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강승묵 – 단원고 2학년 4반

승묵이를 잃고 오랜 기간 힘들어 하셨던 승묵 어머니는, 여러분들의 응원과, 아들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밝혀야겠다는 의지로 지금은 많은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아픔 속에 마냥 슬퍼만 하던 여린 엄마가, 강인한 엄마로 거듭날 수 밖에 없는 이 나라의 현실에 마음이 아프면서도, 그 용기와 실천에 박수와 응원을 보내게 됩니다.

 

하늘에서 진실을 밝히기 위해 열심히 활동하시는 부모님을 지켜보며 승묵이가 참 많이 자랑스러워 할거라고 믿어봅니다.
여러분들도 승묵이 부모님과,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싸우고 계신 다른 친구들의 부모님들께, 커다란 응원과 위로를 부탁드립니다.

 

*** 사랑하는 승묵아, 네가 떠나고 맞는 두 번째 생일을 온마음 모아 축하해♡ 아빠의 페이스북에서 ‘사랑하는 아들’이라고 쓰여있는 너의 사진을 처음 본 날, 이모가 얼마나 많이 울었는지 몰라. 안경을 쓰고 수줍은 미소를 지으며 V 하고 사진을 찍은 한 소년이, 이제는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에 그냥 마음이 무너져 내리더구나. 눈사람 앞에서 하트 하던 사진은 또 어떻고~~그 사진을 본 후부터 눈사람을 생각하면 자동으로 수줍던 너의 미소가 떠올라, 나도 모르게 그냥 눈물이 흘러내리기도 해. 그렇게 너는 이모도 모르는 사이에 이모 가슴에 깊이 새겨졌단다.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는데, 아무 연고도 없던 너를 가슴에 품은 걸 보면 예전 생에 너와 나는 깊은 인연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보고는 해. 승묵아, 얼마전에 친구들과 함께 대학에 입학한 거 알지? 너랑 친구들 대신 엄마랑 친구 엄마들이 입학식에 참석하셨었지. 친구들과 공부 열심히 해서 제일가는 하늘나라 작곡가가 되렴. 이모가 응원할게. 다시 한 번 생일 축하하고, 사랑한다 승묵아♡ ***

강신욱 – 단원고 2학년 4반

비가 내립니다.

 

#강신욱.
세상에는 어쩔 수없이 어른이 되어야 하는 아이들이 있습니다.
미처 자신은 알지도 못한채 일찍 어른이 되어가는 아이들입니다.
이런 아이들은 말수가 적습니다.
신욱이도 그런 아이였습니다.

 

신욱이 어머니는 신욱이가 초등학교 3학년을 다닐때 집을 나가셨습니다..
이후 신욱이는 아버지, 할머니. 그리고 네살터울의 누나와 함께 어려운 형편에서 생활해 왔습니다.
그러다 또 할머니께서 5년전에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습니다.

 

이때부터 말수가 줄어들고 행동이 어른스러워지기시작했다고 아버지는 기억하십니다.
고잔초와 광덕중을 거쳐 단원고에 진학한 신욱이는 친구들과 축구와 게임등을 하며 우정을 쌓았습니다.
친구들에게 신욱이는 늘 친근하고 어색함을 전혀 느낄수 없는 친구, 자기가 해야 할 일을 할 때와 놀 때를 현명하게 구분할 줄 아는 친구, 가끔 보더라도 늘 한결같은 편한 친구, 추진력과 리더십을 갖춘 친구로 기억합니다.

 

꾼떡(가래떡을 튀긴 것)을 무척이나 좋아했던 신욱이는 3.3kg의 몸무개로 세상에 나왔습니다.
이후 178cm. 신발 사이즈 280mm까지 자란 신욱이….

신욱이는
방학때에는 전단지 붙이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새벽마다 인력시장에 나가 일거리를 찾기도 했고, 일당 2만원을 받고 사무실 벽의 페인트를 벗기는 작업을 하는등 자기 용돈을 스스로 마련하는 아이였습니다.
일주일 용돈 2.000원을 줘도 500원만 달라던 아이였습니다. 좋아한 500원짜리 꾼떡을 사먹겠다고.,..
이처럼 형편이 어려웠던 신욱이의 어렸을적 장래희망이 슈퍼마켓사장님이 되는 것은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고등학교에 들어서는 돈을 많이 벌기위해 경영학과에 진학하겠다는 꿈을 키웠습니다.
2학년 학급총무를 맡기도 했던 신욱이는 학원에 다니지 않고도 늘 학급성적 3등이내에 들 정도로 공부도 잘했습니다.

 

수학여행 보름전,
대학졸업후 첫 월급을 타 온 누나가 수학여행경비를 대주자 신욱이는 검정티 3장, 양말 3컬레, 수건 석장으로 짐을 꾸려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4월 15일 저녁 신욱이에게서 전화가 왔습니다.
“아빠, 안개가 많이 끼어서 배가 출발을 못할거 같아.나 그냥 돌아갈 수도 있으니까 문 안에서 걸어 잠그지 말아…..”
이것이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그리고
몇일이 천년같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신욱이….
무슨 장난을 걸더라도 맞장구를 쳐 줄것 같은 포근하고 재미있고 믿음직한 아이,
너무 일찍 철이 들어버린 신욱이는 지금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강혁 – 단원고 2학년 4반

★기다렸던 월드컵은 보고있니?
너 없는 하루하루가 너무 길구나★

 

크기를 가늠할 수 없는 하얀돼지가 곁에 누워있는 태몽으로 엄마 아빠곁으로 온 혁이..
혁이는 누나가 있는 남매중에 막내입니다.
뽀오얀 피부에 오동통한 살집, 방긋방긋 잘 웃는데다 성격도 온순해서 부모님은 혁이를 볼때마다 행복감을 느끼곤 했습니다.

 

“어이 #간쟁이 와서 간 좀 봐”

 

오직 네식구의 행복한 미래를 위해 24시간 엄마 아빠가 교대로 운영하는 족발가게의 보쌈양념의 신맛과 짠맛을 기가막히게 구분하는 혁이를 빗대어 아빠가 지어준 혁이의 애칭입니다.

 

밝고 구김살 없이 자라던 혁이에게 사춘기가 찾아오고 아이들이 몸집이 크다고 놀리는 것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은 혁이는 속앓이를 하며 혼자서 조용히 견뎌내는 사춘기를 보냅니다.

 

부모님은 혁이가 미소를 되찾기 위해 아빠는 친구같은 아빠가 되었고 엄마는 애인같은 엄마가 되었습니다.
예의 바르고 밝고 건강하게만 커 달라는 소박한 바람처럼 혁이는 사랑스러운 예전의 모습으로 돌아왔습니다.
친구들과 축구도 하고 춤도 재법 추며 유머도 잘하는등 성격도 변하였습니다.

 

혁이는 수학여행을 가지않겠다고 했습니다.
수학여행설문지란에 가지않겠다고 자신이 서명하고 싸인도 했습니다.
가지않겠다는 혁이는 왠지 잃어버릴 것 같다고 휴대폰을 두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부모님은 혁이의 마지막 음성을 듣지 못했습니다.
가지않겠다는 혁이를 데리고 수학여행을 인솔했던 생존하신 4반 담임선생님은 3년여의 시간이 흘러간 지금까지도 아무런 답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나의 아들 혁아 ,지금 뭐하고 있니?
축구는 하고 있니?
점심은 먹었니? 혁이가 보고 싶어 했던 월드컵은 보고 있니?
2010. 남아공 월드컵때. 박수를 치며 탄성도 지르고 해설하며 빨개지던 혁이 얼굴이 생각나 눈물짓는다.
언제나 밝고 순수한 영혼을 가진 천사혁아 무엇이 그렇게 급해서 아빠 곁을 떠나 다시는 못 올 그곳으로 머나먼 수학여행을 갔니? 엄마는 네가 가고 싶어하지 않았던 수학여행을 보냈다고 자책을 하고 눈물짓는다.”
같이 희생된 #오준영과 절친이었고 반에서는 #정차웅과 짝꿍이었습니다.

 

아토피 피부염 때문에 매일밤마다 아토피약과 여드름 약을 꼼꼼히 발라주고 엄마와 같이 잠이 들었던 혁이는 지금 엄마곁에 없으며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권오천 – 단원고 2학년 4반

권오천….
천사가 전해 준 먹음직스러운 커다란 배를 품은 태몽을 안고 태어난 소년,
오천이는 열살터울 형이랑 여섯살 터울 누나가 있는 세남매의 막내입니다.

 

오천이는 어렸을때부터 영어를 잘 했습니다.
외국에서 교환학생으로 온 친구들이 집에 놀러왔을 때 자연스럽게 대화할 정도로 영어를 잘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가족들은 오천이가 동시통역사나 외교관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합니다.

 

그렇지만
오천이는 생후 여덟달만에 걷기 시작하고 세살때부터 인라인스케이트를 탈 만큼 운동신경을 타고났고
태권도, 복싱, 이종격투기등 운동을 더 좋아했습니다. 체육관에서 운동복이 흠뻑 땀에 졎도록 땀흘리는 걸 좋아했습니다.
오천이는 대학에 가서도 계속 운동을 하고 싶어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며칠 전에 오천이는 어머니와 진로 문제로 진지하게 대화를 했습니다.
이 때 오천이형이 오천이를 도와줘서, 결국 어머니는 오천이가 운동을 계속 하는 걸 허락하였다고 합니다.

 

오천이는 꿈은
연세대학교 체육교육학과에 진학해서 체육선생님이 되는 것이 장래 희망이었습니다.
언젠가 미국 유학도 가고 싶고, 스무 살이 되면 유럽 여행도 하고 싶은 꿈 많은 소년이었습니다.

 

건축설계사로 가족을 위해 열심히 살아오시며 지역사회에서 봉사활동도 많이 하시던 아버지가
암투병중에 돌아가시고 어머니와 함께 자랐지만 오천이는 효심도 강하고 바른 학생이였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리더십이 강하여 1학년 때에는 반장을 할 만큼 교우관계도 좋았습니다.
오천이의 마지막 모습을 본 친구는
“오천이는 우리를 구하려다 다리를 다쳤는데도 끝까지 같이 있던 친구들 먼저 밖으로 내보냈다.
오천이 덕분에 나는 밖으로 무사히 빠져 나왔다”
며 오천이의 마지막을 떠올렸습니다.

 

오천이 형 권오현 님은 지난해 동생 오천이를 위해서 안산에서 팽목까지,
또 팽목에서 안산까지 도보를 하기도 하였습니다.

 

[사랑하는 아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 오천아!
너무 보고 싶다, 오천아. 보고 싶어서 애간장이 다 녹아내려버렸다.
사랑하는 아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아들 오천아! 이렇게 애타게 불러도 대답이 없다.

 

뭐든지 열심히 하던 너를 보며 엄마는 늘 감사하게 생각했다.
그렇게 멋지게 커서 바른 인성을 가진 훌륭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게 너의 인생 계획이었는데.
너무나 아깝고, 아쉽고, 안타까워서 눈물만 나는 구나. 아들아, 엄마 아들아!

 

아들! 엄마는 네가 그렇게 가고파 했던 미국 유학을 보낸 거라고 생각하기로 했단다.
사랑하는 아들! 수능을 앞둔 지금, 엄마와 형 그리고 누나는 체육교육학과에 가겠다며 애쓴 너에게 박수를 보낸다.

 

언젠가 네가 수능을 마치고 대학에 들어가면 같이 유럽여행을 가자고 했지?

 

그렇게 하자. 우리 아들 멋지게 노력했으니까. 그래 보자]

김건우 – 단원고 2학년 4반

엄마를 아주 많이 닮았던 건우는 별명이 ‘헤보’ 일만큼 웃음이 많았고,
작은 체구에 목소리가 엥엥 거려서 친구들 사이에서는 ‘모기’라는 별명으로 불리웠었고,
주위에 늘 친구들이 많았고, 누나의 아들인 조카 라익이를 끔찍히도 예뻐 했고,
아빠와 함께 나누는 치맥 한 잔에 행복해 하던 아이였지요.
건우는 그렇게 무언가를 크게 욕심내거나, 커다란 꿈을 가진 아이가 아니었어요.
요리를 잘해서 아내와 아이들에게 사랑받는 남편과 아빠가 되겠다는,
남들이 보기에는 조금은 소박해 보일 만큼, 작은 꿈을 꾸었지요.

 

그리고 건우는 엄마에게 참 다정하고 예쁜 아들이었어요.
엄마와 예감도 감정도 잘 통했고,
요리 학원을 다니며 몸이 약한 엄마를 위해 직접 음식을 만들어줬고,
지병인 공황 장애로 인해 늘 근심, 걱정이 많았던 엄마에게 항상 전화로 자신의 위치를 알려줄만큼 착한 아들이었지요.

 

2014년 4월 16일 아침.

 

같은 반 친구 수현이가 남긴 동영상 속 기울어져가는 세월호에서,
시시각각 침몰해가던 세월호에서, 건우는 친구들에게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있었지요.
마지막 아들의 모습을 영상을 통해 본 엄마는, 겁이 많고 심약했던 엄마는,
건우가 정말 사랑했던 라익이를 위해 이 부조리한 세상을 바꿔야 한다는 마음으로,
안산 분향소에서 광화문까지 1박 2일의 행진에 참여할 만큼 강한 엄마가 되었습니다.

 

건우를 오래오래 기억하기 위해 백 살까지 살겠다는 엄마는,
아들을 향한 그리움에 건우의 신발을 신고 거리를 걷고,
예쁜 꽃과 나무를 천 가방에 그려 넣으며,
그렇게 하루 하루 건우를 위해 온 정성을 바쳐 주님 품에서 아들이 평안하기를 빌고 또 빕니다.
건우의 엄마로 17년 동안 너무나 행복했기에,
다시 태어나도 건우의 엄마로 그 시간을 건너겠다는 엄마의 다짐이,
저의 마음에 커다란 울림을 전해줍니다.

 

아빠와 엄마의 소중하고 착했던 아들.
4반 김건우 세례자 요한을 잊지 말아주세요.
건우를 위한 엄마의 간절한 기도에 함께 마음 모아 주세요.
아픔도 슬픔도 없는 곳에서 건우가 편안하기를, 행복하기를 진심으로 기도해 주세요.

 

건우는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김대희 – 단원고 2학년 4반

☆ 우리아들 부드러운 목소리 한번 들어 뵜으면, 따뜻한 손 한번 잡아 봤으면, 통통한 볼 한번 만져 봤으면,보고 싶고 궁금한게 너무도 많은데…☆

 

치킨 피자를 좋아하고 음악듣는 걸 좋아했으며 운동과 무술을 좋아해 필리핀 무술 칼리아르시스 사범을 꿈꾸었던 아이, 대희는 살을 빼기 위해 중학교때부티 권투등을 시작했다가 운동에 취미를 붙였고 3년전부터는 영화(아저씨)(본 아이덴티티)
에 등장하는 칼리아르니스의 매력에 흠뻑 빠졌다합니다.
매일 학교 수업이 끝나면 안산에서 서울화곡동에 있는 도장까지 지하철을 타고 다녀올 정도로 열씸이였구요.

 

대희는
4월 16일 오전” 배가 침몰한다, 나는 괞찮아!” 라는 메시지를 부모님께 동시에 보냈습니다.
엄마는 대희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받지 못했습니다.
사고후 이틀후에 돌아온 대희는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 나는 괜찮아 ]

 

시 : 신호현

 

세월호가 침몰한다
나는 괜찮아

 

우리나라 최대 여객선
침몰한 적 없는 세월호

 

사람 많이 태워도
화물 마구 실어도

 

선실 불법 개조해도
사용연한 마구 늘려도

 

세월호 기울어져도
선실이 안전하단다

 

조용히 있으란다
가만히 있으란다

 

나는 괜찮아
세월호가 침몰한다.

김동혁 – 단원고 2학년 4반

” 엄마, 아빠 내 동생 어떡하지. 엄마 아빠 사랑해요 ”

 

세월호 침몰당시 배 안에 생존해 있던 한 남학생이 동영상을 통해 세상에 마지막 남긴말,

 

동혁이는 두 살 터울 여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맏이 입니다.
어릴적 엄마와 헤어진후 아빠와 셋이서 살던 동혁이는 직장때문에 바쁜 아빠를 대신해 동생을 챙겼습니다.
“이럴 땐 엄마가 있었으면…..”
그립지 않은 엄마였지만 몸가누기도 힘든 자신보다는 났겠지 싶어서였습니다.

 

이런 동혁이에게 중3때에 새엄마가 생겼습니다.
세 식구끼리만 산 지 7년 만이었습니다.
외롭고 기댈 가족이 많지 않았던 동혁이에게 외할머니, 외삼촌, 이모들이 생기고 든든한 형이 생겼다고 동혁이는 뿌듯해 했다고 합니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이었던 동혁이도
한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엄마”라고 부르며 새엄마를 끌어안고 뽀뽀를 했다고 합니다.
동혁이는 자신에게 정성을 쏟아주는 새엄마를 무척이나 좋아했다고 합니다.
특히 엄마가 끓여주는 김치찌개는 밥 세그릇을 해치울 정도로 좋아 했습니다.
“엄마가 있으니까 참 좋다”
어느 때부턴가 이 말은 동혁의 입버릇이 되었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 엄마는 동혁이에게 새 신발을 사줬습니다.
하지만
동혁이는 신발이 너무 맘에 들어서 아껴 신겠다며 다른 신발을 신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동혁이의 꿈은
웹디자이너가 되는 것이 었습니다.

 

” 모든 일 실력 쌓기”

 

동혁이의 목표입니다.
동혁이가 가장 친했던 친구들은 순영이, 하용이, 윤수, 종영이 등이었습니다.
그중에서도 순영이와 하용이는 그림을 잘 그렸고 동혁이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동혁은 순영이와 함께 만화 동아리에 가입을 하였고 어릴 적부터 지녀왔던 프로게이머 대신 웹디자이너라는 새로운 꿈을 갖게 된 것입니다.
또한 동혁이는 같은반 친구인 슬라바를 가장 친하고 싶어했던 친구였다고 합니다.

 

동혁이는
하나뿐인 여동생을 아끼고 좋아했습니다.
동혁이의 책상위 메모등에서 동생과 동생친구들의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여동생은 오빠가 다니던 단원고에 재학중입니다.

 

또한 동혁이는
20여년이 넘게 용접공으로 살아온 아빠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효자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어머니 #김성실님은 동혁이 생일에 동혁이 생일상을 차리지 않았습니다.
동혁이와 같이 수학여행을 떠났던 친구들이 아직 돌아 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한 동혁이와 친구들을 위해 삭발을 하셨고 대책위에서 열심히 투쟁하셨습니다.
지금도 416합창단과 국민조사위등에서 열심히 활동하고 계십니다.

4월 23일 새벽 MP3와 함께 가족의 품에 돌아온 동혁이는 같은반 친구인 #박수현군의 휴대폰에
“엄마 아빠 내 동생 어떡하지 엄마 아빠 사랑해요” 를 마지막으로 남기고
안산 하늘 공원에 짝꿍 #임요한_빈하용_김범수등 많은 4반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 엄마의 사랑 ]

 

시 : 신호현

 

오랫동안 외로움에
사랑이 그리웠다지
엄마의 품이 그리웠다지

 

자랑스런 아빠와
가족이 마지막 걱정이었다지
엄마 아빠 내동생 어떻하지

 

엄마의 새 신발
맘에 들어 아끼고 싶었지
그래서 마음이 미어진단다

 

동혁이는 알지
이 어른들의 무능함을
얼마나 부끄럽고 못난지를

 

동혁이는 알지
엄마 아빠의 꿈을
엄마 아빠의 사랑을

 

그러니 용서하리라
더 나은 세상을 위해
여동생의 새 희망을 위해

김범수 – 단원고 2학년 4반

“가족들은 보고 싶어서 매일 꿈속에서라도 기다리고 있단다.
편지를 써보고 책상에 앉아 과거를 생각해 보기도 하고…
엄마는 애써 아픔과 고난을 극복하려고 몹시 애쓰고 아빠는 한 점 누 가 될까 해서 할수 있는한 여러방면으로 유가족들과 함께하고….”

 

범수의 꿈은 국군장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186cm. 85kg. 신발사이즈 310밀리미터. 체격이 좋고 힘이 장사였던 범수였습니다.
운동을 좋아해서 초등학교때 태권도 2품을 따기도 했고 장교가 되려면 공부도 잘해야 한다며
매일 밤 10시 넘어서까지 학교 야간자율학습과 학원에 다니던 아이였습니다.

 

범수의 책상에는
목표로 “공부하기”라고 씌여져 있습니다.
자신의 꿈을 향해 열심히 달리던 범수의 모습이 떠오릅니다.
덩치는 컷지만 범수는 손재주가 많아서 종이접기와 음식 만들기를 잘했습니다.
단원고 제과제빵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만든 과자와 빵을 항상 엄마에게 먹으라고 가져다 줬던 착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다른 또래 아이들처럼 게임도 잘하고 만화책도 즐겨 봤다고 합니다.

 

범수는 늘 집에 오면 “엄마. 나 옴” 하고 인사를 했으며 엄마는 범수를 “범” 이라고 불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순간에도 아빠에게 긴급한 상황에도 차분하게 전화로 알리며 “꼭 살아서 가겠다”고 했던 범수였습니다.
아버지도 구명조끼 확인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안내방송 잘 듣고 대처하라고 하였지만결국 9시 17분에 전화는 끊기고 말았습니다.

 

자라면서 성실하고 말도 잘 들었던 범수였고 힘이 장사였고 운동을 잘했던 범수였기에 꼭 살아서 돌아 올 거라 여겼지만
범수는 끝내 차가운 몸으로 가족의 품에 돌아오고 말았습니다.
범수아버님은 다리가 불편하신 몸으로 범수와 친구들을 위해 싸우고 계십니다.
절룩이는 발걸음으로 키만큼 큰 남천화분을 안고 3층 계단을 오르시고 수술후에는 도보행진을 떠난 가족들을 대신해 혼자서
가족대기실을 지키시는등 누구보다도 진한 부정을 보셨지요.
최근에는 매주금요일마다 안산에서 피켓을 들고 두시간씩 서 계시기도 합니다.
모든게 사랑하는 범수와 친구들을 위한 일이라 하시며….

 

범수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용진 – 단원고 2학년 4반

4반 #김용진

 

솟을 #용. 나아갈 #진. 김용진
용진이는 외아들입니다.
어려서부터 엄마를 닮아 피부가 하얗고 아빠를 닮아 목이 가느다랗고 손가락이 길어서 여자 아이 아니냐고 놀림 아닌 놀림을 받기도 했습니다.
긴손가락으로 피아노도 잘치고 호기심이 많았던 용진이는 뭐든 새로운 걸 배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신호등”
얼굴이 툭하면 빨개진다고 친구들이 용진이에게 붙여준 벌명이랍니다. 날이 추워도, 부끄럽거나 쑥쓰러워도 신호등처럼 빨개져서 그렇게 불리웠다고 합니다.

 

용진이의 꿈은 마술사 #최현우처럼 세계적인 마술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부모님의 이혼후 내성적인 성품과 주눅 들어있던 성격이 마술을 통해 적극적이고 자신감이 생겨 성격도 밝게 변하였다고 합니다.

 

용진이는 사춘기시절부터 아버지랑 둘이 의정부에서 살게 되었습니다. 의정부고등학교 마술부동아리에 들어간 이후에는 부산 동부산대학교 매직엔터테인먼트학과에 진학하고자 했습니다.
아버지의 사정으로 엄마가 있는 안산단원고로 전학을 왔지만 용진이는 마술사의 꿈을 놓지 않았습니다.

 

주말이면 의정부로 달려가 마술연습을 쉬지않고 하였고 번화가나 노인정을 찾아가 무료공연을 펼치곤 했습니다.
전학온 이후 주말마다 의정부를 찾았던 용진이에게 수학여행은 단원고의 친구들을 사귀기에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수학여행 장기자랑 시간에 용진이는 친구들에게 보여 줄 마술공연을 준비했습니다.
카드마술과 탁구공 마술등을 위해 트럼프카드, 탁구공, 검은 손수건, 물병등을 챙기며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길에 오른 용진이의 꿈은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진용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웅기 – 단원고 2학년 4반

“안녕 아들.
너에게 미안하고 또 미안하고
너무 미안해서 다른 할말이 없어
엄마가 할 수 있는게 없네.
할 수 있는 만큼 하는데까지 해볼게.
사랑하고 또 사랑한다.”

 

웅기는 9살.7살 많은 형이 둘 있는 삼형제중에서 늦둥이 막내입니다.
어머니는 전혀 생각하지도 못하고 있을때 태어난 늦둥이 막내라서 정말 감사했고, 선물같았던 아이라고 하셨답니다.

 

평소 말수가 적고 차분한 성격이었지만 친구들과 있을 때는 밝고 명랑하고 때로는 수다스러웠습니다.
형들과 나이 차이가 많이 나서 특히 큰형을 어려워했지만 형들을 부모님처럼 잘 따르고 좋아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나 형들에게 “싫어요” “아니요” 하는 법없이 잘 따랐지만 자기주관도 뚜렸해서
본인의 생각을 분명하게 말할 줄 아는 웅기였습니다..
휴대폰으로 무한도전을 즐겨봤고 유재석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웅기의 마지막말은
카카오톡 단체방에 남긴
“사랑합니다. 모든분들을…”이었습니다.
이후 웅기는 수학여행 하루전날 아버지가 사 준 줄무늬 남색남방에 주황색 구명조끼를 입고 4월 29일에야 부모님곁으로 돌아왔습니다.

 

웅기 이야기는 KBS도전골든벨에 동갑네기 조카 한모양이 출연하여 웅기 “애기삼촌”의 이야기를 들려줬던 부분을 편집하여
방송하여 화제가 되기도 하였습니다.
세월호 사고시 오보를 양산하며 거짓기사를 올렸던 언론의 한심한 작태를 다시금 볼 수 있었습니다,

 

웅기 아버지는 웅기 영정을 가슴에 품고 십자가를 메고 진도에서 광화문까지 도보행진을 하였으며,
어머니께서는 국회와 청운동, 팽목에서 웅기와 친구들을 위해서 싸우셨습니다.
웅기와 나이는 같고 생일도 빠르지만 서열상 조카인 한모양이 들려주고 싶었던 이야기를 모아봅니다.

 

“정말 기억하지 않고 싶다고 해서 모른척하고 내 일이 아니라고 해서 못 본척 하는 비겁한 어른이 되고 싶지 않습니다.
피지도 못하고 진 우리 삼촌 모두가 잊어도 내가 기억할게.애기 삼촌 ,
이 세상 모두가 삼촌을 잊어도 우리는 삼촌의 억울함을 절대 잊지 않을게, 사랑해”

김윤수 – 단원고 2학년 4반

윤수는 남동생이 하나 있는 형제중에 맏이입니다.

 

어린시절 윤수는
책을 읽어주지 않으면 잠이들지 않는 아이였습니다.
스스로 글을 읽을 수 있게 되면서부터는 늘 책을 끼고 살았습니다.
책읽고, 글쓰고, 그림그리는 게 윤수의 취미생활의 전부였습니다.
윤수는 학교에서 책누리 클럽에서 활동했습니다.

 

윤수의 꿈은
유명한 방송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오빠랑 말을 해본적이 없어서 아쉬워요, 그래도 단합갔을 때 오빠가 노래부르는 걸 많이 봤죠,그런 모습도 아직 제 기억속에 남아 있어요…..
4월16일 새벽 06시30분쯤에 “배고프다”라고 단톡에 말하신게 아직도 제 기억속에 생생하게 남아 있어요.
이 기억은 제 기억속에서 평생지워지지 않을거고 제가 잊으려고 하지도 않을 거예요……
오빠 안경 벗은 모습도 보고 싶었는데…”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을 돌보고 용돈이 생겨도 자기용돈의 절반을 동생을 위해 아껴둘 정도로 동생을 아끼고 사랑했습니다.
시흥이 집이면서도 다양한 특별활동을 보장하는 단원고가 좋아 지원했던 윤수는 자신이 시나리오를 쓴 “바른말 고운말” 3분짜리 동영상을 제작하였습니다.
#홍종영이 주연이고 #김동혁_최민석이 조연. #박선균이 편집, #김민석이 음향. 그리고 작가겸 촬영감독을 윤수가 맡았습니다.
이아이들 모두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윤수의 처음이자 마지막 작품입니다.

 

윤수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정현 – 단원고 2학년 4반

“어느 날은 엄마에게 발톱 잘라달라고 아기처럼 애교도 부리고 어느 날은 같이 꼭 껴안고 누웠다가 문자가 오면 엄마에게 팔베개해주며 문자를 했던 내아들아. 이런 아들을 어떻게 장가 보낼까했는데….
“엄마는 개미 엉덩이,엄마 배꼽은 너무 깊어 물을 담가도 되겠어”라며 코에 뽀뽀도 해줬지. 엄마를 이만큼 사랑하고 있다고 확인해준 나의 왕자님 정현.
꽃 한번 활짝 피워보기도 전에 내품을 떠난 아들아. 너를 생각하면 뼈와 살이 찢기다 못해 녹아 없어지는 것 같구나.
너의 손을 잊을 수가 없어.
만져보기라도 할 수 있으면….널 언제나 안아볼 수 있을까.
그날이 빨리 왔으면..천국에서 만날 그날이..”

 

정현이는
연년생 형이 한 명 있는 형제중에 막내입니다.
성격. 취미등은 달랐지만 누구보다 우애 깊은 형제였습니다.

 

“#알랑꽁꽁” 정현이,
“알랑꽁꽁”은 정현이와 엄마와의 모자지간이 얼마나 깊고 사랑하는 사이였는지를 가늠하는 단어입니다.
엄마의 어떤 표현에서도 정현이를 애칭할때
이 단어는 빠지지 않습니다.
너무착해서 정현이 같은 아들이면 열명을 키워도 힘들지 않겠다던 엄마의 보물이였습니다.

 

별을 좋아하고,
볼링부 활동을 하며 기타를 잘치던 정현이는
중학교때까지는 국가대표 축구선수가 꿈이였습니다. 볼을 드리볼해서 바람처럼 수비수를 제친후 골인시키는 환희를 초등학교부터 중학교때까지 느꼈습니다.

 

하지만
고등학교에 입학한뒤 1학년 담임선생님을 만나며 공부에 취미를 붙였습니다.
선생님의 믿음에 특유의 성실함으로 답을 보인 정현이 였습니다.
단원고 선생님들은 “많은 학생들을 가르쳐 봤지만.정현이처럼 열심히 공부해 성적을 올리는 아이는 처음 봤다”고 엄마에게 말했다 합니다.

 

정현이의 꿈은
세계사 교과서를 모두 외우다시피 할 정도로 역사공부에 빠졌고 학국교원대 역사교육학과에 들어가 역사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였습니다.

 

정현이는
또 보컬부의 #이다운과는 절친중에 절친입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친구였으며 기타를 같이 치며 보컬부 활동을 하며 깊은 우정을 쌓아갔습니다.
정현이는 보컬부의 비쥬얼 담당이였다합니다.

 

250명 희생학생중에는 슬픈우정을 남긴 아이들이 많습니다.
정현이와 1년후배 ㅇㅇ와의 우정 또한 마찬가지입니다.
사고후 정현이를 그리워하는 후배를 정현이 부모님이 따뜻하게 감싸 안았고 졸업할 때까지만 며눌삼자하여 아끼고 간혹 만나 식사도하고 용돈도 주고 하였습니다.
이소녀는 그동안 받은 용돈을 모아 정현이와 꼭 신고 싶었던 커플 나ㅇ키 슬리퍼를 사서 정현이 자리에 올려놓기도 하였습니다.
어느날 분실 되어 버린 슬리퍼…
이 슬리퍼를 찾기위한 한바탕 소동…
이소녀와 정현이를 이어주기위한 저의 노력에도 끝내 슬리퍼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아이들의 슬픈 우정을 이어주지 못한 못난 어른들…

 

정현이는
2014년 네가지의 목표를 세웠습니다
1;학교성적 Top 50위 안에 들기
2:솔로 탈출하기
3:용돈 50만원이상 모으기
4:역사교과 만점받기
그러나
정현이의 목표와 꿈을 실은 세월호는 4월16일 진도앞 바다에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한 살 어린 동생을 잃은 충격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바깥출입을 못하고 있는 우애깊은 형.
이승철. 버즈. 신해철. 김광석을 좋아하고 잘생긴 얼굴에 옷맵시를 자랑했던 정현이…

 

정현이는 세월호 사고후 9일만인 4월 24일에야 엄마 품에 안겨 친구들과 함께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오빠 잘 지내고 있어? 우리 못본지도 오래 됐다,그치?
수학여행 가기 전날에 실감 안난다고 나는 서울렌드간다고 들떠있고 그러다가 내일 보자며 그랬자나. 나는 오빠보려고 다음날….
복도 기웃기웃 거렷는데 오빠 보지도 못하고 수학여행 보냈어….내가 진짜 오빠한테 미안해 한번이라도 볼 걸…너무 보고 싶어……..중략……
오빠는 축구할때랑 공부할때가 제일 멋있었다. 인사한다고 서로 장난도 치고 한국사도 얘기하고 나 공부하는 것도 체크해주고 비록 같이 지낸 시간이 짧았지만 나한테 소중하고 잊지못하는 기간인거 같아. 좋은 추억 남겨줘서 고마워요 오빠. 우리 다음생에도 다시 만나요.내가 세상 누구보다 더 잘해줄게요. 우리 다음생에도 다시 만나요.
못다한 얘기도 많이 해여. 그때는 제가 오빠 좋아하고 있었다고 꼭 말할게요.
진짜 진짜 사랑해요. 잊지않을게요.
못해줘서 미안해요
사랑해요 정현이 오빠.”

김호연 – 단원고 2학년 4반

“형보다 공부 잘하자”

 

형을 자랑스러워 했던 호연이의 좌우명이자 2학년 4반 반장이었던 김호연의 목표였습니다.
호연이의 형은 동생의 영정을 들고 일주일 동안 제주도를 다녀왔습니다.
사랑하는 동생 호연이의 수학여행을 마무리시켜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호연이는 하고 싶은게 많은 아이였습니다.
공부도 잘했지만 운동에 남다른 소질을 보여 고교 야구 선수로 스카우트 제의까지 받았습니다.
기타와 피아노 연주도 수준급이었답니다.
한번 관심을 가진 일은 무엇이든 도전하는 욕심꾸러기였지만 예의 바르고 진중한 성품을 지녔다고 합니다.

 

한번은 호연이가 운동하는 것을 보고 연예기획사에서 오디션을 보러오라고 제의한 일도 있었습니다.
호연이 어머님도 궁금하니까 한번 가보라고 하셨지만 호연이는 공부에 방해가 될것 같다며 가지않았다고 합니다.

 

예의 바른고 신중한 성격에 애인같았던 호연이를 잃은 어머니는 서명운동 등에 열심히 활동하셨습니다.
세월호가 기울어진 것을 알아챈 호연이는 일찌감치 갑판으로 나왔지만
“선실에서 기다리라”는 방송을 듣고 다시 들어갔다가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이제 직접 만지고 듣고 볼 수도 없지만 시간이 지나서 다시 만나면 그때도 내 동생이 너 였으면 해.
형이 지금까지 못 해준 거 다 해줄게. 형이랑 그땐 좋은 추억도 많이 쌓자.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는 이 나라에 살고 있어서 너무 미안하구나.
내 동생 호연아…..”

박수현 – 단원고 2학년 4반

“엄마 사랑해요”
“엄마도 우리아들 사랑해”

 

수현이는 곧잘 사랑을 말했습니다.덕분에 사랑은 늘 수현이 곁을 감싸안았습니다.
그런만큼 수현이는 섬세했고 모든사람에게 서글서글한 아이였습니다.

 

수현이는 위로 한 살 많은 누나가 있는 막내입니다.
꼬마시절 수현이는 젠틀맨이었다고 합니다.
여자얘들을 잘 챙기고 유치원에서는 누나를 보호해 주었습니다.
밝고 씩씩하고 태권도를 좋아하고 책읽기를 좋아해서 아는 것도 많았습니다.

 

빵과 치킨 콜라를 좋아했던 수현이.
중학교 1학년때에는 선생님을 설득해 밴드 ADHD를 결성했습니다. 8명의 멤버중 단원고로 진학한 5명 모두 이번 세월호 참사로 희생되는 비극을 맞았습니다.

 

수현이는
음악도 좋아했지만 시처럼 글쓰기 또한 좋아했습니다.
단원고에서는 또 연극부에서도 활동했습니다.
연극부에는 한살많은 여학생이 있었습니다.

 

“수현이는 친구 같고, 연인 같고, 때론 오빠 같았어요”
친구들이 수헌이 여자친구로 오해했지만 사실은 한 살 많은 친누나였습니다.

 

수현이는
일본어를 전공하고 싶어했으며 대학에 가서도 ADHD멤버들과 음악을 계속 연주하고 작곡을 공부하고 싶어했습니다.
엄마에게는 늘 다정히 말하고 딸같은 아들,
아빠에게는 듬직하고 친구같았던 수현이가 어느날 “항소문”을 내밀었습니다.

 

“보통집에서는 남자를 심부름시키지 않는데 왜 우리집만 반대입니까?”

 

이에 대해 아버지는 답변서에 이렇게 적었습니다.

 

“다른집 아들은 혼자 알아서 하더라”

 

이처럼 단란하고 화목했던 수현이네도 세월호의 비극을 피해가지 못했습니다.
참사가 일어나고 수현이를 잃은 뒤에 아버지는 수헌이가 남긴 #버킷리스트를 발견했습니다.

 

수현이가 죽기전에 꼭 해보고 싶었던 스물 다섯가지를 작성한 목록입니다.
그중에 죽기전 공연 20회의 꿈을 이뤄주기위해 ADHD멤버 세명과 홍대앞클럽 맴버들이 수현이의 열일곱살 버킷리스트공연을 이어가기도 했습니다.

 

이 공연은 2015년 12월까지 단원고 반별공연과 미수습자를 위한 공연으로 이어졌습니다.

 

꿈많은 소년 박수현은 결국 꿈을 이루지 못한채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엄마 아빠 사랑해요”

 

수현이가 마지막에 전한 메시지입니다.

 

수현이가 남긴 동영상에는 친구들끼리 구명조끼를 나눠주고 보이지 않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선생님에게, 가족들에게. “사랑”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발 밑에 매서운 칼바람 지나는 날에도

 

나를 버티게 해준 그대가 있기에

 

나는 지금 살아있습니다.

 

그동안 은혜 잊지않고

 

앞으로도 잘 살아 가겠습니다.

 

ㅡㅡㅡㅡㅡ중학생 박수현ㅡㅡㅡㅡ

박정훈 – 단원고 2학년 4반

“우리 정훈이 착한애 입니다
부탁드립니다.
살려주세요.
만약 돌아오지 못하다면 꼭 좋은 곳으로 보내주세요”

 

학교에 드나들며 본 수천 수만의 포스트잇 중에서 가장 가슴아프게 봐왔던 내용중에 하나입니다.

 

정훈이는
위로 네살 많은 누나가 있는 1남 1녀중에 막내입니다.
전주에서 태어나 초등학교때 안산으로 이사하였습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수학과 과학을 좋아했다고 합니다.
특히 손재주가 뛰어나서 조립을 척척 해냈습니다.

 

정훈이는 항상 누나를 먼저 챙기고 자기보다 주변을 생각하는 의젓한 모습을 보였습니다.

 

또한
시원한 외모답게 운동도 잘하고 성격도 서글서글한 이른바 남자다운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후배들과 축구도 하고 농구도 하면서 같이 놀아 주었고 선배들과 친구들에게 농담도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어려서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정훈이네 가족은 어어니가 홀로 생계를 책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남매가 서로 의지하는 시간이 길었고 종종식사를 함께하는 시간에는 손재주가 좋은 정훈은 요리를 해 내놓기도 했습니다.
토마토스파게티. 떡볶이. 찌개도 잘 끓였고 밥도 잘했습니다.
어두운밤 누나의 퇴근길을 마중나가는 오빠같은 동생이었고 엄마에게는 남편같은 든든한 아들이었던 정훈이였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다음날인 2014년 4월 17일 세월호에 탔던 학생들의 선후배,
다른학교 친구들, 동네주민분들, 일반시민 500여명이 단원고등학교에 모였습니다.
저녁 8시30분부터 예정된 행사였지만 한시간 전부터 모여서 “기다릴게” “돌아와줘” “엄마랑 밥먹자” “희망을 잃지마” 등
세월호안에 갇혀있는 아이들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마음을 종이에 써서 들고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정훈이가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후배도 있었습니다.
단원고등학교옆 단원중학교에 다니는 정훈이 후배는 평소에 같이 운동하고 놀았던 정훈이가 무사히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비가오는 와중에도 한시간이 넘도록 자리를 지켰습니다.

 

그러나
모두의 바램을 뒤로하고 정훈이도, 짝꿍 #안형준이도, 250명의 아이들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정훈이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가족과 친구품에 안긴후 지금은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빈하용 – 단원고 2학년 4반

하용이는 삼형제중에 장남입니다.
어릴적 과학동화전집 테이프를 듣고 또 듣고를 반복하며 글을 깨우칠 정도였습니다.
조용한 성격에 풍부한 상상력,
연필과 스케치북만 있으면 그림을 그리던 소년,

 

빈하용에 대해 많이들 아시다시피 하용이는 꿈은 #일러스트레이터 였습니다.

 

그림 그리는것을 좋아해 연습장, 스케치북 뿐만아니라 가정통신문, 수업유인물등 빈공간이 있는곳이라면 어디든 그림을 그렸습니다.
그런 하용이가 미술학원에 다니기 시작한 것은 고작 1년 남짓.
남들보다 조금더 건장한 하용이에게 부모님은 태권도를 시켰고 어려운 집안 사정을 잘 아는 하용이는
“미술이 하고싶다”고 용기내기까지 꽤시간이 걸린 탓이였습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하용이는 특유의 감각과 성실함으로 하루가 다르게 발전했다합니다
미술학원에서도 :”미래가 기대되는 학생” “학원의 유망주”라며 하용이를 주목했습니다.
어쩌면 우리나라에서 손꼽히는 예술가가 됐을지도 모를 일 이었습니다.

 

그러나
지난해 4월 16일 세월호와 함께 침몰한 꿈많은 소년의 미래를 확인할 길이 없어져 버렸습니다.
하용이는 조용한 성격이였지만 주변에서는 “미술 유망주:로 통했습니다.

 

부모님은
체격이 큰 하용이를 위해서 폭이 넓은 하용만의 전용의자를 구해줬습니다.
대부분의 미술학도들이 음악을 들으며 그림을 그리지만 하용이는 음악을 듣지 않고 오로지 그림만 그렸다합니다.
하용이의 그림은 지난해 서촌겔러리와 미국에서도 전시 되었습니다.

 

또한 하용이는
바쁘신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의 식사도 챙겨주고 청소도 하는등 효자이기도 했습니다.

 

천재적인 그림솜씨를 뽐내던 하용이의 꿈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어버렸고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슬라바 – 단원고 2학년 4반

*모델 오디션 합격하기*
슬라바의 꿈입니다.
슬라바의 책상위에는 열두살 어린 동생이 그려놓은 그림이 있습니다.
형의 죽음과 이별이 그림에 표현되어 있어 한참을 먹먹하게합니다.
슬라바는 아빠가 한국분이고 엄마가 러시아분입니다.

 

#바체슬라프_리콜라예비치_세르코프

 

“바체슬라프”는 러시아어로 높은 사람, 귀한 사람이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슬라바는 열살때 엄마와 함께 한국에 왔습니다. 한국 말이 서툴러서 공부는 잘 못했지만 운동을 잘했습니다.
특히 수영을 잘해서 수영국가대표가 되는 게 꿈이였습니다.
하지만 국적문제가 걸려 포기를 하고 모델의 꿈을 키웠습니다.
한국 국적을 위해 귀화신청을 했던 슬라바는 9월이면 주민등록증이 나온다며 설레임에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친구들 사이에서도 슬라바는 “붙임성 있고, 잘생기고, 엉뚱하고 재미있는 아이” 라서 인기가 좋았습니다.
특히
같은반 #정차웅군과는 어디를 가도 같이 다니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였습니다.
차웅이가 사고 첫날 나왔듯이 수영도 잘한 슬라바는 살아서 나왔을 거라고 기대했던 이유이기도 합니다.

 

집에서 슬라바는 12살 차이나는 꼬마동생 준성이에게 세상에서 제일 사랑하는 형이였습니다. 슬라바는 동생과 집에 둘이 있는 것을 무척 좋아해서 부모님이 안계셔도 동생의 밥을 챙겨 먹이고 목욕시키고 꼬옥 껴안아서 재웠다고 합니다.
이제 유치원을 졸업한 준성이가 한글을 배워서 처음쓴 단어는 “단원고” “유가족” 그리고 “슬라바”입니다.

 

슬라바를 억울하게 잃고 가족분들과 함께 투쟁하시던 슬라바의 가족곁에는 슬라바의 동생 준성이도 늘 같이 하였습니다. 국회에서도, 광화문에서도 거리에서도 서명대에서도 준성이는 늘 함께였습니다.

 

4반 부모님들은 준성이를 4반의 마스코트로 명찰도 만들어주고 서명전에도 함께 하였습니다.
약간 서툰 한국말로 자식잃은 억울함을 담아 이나라를 비판하시던 어머니와 천진난만한 표정과 슬픈눈으로 형을 잃은 슬픔을 안고 있던 준성이의 표정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습니다.
슬라바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안준혁 – 단원고 2학년 4반

세월호 갑판위에 모인 단원고 학생들이 “3.2.1.발사~!”를 외치는 순간 세개의 섬광이 바다위 하늘로 솟구치며 세월호 선상 불꽃놀이가 시작됩니다.

 

이때까지만 하여도 아이들은 즐거운 수학여행의 기분에 흠뻑 빠져 있었습니다.

 

곧 다가 올 비극은 아무도 모른채….

 

준혁이도 친구들과 새로 산 후드집업을 입고 불꽃을 바라보았습니다.

 

#안준혁,

 

준혁이는 3.39kg의 몸무개로 할머니. 할아버지의 첫손자로 엄마. 아빠의 첫 아이로 세상에 태어나 집안의 사랑을 듬뿍 받는 아이였습니다.
온몸으로 웃을 줄도 알고 착하고 성격도 좋아 “착한돼지”라는 별명도 생겼습니다.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위해 라면을 퓨전적으로 끓이고 전을 부칠땐 치즈를 올리는 등 동생들을 살뜰히 챙기는 효자아들이었습니다.

 

중학교때까지의 준혁이의 꿈은 요리사였답니다.

 

자신의 가게를 갖고자 가게 이름까지 생각해뒀던 준혁이였습니다.

 

” 안 먹어 보면 안 돼지”

 

엄마 말을 잘 듣던 준혁이는 그러니까

 

“착한돼지가 아니면 안 돼지” 였습니다.

 

또한 준혁이는

 

수영, 피아노, 미술, 줄넘기, 합기도, 특공무술등에 다재다능했고 아빠와 함께하는 축구를 특히 좋아했다고 합니다.

 

다음의 이야기는 저와 함께 아이들의 생일글을 기록했던 이동순 님이 작년에 들려준 준혁이 이야기입니다.

 

준혁이는 여동생과 남동생을 둔 삼남매의 장남이었어요. 그래서 엄마에게 준혁이는 세 개의 심장 중 가장 큰 심장이었지요. 맞벌이 하시던 부모님을 대신해 동생들을 돌보던 준혁이~~그러다보니 동생들에게 빈대떡도 만들어주고, 여러 재료를 넣어 라면을 끓여주는 등 이것 저것 독창적인 요리를 해주게 되었지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준혁이는 요리 하는 것을 좋아하게 되었대요. 그렇게 동생들을 살뜰히 돌보느라 어릴 때부터 밖에 잘 나가지 않던 준혁이는, 일하고 돌아오신 엄마에게 학교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들려주던 듬직하면서도 다정한 아들이었어요.

 

고등학교에 진학 후 중국에 대한 관심이 커지게 된 준혁이의 꿈은 중국 전문가~~엄마에게 “중국에서 일할 기회가 많아진다니 중국어를 배워볼까?”라고 말할 정도로 중국에 대한 관심을 키워 나갔던 준혁이~~4월 15일, 다녀오겠다는 인사를 남기며 수학여행을 떠나는 준혁이를 꼬옥 안아주며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오라고 배웅한 엄마~~하지만 16일 아침, 세월호는 304명의 소중한 목숨과 함께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에 침몰하고 말았고, 준혁이는 애타게 기다리시던 부모님과 사랑하는 동생들을 걱정시키지 않으려는 듯, 잠든 것처럼 깨끗한 모습으로 4월 18일 돌아와 주었습니다.

 

그렇게 첫 번째 심장을 잃은 엄마는 지금도 준혁이의 페북에 절절한 그리움 담아 글을 남기고, 준혁이의 동생들은 맛있는 요리를 해주며 돌봐주던 오빠와 형의 빈자리를 느끼며 슬픔에 잠겨 있습니다. 먼 여행을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못하는 아들의 명예 주민등록증을 만들어야 했던 준혁이 어머니의 슬픔을 우리 모두 잊지 말아야 합니다. 250명 고운 아이들이 채 피우지 못하고 떠난 많은 꿈들을, 사랑을, 우정을~~지켜주지 못한 우리들은 별이 된 아이들과의 약속을 꼭 지켜야 합니다. “잊지 않을게. 끝까지 지켜줄게.” 라는 그 약속을~~

안형준 – 단원고 2학년 4반

“나는 너희 보다 한 살 많은 대학생이야.
작년에 난 대학입시밖에 머리에 안 넣으려고 노력하던 어리석은 고3이었어.그래서 작년 동안 너희 일을 잊어버리려 애썼어.지금, 지난 1년의 내모습을 얼마나 후회하고 있는지 몰라. 너무 늦게 돌아와서 미안해. 하지만 그만큼 남을게. 우리 대학생들의 힘으로 세월호 진상규명 해낼게. 너희 억울한 희생, 피해 우리가 다 밝혀낼게. 얼마나 원통하니 지금쯤 학교다니며 공부한 결실을 볼 수능시험 준비를 열심히 하고 있어야할 너희들인데….
좋은 곳에서 편히 쉬어.여기서 못다한 꿈 그곳에서 이루길 바라.
정말 미안하고 사랑해”

 

1997년 9월 16일 한가위,
엄마 배 속에 있는 중에 딸이라는 암시와는 달리 아빠를 꼭 빼어닮은 외모의 남자아이가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형준이는 외동아들입니다.

 

2학년 목표
(자격증따고 내신 등급 올리기.)
반청소는
슬라바와 함께 복도 청소 당번,

 

형준이가 유창한 중국어를 구사하면서 한국과 중국을 자유로이 왕래하는 직업을 갖기를 원했던 부모님의 뜻에 따라 중국에 조기유학을 해서 초등학교 4학년까지 중국연길 조선인학교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어린 나이에도 혼자 씩씩하게 잘 지냈지만 어느날 집에 전화해서 엄마.아빠가 보고 싶다고 한국에 가고 싶다고 했답니다.
형준이 아버님은 그렇게 형준이가 다시 한국에 들어 온 그때부터 진짜 가족이 된 것 같다고 하십니다.

 

형준이는
성실하고 책임감있는 성격이였다고 합니다.
엄마랑 나란히 서서 요리도 하고 엄마의 패션에도 일일이 참견하면서 티셔츠와 바지를 코디도 해주는 세심하고 친절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때론
자칭 “야무진 초밥”을 만들어 쟁반에 맵시있게 진열하는 걸 좋아하기도 했습니다.

 

중학교때는 방송반에 들어가 활동했고,
중국어 특기를 살려 제2외국어로 중국어가 교과과정에 들어 있는 단원고에 진학한 형준이는 고등학교때는 농구에 재미를 붙여 경빈이와 김민석. 최민석등과

 

1학년때에는 조기유학 경험을 살려 중국어 국가고시 3급 자격증에 도전하여 300점만점에 294점이라는 높은 점수로 자격증을 땄고 3학년때까지 6급자격증을 따서 한양대 중국어과에 입학하는 것이 꿈이였습니다.

 

2014년 4월 15일 저녁에 형준이는 아빠한테 밝게 웃는 얼굴로 배에 타는 사진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였습니다.
형준이 부모님은 진도체육관에서 일주일동안 형준이를 기다렸습니다.
4월23일,
형준이 어머님이 너무 힘들어 아버님이 함께 팽목항으로 나갔는데 바로 그때 형준이가 물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엄마가 오는 걸 알고 엄마 품으로 돌아 온 거라고 형준이 아버님은 말씀하십니다.
형준이는 지금 안산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영원히 잠들어 있습니다.

 

아빠가 출장을 떠나고 천둥치고 폭우 쏟아지는 날이면 큰 덩치로 엄마옆에 스스럼없이 베개를 들고와 누워서 온갖 시시콜콜한 얘기까지 나누며 엄마를 편하게 해주던 형준이…

 

형준이 집에는 모든게 그대로 있습니다.
보름밖에 타지 못한 자전거.
공부하던 책상과 책들. 중국어 교본. 농구공. 농구화. 몸 냄새가 그대로 배어 있는 옷등..
모두 주인을 기다리며 다소곳이 앉아 있습니다.

임경빈 – 단원고 2학년 4반

*누구도 미쳐 몰랐단다. 너의 소중함과 너의 존재감을.항상 곁에 있고 항상 부르면 대답할 줄 알았지.
마냥 건강하게 잘 뛰어 놀고 항상 우리 곁에 있을 줄 알았는데.
지금 너의 빈자리는 우리들의 마음속에 너무나도 크게 자리 잡고 있구나.*

 

경빈이는
여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맏이입니다.
동생도 잘 챙겨주고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도 듬뿍 받았던 경빈이…

 

경빈이는
일곱살때부터 태권도를 시작해 각종대회에 나가 우승도 많이 했습니다.
엄마는 운동을 너무 좋아했던 아들의 성적이 떨어질까 걱정이 많았습니다.
아들이 운동보다 공부를 하기를 원했기 때문입니다.

 

경빈이는 그런 엄마와 아빠의 고민을 알고서 공부를 하겠다고 하였으며 검사나 변호사가 되는것을 꿈꾸기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살가운 아들이자 자상한 오빠였으며 매주 일요일엔 부모님과 함께 등산도 가며 간혹 아빠와는 PC방에 가서 게임을 할 정도로 가까웠다합니다.

 

학교에서는
시간만 나면 친구들과 축구와 농구를 함께하며 어울렸고 운동도 잘하고 착한데다가 성격까지 홭달해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난 4월16일.
경빈이는 그날밤 사고현장근처 바다위에서 발견되었습니다. 경빈이 부모님은 사고소식을 듣고 설마하며 진도로 갔습니다. 그날밤 11시경 목포한국병원에 경빈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다시 목포로 달려갔습니다.
그런데 경빈이가 어떻게 발견돼서 여기까지 오게됐는지, 부모님은 그누구에게도 경위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또한 가슴에 심전도를 꽂았던 자국이 있는데 누가.어디서 한 것인지도 알려주지도 않았고 이미 병원을 두차례나 거쳐서 왔다는데 아무런 기록도, 사진도 없었다고 합니다.
왜 참사가 일어났고, 왜 구조하지 않았고, 왜 방치했는지 경빈이 부모님도, 국민도 알고 싶어합니다.

 

경빈이 어머니는
단식부터 최근은 목포신항을 지키며 경빈이와 친구들의 진실을 찾기 위해 몸이 부숴져라 싸우고 계십니다.

 

경빈이 짝꿍은 #김웅기군이며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임요한 – 단원고 2학년 4반

요한이는 이름에서와 같이 독실한 기독교인의 집안이고 아버지가 목사님입니다.
어렸을때부터 몸이 약했기에 아버지가 무척 아끼고 사랑하는 아들이기도 했답니다.

 

요한이는
태어나자마자 희귀병을 앓아서 갓난 아기때 6개월이나 인큐베이터에서 지냈습니다.
게다가 초등학교때에는 장파열을 겪고 고등학교에 올라와서는 급성늑막염을 앓아 몇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그래도 요한이는 여동생을 잘 돌봐주는 든든한 오빠였습니다.
그리고 목사님이신 아버지가 해외에 나가실 때면 어머니를 도와 집안을 떠 받치는 든든하고 믿음직한 아들이기도 했습니다.
요한이는 어른이되면 아버지처럼 목사님이 되는 것이 꿈이였습니다.

 

요한이는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지 20일이 되던 5월 5일 어린이날에 아버지가 사 주신 녹색후드티를 입고
부모님품으로 돌아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장진용 – 단원고 2학년 4반

“내가 너를 어텋게 생각하는지
나 조차도 가늠할 수 없지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예쁜 말들은
다 해주고 싶은 마음은 확실해.
사계절에 떠오르는 달들처럼 모습은 변하더라도,
꾸준히 널 생각한다는 것도……”

 

“장진드레곤” “짱진용”.
진용이는 누나가 있는 남매중에 막내입니다.
하얀피부에 잘생긴 진용이,
“남잔 자기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거다”
아빠의 짧지만 명료한 원칙을 지킬줄 아는 멋진 사내이기도 했습니다.

 

진용이는
세상에서 가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했던 모범생이었습니다.
패션에 관심이 많았고 치킨을 좋아했지만 얼굴에 여드름 날까봐 조심하는 사춘기 소년이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 진용이는 잘 생기고, 착하고, 성격이 좋아서 친구들한테도, 후배들한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인터넷 등에 진용이가 남긴 흔적은 많지 않지만,
학교 교실에 있는 진용이 자리에는 후배들과 친구들이 진용이를 그리워하는 흔적들이 가득합니다.

 

후배들에게 진용이는 사진으로만 봐도 여전히 ‘짱 멋있는 오빠’입니다.
그리고 친구들에게 진용이는 비올 때마다, 날이 추워질 때마다,
혹은 별일 없어도 그냥, 쉬는 시간마다 보고 싶고 생각나는 그리운 친구입니다.

 

진용이는 세월호 참사 사흘째인 4월 18일 오전에 가족들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4월 20일에 #김초원 선생님, #남윤철 선생님과 함께 치러진 진용이 발인식은 단원고 학생 희생자 중에서 첫 발인이었습니다.
진용이가 떠나는 마지막 길에는 가족과 친척 분들은 물론이고,
어렸을 때부터 알던 진용이를 알던 친구들까지 100명이 넘게 모여 진용이를 배웅했습니다.
진용이의 짝꿍은 #김건우입니다.

 

진용이는 경기도 회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차웅 – 단원고 2학년 4반

2013년 12월 31일 지금분향소가 있는 화랑유원지 단원각, 제야의 종소리를 들으며 차웅이는 소원을 빌었습니다.

 

“올해에는 여자 친구 좀 생기게 해주세요!”

 

“짜웅”이라 불리었던 정차웅군,
차웅이는 형이 하나 있는 두형제의 막내입니다.
상남자를 꿈꾸는 차웅이는 애니메이션마니아입니다.
짱구. 스펀지밥, 도라에몽과 라바는 차웅이의 둘도 없는 친구들입니다.
엄마가 만들어 주는 게 세상에서 제일 맛있다던 차웅이는 아빠와 스킨쉽도 좋아하고 부모님께 안마도 해주고 신발 정리며 설거지 그리고 쓰레기 배출등 집안일도 잘 도왔습니다.

 

십대들이 즐겨 입는 브랜드옷이나 신발을 사주려해도
“에이 그런거 필요 없어요. 다 부모님들 등골브레이커라니까!”라며 실용적인 중저가 제품으로 낙착을 보던 차웅이 입니다.

 

검도가 3단이고 평소에도 불의를 보면 참지 않는 정의로운 멋진 아들이기도했습니다.

 

2014년 4월 15일

 

“엄마. 내가 혹시 여행가서 전화 못 하더라도 뭐라 하지 마세요”

 

“무슨 소리야? 무조건 전화해야지! 아무리 재미없어도 전화해야지”
차웅이는 날아 갈 듯한 발걸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날 저녁 차웅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엄마, 인천항에 도착했어!”

 

“그래. 별일없지? 잘 놀다와!”
“응!”
“우리 차웅이, 누구 아들?”
“응. 엄마 아빠 아들!”

 

차웅이의 마지막 말입니다.

 

차웅이는
세월호 침몰사고가 난 4월16일 오전 10시 25분께 침몰해역에서 전남201호 어업지도선에 의해 구명조끼도 입지 않은채 발견 되었습니다.
침몰하는 배에서 자신의 구명조끼를 친구에게 주고 또다른 친구를 위해 맨몸으로 바다에 뛰어 들었기 때문입니다.

 

차웅이는 해경123정 위에서 심폐소생술을 받았지만 끝내 12시 20분께 세월호 사고 첫 희생학생으로 숨지고 말았습니다.
조금만 더 빨랐더라면…..

 

차웅이의 장례식은
부모님이 “세금으로 치르는 장례”식 이라며 가장 값싼 장례용품을 쓰자는 요청으로 장례를 치렀습니다.

 

차웅이는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5월에 가족과 함께 경남 남해로 아버지 어머니 형과 함께 가족 여행을 떠나기로 돼 있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의 침몰과 함께 모든게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학교에서는 볼링부에서 활동을 했던 차웅이는 햇살 가득한 창가에 짝꿍 #강혁군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 검도 사범의 꿈 ]

 

시 : 신호현

 

친구 위하여
자기 목숨 버리면
이에 더 큰 사랑 없나니

 

배가 침몰하고
생사의 갈림길에서
목숨 벗어준 친구

 

검도 제일 잘해
검도 사범 꿈꾸던
쾌활했던 장군 웅이

 

검도는 남에게
상처 주는 것 아니라
남 지켜주는 정신 따라

 

무도의 길 떠난
진정한 검도 사범
단원고 2학년 정차웅

 

차웅이는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휘범 – 단원고 2학년 4반

휘범이는
세살어린 남동생이 있는 형제중에 장남입니다.
엄마가 해주시는 된장찌개와 제육볶음 육개장을 좋아하는 휘범이는 엄마에게 딸처럼 섬세한 아들이고 엄마 마음을 누구보다 이해해주는 큰 아들이었습니다.

 

휘범이는 꿈은
자동차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였습니다.
휘범이는 얌전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예의 바른 학생으로 소문이 자자했습니다.
또한 미술에 남다른 소질을 보였던 휘범이는 소묘는 물론 각종디자인, 만화를 자주 그렸습니다.
휴일이면 집에서 엄마와 함께 1박 2일이나 김제동의 토크쑈를 즐겨보곤 했던 휘범이…

 

2014년 방송인 김제동씨와의 서명전에서 아들의 진실을 밝히고자 노력하시는 어머니 신점자님은
“우리집은 4월16일 휘범이를 잃고 모든 것이 멈춰버렸습니다. 아들이 수학여행을 떠난지 82일이 지난 오늘까지 돌아오지 못한 이유를 꼭 알고 싶다. 휘범이 동생을 위해서도 미래를 위해서도…..”

 

저의 기억속에도 학교에 오시면 항상 휘범이 책상에 앉아 그리워하는 모습,
늘 포스트잇 남기던 모습, 크리스마스트리 만들때,
교실에 남천화분을 놓을 때도 손목에 깊스한 상태로도 가장 먼저 앞장서서 달려와 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수학여행후 새로 이사한 아파트에 돌아오지 못한 휘범이…
휘범이가 사용할 방과 세면대의 주인을 잃어버린 휘범이의 칫솔 얘기 또한 잊을 수 없습니다.
희범이가 좋아하는 음료 포카리스웨트를 형의 책상에 국화꽃과 함께 올리던 동생수범이와 아버지의 무거운 어깨를 또 잊을 수가 없습니다.

진우혁 – 단원고 2학년 4반

3.3kg으로 태어난 우혁이는 외동아들입니다.
아들이었지만 딸 못지않게 애교도 많고 다정한 성품이었으며 늘 엄마의 마음을 헤아려 준 섬세한 아들이었습니다.

 

우혁이는 그림. 라면. 게임 세 단어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우혁이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은 라면입니다.
먹기도 잘하고 끓이는 것도 아주 잘했습니다. 진우혁이라서
진라면이라고 별명지었을 정도입니다.

 

우혁이는 그림을 그리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언제나 밝고 착하고 규칙을 잘 지켰습니다만 사진 찍기만은 싫어했습니다.

 

목표 : 공부하기
2학년 4반 34번 진우혁의 목표입니다.
성실하고 착하고 평범했다는 우혁이,
하지만 한국 사회에서 가장 힘들고 어려운게 평범하게 사는 것이지요.
우혁이는 늘 온유함과 고요함을 지니고 다녔다고 합니다.

 

고등학교 때에도 주말이면 아침마다 침대에서 세 식구가 아들 팔 베개를 해 주면서 뒹굴뒹굴 했습니다.
그 10분간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매일매일이 행복하길 바라면서 그렇게 살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4월 20일에 돌아온 우혁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우혁~~!♡
내아들~~♡
엄마야~~♡♡
독일에서 누나가 가져 올 때 먹지않던
“하리보”지만
입맛이 변해서 혹여 먹을까 해서 사와 봤어.
먹어보고 친구들과 나눠먹어….
초코 과자도 먹고.
(근데 엄마가 먹어본 바로는 “하리보”말고는 독일과자는 그닥….)
엄마 담에 또 올게 사랑한다 우혁.”

 

“사랑하는 아들 우혁아!
너와 함께한 지난 날들
엄마아빠는 무척행복했단다.
너를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게…..
고맙고 행복한 일들만 가득했어
앞으로도 우리 세식구 사랑하며 살자.
엄마 아빠 가슴속에 영원히 남아 있을거야
사랑한다~! 내아들♡♡♡♡
엄마 아빠가♡♡”

최성호 – 단원고 2학년 4반

외동아들,
강하게 키워야 한다는 신념.
그렇지만 이 모든게 타의에 의해 무너져버린 인타까운 현실.
“보고싶다. 사랑한다”
아들앞에서 엄하기만 했던 아버지의 외침입니다.

 

성호의 꿈은
소설가가 되는 것이였습니다.
어렸을적부터 다양한 분야의 책을 읽는것을 좋아하다보니 이런 꿈이 생겼다합니다.
성호의 책상위에는 2학년 목표로
“심리학개론독파. 내신향상. 건강증진”이라는 구체적인 목표가 붙여져 있습니다.

 

성호는
엄마보다 바느질과 뜨게질을 잘하고, 공부도 잘하고 섬세하며 피아노등 악기들도 잘다뤘던
팔방미인 성호였습니다.
요리도 잘해 토요일마다 재량수업일에는 학원에 가서 케익도 만들어 오고 스파게티도 만들어오곤 했다합니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식기전에 엄마에게 드리겠다며 서둘러 집에 들고와서 엄마에게 드리기도 했습니다.
성호어머니는
성호가 직접 만든 케잌이 정말 맛있어 입에서 살살 녹았다고 추억하십니다.
출장이 잦았던 아빠의 빈자리를 채우며 엄마의 남편이고 아빠이고 아들이었던 성호였습니다.

 

“외동이라 버릇없다”
라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평소 엄하게 키웠던 탓인지 성호는 그런 부모의 뜻에 따라 예의 바르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로 자라줬습니다.

 

단원고 1학년 2학기에 가족이 뭉쳐서 살자는 아빠의 뜻에 따라 순천으로 전학갔던 성호는 6개월만에 다시 안산으로 이사왔고 성호도 친한 친구들이 있는 단원고로 다시 돌아왔습니다.
이미 순천에서 수학여행을 다녀왔던 성호에게 엄마는 이번 수학여행은 안가면 안되겠냐고 물었지만 성호는
“이번 수학여행은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랑 가는 거잖아”라며 들뜬 마음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2014년 4월 16일 모든 국민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세월호는 진도앞 바다에서 침몰하고 말았습니다.

 

성호는 오전 10시 07분
“전화가 잘 안터져. 걱정하지마. 살아서 나갈께”
라는 짤막한 문자를 어머니께 보냈습니다.
사실 이시각은 세월호가 상당히 기운 급박한 시간이였지만 착한 성호는 걱정하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이렇게 마지막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해외에서 파견 근무중이셨던 아버지도 외아들의 사고 소식을 듣고 급거 귀국하였습니다.
2013년 12월 마지막으로 봤던 아들은 4월20일 차가운 주검으로 돌아왔습니다.
여름방학때 아버지를 만나러 수학여행을 떠나기전에 말레이시아행 비행기표를 예약해 뒀던 성호였습니다.
이준우_김건우(5반큰건우) 이재욱 김재훈 최성호
이들을 단짝친구들입니다.
성호어머니 엄소영님은 이친구들 부모님들과 함께 매달 초록우산 어린이 재단을 통해 우간다 여자아이들을 지원해오는 활동을 하고 계십니다.
아이들 이름으로 오는 우편물을 통해 아들 성호가 영원히 살아 있음을 느낀다고 합니다.
효자 아들, 엄마의 영원한 친구같은 아들 성호는 지금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한정무 – 단원고 2학년 4반

“형 여행 너무 오래 갔었지.?
이젠 여행가지마 알았지?
형 사랑해.
나 너무 이뻐해 줬을때가 생각나.
그때 잊지 않을게…….. 동생.”

 

정무는 어릴적부터 말수가 적고 의젓했습니다. 자라면서 말썽 피운적도 엄마속을 썩인 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정무의 어릴적 이름은 정재입니다.
정무는 강원도 금진 외가에서 어린시절을 보냈습니다.
이후 엄마 아빠의 사정에 따라 금진에서 안산으로, 안산에서 유구로. 유구에서 다시 금진으로, 경기도 일산으로,
파주로, 다시 안산으로 쉴 새 없이 터전을 옮겨 다녀야만 했습니다.

 

정재에서 정무로 이름이 바뀐 것도 이 무렵의 일입니다.
어린 정무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는데 어려움을 겪자 작은 요크셔테리어를 데려와 키우기도 했습니다.

 

매일 아침 정무는 엄마가 깨우기도전에 먼저 일어나 학교갈 준비를 했고 전날 밤늦게까지 일한 엄마가 피곤해한다 싶으면 행여나 엄마가 깰까봐 조용히 혼자 밥을 먹고 학교에 가곤 했습니다.
엄마에게 단 한번도 뭐 사달라고 졸라본 적도, 때를 써본적도 없었으며 정도 많아서 키우던 강아지가 집을 나가
잃어버렸을 때에는 장장 삼 개월 동안 보고 싶다고 울어버릴 정도였다고 합니다.
잦은 이사와 전학을 거쳐 마지막으로 엄마와 외할머니를 떠나 아빠가 있는 안산으로 와서 고등학교에 진학할 때까지 정무는 용기가 남아 있는한 누구에게도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을 기대지 않고 자신을 튼튼하게 지키며 살아가자고 다짐했습니다.

 

정무는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합기도 도장에 다니며 대회에 나가기도 했으며 친구들과 어울리며 운동을 즐겼다고합니다.
고기나 통닭을 좋아했지만 운동을 많이해서 날씬한 체격이었습니다.

 

드럼을 두들기고 샌드백을 치며 단련했던 정무,
천명에 가까운 사람을 태울 수 있다던 하얀 페리에 올라탄 정무는 세월호 참사 6일만에 돌아와 안산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내아들 정무야.
엄마가 정말 미안해.네가 허락만 해준다면 다음생에 우리 다시 엄마와 자식으로 만나.
그땐 엄마 곁에서 오래오래 행복하자.
너를 알던 모든 사람들이 하나 같이 네가 너무나도 착했다고 하더구나.
너무 아까운 우리정무.
많이 많이 사랑하고 너무너무 보고 싶다.”

홍순영 – 단원고 2학년 4반

순영이는 열세살 많은 누나가 있는 남매중에 막내입니다.

 

순영이는 참으로 순하고 착한아이였습니다.
아기때는 잘울지도 않고 울음끝이 길지도 않았고 투정도 많지 않았으며 잘먹고 잘 자랐습니다.

 

“부푼꿈을 안고 사업을 시작한 안산에서 낳은 막둥이가 저 애예요,

 

사업실패로 남편은 건강을 잃었고 유일한 희망이던 아들마져 하늘나라로 먼저 보냈어요.
밤이면 내 손 꼭잡고 “마미, 좋은 꿈꾸세요”
말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에 선한데…”

서른 일곱살에 낳은 막둥이라서 더욱 특별했던 순영이.
IMF 여파로 사업을 실패하였고 아버지는 스트레스성 뇌출혈로 쓰러졌습니다.
경제적 어려움을 안 순영이는 초등6학년때 사준 패딩 점퍼를 덩치가 커진 고등1학년 때까지

 

입고다니며 불평 한마디 않는 속깊은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키172Cm. 몸무개 100kg의 후덕한 몸집 만큼 효자이기도 했습니다.

 

순영이의 꿈은 애니메이션 작가가 꿈이였습니다.

 

2013년 어버이날에는 월 3만원의 용돈을 모아 커피를 좋아하는 어어니에게는 머그컵을,
거동이 불편한 아버지에게는 양말을 선물하기도 하였고 주말에는 아버지의 공원산책을 돕기도
하였으며 엄마와 외출할때에는 “마미가 이세상에서 제일 이뻐” 하며 팔짱을 끼던 아이였습니다.
엄마를 마마. 아가, 공주, 마미라고 잘 부르고 엄마가 늦은밤에 동네가게라도 나갈라치면
“안돼요, 누가 우리공주 납치라도 해가면 어떻게요. 내가 갔다 올게요”라며 펄쩍뛰었고

 

엄마대신 집안일을 잘 돕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중학교때부터 단원고까지 꾸준히 만화동아리에서 활동하였으며
박수현의 제안으로 그룹 ADHD멤버들 커리커처를 그려주기위해 그룹에 가입하였으며
8명의 멤버중에 단원고로 진학한 순영이 포함 (박수현,오경미,김건우,이재욱)5명이 희생되는 비극을
맞이하였습니다.

 

“경비가 35만원이래 비싸잖아. 여행비용 마련하느라 엄마가 고생하는거 싫다”며
수학여행을 가기 싫어 했던 순영이를
“평생 추억이 될 것 “이라며 설득해 수학여행을 떠나 보낸 엄마의 심정은 오죽하실까요?
15일 밤10시에 갑판위에서 친구들과 찍은 사진과 함께
“엄마, 나 잘있음~!”
이란 문자메시지를 보냈으며
그 짧은 한마디가
순영이의 마지막 인사가 되었습니다.

 

“엄마가 텃밭에서 야채 키우는 거 좋아하니까 나중에 꼭 정원있는 집에서 모시고 살거야”라던
순영이의 바람은 못다핀 청춘과 함께 깊은 바닷속으로 가라 앉고 말았습니다.
엄마와 함께 고구마순을 손질하기도 하고 빨래를 게고 잠들기전 가스 잠그는 것과 문단속도 하고 순영이와 엄마는 한자리에서 꼭 안고 잠이들곤 했습니다.
그토록 다정한 밤에 순영이는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엄마하고 오래오래 이렇게 살아야지”

 

하지만 순영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