다 더 잘해줄게요. 우리 다음 생에도 다시 만나요.
못 다한 얘기도 많이 해요. 그때는 제가 오빠 좋아하고 있었다고 꼭 말할게요.
사랑해요. 잊지 않을게요.못해줘서 미안해요사랑해요 정현이 오빠.”

김호연 – 단원고 2학년 4반

호연이는 다재다능한 아이였습니다.
공부를 잘했고,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고교 야구 선수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습니다. 기타와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었답니다.

 

세월호가 기울어진 것을 알아챈 호연이는 일찌감치 갑판으로 나왔지만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듣고 다시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예의 바르고 진중한 아들,  호연이를 잃은 어머니는 세월호 진상규명 활동에 열심히 활동하셨습니다.

-호연이 형의 편지.

“이제 직접 만지고 듣고 볼 수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나면 그때도 내 동생이 너 였으면 해.
형이 지금까지 못 해준 거 다 해줄게. 형이랑 그땐 좋은 추억도 많이 쌓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이 나라에 살고 있어서 너무 미안하구나.
내 동생 호연아…..”

박수현 – 단원고 2학년 4반

수현이는 위로 한 살 많은 누나가 있는 막내입니다.

수현이는 곧잘 가족들에게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수현이는 엄마에게는 늘 다정한 아들,아빠에게는 듬직한 아들이었습니다

 

수현이는 섬세하고 감성적인 성격으로 자랐습니다.

예술적인 재능이 있어, 밴드부ADHD 활동도 했고 시 쓰기를 즐겼으며 연극부 활동도 했습니다.

 

수현이는 대학에 가서 일본어를 전공하고 싶어했으며 앞으로도 계속 밴드부 ADHD멤버들과 음악을 계속 연주하고 작곡을 공부하고 싶어했습니다.

 

그러나  수현이는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하고, “엄마 아빠 사랑해요” 라는 말을 남긴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현이가 활동하던 ADHD밴드 멤버 8명 중 5명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었습니다.

 

수현이를 잃은 뒤에 아버지는 수헌이가 남긴 #버킷리스트를 발견했습니다.

수현이가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스물 다섯가지를 작성한 목록입니다.

그중, 죽기전 공연 20회의 꿈을 이뤄주기 위해 ADHD멤버 세 명과 홍대 앞 클럽 맴버들은 수현이의 열 일곱살 버킷 리스트 공연을 했습니다.

훗날 이 이 공연은 2015년 12월까지 단원고 반 별 공연과 미 수습자를 위한 공연으로 이어졌습니다.

박정훈 – 단원고 2학년 4반

정훈이는 1남 1녀중에 막내입니다.
전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 때 안산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정훈이는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습니다. 조립을 잘했고 운동도 잘했습니다.

 

정훈이는 성격도 서글서글했습니다.후배들과 축구와 농구를 즐겼고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농담도 잘했습니다.

 

일찍 아버지를 여읜 정훈이는 어머니와 누나를 항상 챙겼습니다. 자기보다 주변을 생각하는 의젓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정훈이는 어두운 밤 퇴근하는 엄마와 누나를 마중 나가곤 했습니다.

가족들에게 토마토 스파게티, 떡볶이, 찌개를 해 주곤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인 2014년 4월 17일 세월호에 탔던 학생들의 선후배, 친구들, 동네주민분들, 일반시민 500여명이 단원고등학교에 모였습니다.
다같이  아이들이 무사히 돌아오기를 바라며 “기다릴게” “돌아와 줘” “엄마랑 밥 먹자” “희망을 잃지 마”  라고, 마음을 담은 문구를 종이에 써서 들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정훈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후배도 있었습니다.
후배는 평소에 같이 운동하고 놀았던 정훈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비가 오는 와중에도 한 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모두의 바램을 뒤로하고 정훈이도, 250명의 아이들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금 정훈이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빈하용 – 단원고 2학년 4반

하용이는 삼 형제 중 장남입니다.

하용이는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는 책임감 있는 아이였습니다.

하용이는 풍부한 상상력을 가졌고, 예술적인 재능이 있는 아이였습니다.

하용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연습장, 스케치북 뿐만 아니라 가정통신문, 수업 유인물 등 빈 공간이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 하용이가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작 1년 남짓.

어려운 집안 사정을 잘 아는 하용이가 부모님께 미술이 하고 싶다고 용기내어 말하기까지 시간이 걸린 탓이었습니다.
그러나 1년 남짓,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용이는 특유의 감각과 성실함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습니다.
미술 학원에서도 “미래가 기대되는 학생” 이라며 하용이를 주목했습니다.

 

부모님은 체격이 큰 하용이를 위해서 하용이가 편히 그림을 그리도록  하용이의 전용 의자를 마련해 주었습니다.

 

하용이는 부모님이 주신 의자에서 열심히 그림을 그리며  일러스트레이터를 꿈꿨습니다.

그러나 하용이의 꿈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었습니다. 하용이는 지금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슬라바 – 단원고 2학년 4반

바체슬라프 리콜라예비치 세르코프.

“바체슬라프”는 러시아어로 높은 사람, 귀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슬라바는 아빠가 한국 분이고 엄마가 러시아 분입니다.

슬라바는 열살 때 엄마와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 국적을 얻기 위해 귀화 신청을 했던 슬라바는 9월이면 나올 주민등록증을 설렘 속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슬라바는 12살 아래인 동생을 지극히 사랑했습니다. 매일 동생의 밥을 챙겨 먹이고 목욕 시키고 껴안아서 재웠지요.

 

친구들 사이에서 슬라바는 “붙임성 있고, 잘생기고, 엉뚱하고 재미있는 아이” 로 통했습니다.
특히 같은 반 정차웅과는 어디를 가도 같이 다니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였습니다.

 

슬라바는 운동을 잘했습니다. 특히 수영을 잘 했지요. 사람들은 수영을 잘했던 슬라바다 탈출했을 거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슬라바는 탈출하지 못했습니다.

 

슬라바의 책상 위에는 어린 동생이 그려 놓은 그림이 있습니다.
형의 죽음과 이별을 표현한 그림입니다.

이제 유치원을 졸업한 준성이가 한글을 배워서 처음 쓴 단어는 “단원고” “유가족” 그리고 “슬라바”입니다.

 

슬라바를 억울하게 잃고, 준성이와 슬라바의 부모님은 투쟁했습니다.

국회에서도, 광화문에서도, 거리에서도 서명대에서도 슬라바의 가족들은 활동했습니다.

4반 부모님들은 준성이에게 명찰을 만들어주기도 하였습니다.

안준혁 – 단원고 2학년 4반

준혁이는 할머니. 할아버지의 첫 손자로, 엄마. 아빠의 첫 아이로 세상에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웃음이 많고 성격이 좋아 “착한 돼지”로 불렸습니다.

 

준혁이는 수영, 피아노, 미술, 줄넘기, 합기도, 특공무술을 잘 했고

아빠와 함께 축구를 하는 것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에게 퓨전 라면과 치즈 부침개를 해 주곤 하던, 다정한 맏이 였습니다.

그러다보니 준혁이는 자연스럽게 요리에 취미를 붙였습니다. 나중에 터서 요리사가 되고 싶다는 꿈도 가지게 되었지요.  훗날 영업할 가게 이름도 벌써 ” 안 먹어 보면 안 돼지” 라고 지어 두었습니다.

 

4월 15일,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남기며 수학여행을 떠나는 준혁이를 엄마는 꼬옥 안아주며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오라고 배웅했습니다.

 

하지만 16일 아침, 세월호는 304명의 소중한 목숨과 함께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준혁이는 잠든 것처럼 깨끗한 모습으로 4월 18일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준혁이의 페북에 절절한 그리움 담아 글을 남기고, 준혁이의 동생들은 맛있는 요리를 해주며 돌봐주던 오빠와 형의 빈자리를 느끼며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안형준 – 단원고 2학년 4반

형준이가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자유로이 왕래하는 직업을 갖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중국에서 조기 유학을 했습니다.

한국에 돌아와 형준이는  중학교때는 방송반에서 활동했고, 고등학교 때에는 경빈이와 김민석. 최민석과 농구를 즐겼습니다.

 

엄마랑 나란히 서서 요리도 하고 엄마의 패션 코디도 해주는 세심하고 친절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아빠가 출장을 떠나고 천둥치고 폭우 쏟아지는 날이면 큰 덩치로 엄마 옆에 스스럼없이 베개를 들고와 누워서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나누곤 했습니다.

 

형준이는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성격이었습니다. 1학년 때에는 조기 유학 경험을 살려 중국어 국가고시 3급 자격증에 도전하여 300점만점에 294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자격증을 땄습니다.

고 3학년 때까지 6급 자격증을 따서 한양대 중국어과에 입학하는 것이 형준이의 꿈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5일 저녁에 형준이는 아빠한테 밝게 웃는 얼굴로 배에 타는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형준이 부모님은 진도체육관에서 일주일 동안 형준이를 기다렸습니다.
4월23일,
형준이 어머님이 너무 힘들어 아버님이 함께 팽목항으로 나갔는데 바로 그때 형준이가 물에서 나왔습니다.
엄마가 오는 걸 알고 엄마 품으로 돌아 온 거라고 형준이 아버님은 말씀하십니다.
형준이는 지금 안산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어느 대학생의 편지

“나는 너희 보다 한 살 많은 대학생이야.
작년에 난 대학입시밖에 머리에 안 넣으려고 노력하던 어리석은 고3이었어.그래서 작년 동안 너희 일을 잊어버리려 애썼어.지금, 지난 1년의 내모습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몰라. 너무 늦게 돌아와서 미안해. 하지만 그만큼 남을게. 우리 대학생들의 힘으로 세월호 진상규명 해낼게. 너희 억울한 희생, 피해 우리가 다 밝혀낼게. 얼마나 원통하니 지금쯤 학교다니며 공부한 결실을 볼 수능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어야할 너희들인데….
좋은 곳에서 편히 쉬어.여기서 못다한 꿈 그곳에서 이루길 바라.
정말 미안하고 사랑해”

임경빈 – 단원고 2학년 4반

경빈이는 남매중 맏이였습니다. 경빈이는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경빈이는 집에서는 살가운 아들이자 자상한 오빠였습니다. 동생을 잘 챙겼고 주말에는 부모님과 함께 등산을 가곤 했습니다. 특히 간혹 아빠와는 PC방에 가서 게임을 할 정도로 가까웠습니다.

 

경빈이는 서글 서글하고 활달한 성격으로  친구들과  공놀이를 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경빈이는 일곱 살 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각종 대회에 나가 우승도 많이 했습니다. 엄마는 운동을 너무 좋아했던 아들의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들이 운동보다 공부를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경빈이는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알고는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난 4월 16일. 경빈이는 그날  밤 사고 현장 근처 바다 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경빈이 부모님은 사고 소식을 듣고 설마,하며 진도로 갔습니다.

그날 밤 11시경 목포 한국병원에 경빈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목포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경빈이가 어떻게 발견돼서 여기까지 오게 됐는지, 부모님은 그 누구에게도 경위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가슴에 심전도를 꽂았던 자국이 있는데 누가.어디서 한 것인지도 알려주지도 않았고 이미 병원을 두차례나 거쳐서 왔다는데 아무런 기록도, 사진도 없었다고 합니다.
왜 참사가 일어났고, 왜 구조하지 않았고, 왜 방치했는지 경빈이 부모님도, 국민도 알고 싶어합니다.

 

경빈이 어머니는 경빈이와 친구들의 진실을 찾기 위해 몸이 부숴져라 싸우고 계십니다.

 

*누구도 미쳐 몰랐단다. 너의 소중함과 너의 존재감을.항상 곁에 있고 항상 부르면 대답할 줄 알았지.
마냥 건강하게 잘 뛰어 놀고 항상 우리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너의 빈자리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크게 자리 잡고 있구나.*

임요한 – 단원고 2학년 4반

요한이는 태어나자마자 희귀병을 앓아서 갓난 아기때 6개월이나 인큐베이터에서 지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장파열을 겪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급성늑막염을 앓아 몇 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래도 요한이는 여동생을 잘 돌봐주는 든든한 오빠였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신 아버지가 해외에 나가실 때면 어머니를 돕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신앙심이 깊은 요한이는 아버지처럼 목사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요한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20일이 지난, 5월 5일 어린이날에 아버지가 사 주신 녹색후드티를 입고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요한이는 지금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장진용 – 단원고 2학년 4반

진용이는 남매 중 막내입니다.

진용이는 가족을 소중하게 여겼고, 사랑했습니다.

책임감 있는 성격이었고, 심성이 착했습니다.

 

진용이는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치킨을 좋아했습니다.

 

진용이는  친구들한테도, 후배들한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후배들에게 진용이는  멋진 사람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진용이는  성격좋은 친구였습니다.

 

 

진용이는 세월호 참사 사흘째인 4월 18일 오전에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진용이가 떠나는 마지막 길에는 가족과 친척 분들은 물론이고, 진용이의 친구들까지 100명이 넘게 모여  진용이를 배웅했습니다.

 

진용이는 경기도 회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차웅 – 단원고 2학년 4반

차웅이는  형제 중 막내입니다.

차웅이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짱구,스펀지밥, 도라에몽, 라바를 좋아했지요.

운동을 좋아해 검도가 3단이었습니다.

차웅이는 엄마가 해주는 요리를 좋아했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요리라고 했지요.

 

차웅이는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 자주 부모님께 안마를 하였고 집안일도 잘 도왔습니다.

 

“엄마. 내가 혹시 여행가서 전화 못 하더라도 뭐라 하지 마세요”

차웅이는 신나게 말하며 날아 갈 듯한 발걸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차웅이 부모님은 그런 차웅이에게 말했습니다.

“무슨 소리야? 무조건 전화해야지! 아무리 재미없어도 전화해야지”

 

그날 저녁 차웅이는 엄마와 통화를 했습니다.

“엄마, 인천항에 도착했어!”

“그래. 별일없지? 잘 놀다와!”
“응!”
“우리 차웅이, 누구 아들?”
“응. 엄마 아빠 아들!”

 

이 통화는 차웅이와 부모님이 나눈 마지막 대화가 되었습니다.

 

차웅이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4월16일 오전 10시 25분께 침몰해역에서 전남201호 어업지도선에 의해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채 발견 되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주고 또 다른 친구를 위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 들었기 때문입니다.

차웅이는 해경123정 위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12시 20분께 세월호 사고 첫 희생학생으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차웅이는  5월에 가족과 함께 경남 남해로 아버지 어머니 형과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모든 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 검도 사범의 꿈 ]

 

시 : 신호현

 

친구 위하여
자기 목숨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 없나니

 

배가 침몰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 벗어준 친구

 

검도 제일 잘해
검도 사범 꿈꾸던
쾌활했던 장군 웅이

 

검도는 남에게
상처 주는 것 아니라
남 지켜주는 정신 따라

 

무도의 길 떠난
진정한 검도 사범
단원고 2학년 정차웅

 

차웅이는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동혁 – 단원고 2학년 4반

동혁이는 남매 중 맏이 입니다. 동혁이는 여동생을 아꼈습니다.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잘 챙겼습니다.
떠나는 마지막 순간에도 ” 엄마, 아빠 내 동생 어떡하지. 엄마 아빠 사랑해요 “라고 말했을 정도입니다.

 

동혁이는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리고 엄마와 가까웠습니다. “엄마가 있으니까 참 좋다” 는 건 동혁이의 입버릇이었습니다.

 

동혁이는 순영이, 하용이, 윤수, 종영이, 슬라바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동혁이는 친구들과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하였고 공통적인 관심사인 그림 그리기를 공유했습니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던 종혁이의 꿈은 웹 디자이너였습니다.

 

동혁이는  안산 하늘 공원에  4반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동혁이의 어머니께서는 동혁이와 친구들을 위해 삭발을 하셨고 대책위에서 열심히 투쟁하셨습니다.
지금도 416합창단과 국민 조사위등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 엄마의 사랑 ]

 

시 : 신호현

 

오랫동안 외로움에
사랑이 그리웠다지
엄마의 품이 그리웠다지

 

자랑스런 아빠와
가족이 마지막 걱정이었다지
엄마 아빠 내동생 어떻하지

 

엄마의 새 신발
맘에 들어 아끼고 싶었지
그래서 마음이 미어진단다

 

동혁이는 알지
이 어른들의 무능함을
얼마나 부끄럽고 못난지를

 

동혁이는 알지
엄마 아빠의 꿈을
엄마 아빠의 사랑을

 

그러니 용서하리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여동생의 새 희망을 위해

김범수 – 단원고 2학년 4반

범주는 체격이 좋고 운동도 잘 했습니다. 태권도 2품이었으며 힘도 셌습니다.

범수의 꿈은 국군 장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장교가 되려면 공부를 잘해야 한다며 매일 밤 10시 넘어서 까지 열심히 공부했었지요.

 

범수는 손재주가 좋아 종이접기도 잘 하고 음식 솜씨도 좋았습니다.

제과제빵 동아리 활동도 열심히 했지요. 범수 어머니께서는 범수가 직접 구운 과자와 빵을 건네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에 눈에 선하다고 하십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  범수는 아빠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리고 차분하게  “꼭 살아서 가겠다”고 했습니다.
가족들은 체력이 좋고 운동을 잘했던 범수였기에 꼭 살아서 돌아 올 거라 여겼지만 범수는 끝내 차가운 몸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범수아버님은  불편하신 몸으로 범수와 친구들을 위해 싸우고 계십니다.

매주 금요일마다 안산에서 피켓을 들고 두시간씩 서 계시기도 합니다.
모든 게 사랑하는 범수와 친구들을 위한 일이라 하시며….

 

-범수 아버님의 편지

“가족들은 보고 싶어서 매일 꿈속에서라도 기다리고 있단다.
편지를 써보고 책상에 앉아 과거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엄마는 애써 아픔과 고난을 극복하려고 몹시 애쓰고 아빠는 한 점 누 가 될까 해서 할수 있는한 여러방면으로 유가족들과 함께하고….”

권오천 – 단원고 2학년 4반

오천이는 열살 위인 형이랑 여섯 살 위인 누나가 있는 세 남매의 막내입니다.

 

오천이는 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과 자연스럽게 대화할 정도로 영어를 잘 했습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오천이가 동시 통역사나 외교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그렇지만 오천이는 공부보다 운동을 더 좋아했습니다. 체육관에서 운동복이 흠뻑 땀에 젖도록 땀 흘리는 걸 즐겼지요.

오천이는 대학에 가서도 계속 운동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도 오천이는 어머니와 진로 문제로 진지하게 대화를 했습니다. 오랜 대화 끝에, 결국 어머니는 오천이의 바람을 존중하겠다고 하셨습니다.

오천이의 꿈은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해서 체육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스무 살이 되면 유럽 여행도 하고 싶고,  미국 유학도 가고 싶어했습니다.

 

오천이는 가족들을 사랑하고 심성이 발랐습니다. 리더십이 강했고 교우 관계도 좋았지요.

친구들은 “오천이는 우리를 구하려다 다리를 다쳤는데도 끝까지 같이 있던 친구들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오천이 덕분에 나는 밖으로 무사히 빠져 나왔다”
라고 오천이의 마지막을 기억합니다.

 

-오천이 어머님의 편지

[사랑하는 아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 오천아!
너무 보고 싶다, 오천아. 보고 싶어서 애간장이 다 녹아내려 버렸다.
사랑하는 아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 오천아! 이렇게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다.

뭐든지 열심히 하던 너를 보며 엄마는 늘 감사하게 생각했다.그렇게 멋지게 커서 바른 인성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너의 인생 계획이었는데.
너무나 아깝고, 아쉽고, 안타까워서 눈물만 나는 구나. 아들아, 엄마 아들아!

아들! 엄마는 네가 그렇게 가고파 했던 미국 유학을 보낸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단다.
사랑하는 아들! 수능을 앞둔 지금, 엄마와 형 그리고 누나는 체육교육학과에 가겠다며 애쓴 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언젠가 네가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면 같이 유럽여행을 가자고 했지?

그렇게 하자. 우리 아들 멋지게 노력했으니까. 그래 보자]

김건우 – 단원고 2학년 4반

건우는 밝은 성격으로 별명이 ‘헤보’ 일만큼 웃음이 많았습니다. 친구들도 많았지요.

 

건우는 엄마에게 참 다정한 아들이었습니다.
요리 학원을 다니며 몸이 약한 엄마를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줬고,
공황 장애로 늘 근심, 걱정이 많았던 엄마에게 항상 전화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 만큼 엄마를 위했습니다.

 

건우는 누나의 아들인 조카 라익이를 끔찍이 예뻐 했습니다. 누나처럼 행복한 가정을 꾸려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남편이자 아빠가 되고싶어했지요.

 

2014년 4월 16일 아침.

같은 반 친구 수현이가 남긴 동영상 속 기울어져가는 세월호에서,
건우는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있었습니다.

마지막 아들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본 건우의 엄마는,
건우가 정말 사랑했던 라익이를 위해 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안산 분향소에서 광화문까지 1박 2일 세월호 진상규명 행진에 참여하였습니다.

 

건우를 오래 오래 기억하기 위해 백 살까지 살겠다는 엄마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에 건우의 신발을 신고 거리를 걷고,
예쁜 꽃과 나무를 천 가방에 그려 넣으며,
매일같이 주님 품에서 아들이 평안하기를 빌고 또 빕니다.

건우의 엄마로 17년 동안 너무나 행복했기에,
다시 태어나도 건우의 엄마로 그 시간을 건너겠다고 다짐합니다.

 

-건우 어머님께서 시민들에게 쓴 편지

아빠와 엄마의 소중하고 착했던 아들.
4반 김건우 세례자 요한을 잊지 말아주세요.
건우를 위한 엄마의 간절한 기도에 함께 마음 모아 주세요.
아픔도 슬픔도 없는 곳에서 건우가 편안하기를,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주세요.

김대희 – 단원고 2학년 4반

대희는 중학교 때 시작한 권투를 계기로 운동에 취미를 붙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 때부터는 필리핀 무술 매력에 흠뻑 빠져, 매일 도장에서 열심히 운동을 했습니다.

대희의 꿈은 필리핀 무술 칼리아르시스 사범이었습니다.

좋아하는 운동을 평생 즐기며 일하고 싶어했지요.

 

대희는4월 16일 오전” 배가 침몰한다, 나는 괜찮아!” 라는 메시지를 부모님께 보냈습니다.엄마는 대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받지 못했습니다.
대희는 지금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대희 어머님의 편지

☆ 우리 아들 부드러운 목소리 한번 들어 봤으면, 따뜻한 손 한번 잡아 봤으면, 통통한 볼 한번 만져 봤으면,보고 싶고 궁금한 게 너무도 많은데…☆

[ 나는 괜찮아 ]

 

시 : 신호현

 

세월호가 침몰한다
나는 괜찮아

 

우리나라 최대 여객선
침몰한 적 없는 세월호

 

사람 많이 태워도
화물 마구 실어도

 

선실 불법 개조해도
사용연한 마구 늘려도

 

세월호 기울어져도
선실이 안전하단다

 

조용히 있으란다
가만히 있으란다

 

나는 괜찮아
세월호가 침몰한다.

김용진 – 단원고 2학년 4반

용진이는 외아들입니다.

용진이는 엄마를 닮아 피부가 하얗고 아빠를 닮아 목이 가느다랗고 손가락이 길었습니다.

얼굴이 툭하면 빨개진다고 해서 친구들은 용진이를 신호등이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용진이의 꿈은 마술사 최현우처럼 세계적인 마술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용진이는 주말이면 의정부로 가 마술을 배웠고  노인정에서 무료 마술 공연을 펼치곤 했습니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시간에 용진이는 친구들에게 보여 줄 마술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카드 마술과 탁구공 마술을 위해 트럼프카드, 탁구공, 검은 손수건을 챙기며 들뜬 마음으로 수학 여행길에 올랐지요.

그러나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마술을 선보이고 싶다는 용진이의 꿈은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용진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휘범 – 단원고 2학년 4반

휘범이는
세살어린 남동생이 있는 형제중에 장남입니다.
엄마가 해주시는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육개장을 좋아하는 휘범이는 엄마에게 딸처럼 섬세한 아들이고 엄마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해주는 큰 아들이었습니다.

 

휘범이는 꿈은
자동차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였습니다.
휘범이는 얌전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예의 바른 학생으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또한 미술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던 휘범이는 소묘는 물론 각종디자인, 만화를 자주 그렸습니다.
휴일이면 집에서 엄마와 함께 1박 2일이나 김제동의 토크쑈를 즐겨보곤 했던 휘범이…

 

2014년 방송인 김제동씨와의 서명전에서 아들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시는 어머니 신점자님은
“우리집은 4월16일 휘범이를 잃고 모든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아들이 수학여행을 떠난지 82일이 지난 오늘까지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꼭 알고 싶다. 휘범이 동생을 위해서도 미래를 위해서도…..”

 

저의 기억속에도 학교에 오시면 항상 휘범이 책상에 앉아 그리워하는 모습,
늘 포스트잇 남기던 모습, 크리스마스트리 만들때,
교실에 남천화분을 놓을 때도 손목에 깊스한 상태로도 가장 먼저 앞장서서 달려와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수학여행후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돌아오지 못한 휘범이…
휘범이가 사용할 방과 세면대의 주인을 잃어버린 휘범이의 칫솔 얘기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희범이가 좋아하는 음료 포카리스웨트를 형의 책상에 국화꽃과 함께 올리던 동생수범이와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를 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우혁 – 단원고 2학년 4반

3.3kg으로 태어난 우혁이는 외동아들입니다.
아들이었지만 딸 못지않게 애교도 많고 다정한 성품이었으며 늘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준 섬세한 아들이었습니다.

 

우혁이는 그림. 라면. 게임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혁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입니다.
먹기도 잘하고 끓이는 것도 아주 잘했습니다. 진우혁이라서
진라면이라고 별명지었을 정도입니다.

 

우혁이는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밝고 착하고 규칙을 잘 지켰습니다만 사진 찍기만은 싫어했습니다.

 

목표 : 공부하기
2학년 4반 34번 진우혁의 목표입니다.
성실하고 착하고 평범했다는 우혁이,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지요.
우혁이는 늘 온유함과 고요함을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주말이면 아침마다 침대에서 세 식구가 아들 팔 베개를 해 주면서 뒹굴뒹굴 했습니다.
그 10분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매일이 행복하길 바라면서 그렇게 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4월 20일에 돌아온 우혁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우혁~~!♡
내아들~~♡
엄마야~~♡♡
독일에서 누나가 가져 올 때 먹지않던
“하리보”지만
입맛이 변해서 혹여 먹을까 해서 사와 봤어.
먹어보고 친구들과 나눠먹어….
초코 과자도 먹고.
(근데 엄마가 먹어본 바로는 “하리보”말고는 독일과자는 그닥….)
엄마 담에 또 올게 사랑한다 우혁.”

 

“사랑하는 아들 우혁아!
너와 함께한 지난 날들
엄마아빠는 무척행복했단다.
너를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고맙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어
앞으로도 우리 세식구 사랑하며 살자.
엄마 아빠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거야
사랑한다~! 내아들♡♡♡♡
엄마 아빠가♡♡”

김윤수 – 단원고 2학년 4반

윤수는  형제중에 맏이입니다.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돌보고, 자기 용돈의 절반을 동생을 위해 아껴둘 정도로 동생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윤수는 책을 좋아했습니다. 스스로 글을 읽을 수 있게 된 후로는 늘 책을 끼고 살았습니다. 늘 책을 읽고 글을 쓰곤 했고, 책누리 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윤수의 꿈은 방송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바른 말 고운 말”이라는 3분까지 동영상의 시나리오를 쓰기도 했지요.

“바른 말 고운 말”에서 홍종영이 주연, 김동혁, 최민석이 조연, 박선균이 편집, 김민석이 음향. 그리고 작가 겸 촬영감독을 윤수가 맡았습니다.

 

이 작품은 윤수의 처음이나 마지막 작품이 되었습니다.

 

윤수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윤수 동생이 남긴 말

“….오빠랑 말을 해 본적이 없어서 아쉬워요, 그래도 오빠가 노래 부르는 걸 많이 봤죠,그런 모습도 아직 제 기억 속에 남아 있어요…..
4월16일 새벽 06시30분쯤에 “배고프다”라고 단톡에 말하신게 아직도 제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이 기억은 제 기억 속에서 평생 지워지지 않을 거고 제가 잊으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오빠 안경 벗은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최성호 – 단원고 2학년 4반

성호 부모님께서는 “외동이라 버릇없다” 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성호를 엄하게 키웠습니다. 성호는 그런 부모의 뜻에 따라 예의 바르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성호는 다재다능한 아이였습니다. 공부도 잘하고, 악기를 잘 다뤘고, 요리, 바느질, 뜨개질도 잘 했습니다.

 

성호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호는 이준우, 김건우(5반큰건우), 이재욱 ,김재훈 ,최성호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성호는 ”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수학여행을 간다”라며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월호는 진도 앞 바다에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성호는 오전 10시 07분 ‘전화가 잘 안 터져. 걱정하지 마. 살아서 나갈게.’
라는 짤막한 문자를 어머니께 보냈습니다.
사실 이 시각 즈음에는 세월호가 상당히 기울었지만 착한 성호는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해외에서 파견 근무 중이셨던 아버지도 외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급히 귀국하였습니다.그러나 2013년 12월 마지막으로 봤던 아들은 4월 20일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여름방학 때 아들을 만날 예정이었는데 말입니다.

 

성호는 지금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한정무 – 단원고 2학년 4반

정무는 부모님의 사정으로 자주 이사를 다녔습니다. 하지만 의젓하고 이해심많은 성격으로 떼 한 번 쓰지 않고 의젓하게 자랐습니다.

 

정무는 독립적이고 자립심 강한 성격으로 뭐든지 스스로 했습니다.

 

강아지를 잃어버렸을 때에는 장장 삼 개월 동안 보고 싶다고 울 정도로, 정이 많은 성격이었습니다.

 

정무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합기도 도장에 다녔고 친구들과 같이 운동하는 것을 즐겼습니다.

 

정무는 고기와 통닭을 좋아했고 드럼 연주를 즐겼습니다.

 

정무는 세월호 참사 6일만에 돌아와 안산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정무 어머니의 편지

“내 아들 정무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네가 허락만 해준다면 다음 생에 다시 부모자식으로 만나자. 그리고 그땐 엄마 곁에서 오래 오래 행복하자.
너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 같이 네가 너무나도 착했다고 하더구나.
너무 아까운 우리 정무. 많이 많이 사랑하고 너무너무 보고 싶다.”

 

-정무 동생의 편지

“형 여행 너무 오래 갔었지.?이젠 여행가지 마 알았지?
형 사랑해.나 너무 이뻐해 줬을때가 생각나.
그때 잊지 않을게…….. 동생.”

홍순영 – 단원고 2학년 4반

순영이는 남매 중 막둥이 막내입니다.

순영이는 참으로 순하고 착한 아이였습니다.
아기 때는 잘 울지도 않고 투정도 많지 않았으며 잘 먹고 잘 잤습니다.


순영이는 IMF 여파로 아버지의 사업이 실패한 후, 초등 학교 6학년 때 사준 패딩 점퍼를 덩치가 커진 고등학교 1학년 때까지 불평 한마디 없이 입고 다니는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순영이는 다정하고 세심한 성격으로 엄마와 외출할 때면   “마미가 이 세상에서 제일 이뻐” 하며 팔짱을 끼었습니다. 늦은 밤 엄마가 동네 가게라도 나갈라 치면 위험하다며 대신 갔습니다.

 

순영이는 집안일도 잘 도왔습니다. 엄마와 함께 고구마순을 손질하기도 하고 빨래를 개곤 했습니다.

 

순영이는 중학교 때부터 단원고까지 꾸준히 만화 동아리에서 활동하였습니다.순영이의 꿈은 애니메이션 작가였습니다.

 

순영이는  ADHD 밴드 일원이었습니다. ADHD 밴드 8명의 멤버 중에 단원고로 진학한 순영이 포함 (박수현,오경미,김건우,이재욱)5명이 희생되었습니다.

 

“엄마하고 오래 오래 살아야지. 엄마가 텃밭에서 야채 키우는 거 좋아하니까 나중에 꼭 정원 있는 집에서 모시고 살 거야”라던 순영이의 바람은 못다핀 청춘과 함께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 앉고 말았습니다.

 

순영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