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김담비 – 단원고 2학년 3반

담비는 정의로운 성품을 가진 아이었습니다. 옳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분명하게 표현했고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대신해 싸우기도 했습니다.

 

담비는 맺고 끊음이 똑 부러지면서도 다정다감한 성격이었습니다. 속이 깊고 따뜻해서 주변에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앞장서 도와주곤 했습니다.

 

담비의 꿈은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정의로운 변호사가 되는 것이 었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담비는 성실상을 2번이나 받을 정도로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담비는 가족들의 사람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방학이면 동생과 함께 강원도 외가에서 지냈고 외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의 이모님의 사랑을 듬뿍 받았습니다.

 

담비는 적극적이고 흥이 많았습니다.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놀 때는  테이블위에 까지 올라갈  정도였습니다.

 

4월 21일 담비가 돌아오던 날, 진도 체육관에서 잠깐 새우잠이 든 큰 이모의 지친 꿈속으로 담비가 찾아왔습니다.그건 담비의 위로였습니다.

“머리는 늘 담비가 손질해 줬어요.수학여행 가기 전날 담비가 손질해 준 머리라서 자를 수가 없어요…”

아이들을 잃기 전까지 이 사회를 믿었던 부모님들,..
우리가 조금 더 정의로웠더라면 하는 회환과 함께 오늘도 거리에 서 계십니다.
담비가 키웠던 고양이 “초롱이”도 담비가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이면 문앞에 한참을 서 있다 돌아선다고 합니다.
담비는 친구들과 함께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도언 – 단원고 2학년 3반

 

도언이는 재주가 많은 아이였습니다.피아노 연주, 글짓기, 연극까지 다재다능했습니다.

 

 

 

도언이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학교 선생님을 무척 존경했습니다.

친구들과의 사이에서 도언이는  고민상담사로 통했습니다.친구들에게 먼저 웃으며 다가가는 성격이라 인기가 참 많았다고 합니다.

 

도언이와 엄마는 사이가 각별했습니다.

도언이는 ‘엄마의 아침 인사로 학교에 가면 기분이 좋고, 엄마의 목소리 들으면서 등교를 하면 발걸음도 가볍다.언제나 엄마와 같이 있고 같이 살고 싶다’ 라고 쓰기도 했습니다.

도언이와 엄마는 같이 엄마랑 전국 여행을 다니고 유적지 탐방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4월 15일 밤, 도언이는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 라고 했습니다. 안타깝게도 그 말은 도언이가 남긴 마지막 말이 되었습니다.

도언이는 4월 23일에 돌아와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빛나라 – 단원고 2학년 3반

빛나라와 김혜와은 가까운 친구였습니다. 둘을 평생을 친구로 지내기로 약속하며 우정 서약을 하기도 했습니다.

 

빛나라는 듬직한 맏딸이었습니다. 가족들을 사랑했지요.

 

나라는 수학여행 기간과 아빠 생일이 겹치는 바람에 아빠의 생일을 같이 보내지 못해 미안해 했습니다. 그렇지만 아빠는 별로 개의치 않았습니다. 앞으로 같이 보낼 생일이 많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4월 16일. 수학여생지에서 사고가 났습니다. 나라는 부모님께 전화를 해

“엄마, 빨리 기도해줘”, “아빠, 배에 물이 차는데 무서워요.나 데리러 와”
라고 했습니다.

전화를 받고 깜짝 놀라신 부모님은 당장 팽목항으로 달려갔습니다. 그러나 며칠이 지나도 아이들은 구조되지 않았습니다.

빛나라 아버지는 절박한 마음에 딸을 구하겠다며 바다로 뛰어 들려고 시도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결국 나라는 수학여행지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김빛나라는 절친한 친구  김혜와와 함께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빛나라 여동생은 지금도 언니를 그리워합니다. 나라 여동생은 언니에게  “시간이 갈수록 언니가 점점 더 보고 싶다.부모님께서 힘들어하신다. 이러다가 부모님까지 쓰러질까 봐 무섭다. 언니가 하늘에서 지켜봐 달라”고 편지를 썼습니다.

 

빛나라 아버님께서는 나라를 기리며 사고 후 가족대책위 위원장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정예진 – 단원고 2학년 3반

1997년 12월 11일
소가 점심을 먹고 한참 낮잠을 잘 시간에 소띠라 팔자가 좋다는 아이는 커다란 알밤 꿈으로 3.7kg의 몸무게로 태어 났습니다

 

“슈퍼스타의 꿈”
“엄마, 나 꼭 동방신기하고 같은 무대에 설 거예요.슈퍼스타가 돼 엄마 호강시켜드릴 테니 그땐 목에 힘주고 다니세용~”

 

꿈 많은 열 여덟살,
예진이는 엄마를 끔찍이 위하던 “친구같은 딸”이었습니다.

 

“무대 체질”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격이 활달했던 예진이의 장래희망은 안산에 있는 서울예술대학교에 진학하여 장래에는
방송계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위해 날마다 연기학원에 다녔고 지난해 4월14일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밤에도 자정까지 연기학원에서
연습할 정도로 자신의 꿈을 위해 열성적으로 달리던 아이였습니다.
뮤지컬을 유난히 좋아했던 예진이,
예진이가 있는 곳엔 노래와 춤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희생학생중에 많은 사진과 영상이 남아있는 예진이는 교정 곳 곳, 교실 곳 곳에 예진이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예진이는 마음씨 또한 착한 아이였습니다.
1학년때부터 학교 봉사동아리 TOP에서 활동하며 주말이면 요양원을 찾아 할머니들 목욕을 시켜주거나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주곤했습니다.

 

단원고의 대장!!!!
정.예.진.
가장 키가 크고, 가장 목소리가 컸고, 가장 열심히 모든 대회를 설렵했고, 늘 친구들을 거닐었고, 가장 성격이 좋았고,
긍정과 씩씩함의 대명사였던 예진이.
최고의 성격 미인 예진이,
친구들의 추천으로 상중에 제일 인정해준다는 봉사상을 받은 예진이,
영어UCC대회. 팝송대회, 포스터대회, 장기자랑대회, 각종경시대회를 휩쓴 예진이.
멋지게 무대에서 댄스로 친구들을 열광케 했던 예진이였습니다.

 

또한 예진이는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순간 순간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금구모”가 대표적인 친구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동방신기 맴버 유노윤호와 함께하는 공연을 꿈꿨던 예진이는 세월호 침몰 엿새만인 4월 22일, 동생 의찬이의 생일날에 엄마품에 안겼습니다.
예진이는 같은반 #김도언과 나란히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고해인 – 단원고 2학년 3반

영수는 늦둥이 막내딸입니다.이해심 많고 배려심 많은 아이였습니다.

엄마가 요리사 자격증 시험을 보러갈 땐 조막손으로 그림과 글로써 부적을 만들어주었던, 사랑하는 딸이었습니다.

영수는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GD의 노래를 부르며 노래방에서 흥을 돋우었고, 친구들과 장난을 치며 농담을 많이 했었지요.

 

역사를 좋아하던 영수는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영수는 하늘 공원에 친구 주희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영수 친구의 편지

“영수야! 잘 지내지?
지난 날을 생각하면 미안한 마음 뿐이야. 너와 속 깊은 이야기를 많이 나눴으면 좋았을 텐데, 장난만 치고 그러지 못한 게 너무 아쉽다.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정말 많은데…… 이제 와서 후회하는 나 자신이 밉다….
네가 있을 때 할 것을……
미안해 영수야.다음 생에는 꼭 다시 만나 못했던 것들 다하자! 사랑해.

김소연 – 단원고 2학년 3반

소연이는 네 살때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소연이를 무슨 일이 있어도 훌륭하게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닥치는 대로 열심히 일했습니다. 컴퓨터 조립공장, 화학공장, 자동차 부품공장, 프레스 공장에서, 몸이 부서지도록 말입니다.

 

아버지는 소연이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집안일도 도맡아 하였습니다. 매일 소연이의 교복, 양말, 신발을 빨곤 했지요.

 

소연이는 아빠와 시간을 보내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매주 아빠가 쉬는 토요일을 손꼽아 기다렸을 정도입니다.

둘은 노래방에 가고, 외식을 하기도 하며  소소하고 정다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아빠와 노래방에 가면 소연이는  아빠를 위해,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 <어머나>,<꽃>  을 불렀습니다.  아빠와 같이, 좋아하는 붕어찜을 먹으러 가서는 밥을 두 공기나 먹었습니다. 아빠가 사오신 햄버거를 받아 들며 아빠 볼에 뽀뽀를 했습니다.

아빠를 좋아하는 소연이는 가끔 아빠에게 “시집 가더라도 아빠 같은 사람 만나야 하는데 만나질까 모르겠어” 라고 하곤 했습니다. 그러면 소연이 아빠는 “아빠같은 사람 어디 있냐.  대한민국에서 단 한사람 만날까 말까여..” 하고 하였습니다.

 

소연이의 꿈은 중학교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위해 밤 늦게까지 열심히 공부하곤 했답니다. 그 노력 때문인지, 소연이는 공부를 잘 했습니다. 성적 장학금을 받아 아빠와 친구들에게 삼겹살을 사주기도 했었습니다.

 

소연이는 봉사 활동을 열심히 했습니다. 주일이면 한부모 가정 집짓기, 집수리 봉사를 하곤 했습니다.

 

소연이는 4월 16일 오전 9시 50분에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오르자
‘아빠 나 데려가 주면 안돼요?’, ‘배에 물이 들어와요.’를 마지막 유언으로 남기고 아빠 곁을 떠났습니다.

 

소연이의 장례를 치르고, 소연이 아버지께서는 소연이가 산 소설책과 참고서가 배달 온 것을 보고 눈물 지었습니다.

소연이 아버지는 그때의 심정을 “그걸 보고 엄청 울었어요.그 책들을 샀을 때 열심히 살려고 그런 거 아니여유, 근디 죽어 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거시유” 라고 표현하셨습니다.

 

사고 후 진도 체육관에서 외동딸 소연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어 “울보 아빠”로 불리웠던 소연이 아버지는  “우리 애들을 다 살릴 수 있었는데 왜 못 살렸는지 ” 진실을 알기 위해 국회에서 투쟁하셨습니다.  청와대 앞에서, 촛불 집회에서, 광화문에서 소연이와 소연이의 친구들, 세월호참사 피해자들, 더불어 우리 모두를 위해 싸우셨습니다.

김수경 – 단원고 2학년 3반

수경이는 2남1녀중에 둘째입니다. 조용하고 착한 딸이었습니다.

 

수경이는 부모님을 사랑했습니다. 엄마 생신이나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수경이는 “효도 쿠폰”을 발행했습니다. 안마해주기, 청소해주기등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어머니 생신 때면 친구들에게 생신 축하 문자를 보내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습니다.

 

수경이는 늘 주위 사람들을 도왔습니다.국제 구호활동가가 되어 외국에 나가서 어러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수경이의 꿈이었습니다.

수경이는 4월16일 오전 8시 46분에 엄마한테 “잘놀다 오겠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수경이는 참사 후 엿새 뒤인 4월 22일에야 “107”번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부모님 품에 돌아왔습니다. 수경이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행사에서 수경어머니가 직접 읽으신 시입니다.

 

《푸른 눈사람》

 

광덕산자락 허리가 끊겨
푸른핓 안산바다는
눈이 시리다

 

소나무꽃
송이마다
피어린 꽃눈을 여는데

 

봄눈 녹은 지
오래도록
늘 한 자리
가을까지 한 자리
눈물 못 꼭대기에
푸른 눈사람

 

옥상에서
맑은
눈을 씻는다
차마 씻지 못해 눈을 감는다

 

수경아 주르륵 주르륵
희미하게 번지다 만 네 얼굴이
아프고 힘든 별
은하수에 흠씬 젖어
여기서 시린 허리
쉬었다 가렴

 

푸른 눈사람 두 팔
봉긋한 두 가슴
으스러지게 안아나보자
아련한 내 사랑아
수경아
수경아
환장할 내 딸 수경아

김시연 – 단원고 2학년 3반

시연이는 어릴 적 엄마가 사준 물개 인형에게 “깨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어딜 가나 이 인형을 갖고 다녀 자연스레 깨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시연이의 꿈은 음악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노래를 들으면 악보를 보지 않고도 바로 기타를 칠 정도로 음악에 소질이 있었으며 피아노, 기타 연주도 수준급 이었습니다.

사교적인 성격으로 어딜 가나 친구들이 많았고, 시연이 집은 동네 친구들부터 학원, 학교 친구들까지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늘 북적댔다고 합니다.

“금구모”.”연극 동아리”. 학교 구석구석 시연이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귤을 좋아했던 시연이는 “나이가 들면 제주도에 살면서 꼭 귤 농장을 할 거예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분향소에 걸린 시연이 영정사진 또한 귤을 들고 깜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연이입니다. 책상 위에도 귤나무가 올려져 있고 생일 상에도 제주도에서 보내준 귤과 오랜지 주스가 올려져 있습니다.

 

“구조대가 왔어요. 구조 되자마자 전화할게요”라며 울먹이는 목소리를 엄마에게 남겼던 시연이는 제주도 땅은 밟지도 못하고 세월호 침몰 5일 만인 4윌 21일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채로 엄마에게 돌아왔습니다.
시연이는 2015년까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있다가 친했던 친구의 곁으로 옮겨져 지금은 일산 장안정사에 친구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시연이 어머니는 시연이와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삭발을 하시기도 하셨으며 특조위 연장을 위해 단식 투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시연이 엄마의 편지

“엄마가 아무것도 못 해줘서 너무 너무 미안해.
바로 앞까지 가서도 못 구해주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힘없는 엄마라서 미안해.너와 함께했던 순간 순간 절대로 잊지 않을게.시연아.”

김영은 – 단원고 2학년 3반

“엄마, 미안해. 아빠. 너무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

영은이가 세월호가 침수되기 직전인 4월 16일 오전 10시 3분에 친구 박예슬의 휴대폰에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영은이는 친화력이 좋아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특히 같은 반 예진,예슬, 수희와 특히 친했습니다.

영인이는 춤을 잘 췄습니다. 영인이가 안무를 맡은 단체 에어로빅이 체육대회에서 전교 1등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영은이는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블락비의 피오로. 그리고 B1A4의 바로를 좋아했습니다.

 

영은이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여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사드리기도 했습니다.

 

귀여운  영은이를 황망히 떠나보낸 부모님의 마음은 아직도 깊은 바닷속입니다.
아버지는 영은이가  잠시 이사 갔다고 생각하고 계십니다. 어머니는 지금도 날마다 영은이를 그리며 안산 분향소 가족 대기실을 쓸고 닦으십니다.

-영은이 친구가 쓴 편지

네가 곁에 없다는 사실이 아직도 잘 믿기지 않아. 그런데 예슬이 핸드폰에서 발견된 너의 마지막 모습을 담긴 동영상을 보니 정말이지 가슴이 미어지는 것 같았어.그 춥고 어두운 곳에서 네가 얼마나 무서웠을까. 상상만 해도 눈물이 나.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건지 … 왜.. 하필 너희였는지…하늘이 너무 원망스러워….
많이 보고 싶고, 고맙고, 미안해. 다음 생에도 우리 꼭 친구 하자.
정말 정말 사랑해.

김지인 – 단원고 2학년 3반

지인이의 어머니는 외동딸인 지인이를 소중하고 귀하게 길렀습니다.

지인이는 밝게 컸습니다. 친구들과 잘 어울렸고, 활달했습니다.

 

지인이는 음악을 좋아했습니다. 큰 상을 탈 정도로 피아노를 잘 쳤고,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싶어하고 싶어했습니다.

 

지인이는 엄마와 사이가 좋았습니다. 지인이와 엄마는 서로에게 다정했습니다. 어린이 되면 엄마의 친구가 되고 싶다며, 지인이는 엄마에게  “어른이 되면 엄마 술친구 해 줄게”라고 하곤 했습니다.

하지만 지인이의 바람은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들뜬 얼굴로 수학여행 짐을 꾸리런 지인이는, 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지인이 친구의 편지

 

《안녕? 지인아.  요즘은 분향소도 자주 못 들리고 안부 인사도 많이 못 했지? 미안해.

벌써 가을이고, 네 생일이라니. 시간이 정말 무섭도록 빠르다. 친구들을 보면  갈수록 얼굴도 점점 성숙해지는데 네 사진만 보면 아직도 애기 같아서, 속상해.

이제 곧 있으면 나도 성인이야. 우리 성인이 되면 같이 술 먹기로 했는데……네가 너무 일찍 가버려서 그럴 수가 없게 되었어. 아직도 그게 너무 서럽고 믿겨지지가 않아. 하늘에서 너희를 왜 이렇게 일찍 데려갔는지 모르겠어.

너희 어머니,아버님도 내일이 되면 또 우실 것 같다.매년 돌아오는 세월호 주기, 네 생일이 될 때마다 정말 슬퍼.시간을 돌릴 수 있다고 하면 다시 돌리고 싶어. 네가 먼저 하늘로 떠나는 일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좋겠어.

우리 매일 같이 밥 먹고 , 수다 떨고. 밤에는 카톡하고 전화했었는데. 네가 우리 집에도 자주 왔었는데… …이제는 다시 그럴 수가 없구나. 보고 싶어.

항상 힘들 때 도와줘서 고맙고, 내 얘기 잘 들어 줘서 너무 고마웠어. 다음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하면 평생같이 친구로 지내자.

그곳에서는 행복했음 좋겠어.무슨 일이 있어도 너 안 잊을 거야. 그러니 걱정하지 마.

박영란 – 단원고 2학년 3반

영란이는 세 자매의 맏이이자 장녀입니다. 영란이는 선한 성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항상 자신보다 동생들과 부모님을 먼저 생각했지요.

영란이는 두 여동생을 잘 돌봤습니다. 동생들에게 간식을 만들어 주곤 했습니다.

부모님께서 아프실 때면 동생들 식사도 챙겼습니다.

 

영란이는 독서를 좋아했습니다. 교내 독서 동아리에서 활동하기도 했습니다.

 

영란이는 친구들과도 사이좋게 지냈습니다. 특히 백지숙, 김수경, 신승희과 친했습니다.

 

4월 16일 오전 9시 47분 영란이는 엄마에게 “배가 기울어 졌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무섭다고 하며 울었습니다. 그리고
9시 53분에 엄마와 아빠에게 카톡으로 ‘보고 싶다’ 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팽목에서 영란이가 바다에서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5일째 밤, 영란이는 엄마의 꿈속에 나타나 ‘곧 돌아갈 테니까 집에 가 있어 ‘ 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거짓말처럼 영란이는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영란이의 꿈은 유치원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영란이는 그 꿈을 펼치지 못하고 사랑하는 가족들과 이별했습니다.

영란이 부모님은 영란이에게 ‘우리 딸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다’ 라고 말해주지 못한 것은 지금도 아쉬워하십니다.

박예슬 – 단원고 2학년 3반

예슬이의 꿈은 디자이너였습니다. 시간이 날 때마다 구두와 옷을 디자인하며 꿈을 키웠습니다.
사고 후 못다 이룬 예슬이의 꿈을 기리기 위한 ‘박예슬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4월 16일 아침,세월호가 전복되기 5분전 예슬이는 낯선 번호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무서웠을 그 순간에도 예슬이는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울지 마. 걱정하지 마. 나 꼭 구조될 거야” 예슬이가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음성입니다.

예슬이는 세월호안에서 찍은 동영상을 남겼습니다. 동영상 속 예슬이는
헬리콥터 소리가 들린다며, 구조대가 왔으니 우린 구조 될 것이라고 친구들을 안심 시킵니다. ‘꼭 살아서 보자’고 친구들에게  얘기합니다.  그 시각에도 선내 방송에서는 ‘가만히 있으라’ 는 음성이 흘러나옵니다.

꼭 구조될 거라는 예슬이의 기대는, 끝내 스러졌습니다.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 승객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슬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예슬이 여동생은 언니가 그리워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 놓고 울곤 합니다.
하지만 물소리는 울음소리를 모두 삼키지는 못합니다.

 

예슬이 어머님께서는 가슴 시릴 정도로 예슬이가 보고 싶습니다. 딸이 불러주는 ‘엄마’ 소리가 듣고 싶고 예슬이가  ‘사랑해’ 라고 하는 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예슬이 엄마의 편지
잊지마 , 4월 16일부터 예슬이의 심장은 엄마와 함께 뛰고 있다는 걸, 엄마의 심장이 뛰는 한 우리 예슬이의 심장도 함께 뛰고 늘 엄마와 함께라는 걸.

박지우 – 단원고 2학년 3반

초콜릿 케이크를 좋아했던 지우는  늦둥이 막내였습니다.아버지는 늦둥이 지우를 너무나도 예뻐했습니다.

지우는 가족들과 가까웠습니다. 특히 10살 많은 오빠를 정말 좋아했고 잘 따랐습니다.

지우는 늘 반장, 회장을 도맡아 할 정도로 리더쉽이 있었습니다.그리고 활동적이고 남을 잘 배려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어머니는 사고로 돌아온 지우를 보고 충격을 받으셔서 많이 아프셨습니다.

 

-지우 친구의 편지

“지우야,  나 네가 떠났다는 걸 어떻게 받아 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너와 같이 공부방을 오갔는데. 매일 너와 같이 학교 앞에서 떡볶이를 먹었는데. 너와 같이 너네 집에서 놀던 게 어제 일 같은데.

실감이 하나도 안나. 믿겨지지가 않는다.
지우야,진짜 고생 많았어. 편하게 쉬어.
보고 싶다,지우야…..”

박지윤 – 단원고 2학년 3반

지윤이의 꿈은 만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특히 작은 물체를 세세하게 표현하는데 뛰어났습니다. 지윤이가 그린 작은 벌레는 할머니가 진짜라고 착각할 정도로 생생했습니다.

지윤이는 가수 박시환을 좋아했습니다. 할머니께  가수 인기 문자 투표 방법을 알려드리고 박시환을 뽑으라고 하기도 했습니다.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가수 박시환에게 사인을 받기도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지윤이는 가수 박시환의 앨범을 주문했습니다.

그러나 지윤이는 그 앨범을 들어보지도 못했습니다.

 

4월 16일 오전 9시 55분, 지윤이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말했습니다.

“할머니,할머니! 배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는데, 깜깜한데, 난간을 붙잡고 있는데….할머니, 나 죽을 건가 봐”
지윤이의 음성은 공포에 짓눌려 떨리고 있었습니다.

 

수학여행 며칠 전부터 ‘배 타기 싫다’던 손녀딸을 어르고 달래 수학 여행을 보낸 할머니께서는 지금도 사고가 자신의 탓 인양 가슴을 칩니다.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키운 지윤이가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을, 할머니는 사무치게 슬픕니다.

 

-지윤이 아빠가 쓴 편지

“나쁜어른들 혼내 줘야지”지윤이가 아빠한테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빠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볼 거야.너 없는 세상에서 잘 살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지윤아 사랑한다. 아빠가.”

 

박채연 – 단원고 2학년 3반

채연이는 세자매의 맏이입니다.

채연이는 가족들과 가까웠습니다. 밤 늦게까지 일을 하고 돌아 온 아빠에게 <아빠 힘내세요>라는 동요를 불러주며 율동을 했습니다. 또 동생에게는 언니이자 가장 친한 친구였습니다.

채연이가 가족들에게 보낸 편지에는 “고마워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더 잘할게요” 가 가득합니다.

 

채연이는 성격이 좋았습니다. 무엇이든 잘 먹어서 아빠가 “돼지야”하고 놀려도 화를 내기는 커녕 “꿀꿀”하며 웃어주곤 했습니다.

 

채연이의 꿈은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채연이는 패션 디자이너가 되어 아빠에게 벤츠를  사주겠다고 하곤 했습니다.

-채연이 아빠의 편지.

“딸이 다시 살아 돌아올까 싶어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 채 책상을 쓰다듬고 한숨 쉬며 하루하루를 시작하던 것이 어느덧 이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동생이 언니를 못 잊어 언니 사진을 인화해서 침대 한쪽 면을 꾸미고 있는 모습을 보니 아빠 마음은 또 한번 무너지는구나”

패션디자이너의 꿈
시 : 신호현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성공해서 돈 많이 벌면
아빠 벤츠 사 줄께요
오리발 사 줄께요

 

남다른 눈으로
항상 그림 그리며
옷 그림 즐겨 그리던
아빠의 큰 딸 채연아

 

이 세상에 와서
듬직하게 아빠 업어주고
아빠 힘내라고 응원하던
보석 같은 나의 딸 채연아

 

두 동생들의 언니로
천사처럼 곁에 머물더니
무쇠 달린 발걸음 걸음마다
울며 울며 갔을 좋은 언니야

 

지금쯤은 하늘에서
친구들 예쁜 옷 만들고
선생님의 날개 만들 아이야
선녀 옷 만들어 꿈에라도 보자

백지숙 – 단원고 2학년 3반

지숙이는 엄마에게 배려심 많고 이해심 많은 딸이었습니다. 남동생에게는 다정한 누나였고요.

지숙이의 꿈은 어려운 사람을 돕고, 범죄자를 잡는 정의로운 경찰이었습니다.

 

엄마와 함께 시장을 가도 무엇 하나 사달라지 않던 착한 지숙이를 보며 엄마는 친구처럼 느껴졌고, 이제는 다 키웠다는 생각에 흐뭇하셨지요.

 

그러나 지숙이는 고등학교 2학년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4월 16일 9시 50분, 지숙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들어오고 있다.’ 라고 말했습니다. 엄마는 ‘얼른 밖으로 나와. 바다에 뛰어들면 누군가 구해줄 거야.’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숙이는 ‘움직이지 말라’는 안내 방송에 따라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지숙이는 지금  화성 효원 납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편지

사랑하는 지숙아, 제훈아~생일 축하해. 오늘은 3반 친구들, 8반 친구들이 생일 파티 준비하느라 분주하겠네. 지숙이는 초, 중, 고 같이 다니며 절친이 된 예지의 축하 제일 많이 받고 있을테고, 제훈이는 영재 5인방(재욱이, 준우, 최성호, 5반 김건우)들 축하에 정신이 없겠네. 지숙아, 그리고 제훈아. 너희들의 수학여행은 벌써 끝이 났는데 너희들과 친구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이 현실이 참 아프고 슬프구나. 하지만 그곳에는 이곳에 난무하는 수많은 불의와 미움과 다툼이 없 을 테니 너희들은 그저 편안하고 행복하여라. 이곳 어른들의 잘못으로 하늘의 별이 된 너희들에게 늘 죄스러운 마음 간직하고 잊지 않을게. 끝까지 너희들의 억울함 밝혀줄게. 사랑한다 지숙아, 제훈아.

신승희 – 단원고 2학년 3반

승희는 공부도 잘하고, 신앙 생활도 열심히 하는 모범생이었습니다.

활기차고 발랄한 성격이었고,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편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백지숙, 박영란,김수경과  친했습니다.

승희의 꿈은 세무공무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6일.이 날 승희는 부모님과 연락을 했습니다.아빠는 승희에게 배 위로 나오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승희의 대답은 ‘움직이지 말래. 너무 심하게 기울어서 움직일수가 없어. 움직이면 더 위험해.”‘였습니다. 그리고 승희는 구조 될거라고, 걱정 말라고 아빠를 안심시켰습니다.

그러나 승희는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승희 아빠는 승희가 싸늘하게 돌아 오던 날 통곡하며  말했습니다.
“넌 바보야. 갑판으로 나오라니까, 방송으로 움직이지 말랐다고 그 말을 듣고 나오지 않았니.아빠가 그렇게 밖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끝까지 방송을 믿고 기다렸니.”

 

한참 후, 엄마는 승희가 쓴 편지 한통을 받았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안녕, 오늘 제주도로 가게 되는 승희라고 해요.
내가 수학여행 가는 거 때문에 일주일간 예민하게 굴어 미안합니다.
엄마 아빠 탓이 아닌 거 아는데도 괜히 심술부렸어.
그래도 승희 비위 맞추려고 애쓰고 챙겨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요.
이번에 승희가 돈을 엄청 썼지만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해…
절대 평펑 쓴 건 아니야. 꼭 필요한 거만 샀어.
비싼 돈 들여서 옷 사주고 가방 사주고 지갑 사주고 케이스 사주고 먹을 거 사준 만큼,재밌게 놀다 올 테니 혹시나 전화 없다고 걱정하거나 서운해 하지 마 ~
3박 4일 재밌게 놀다 올게. 그리고 갔다 오면 열공 빡공 해야지. 엄마 어젯밤에 고생해서 같이 밖에 나가줘서 고마워.
나 없는 동안 셋이 재밌게 보내~ 사랑해. 승희가.”

편지처럼 승희가 전화 한통 없이 3박4일동안 재밌게 놀다가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편지의 마지막 구절 ‘나 없는 동안 셋이 재밌게 보내’ 라는 승희의 인사는 엄마 아빠의 가슴속에 이제 마지막 인사로 남았습니다.

유예은 – 단원고 2학년 3반

예은이의 꿈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처음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을 때 부모님은 사춘기 때 으레 갖는 호기심이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은이가 한 방송사 오디션 참가 신청서에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 “보컬학원에 등록했을 때” 라고 쓴 것을 보고는 그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부모님께서는 어떤 일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는 예은이가 대견했습니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면 이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던 예은이는 수학여행 전날에도 뮤지컬 학원에 나가 꿈을 키웠습니다.

 

예은이는 4월 16일 09시 “배가 90도 가까이 기울어졌어. 너무 무서워” 라고 처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어 10시 15분 “아직 객실이요”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4월 30일 뮤지컬 (캣츠)공연을 예매했던 예은이..
예은이는 그토록 손꼽아 기다렸던 공연장엔 결국 가보지 못했습니다.

예은이는 세월호 침몰 일주일 만인 4월 23일 돌아와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부모님은 아가들을 보면 예은이 어릴 적 생각이 나서 울고, 학생들을 보면 예은인 듯 싶어 울고, 예쁜 아가씨들을 보면 오지 못한 예은이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우십니다.

 

-예은이 아빠의 편지

“내딸 예은아 !
네 삶을 ,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보고 싶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
사랑한다는 말이 이토록 허무할 수가 없구나
받아만 준다면
영원히 예은이 아빠이고 싶구나
2015.8.30 아빠”

 

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투쟁과 20일간의 단식,
엄마의 꾸준한 활동, 할머니의 아들 앞에서의 피켓팅,
예은이를 잃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싸우고 계십니다.

유혜원 – 단원고 2학년 3반

혜원이는 4남매의 맏이였습니다. 여동생과 쌍둥이 남동생 둘이 있었지요.

 

혜원이는 춤추고 노래하는 것을 좋아했고, 잘 했습니다. 그래서 체육대회등 행사의 춤 공연을 준비할 때마다  친구에게 안무를 가르쳐 주곤 했습니다.

 

혜원이는 휴일이면 하루종일 자는 “잠탱이” 였습니다. 일요일에 친구들이 집에 와 깨우다가 지쳐서 포기했던 적도 있었을 정도입니다.

 

혜원이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혜원이는 동생들을 잘 돌보고 훈육했고, 부모님을 위했습니다. 밤늦게 일하시는 부모님이 걱정되어 수시로 연락하곤 했고, 어버이날 선물로 부모님께  커플 컵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4월16일 오전 10시 7분 혜원이는 엄마에게 “사랑한다”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1분뒤에는 동생에게 “사랑한다”며 마지막 문자를 남겼습니다.

혜원이는 지금 달마사에 단짝인 2반 한세영 학생과 같이 잠들어 있습니다.

 

-혜원이 아버지의 편지

너무나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내 딸 혜원아.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너를 볼 수 있다면 못난 아빠의 목숨도 버릴 수 있을 텐데…….

네가 차가운 바닷속에서 죽음을 앞두고 느꼈을 고통과 두려움을 생각하면 아빠는 지금 살아가는 것조차 미안하구나

사랑한다
시 : 신호현

 

세상살며
사랑한다는 말
잊고 살아 왔는데

 

그 소중한 한마디
입에서 나오면 꽃이 되어
나비도 날아올텐데

 

그토록 가슴에 담아
미쳐 꺼내주지도 못했는데
그 주인은 떠나고 없더라

 

그 한마디면
세상 거칠고 힘들어도
다시 살아갈 수 있을텐데

 

그토록 서로 소중한 너는
마지막 순간에 꺼내어
뜨거운 인사를 주었구나

 

사랑한다 맏딸아
사랑한다 모두가
사랑한다 죽을 때까지

이지민 – 단원고 2학년 3반

지민이는 세 자매중에 둘째입니다.

 

지민이는 주위 사람들을 늘 위했습니다. 지민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엄마”로 불릴 만큼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그리고 일에 치여 힘들어 하는 부모님을 위해  집안일을 하곤 했습니다.

 

지민이는 만화 (원피스)에서 동생을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비운의 캐릭터 “에이스”를 좋아했습니다. 만화에서 에이스가 늘 쓰고 다니는 주황색 모자를 좋아해, 주황색 물건을 사 모으곤 했습니다.

 

수학행을 떠나기 전, 지민이는 들뜬 마음으로 수학 여행지에서 입을 후드 짚업과 운동화를 샀습니다.
새로 산 옷을 입고, 새 운동화를 신고 친구들과 즐겁게 놀고 사진도 많이 찍을 생각이었지요.

 

그러나 세월호는 침몰했고, 지민이는 하늘나라로 떠났습니다.

지민이는 친구들과 함께 평택 서호 추모공에 잠들어 있습니다.

 

-지민이 어머님의 편지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너를 보낼 마음의 준비 한번 없었기에 꿈이기를, 꿈이었기를, 꿈이였으면 하루하루 늘 바랬었지만,현실은 바뀌지 않았지.
우리 지민이 덕분에 참 많이 행복했었어.
소중한 우리 딸,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한번 엄마, 아빠 딸이 되어주길 그래서 더 많이 우리 지민이를 안아주고 사랑해줄 수 있게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영원히 사랑해 지민아.너를 너무도 그리워하는 못난 엄마가..”

갈꽃 아이
시 : 신호현

 

엄마를 안아주고
아빠를 안마하던 네 손
언니 동생의 잔소리쟁이로
부드럽게 찰랑거리던 목소리
갈꽃처럼 나부끼던 아이야

 

보고싶은 마음
많이 그리운 마음
바람부는 엄마 들녘에
심해같은 아빠 가슴에
하얗게 흔들리는 아이야

 

멋있는 군인이 되어
이 땅에 평화 지키겠다며
파랗게 조근 조근 피워나더니
바보처럼 소리도 못 지르고
칼바람에 쓸리어 날아갔구나

 

네가 뿌리 내렸던 땅이
이처럼 허망한 바람이었더냐
가슴에서 붉은피가 솟는다
눈비 내리는 둥지 들녘에서
너는 예쁜 손짓만 하는구나

장주이 – 단원고 2학년 3반

주이는 밝고 꾸밈 없고 활달한 성격이었습니다.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환한 미소를 가지고 있었지요.

주이는 매사에 적극적인 성격으로, 학교 축제도, 학교 선도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예술적인 재능도 있어, 기타 연주를 잘 했고 감성적인 춤도 잘 추었습니다.

 

두 살 터울인 오빠와 자주 티격태격하곤 했지만 다툰 지 10분도 안 돼  웃으며 화해하곤 했습니다.


주이의 꿈은 여군 장교였습니다. 여름 방학이 되면 사촌 언니가 다니는 대학 학군단ROTC을 찾아가여군 장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꼼꼼하게 알아볼 계획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는 주이의 꿈을 무참히 수장시키고 말았습니다.
주이는 친한 친구였던 고하영과‬ 나란히 경기도 안산 하늘공원에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주이 어머님의 편지

“엄마를 웃게 해주는 사람도 내 딸.
엄마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내 딸.
엄마 마음을 배려해주는 사람도 내 딸.
힘들 때마다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내 딸.

엄마는 이제 슬퍼하지 않을 거야.

분명 내 딸은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야.부디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행복하게 잘 지내렴.
엄마도 씩씩하고 건강하게 열심히 살 거야.내 딸이 바라는 거니까…..

이다음에 우리는 꼭 만날 수 있으니까 슬퍼하지 않을게.”

 

최수희 – 단원고 2학년 3반

수희는 1998년 8월 4일 강원도 원주에서 태어나, 발랄한 수다쟁이로 자랐습니다.

수희는 밝고 명랑하고 발랄한 성격이었습니다. 예은, 예진이와 노래부르고 춤을 부며 즐겁게 놀곤 했지요.

수희는 지드레곤(권지용)VIP 이었을 정도로 열성 팬이었습니다. 수희의 책상위에는 지드레곤의 프로필 사진이 빼곡히 붙어 있습니다.

 

수희는 고1때는 *다누리* 라는 다도동아리에서 활동하였고, 고2때에는 *그린레인저*라는 교내 청소와 매점 지킴이 활동 동아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수희의 꿈은 유치원선생님이었습니다.

 

하지만 수희는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울먹이다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수희 부모님은 수년 전 수희 동생을 잃고 세월호 참사로 수희 마저 잃어버렸습니다.

수희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수희 친구의 편지

“많이 무서웠지. 나도 너무 슬프다. 그래도 울지 마. 울지 마.울지 마, 수희야.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알겠지.”

 

-수희 친구의 편지

“쑤희 쑤희 귀염둥이 쑤희 잘 지내지?
많이 보고 싶다. 너가 많이 보고 싶다.
너 생각하면 아직도 너가 나한테 편지 써준 게 눈에 아른거려. 애교 가득한 말로 써줬었지. 받으면서 진짜 기뻤는데 ..네가 없는 게 너무 슬프다.
네 목소리 듣고 싶고 네 웃음소리도 그립고 얼굴도 보고 싶고…보고 싶다…. 보고 싶어…”

 

-수희 아버지의 편지

“보고 싶은 수희
한창 꿈을 키워야 할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 거니….
아빠는 항상 수희가 보고 싶다. 말로는 표현 할 수가 없을 정도야.
수희는 동생하고 착하게 잘 있으리라 아빠는 믿는다. 세월이 흘러 먼 훗날 너의 곁에서 못다 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꽃 피워 보자꾸나 .”

 

 

 

최윤민 – 단원고 2학년 3반

닭강정,아이스크림, 마늘햄, 우유, 찐 감자, 갈비를 좋아했던 윤민이.

윤민이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습니다. 낮은 목소리로 조곤조곤 이야기하고 누구와도 갈등 없이 잘 지냈습니다. 성품이 좋아 말도 행동도 바르게 했습니다.

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수학여행을 떠나기 전에도 발톱에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흰색 꽃 모양을 그려 넣었습니다.

세월호 사고가 난지 일주일 만인 4월 23일, 엄마는 “발톱에 꽃무늬 매니큐어”가 칠해진 아이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아이가 윤민이라는 것을 알아차렸습니다.

윤민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윤민이 언니 최윤아 님과 윤민이 어머니의, 세월호 진실 규명을 위한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윤민이 언니의 편지.

*오늘은 네 생일이야. 원래 네 생일 땐 네가 더 생일이라고 떠들고 다녔을 텐데…
너 대신 언니들이랑 엄마가 네 생일이라고 알리고 있어. 거긴 어때?
잘 놀고 있는 거지? 축하는 많이 받았고?
언니들 선물은 마음에 들어?
궁금한 게 너무 많은데….언니 혼자 네 반응을 추측해야 해서 좀 그래…
그러니까 언니 꿈에 나와서 네가 직접 말해줘.
사랑하는 내 동생 윤민아.
생일 정말 축하하고…너무 보고 싶다.*

김주은 – 단원고 2학년 3반

주은이는 여덟 살 많은 언니가 있는 막내였습니다. 늦둥이인 만큼, 주은이는 귀여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언니 친구들도 주은이를 귀여워해, 거북이 두 마리와 주은이를 바꾸자고 하기도 했습니다.

 

주은이는 언니와 사이가 좋았습니다. 주말이면 언니와 같이 영화를 보고, 외식을 하곤 했습니다.

 

주은이는 미술에 재능이 있어, 디자인 상을 여러 차례 수상했습니다.

주은이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은이는 디자이너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채 세월호 침몰로 김초원선생님과,친구들과 함께 하늘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주은이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주은이 친구들의 편지

 

♡주은(주름)
주름아. 우리 주름이 나 보고 싶었지?우리 7명이 모여야 야한나팸 완성이지  7윌 19일 언니랑 어머니랑 찾아갈께. 벌써 토욜날 너 볼 생각에 신난다. 우리 주름이 잘있어 ♡ 또 올께

 

♡김주름!!
오늘 너희 반 두 번째로 와보는데 너 체육복 그대로 있어서 더 슬펐어. 처음 왔을 땐 줄넘기가 그대로 있어서 슬펐는데…오늘 세월호 1주기라서 왔는데 너희 학교 선생님이 낭독하신 편지, 너희 학교 후배들이 부른 노래, 그리고 마지막에 다같이 부른 노래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가사에서 정말 울컥하고 말았어.

한은지 – 단원고 2학년 3반

은혜 “은” 지혜로울 “지”
은혜롭고 지혜로울 아이로 자랐으면 부모님의 희망대로 은지는 밝고 책임감있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은지는 예슬이, 혜원이와 친하게 지냈습니다.

 

은지는 단원고 YMCA 봉사동아리 TOP 회원 이었습니다.
2학년 TOP회원 열명중에서 일곱명이 세월호 참사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은지도 그중 한 명입니다.

은지는  TOP봉사동아리 후배들의 배웅을 받으며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습니다.

 

뺨이 오동통했던 서너 살의 한은지.

훌쩍 키가 자란  열 살 무렵의 한은지.
호기심 많은 중학생 한은지.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고등학생 한은지.

엄마 아빠와 동생들 가슴 속엔 그 모든 한은지가 영원히 각인 되어 있습니다.

 

-은지 친구들의 편지

 

“1년 전 딱 오늘 우리 수학여행간다고 각자 장기자랑 연습하다 중앙동 갔잖아.
그때가 엊그제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진다고 했는데
그리움은 더 커지는 것 같아…
너한테 많이 못해준 거 같아 되게 미안해
은지야 항상 보고 싶어 나중에 내 꿈 놀러 와(오늘 와도 돼)
내가 많이 사랑해 보고 싶다”
2015.4.15

 

《너의 빈자리가 너무 커서 계속 기다리게 돼.
근데 너 빈자리 아무한테도 안 줄 거야.
나중에 너랑 나랑 만나는 날 그때 너한테 다시 내줄 거야.
그럼 그때 그 빈자리 다시 채워줄래?
다시 채워줄 거지?
우리는 너를 진짜 사랑하고 기억해…그래서 어느 누구와도 못 바꿔.
누가 100억을 준다고 해도 안 바꿀 거야. 절대~!!
그러니까  계속 우리 친구해줘야해. 알겠지?
항상 사랑하고 너무 미안하고 평생 우정해. 내 친구.》

황지현 – 단원고 2학년 3반

지현이는 부모님이 결혼 7년 만에 귀하게 얻은 외동딸입니다.

첫 아이를 유산한 후, 지현이 어머니께서 “특별한 아이를 바라지 않는다. 예쁜 아이, 잘난 아이도 바라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보통의 행복한 아이 면 충분하다”고 기도해 얻었지요.

 

지현이는 친가에서는 막내이고, 외가에서는  첫 손녀라 친척들 모두에게 귀여움받으며 자랐습니다.

 

지현이는 털털하고 둥글둥글한 성격이었습니다. 또 배려심 있는 성격으로, 부모님을 배려해 집안일을 하곤 했습니다.

 

지현이는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지금도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지현이 스케치북에는 지현이가 그린 그림이 빼곡합니다.

 

지현이는  197일만에, 2014년 10월 29일,자신의 생일날이 되서야 비로서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부모님은 이 날 팽목항에서 지현이가 좋아했던 음식으로 생일상을 차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