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김담비 – 단원고 2학년 3반

◆ 웃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다웠던 아이, 긴 생머리에 단아하고여성스러운 아이 ◆
쁘니~쁘니 여신담비~!
담비는 “누나 보이”라고 놀림받을 정도로 남매의 정이 깊었던 남동생이 한 명있는 남매중에 맏이입니다.
담비는 따뜻하고 밝고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다운 복숭아가 딱 한 개 매달린 복숭나무의 꿈을 꾼 엄마의 태몽으로 세상에 다가왔습니다.

 

담비의 꿈은
“힘 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변호사를 사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운 변호사가 되는 것이 었습니다.

 

담비는
정의로운 성품과 옳지 않는 것은 옳지 않다고 분명하게 표현했고 괴롭힘을 당하는 친구를 대신해 싸우기도 했습니다.
조용하면서도 할발하고, 새침하면서도 풍부하고, 맺고 끊음이 똑부러지면서도 다정다감한 성품은 외가에서 보낸 어린시절의 영향이 컷다고 합니다.

 

방학이면 동생과 함께 강원도 외가에서 지냈고 외할아버지, 할머니, 두 분의 이모님의 사랑을 듬뿍받은 영향이라고 합니다.
꿈을 위해서 공부할때는 똑 부러지게 공부하고 친구들과 노래방에 가서 놀때는 한 번 잡은 마이크는 놓지 않고 태이블위에 까지 올라갈 정도로 놀 때는 화끈하게 놀 줄 알았던 담비였습니다.

 

수줍은 듯 하면서도 뭐든 열심히 잘 참여하고 즐거워했던 사랑스런 담비,
속이 깊고 따뜻해서 주변에 어려운 친구가 있으면 앞장서 도와줬던 아이, 얼굴도 행동도 순수하고 천사같았던 아이,
너무도 성실해서 성실상을 2번이나 받았고 글쓰는 것도 너무잘해서 전체2위 까지 했던 아이, 학교 야자 시간에도 차분히 공부만 했던 아이
담비를 기억하는 1학년 담임선생님의 추억입니다.

 

제가 담비를 알아보고자 했던 발걸음속에는
담비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여신으로 통했습니다. 특히 사진찍을 때 긴생머리에 속칭 사진발도 잘받아 붙여진 별명이라고 합니다.
학교,하늘공원에서 본 담비에 대한 이모님들의 애틋한 사랑 또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또래 아이들처럼 아이돌 연애인를 좋아했던 모습도 보입니다.

 

4월 21일 담비가 돌아오던 날,
엄마의 마른 가슴에선 갑자기 젖이 흥건하게 흘렀고 진도 체육관에서 잠깐 새우잠이 든 큰 이모의 지친 꿈속으로도 담비가 찾아왔습니다.
그건 담비의 위로 였습니다.
담비의 우는 전화에도 당연히 구조 될 것이라 믿었기에 걱정하지 말고 어른들이 시키는대로만 하라고 담비를 안심시켰던 아빠도 한없이 미안해합니다.

 

“머리는 늘 담비가 손질해 줬어요.수학여행 가기전날 담비가 손질해 준 머리라서 자를 수가 없어요…”
담비와 같은 긴 생머리로 서로의 머리를 손질해주던 어머니의 담비였습니다.
아이들을 잃기전까지 이사회의 정의를 믿었던 부모님들,..
우리가 조금 더 정의로웠더라면 하는 회환과 함께 오늘도 거리에 서 계십니다.
담비가 키웠던 고양이 “초롱이”도 담비가 학교에서 돌아 올 시간이면 문앞에 한참을 서 있다 돌아선다고 합니다.
담비는 친구들과 함께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도언 – 단원고 2학년 3반

“엄마의 아침 인사로 학교에 가면 기분이 좋고, 엄마의 목소리 들으면서 등교를 하면 발걸음도 가볍다.
언제나 같이 있고 같이 살고 싶다”
도언이가 자기 소개서에 쓴 글입니다.

 

동글 동글 도언이
도언이는 재주가 많은 아이였습니다.

 

피아노도 잘치고, 글짓기도 잘해서 중학교 때는 시를 지어서 학교에서 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고등학교에서는 연극부 활동을 해서 1학년 때는 청소년 연극제에서 금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도언이의 꿈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학교에서 선생님을 무척 존경해서 선생님 말씀을 잘 듣고 무척 존경했습니다.
친구들과의 사이에서도 고민상담사로 통했습니다.
내성적인 성격의 친구들에게도 먼저 웃으며 다가가는 성격이라 인기가 참 많았다고 합니다.

 

도언이와 엄마는 커플 반지를 맞춰 낄 정도로 모녀간의 사랑이 남달랐습니다.
엄마랑 전국여행을 다니고 유적지 탐방을 다니기도 했습니다.
4월 15일 밤 도언이는 엄마에게 “엄마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도언이가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도언이는 4월 23일에 돌아와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빛나라 – 단원고 2학년 3반

“파도가 밀려오다 멈추는 그날까지 믿어 주기를 약속하며….친구란 강력한 무기로 무장한 친구임을 인증합니다”

 

빛나라양과 9반 #김해화양은 절친중에 절친입니다.
2학년에 오르며 문과 이과로 진로가 나뉘며 반이 갈렸지만 평생을 친구로 약속하며 친구서약을 한 내용입니다.
두친구는 이제 하늘에서 영원한 우정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배우 #주원을 좋아했던 빛나라의 책상위에는 주원의 브로마이드가 놓여져 있습니다.
빛나라는 앞서 도언이와 연극부 활동을 하였습니다.

 

딸 둘의 맏이로 아들 역활을 했던 빛나라.
수학여행기간에 아빠 생일이라 함께 못해 미안하다던 빛나라는
세월호 안에서 당일 생일을 맞은 김초원선생님의 생일을 #3반 친구들과 함께 보냈습니다.

 

“엄마, 빨리 기도해줘”
“아빠, 배에 물이 차는데 무서워요.나 데리러 와”
4월 16일 참사당일 빛나라와 엄마의 다급한 전화는 중간에 끊기고 말았습니다.
또 9시 49분에는 아빠께 긴급히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부모님은 깜짝 놀라 팽목항으로 달려갔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아이들이 구조되지 않자 빛나라 아버지는 딸을 구하겠다며 바다로 뛰어 들려고도 하였습니다.

 

빛나라 여동생은
지난 추석때 언니에게 보낸 편지에서 ” 점점더 보고싶다.이러다가 부모님까지 쓰러질까봐 무섭다.
언니가 하늘에서 지켜봐 달라”고 편지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빛나라의 아버지 #김병권님은 사고후 가족대책위 위원장을 맡으셔서 활동하셨습니다.

 

영원한 우정을 나눌 김빛나라와 김해화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소연 – 단원고 2학년 3반

지난 3년 반이 흐르는 동안 저는 이아빠의 피눈물나는 아픔을 지켜와왔습니다.
함께 기억하여주십시요.

 

아버지와 외동딸.
하나뿐인 외동딸을 잃어버린 아빠,
소연이는 네살때부터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습니다.
아버지는 소연이를 무슨일이 있어도 훌륭하게 키워야 겠다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닥치는대로 일했습니다.
컴퓨터 조립공장, 화학공장, 자동차 부품공장, 프레스공장등을 다니며 프레스에 오른손 세개, 왼손 세개등 손가락 윗마디가 잘려 나가도록 소연이를 위해 일하셨다고 합니다.

 

그런 아버지를 보고 소연이도 일찍 철이 들어 버렸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소연이가 공부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집안일을 도맡아 하려 노력했습니다
소연이의 교복, 양말, 신발등을 빨아주곤 했지요.

 

부녀지간은 지극히 다정했습니다.
소연이는 노래방도 자주 함께 가면 (어머나)(꽃)등 아버지가 좋아하는 노래도 불러주고, 아버지의 핸드폰 문자를 대신 날려주기도 했으며, 햄버거를 사다주면 볼에 뽀뽀를 해주곤 했다합니다.
소연이의 취미가 “아빠랑 놀러다니기” 일 정도로 아빠가 쉬는 토요일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고합니다.

 

“소연이가 좋아하는 붕어찜을 자주 먹으러 다녔어요. 그걸로 밥 두공기를 먹어요. 그러고는 집에 와서 살 찐다고 줄넘기를 얼마나 하던지. 먹었으니까 살을 빼야 된다고”
가끔은 이런 얘기도 주고 받았다고 합니다.
“시집 가더라도 아빠같은 사람 만나야 하는데 만나질까 모르겠어”
“아빠같은 사람 어디 있냐.아빠는 대한민국에서 단 한사람 만날까 말까여..”

 

소연이의 꿈은 중학교선생님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선생님이 되어 아빠 나중에 힘들지 않게 하겠다며 밤늦게까지 공부하곤 했답니다.
초등학교 6학년때부터 공부를 잘했던 소연이는 장학금을 받았고 그돈으로 아빠와 친구들에게 삼겹살을 사기도했습니다.

 

트윅스를 좋아하고 성당에도 열심히 다니며 친구들과 후배들을 먼저 배려했던 소연이는 주일이면 한부모 가정집에 가서 도배도 해주고 집짓는 일에도 도움을 주곤 했다고 합니다.

 

왼쪽 김빛나라, 오른쪽 백지숙우슬라와 나란히 셋이 짝궁이였던 소연이는 4월 16일 오전 9시 50분에 배가 기울고 물이 차오르자
” 아빠 나 데려가 주면 안돼요?”
“배에 물이 들어와요”를 마지막 인사로 남기고 아빠곁을 떠났습니다.

 

소연이의 장례를 치르고 집에오자 소연이가 인터넷으로 산 소설책과 참고서가 배달되었습니다.

 

“그걸 보고 엄청 울었서요. 그책들을 샀을때 열심히 살려고 그런거 아니여유, 근디 죽어 버렸으니 얼마나 기가 막혔거시유”

 

사고후 진도체육관에서 외동딸 소연이의 이름을 애타게 부르짖으며 “울보아빠”로 불리웠던 아버지는 사랑하는 소연이 곁으로 가기 위해 밤새 술로 버티시다 몇번이고 119에 실려가기도 하였으나 “우리애들을 다 살릴 수 있었는데 왜 못 살렸는지 ” 진실을 알기위해 국회에서 투쟁을 하셨고 삭발을 하시기도 했고 동거차도에서도 청사앞에서도, 촛불집회때도 광화문에서도 소연이와 친구들을 위해, 아니,
살아 있는 모두를 위해 싸우고 계십니다.

김수경 – 단원고 2학년 3반

수경이는 2남1녀중에 둘째입니다.
자라면서 부모님속을 크게 썩인 일도 없고 모는 일을 혼자 알아서 잘하는 조용하고 착한딸 이었습니다.
엄마 생신이나 부모님 결혼기념일에 수경이는 “효도쿠폰”을 발행했는데 안마해주기, 청소해주기등 종류도 다양했습니다.

 

수경이 어머니는 생신때 수경이 친구들한테서 생신축하문자를 받곤했는데 알고보니 수경이가 친구들한테 부탁한 것이었다고 합니다.

 

수경이는 늘 주위사람들을 배려하고 돕는 성격이었습니다.
어른이 되면 국제구호활동가가 되어 외국에 나가서 어러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수경이의 꿈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났을때 수경이는 4월16일 오전 8시 46분에 엄마한테 “잘놀다 오겠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다음은 지난주 416기억전시관에서 열린 금요일엔 함께하렴에서 수경어머니가 직접읽으신 수경이 시입니다.

 

《푸른 눈사람》

 

광덕산자락 허리가 끊겨
푸른핓 안산바다는
눈이 시리다

 

소나무꽃
송이마다
피어린 꽃눈을 여는데

 

봄눈 녹은 지
오래도록
늘 한 자리
가을까지 한 자리
눈물 못 꼭대기에
푸른 눈사람

 

옥상에서
맑은
눈을 씻는다
차마 씻지 못해 눈을 감는다

 

수경아 주르륵 주르륵
희미하게 번지다 만 네 얼굴이
아프고 힘든 별
은하수에 흠씬 젖어
여기서 시린 허리
쉬었다 가렴

 

푸른 눈사람 두 팔
봉긋한 두 가슴
으스러지게 안아나보자
아련한 내 사랑아
수경아
수경아
환장할 내 딸 수경아

수경이는 참사후 엿새뒤인 4월 22일에야 “107”번이라는 번호표를 달고 부모님품에 돌아왔습니다.
수경이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2. 9반 #진윤희

 

윤희는
의젓하고 마음이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맛벌이를 하는 엄마와 아빠의 속을 쎡인 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늘 알아서 자기일을 했던윤희,

 

윤희의 꿈은
세무사나 회계사가 되고싶어 했습니다.
옷이나 신발을 사달라고 조른적도 없었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유난히 작은 입으로 조잘조잘 학교에서 있었던 일들을 얘기하고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고 오는 길에
무거운 책가방을 엄마가 들어주려 해도, 엄마 힘들다고 한 번도 맡기지 않았던 착한 딸 이었습니다.

 

고생하는 엄마, 아빠 생각해서 운동화 한켤레로 바닥이 다 닳을 때까지 신으면서도 불평 한번 하지 않던 속 깊은 큰딸이기도 했습니다.
늘 낡은 운동화 한껼레만 신고 다녔기에
보다 못한 아빠가 새운동화를 사줬답니다.

 

윤희는 이 운동화를 신고 기쁜 마음으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윤희는 세월호가 바닷속으로 사라진 지 6일 만인 4월 22일, 엄마 아빠 동생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지만 윤희가 가져갔던 휴대전화와 가방등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아빠가 사준 새 운동화도 사라지고 없었습니다.

 

2016년 2월,
그동안 목포해경에서 안산 분향소로 옮겨진 유품들 속에서 윤희가 끌고 갔던 케리어를 찾아 품에 안고 통곡하시던 윤희 어머니가 떠오릅니다.

 

동거차도 인양작업현장을 하염없이 바라보며 긴 한 숨을 지으시던 아버님의 슬픈 모습도 떠오릅니다.

 

윤희의 흔적을 찾아 헤매던 엄마는 인천항 부두에 설치된 CCTV 영상에서 윤희의 마지막 모습을 확인했습니다.
윤희는 통화를 하며 캐리어를 끌고 세월호를 타러 가고 있었습니다.

 

윤희의 메모장에는 엄마, 아빠, 동생이 가장 소중하다고 적혀있었답니다. 윤희는 가장소중한 가족과 친구들과 이별후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열흘전,
윤희할아버지께서도 긴투병끝에 그토록 보고 싶어 하시던 장손녀윤희곁으로 떠나셨습니다.

김시연 – 단원고 2학년 3반

“엄마가 아무것도 못 해줘서 너무너무 미안해.
바로 앞까지 가서도 못 구해주고 우는 것밖에 할 수 없는 힘없는 엄마라서 미안해.
너와 함께했던 순간순간 절대로 잊지 않을게.
시연아.”

 

148cm. 38kg
작지만 결코 작지않는 소녀.
18년의 짧은 삶을 숨 가쁘게 달려간 소녀.
시연이는 여동생이 있는 자매중에 맏이입니다.

 

“깨박이”,”귤의요정”, “야 이 돼지야” “시얀이” “남자친구와의 슬픈 우정”등
시연이를 표현하는 수많은 문구가 있을 만큼 시연이는 우리에게 많이 알려져있습니다. 그만큼 많은 재능과 끼를 지니고 있던 열 여덟 소녀였습니다.

 

시연이는 어릴적 엄마가 사준 물개인형에게 “깨박이”라는 이름을 지어주고 어딜가나 이인형을 갖고 다녀 자연스레 깨박이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시연이의 꿈은
음악선생님이 되는 것
이였습니다.
노래를 들으면 악보를 보지 않고도 바로 기타를 칠 정도로 음악에 소질이 있었으며 피아노, 기타연주도 수준급 이였습니다.
친구들을 좋아해 어딜가나 친구들이 많았고, 시연이 집은 동네 친구들부터 학원, 학교친구들까지 친구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을 정도로 늘 북적됐다고 합니다.
“금구모”.”연극동아리”. 학교 구석구석 시연이의 흔적들이 있습니다.
귤을 좋아했던 시연이는 “나이가 들면 제주도에 살면서 꼭 귤농장을 할거예요”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분향소에 걸린 시연이 영정사진 또한 귤을 들고 깜찍한 표정을 짓고 있는 시연이입니다.
책상위에도 귤나무가 올려져있고 생일상에도 제주도에서 보내준 귤과 오랜지 쥬스가 올려졌습니다.

 

“구조대가 왔어요. 구조 되자마자 전화할게요”
라며 울 먹이는 목소리를 엄마에게 남겼던 시연이는 제주도 땅은 밟지도 못하고 세월호 침몰 5일 만인 4윌 21일 휴대전화를 손에 꼭 쥔채로 엄마에게 돌아왔습니다.
시연이는 2015년까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있다가 중학교시절부터 절친인 친구ㅇㅇ이의 곁으로 옮겨져 지금은 일산 장안정사에 친구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시연이 어머니는 시연이와 친구들의 억울한 죽음을 밝히기 위해 삭발을 하시기도 하셨으며 특조위 연장을 위해 단식투쟁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김영은 – 단원고 2학년 3반

“#엄마_엄마_미안해_아빠도_너무_미안해_엄마_정말_미안해_그리고_사랑해_정말”

 

오늘 생일을 맞은 영은이가 세월호가 침수되기 직전인 4월 16일 오전 10시 3분에

 

친구 #박예슬의 휴대폰속에 절규하며 세상에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영은이는
청소년 봉사동아리 TOP에서 활동했습니다.
보라색 트래이닝 바지를 즐겨 입고, 성격도 좋고, 친화력도 좋아서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으며
좋은 노래도 많이 알고 춤도 잘춰 친구들이 부러워했다고 합니다.

 

같은반 예진. 예슬, 수희등과 친했고 동방신기의 시아준수. 블락비의 피오로. 그리고 B1A4의 바로를 자기의 “최애캐”로 갈아탔던 영은이는 자신만의 특유의 웃음소리로 라디오 프로그렘 (별.밤)에 출연하여 전기요와 선풍기를 경품으로 받아오기도 했습니다.

 

때론 영은이는
주말이나 방학때면 반월공단 휴대폰 조립공장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하여 엄마의 생일 선물을 사주기도 했던 효녀 영은이었습니다.

 

1학년 체육대회때는 영은이가 안무한 단체 에어로빅이 전교 1등을 차지할 정도였습니다.

 

귀엽고 예쁜 영은이를

 

.황망히 떠나보낸 부모님의 마음은 아직도 깊은 바닷속입니다.
아버지는 영은이가 이웃에 잠시 이사갔다고 생각하고 계시고,
일본인 어머니는 지금도 날마다 아침이면 안산분향소 가족대기실을 쓸고 닦으시며 청소하십니다.
영은이를 위해 할수 있는 것이라 하시며.

 

“예슬이 폰에서 발견된 너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동영상도 네가 곁에 없다는 사실도 잘 믿기지 않는데 우는 네 모습 보니까 그냥..
그 춥고 어둡고 무섭고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건지 … 왜.. 하필 너희였는지…
하늘이 너무 원망스러워….
많이 보고 싶고, 고맙고, 미안하고 나랑친구 해 줘서 고마워.
다음생에도 우리 꼭 친구하자.
정말정말 사랑해.☆♡♡

 

영은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주은 – 단원고 2학년 3반

♡김주름!!
오늘 니네반 두번째로 와보는데 너 체육복 그대로 있어서 더 슬펐어. 처음 왔을땐 줄넘기가 그대로 있어서 슬펐는데…오늘 세월호1주기라서 왔는데 너희학교 선생님이 낭독하신 편지, 너희학교 후배들이 부른 노래, 그리고 마지막에 다같이 부른 노래에서 눈물이 멈추지 않았어.
” 안녕은 영원한 헤어짐은 아니겠지요”
라는 가사말이 나왔을때 너무 슬펐던거 같아.♡

 

주은이는
여덟살 많은 언니가 있는 자매중에 막내입니다.

 

여덟살 많은 언니가 혼자서 외롭다고 동생하나 낳아 달라고 졸라서 몸이 약하신 엄마가 용기내어 태어난 귀염둥이였습니다.
얼마나 귀여웠던지 언니 친구들이 집에있는 거북이 두마리랑 바꾸자고 했다는 이야기는 두고두고 가족들이 이야기하며 놀려대기도 했답니다.

 

주은이는 언니랑 사이가 좋아서 주말이면 같이 영화도 보러 다니고 맛있는걸 먹으러 다니곤 했습니다.
또한 주은이는 깔끔하고 의협심이 강하고 자기관리를 똑부러지게 잘하는 아이였습니다.

 

주은이의 꿈은 디자이너가 되는것이였습니다.
대회에 나가 상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교복을 살 때도 신상품보다는 이월 상품을 살 정도로 알뜰살뜰한 주은이는 고1때 거금의 차아교정기를 하던 날 신이나서 사진을 찍었습니다.
치아 교정이 끝나고 난 뒤의 모습을 상상하며 이늘 활짝찍었던 주은이의 미소를 더이상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3반 교실 출입구 바로 앞에 #정예진, #박지윤과 나란히 자리한 주은이는 디자이너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채 세월호 침몰과 함께 #김초원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하늘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주은이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주은(주름)
주름아 ㅇㅇ이는 같이 있다가 교실가지 못왔어.ㅠ ㅠ 우리 주름이 나 보고 싶었지?
우리 7명이 모여야 야한나팸 완성이지 ㅎㅎㅎ 7윌 19일 언니랑 어머니랑 찾아갈께. 벌써 토욜날 너 볼 생각에 신난다.우리 주름이 잘있어 ♡ 또 올께

김지인 – 단원고 2학년 3반

“엄마, 세면도구 가방 어디에 넣어놨어?”

 

수학여행 짐을 싸면서 옷이 너무 많다며 넣었다 뺐다 하고, 이건 언제 입고 저건 언제 입고…들뜬 모습으로 수학여행을 떠났던 지인이.
엄마는 외동딸인 지인이에게 모든 정성을 쏟았습니다. 지인이는 밝게 컸습니다.
대회에 나가면 상을 탈 정도로 피아노를 잘쳤고. 대학에서 실용음악을 전공하고 싶어했습니다.
지인이는 엄마에게 “어른이 되면 엄마 술친구 해줄께”라고 입버릇처럼 말했습니다.
하지만 지인이의 바렘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 열 일곱의 나이에 멈춰버리고 말았습니다.

 

《안녕 지인아 벌써 너 생일이고 가을이다. 시간 엄청 빨리 지나간다 무섭도록! 요즘은 분향소도 자주 못들리고 안부 인사도 많이 못해 준 거 같아서 우선 미안해ㅠㅠ 우리 애들 보면 한달이 가면 갈수록 얼굴도 점점 성숙해지는데 너희 사진만 보면 아직도 애기 같고 그래.. 이제 곧 있으면 성인이구 같이 술 먹기로 한날도 얼마 안남았는데 너무 일찍가서 아직도 서럽고 안믿겨지는 건 변함없는 사실같아~~다른 애들두 이제 취업준비하고 대학걱정에 바쁜데 너희도 있었으면 아마 이 얘기 했을꺼야~하늘에서 너희를 왜 데려갔는진 몰라도 그래도 그곳에서는 공부 걱정이나 가족 걱정 친구 걱정말고 행복하게 있었으면 좋겠어.. 너희 어머니,아버님도 내일이 되면 또 우실 것 같다.
매년 돌아오는 세월호 몇주기나 각자 생일은 친구들 한테도 슬프기는 마찬가지야.. 한명이 세상에서 없어졌는데 정말 수십명이 슬퍼하니까..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안 잊어 주고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어서 그나마 덜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우리가 안지는 얼마 안됐지만 서로가 너무 잘 알아버린 사이가 되서 금방 정이 들어버렸네. 시간이 진짜 되돌아 갈 수 있다고 하면 다시 돌리고 싶다! 같이 밥 먹고 그냥 앉아서 얘기하고 밤에는 카톡하고 전화하고 하는 거보면 우리 엄마는 맨날 오늘 만났는데도 전화하냐면서 그랬는데
너희 엄마도 그랬을거야..~~ 우리집에도 자주왔었는데.. 평소에 사진 많이 찍어 둘껄 그랬나바. 항상 힘들때 도와줘서 고맙고., 내 얘기 잘들어 줘서 너무고 마웠고..다음에 다시 태어날 수 있다고 하면 평생같이 친구로 지내자. 누구든지 먼저 놔두고 가는 일은 정말 다시 안왔음 좋겠고
낼 오랜만에 애들이랑 보러가니까 좋다 날씨 쌀쌀해 지니까 감기 조심하구..
항상 행복해야되 무슨 일이 있어도 너랑 수정이 안잊어 걱정하지말구,
보고 싶오~~》

 

지인이 친구가 보내준 편지글입니다.
지인이는 수정이와 절친 사이입니다.
짝꿍은 #최윤민 이고 지인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박영란 – 단원고 2학년 3반

“엄마, 아빠, 나 같은 딸이 있어서 좋아, 행복하지?”

 

이 말은 영란이가 수학여행을 떠나기전에 부모님께 묻던 말입니다.

 

“우리 딸이 있어서 너무 행복하고, 너무 좋다”
라고 그때 큰소리로 말해주지 못 한 부모님은 지금도 아쉬워 하십니다.

 

#똑순이_영란이는
세자매의 맏이이자 장녀입니다.
심성이 여리고 착했던 항상 동생들과 부모님을 먼저 생각했던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2학년과 초등학교 3학년인 두 여동생을 잘 돌봤고 먹을 것이 생기면 동생들에게 꼭 가져다주고 짬이 나면 스파게티등 동생들에게 간식을 직접 만들어 주기도 했습니다. 엄마가 아플 때면 맏언니로서 동생들 밥을 직접 챙겼습니다.

 

이처럼
아이들 돌보기를 좋아했던 영란이의 꿈은 유치원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책읽기를 좋아했던 영란이는 교내 독서부 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백지숙_김수경_신승희_박영란은 4총사 처럼 학교에서도 친했던 친구였습니다.

 

하늘나라에도 우정이 변치않기를 기원합니다.

 

“#곧 돌아갈 테니까 집에 가 있어”

 

4월 16일 오전 9시 47분 영란이는 엄마에게 “배가 기울어 졌다”고 문자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엄마와의 전화통화에서 “무섭다” 며 울던 영란이는 9시 53분에 엄마와 아빠에게 카톡으로 “보고 싶다” 는 마지막 인사를 남겼습니다.

 

고통속의 기다림.
팽목에서 영란이를 기다리는 5일째 밤, 영란이는 엄마의 꿈속에 나타나 이같이 말했다고합니다.

 

“곧 돌아갈 테니까 집에 가 있어”
거짓말처럼 영란이는 다음날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유치원선생님의 꿈을 펼쳐 보지도 못하고, 사랑하는 두동생과 엄마, 아빠와 이별한 영란이는 #김초원선생님과 친구들과 함께 하늘나라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지난해 청문회장에서 인두껍을 쓴 누군가는 영란이와 친구들을 “#철없는_아이들” 이라고 표현 했습니다.

 

그들 표현대로 #아이들 이었기에 목숨걸고 구조했어야 했습니다.

박예슬 – 단원고 2학년 3반

☆우리 딸이 불러주는 “엄마”라는 소리가 듣고 싶다. 우리 예슬이가 말해주는 “사랑해”라는 말이 듣고 싶다. 가슴 시릴 정도로 우리 딸이 보고 싶다.
잊지마 , 4월 16일부터 예슬이의 심장은 엄마와 함께 뛰고 있다는 걸, 엄마의 심장이 뛰는 한 우리 예슬이의 심장도 함께 뛰고 늘 엄마와 함께라는 걸.☆

 

예슬이의 꿈은 디자이너였습니다.
시간이 나면 구두등을 디자인하며 꿈을 키웠습니다.
사고후 예슬이의 재능과 이루지 못한 꿈을 안타까워한 주변에서 “박예슬 전시회”를 종로구 혜화동 서촌겔러리에서 두달여동안 전시회가 열리기도 했습니다.

 

4월 16일 아침,
세월호가 전복되기 5분전 예슬이는 낯선 번호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예슬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엄마를 안심시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하지만
엄마가 울자 예슬이도 참았던 울음을 떠뜨렸습니다.

 

“울지마, 걱정하지마, 나 꼭 구조될 거야”

 

예슬이가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음성입니다.

 

예슬이에게는 두살어린 여동생이 있습니다.
엄마앞에서는 언니를 잃은 슬픔을 들어내지는 않지만 동생은 화장실에서 물을 틀어 놓고 운다고 합니다.
하지만 물소리는 울음소리를 모두 삼키지는 못하고 밖의 엄마에게까지 전해진다고 합니다.

 

*살아서 보자*

 

예슬이는 4월 16일 오전 9시 37분부터 41분까지 기우는 세월호안에서 찍은 동영상을 남겼습니다.
헬리콥터 소리가 들린다고 구조대가 왔으니 우린 구조 될 것이라고 친구들을 안심시키고”꼭 살아서 보자”고 다독입니다. 그 시각에도 선내 방송에서는 “가만히 있으라고..”합니다.
하지만,
하지만 예슬이의 기대는 끝내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스스로 탈출한 사람들 외에는 구조대에 의해 구조된 승객은 아무도 없습니다.
예슬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박지우 – 단원고 2학년 3반

“박쥐”. “찌우”로 불리던 박지우.

 

초콜릿케이크를 좋아했던 소녀 지우는 오빠랑 10살 차이가 나는 늦둥이 막내였습니다.
아버지는 늦둥이 지우가 너무 예뻐서 지우 발가락까지 물고,빨고 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지우는 고등학교에 들어가서도 부모님 사이에서 한 이불을 덮고 잘정도로 친밀했고 10살 많은 오빠를 정말 좋아했고 잘 따랐다고 합니다.
초등학교때부터 늘 반장을 했던 지우는 고등학교 1학년 때도 반장을 했고 2학년 때에는 모임 회장을 할 정도로 활동적이고 리더쉽 많으며 남을 잘 배려하는 아이였습니다.
지우의 꿈은 자주 바뀌었는데 나중에는 외국에 나가서 공부를 해보고 싶다고, 더 넓은 세상을 배우고 싶다고 했다합니다.
어머니는 사고로 돌아온 지우를 보고 충격을 받으셔서 지금까지도 병원에 입원해 계십니다.
병원에 계시느라 활동을 못하는 것을 너무나 미안해 하시며 만약 희생된 아이들이 내자식이라면 어떻게 하겠느냐며 모두의 관심을 부탁하셨습니다.

 

“지우야 진짜 나 어떻게 받아들어야 되냐.
정말 공부방 같이 다니면서, 맨날 학교앞 떡볶이 먹으면서 너네 집에서 놀 던 기억이 아직도 새록 새록 한데 실감이 하나도 안나.
믿기지도 않는다.
지우야
진짜 고생 많았어.보러갈께.
편하게 쉬어.
보고 싶다 지우야 진짜 많이….”

 

#김수경과 짝꿍인 지우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박지윤 – 단원고 2학년 3반

“할머니,할머니! 배가 한쪽으로 기울고 있는데, 깜깜한데, 난간을 붙잡고 있는데….

 

할머니, 나죽을라나봐”
4월16일 오전 9시 55분께 휴대전화로 걸려온 지윤이의 음성은 공포에 짓눌려 떨리고 있었습니다.
맛벌이 부부인 부모님을 대신해 어릴때부터 키워온 외할머니에게 지윤이는 손녀이상이었고

 

주변의 소소한 일들을 털어놓을 정도로 둘도 없는 “친구”같은 존재였습니다.
수학여행 몇일전부터 “배타기 싫다”던 손녀딸을 어르고 달래 세월호에 태워보낸 할머니는

 

자신의 탓 인양 가슴을 칩니다.

 

지윤이의 꿈은
만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어릴때부터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특히 방에서 컴퓨터로 그림그리기를 좋아했으며 작은 물체를 세세하게 표현하는데 뛰어났습니다.
한번은 작은 벌레를 그렸는데 할머니께서 진짜벌레인줄 알 정도였다고합니다.

 

가수 박시환을 좋아해 할머니에게 문지 투표방법을 알려주고 참여시키고

 

아버지의 지인을 통해 싸인도 받기도 하였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전
친구집으로 주문했던 엘범은 5월 5일에야 가족품에 돌아온 지윤이가 뜯어보지도 못했습니다.
하지만, 박시환이 지윤이의 사연을 접하고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찾아와 조문하고 사인하여 지윤이 곁에 두었답니다.

 

“나쁜어른들 혼내 줘야지”지윤이가 아빠한테 이야기했던 것처럼

 

아빠는 예전처럼 안하고 정신 똑바로 차리고 살아볼거야.
너없는 세상에서 잘 살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지윤아 사랑한다. 아빠가.

 

지윤이할머니의 휴대폰 액정에 16일 10시 06분에 지윤이가 보낸 “ㄹ”자 하나,
지윤이가 세상에 남긴 마지막 문자입니다.
지윤이는 무슨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에 남기고 싶었을까요?

박채연 – 단원고 2학년 3반

★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잖아요~아빠
힘내세요, 우리가 있어요.★

 

채연이는 두 살 아래 여동생과 늦둥이 막내 여동생이 있는 세자매의 맏이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아빠와 동생과 함께 살게 되며 서로를 깊게 의지하며 살게 됩니다.
맏이 채연이는 아빠에게 딸이자 아들이자 애인이자 친구이자 언제나 세상 모든 것 이었다고 합니다.
무엇이든 잘먹고 체격이 좋아서 아빠가 “돼지야”하고 놀려도 화를 내기는 커녕 “꿀꿀”하며 웃어주는 사랑스런 채연이 였습니다.

 

밤늦게까지 일을 하고 집에 돌아 온 아빠에게 “아빠 힘내세요’라는 동요를 율동과 함께 불러주고,
술이 취해 집에 돌아올 때 마중을 나가서 낑낑대며 아빠를 업어 오기도 했고 옷도 벗겨주고 라면도 끓여 주는 속 깊은 딸이었습니다.
또한 동생에게는 다 져주는 언니이자 엄마이자 아빠이자 가장친한 친구였습니다.

 

채연이의 꿈은
옷 그림 그리기를 좋아해 패션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돈 많이 벌면 아빠에게 차 사주겠다고 하자 아빠는 기왕이면 벤츠 사달라고 했고 인터넷 검색후 벤츠가 오리발을 닮았다며 웃곤했던 채연이는 그때부터 늘 아빠에게 “오리발을 사주겠다”고 했다고합니다.

 

쉽지않는 상황들속에서도
티없이 그늘없이 무엇보다 씩씩하게 자라온 채연이는 특별한 날이면 아빠에게 보낸 편지에서
“고마워요. 사랑해요. 미안해요, 더 잘할게요” 이런 말들로 끝을 냅니다.

 

“딸이 다시 살아 돌아올까 싶어 아무것도 정리하지 못한채 책상을 쓰다듬고 한숨 쉬며 하루하루를 시작하던 것이 어느덧 이만큼 시간이 흘렀구나.
동생이 언니를 못잊어 언니 사진을 인화해서 침대 한쪽면을 꾸미고 있는 모습을 보고 아빠 마음은 또 한번 무너지는구나”
채연이는 4월18일에 돌아와 평택서호 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패션디자이너의 꿈
시 : 신호현

 

패션디자이너가 되어
성공해서 돈 많이 벌면
아빠 벤츠 사 줄께요
오리발 사 줄께요

 

남다른 눈으로
항상 그림 그리며
옷 그림 즐겨 그리던
아빠의 큰 딸 채연아

 

이 세상에 와서
듬직하게 아빠 업어주고
아빠 힘내라고 응원하던
보석 같은 나의 딸 채연아

 

두 동생들의 언니로
천사처럼 곁에 머물더니
무쇠 달린 발걸음 걸음마다
울며 울며 갔을 좋은 언니야

 

지금쯤은 하늘에서
친구들 예쁜 옷 만들고
선생님의 날개 만들 아이야
선녀 옷 만들어 꿈에라도 보자

백지숙 – 단원고 2학년 3반

배려심 많고 이해심 많은 딸이었어요.
중학교 1학년인 남동생과는 같이 만화영화를 보며 친하게 지내던 다정한 누나였고요.
엄마와 함께 시장을 가도 무엇 하나 사달라지 않던 착한 지숙이를 보며 엄마는 친구처럼 느껴졌고, 이제는 다 키웠다는 생각에 흐뭇하셨지요.

 

이쁘고 착했던 지숙이의 꿈은 경찰관.
학교 진로 카드에 장래의 꿈을 경찰관이라고 했던 지숙이는, 그 이유로 ‘남을 도와주고 싶어서’라고 썼답니다.
지숙이가 생각했던 경찰의 모습은 어려운 사람을 돕고, 나쁜 짓을 한 사람을 잡는 정의로운 모습의 경찰이었나 봅니다.

 

그렇게 경찰이 되겠다는 꿈을 키우며 엄마, 아빠, 남동생과 행복하게 지내던 지숙이는 4월 15일 친구들과 수학여행을 떠났고,
세월호는 친구들의 추억을 기대하던 지숙이와 아이들을 싣고 인천항을 떠나 제주도로 향했지요.

 

하지만
다음날 아침 세월호는 진도 앞바다 맹골수도의 깊고 푸른 물에 침몰하고 말았고, 지숙이는 9시 50분 친구의 전화를 빌려 엄마와 마지막 통화를 했어요. 영영 이별인지도 모른 채~~배가 기울어지고 물이 들어오고 있다는 지숙이의 말에 엄마는 “얼른 밖으로 나와 바다에 뛰어들면 누군가 구해줄거야.” 라고 말했지만 지숙이는 움직이지 말라는 방송을 믿고 밖으로 나가지 않았습니다.

 

지숙이는 결국 침몰하던 배에서 탈출하지 못했고, 사고 닷새 후인 4월 21일에야 사랑하는 가족 품에 돌아와 화성 효원 납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지숙이와 함께 돌아온 시계는 바닷속에서 닷새가 지나도 멈추지 않았고, 지금은 엄마의 손목에서 째깍째깍 지숙이의 숨결처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출처: 한겨레 ‘잊지 않겠습니다’ http://v.media.daum.net/v/20140915205005640)

 

사랑하는 지숙아, 제훈아~생일 축하해. 오늘은 3반 친구들, 8반 친구들이 생일파티 준비하느라 분주하겠네. 지숙이는 초, 중, 고 같이 다니며 절친이 된 예지의 축하 제일 많이 받고 있을테고, 제훈이는 영재 5인방(재욱이, 준우, 최성호, 5반 김건우)들 축하에 정신이 없겠네. 지숙아, 그리고 제훈아. 너희들의 수학여행은 벌써 끝이 났는데 너희들과 친구들은 영원히 돌아오지 못하는 이 현실이 참 아프고 슬프구나. 하지만 그곳에는 이곳에 난무하는 수많은 불의와 미움과 다툼이 없을테니 너희들은 그저 편안하고 행복하여라. 이곳 어른들의 잘못으로 하늘의 별이 된 너희들에게 늘 죄스러운 마음 간직하고 잊지 않을게. 끝까지 너희들의 억울함 밝혀줄게. 사랑한다 지숙아, 제훈아

신승희 – 단원고 2학년 3반

숭어” “신숭생숭”
오를 승에, 기쁠 희, 삶에 기쁘고 즐거운 일들이 많길 바라는 마음으로 아빠는 승희라고 이름 지었습니다.

 

승희는
한 살 많은 언니가 있는 막내딸입니다.
처음 본 승희는 신사임당 같다고 합니다.
큰 눈과 예쁘장한 얼굴에 얌전한 모범생 분위기가 났지만,
승희는 늘 에너지가 넘쳤고, 활기찼으며, 터프하기도 했습니다.

 

승희는
예쁘고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히하는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 없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승희의 꿈은
세무공무원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또한 승희는 1반 #박성빈. 같은 아파트 같은 동에 살던
#조은화와 전교 1.2등을 다툴 정도로 공부도 잘했습니다.

 

평소에도 글쓰기와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부모님께 편지쓰기등을 좋아했던
승희의 글은 승희의 흔적 여기저기에 나타납니다.
학교에서는 같은반 #백지숙_박영란_김수경과 베프였다고 합니다.

 

“#엄마_내가_공부_열심히_해서_나중에_돈_벌면_다_보답할게”

 

2014년 4월 12일,
엄마와 아빠는 강원도로 여행을 떠났습니다.
4월 6일에 결혼 20주년을 맞이한 부모님께 때마침 장학금을 받은 승희가 비용을 부담하여 여행을 보내드렸던 겁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배가 침몰하던 때에 승희는 스마트폰으로 촬영을 했습니다.
이쁜 자기 모습도 카메라에 담았습니다. 이것은 엄마 아빠에게 승희가 보낸 마지막 선물이 되었습니다.
너무 이뻐서 눈물이 날 만큼 착하고 착한 승희,
이날 엄마에게 배가 침몰하고 있다고 전화를 했고 아빠와 문자로 대화를 했는데,
아빠는 승희에게 배위로 나오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런데 승희의 대답은 “움직이지 말래. 너무 심하게 기울어서 움직일수가 없어. 움직이면 더 위험해…”
그러면서
“아빠 걱정하지마. 구조될거야 꼭” ………아빠를 안심시켰습니다.

 

승희 아빠는 승희가 돌아 오던날 통곡하면서 말했답니다.
“넌 바보라고,
갑판으로 나오라니까 방송으로 움직이지 말랬다고 그말을 듣고 나오지 않았느냐고,
아빠가 그렇게 밖으로 나오라고 했는데 끝까지 방송을 믿고 기다렸냐고~”

 

승희가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엄마는 승희가 꾹꾹 눌러쓴 편지 한통을 발견 합니다.

 

“엄마 아빠에게!.
안녕, 오늘 제주도로 가게 되는 승희라고 해요.
내가 수학여행 가는 거 때문에 일주일간 예민하게 굴어 미안합니다.
엄마 아빠 탓이 아닌 거 아는데도 괜히 심술부렸어.
그래도 승희 비위 맞추려고 애쓰고 챙겨줘서 정말 정말 고마워요.
이번에 승희가 돈을 엄청 썼지만 진심으로 감사하게 생각해…
절대 평펑 쓴건 아니야. 꼭 필요한거만 샀어.
비싼돈 들여서 옷사주고 가방사주고 지갑사주고 케이스 사주고 먹을거 사준 만큼,
재밌게 놀다 올테니 혹시나 전화 없다고 걱정하거나 서운해 하지마 ~
3박 4일 재밌게 놀다올게. 그리고 갔다오면 열공 빡공 해야지. 엄마 어젯밤에 고생해서 같이 밖에 나가줘서 고마워.
나 없는 동안 셋이 재밌게 보내~ 사랑해. 승희가.”

 

– 편지속에 어려운 형편에 수학여행 간다고 돈을 너무 많이 쓴것 같아 미안해 하는 마음이 가득 담겨 있습니다.
승희의 편지 처럼 차리리 전화 한통 없이 3박4일동안 재밌게 놀다가 왔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그렇게 급박하게 전화하고 문자하는 일 없이 노느라 정신없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편지의 마지막 구절 ‘나 없는 동안 셋이 재밌게 보내’ 라는 승희의 인사는 엄마 아빠의 가슴속에 이제 마지막 인사로 남았습니다.
“나 없는 동안 셋이 재밌게 보내.”

 

승희가 어느 백일장 대회에서 입선한 시가 한편 있는데 그 시의 제목은 ‘항해’ 입니다.
마지막 구절
“우리는
잔잔한 바다를
영원히
함께 항해하리” 로 끝나는 짧은 시 였습니다.

 

4월 22일에 돌아온
승희는 짝꿍 #박예슬등 친구들과 영원히 함께 항해하고 있습니다.
승희는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유예은 – 단원고 2학년 3반

“내딸 예은아 !
네 삶을 , 꿈을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구나.
보고 싶다는 말 밖에는 할 말이 없구나
사랑한다는 말이 이토록 허무할 수가 없구나
받아만 준다면
영원히 예은이 아빠이고 싶구나
2015.8.30 아빠”

 

예은이는 이란성 쌍둥이입니다
언니는 3.3킬로그렘인데 반해 예은이는 2.6킬로그렘으로 작게 태어났다고 합니다.
성격도 조금씩은 달라서 언니는 여자답게 정숙한데 비해 예은이는 어렸을적 왈가닥이었다고 하네요.
하지만
숫기 없고 순진했으나 무대에서 만큼은 열정을 불태웠던 18살 소녀이기도 했습니다.

 

예은이의 꿈은
뮤지컬 배우가 되는 것이였습니다.
처음 가수가 되고 싶다했을 때 부모님은 사춘기 때 으레 갖는 호기심이라고 여겼지만 예은이가 한 방송사 오디션 참가신청서의 “가장행복했던 순간”에 “보컬학원에 등록했을 때” 라고 쓴 것을 보고는 그 열정을 막을 수 없었다고 합니다.

 

부모님도 주위의 시선을 아랑곳 하지 않고 어떤 일에도 오뚝이처럼 일어서서 뚜벅뚜벅 자신의 길을 가는 예은이가 대견스러웠다고 합니다.
“타고난 재능이 부족하다면 이를 뛰어넘기 위해 노력하겠다”고 다짐했던 예은이는 수학여행 전날에도 뮤지컬학원에 나가 꿈을 키웠습니다.

 

음식을 가리지 않고, 과일을 좋아하고, 친구들을 좋아하고, 교회 신앙생활도 열심히했던 착한 예은이는 4월16일 09시 “배가 90도 가까이 기울어졌어. 너무 무서워” 라고 처음 문자메시지를 보냈습니다.
이어 10시 15분 “아직 객실이요”라는 짤막한 메시지를 세상에 마지막으로 남겼습니다.

 

4월 30일 뮤지컬 (켓츠)공연을 예매했던 예은이..
할머니가 좋아하는 트로트도 많이 연습해서 꼭 즐겁게 해 드리겠다고 다짐했던 예은이.
그토록 속꼽아 기다렸던 공연장엔 결국 가보지 못하고 세월호 침몰 일주일 만인 4월23일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돌아와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예은이는 쌍둥이 여동생입니다.
오늘은 예은이 쌍둥이 언니의 생일이기도 하겠지요.
부모님은 아가들을 보면 예은이 어릴적 생각이 나서 울고, 학생들을 보면 예은인 듯 싶어 울고, 예쁜 아가씨들을 보면 오지 못한 예은이의 미래의 모습을 보는 듯 하여 우십니다.
쌍둥이인 예은이의 생일이 매년 다가 올 때마다 부모님은 남은 언니를 위해 웃어야 할지, 예은이를 위해 울어야 할지 두려워 하십니다.

 

아빠 유경근 416가족협의회 집행위원장의 투쟁과 20일간의 단식,
엄마의 꾸준한 활동. 할머니의 아들앞에서의 피켓팅,
예은이를 잃고 지금까지 계속해서 싸우고 계십니다.

유혜원 – 단원고 2학년 3반

너무나 보고 싶고 안아주고 싶은 내딸 혜원아 딱 한번만, 딱 한번만 너를 볼 수 있다면
못난 아빠의 목숨도 버릴 수 있을텐데 차가운 바닷속에서 죽음을 앞두고 느꼈을 고통과 두려움을 생각하면

 

아빠는 지금 살아가는 것 조차 미안하구나

 

서울 동작구 흑석동 달마사에는
두명의 단원고 희생학생이 잠들어 있습니다.
단짝인 2반 #한세영학생과 바로 유혜원학생입니다.
4남매의 맏이인 혜원이는 밑으로 지금은 단원고에 다니는 고3 여동생과 고2쌍둥이 남동생 둘이 있습니다.
아이돌 블락비를 좋아하고 짝꿍 #장주이와 함께 김초원선생님 교탁 바로앞이 혜원이 자리입니다.

 

혜원이의 꿈은
춤과 노래하는 것을 좋아하고 연예인을 자주보고 싶다며 방송작가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밤늦게 일하시는 아빠가 걱정이 돼서 수시로 문자와 카톡을 보내던 효녀이기도 했고,
밤에 동네서 보는 아빠가 “뽀뽀~”하면 다가와 뽀뽀도 해주던 귀여운 맏이였습니다.

 

중학교때에는 동생들과 돈을 모아 어버이날 선물로 ‘커플컵’을 사 엄마 아빠께 선물하기도 했답니다.
동생들은 엄마 아빠 보다 언니와 누나를 무서워할 정도로 집안 내 군기반장 이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어느 무리에 있던 리더격이였습니다.
체육대회등 행사등에 친구들의 안무를 전부 가르쳐주는게 모두 혜원이의 몫이였다고 합니다.

 

집에서는
무게감있게 조용하기만 했던 혜원이는 휴일이면 24시간 내내 깨지않고 잠을 자는 “잠탱이” 였습니다.
일요일에 친구들이 집에와 깨우다가 지쳐서 포기했던 적이 있었답니다.
잠도 많고 행동도 느릿느릿해서 “거북이” 라는 별명을 가졌던 혜원이는
수학여행때 가져간 50,000원 중에서 단 2,000원만을 사용하고 48,000을 가지고 돌아왔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4월16일 오전 10시 7분 혜원이는 엄마에게 “사랑한다” 문자를 보냈고
1분뒤에는 동생에게 “사랑한다”며 마지막 문자를 남겼습니다.
혜원이가 남긴 마지막문자를 받은 여동생은
“언니를 언제나 사랑하고 영원히 잊지 않겠다” 말합니다.

 

혜원이의 아랫동생은 언니를 쫒아 단원고에 입학하여 지금은 단원고 3학년에 재학중이고
쌍둥이 남동생 둘은 누나의 꿈을 쫒아 지난학기에 단원고에 입학하여 2학년에 재학중에 있습니다.

 

그러나 혜원이와 희생된 친구들은 학교에서 쫒겨나 임시 기억교실에 있습니다.

 

고작 17년,
꿈도 펼쳐보지 못한 혜원이는
절친 세영이가 돌아온 다음날인 4월 22일에 우리곁에 돌아왔습니다 .

 

“너만 보면 안좋은 기분에 햇살이 비춰 칙칙한 피부에 생기가 띄어
나 오늘도 준비한 말들을 말하지 못하고 그댈 보내요
잘못했어 생각에 잠 못 이뤄 괜찮다 하던 네가 바보인걸
나 오늘도 아니 내일도 너 없으면 살지 못 할것 같아 정말”

 

혜원이가 좋아하며 흥얼거리던 블락비의 “지코”가 부르던 (편지) 의 가사 일부입니다.

사랑한다
시 : 신호현

 

세상살며
사랑한다는 말
잊고 살아 왔는데

 

그 소중한 한마디
입에서 나오면 꽃이 되어
나비도 날아올텐데

 

그토록 가슴에 담아
미쳐 꺼내주지도 못했는데
그 주인은 떠나고 없더라

 

그 한마디면
세상 거칠고 힘들어도
다시 살아갈 수 있을텐데

 

그토록 서로 소중한 너는
마지막 순간에 꺼내어
뜨거운 인사를 주었구나

 

사랑한다 맏딸아
사랑한다 모두가
사랑한다 죽을 때까지

이지민 – 단원고 2학년 3반

지민이는 세자매중에 둘째입니다.
주황색을 너무 좋아해 주황우산, 필통, 팬등 친구들은 “주황덕후”라고 불렀습니다.
만화 (원피스)에서 동생을 지키다 장렬하게 전사하는 비운의 케릭터 “에이스”를 좋아하고 에이스가 늘 쓰고 다니는 주황색모자를 좋아한 이후 지민이도 주황색을 좋아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하물며 에이스의 생일이 1월 1일이라 지민이의 비밀번호도 0101였다고 하네요.

 

달리기를 좋아해 초등학교때는 육상부활동을 하기도 했던 지민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엄마”로 불리울 만큼 친구들의 고민을 들어주고 일에 치여 힘들어 하는 엄마가 안쓰러워 설거지랑 빨래도 해놓고 다리도 주물러 주는 둘째딸이었으며 얼큰히 술에 취해 들어온 아빠 옆에 앉아 밤늦게까지 이야기를 들어주는 듬직한 딸이기도 했습니다.

 

지민이의 꿈은
여군장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이모부와 이모가 직업군인이라 어렸을적부터 군인의 꿈을 키웠습니다.

 

수학여행 날짜가 정해지고
지민이와 반친구들 몇몇은 수학여행을 특별하게 준비했습니다.
반 친구들과 안산공단에 있는 공장에서 화장품 뚜껑을 끼우는 알바를 통해서 사고 싶었던 후드짚업을 사고 마음에 든 운동화도 장만하여 수학여행길에 올랐습니다.

 

[우리 찌아. 배에서는 안전벨트 매는거 아니다.안전. 또 안전 알겠지? 선생님 잘 따르고 사진 많이 찍고 ]

 

[ㅋㅋㅋ 잘 다녀 오겠슴다. 학교 끝나고 바로 출발이야 ~ 얼마나 좋은지 말해줄게 ㅎ]

 

커다란 배를 타고 나가면 (원피스)에 나오는 해적이 된 것 같은 느낌으로 드넓은 바다를 보며 여군 장교의 꿈을 키우며 지민이는 그렇게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열여덟 소녀의 꿈을 실은 세월호는 진도앞 맹골수도에 침몰하여 버렸고, 지민이의 여군이 되겠다던 꿈도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 버렸습니다.

 

지민이는
5월6일, 사고후 20일만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그토록 소란스럽고 북적이며 취재하던 언론들은 대부분 떠난터라 가족들은 차분한 분위기속에서 지민이를 맞이할 수 있었다 합니다.
지민이는 함께 떠난 친구들과 평택서호추모공에 잠들어 있습니다.

 

“아직도 꿈속에서 헤매고 있는 것 같다.
너를 보낼 마음의 준비 한번 없었기에 꿈이기를, 꿈이었기를, 꿈이였으면 하루하루 늘 바랬었지만,
현실은 바뀌지가 않았지,
우리 지민이 덕분에 참 많이 행복했었어.
소중한 우리 딸, 다음 생이 있다면 다시 한번 엄마, 아빠 딸이 되어주길 그래서 더 많이 우리 지민이를 안아주고 사랑해줄 수 있게 되길 간절히 기도해 본다.
영원히 사랑해 지민아.너를 너무도 그리워하는 못난 엄마가..”

갈꽃 아이
시 : 신호현

 

엄마를 안아주고
아빠를 안마하던 네 손
언니 동생의 잔소리쟁이로
부드럽게 찰랑거리던 목소리
갈꽃처럼 나부끼던 아이야

 

보고싶은 마음
많이 그리운 마음
바람부는 엄마 들녘에
심해같은 아빠 가슴에
하얗게 흔들리는 아이야

 

멋있는 군인이 되어
이 땅에 평화 지키겠다며
파랗게 조근 조근 피워나더니
바보처럼 소리도 못 지르고
칼바람에 쓸리어 날아갔구나

 

네가 뿌리 내렸던 땅이
이처럼 허망한 바람이었더냐
가슴에서 붉은피가 솟는다
눈비 내리는 둥지 들녘에서
너는 예쁜 손짓만 하는구나

장주이 – 단원고 2학년 3반

“엄마를 웃게 해주는 사람도 내 딸.
엄마를 이해해주는 사람도 내 딸.
엄마 마음을 배려해주는 사람도 내 딸.
힘들 때마다 힘내라고 응원해주는 사람도 내 딸.”

 

주이를 떠올려 볼때면 가장 먼저 더벅머리 스타일에 바지를 즐겨입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김초원선생님의‬ 교탁 바로 앞에서 초롱초롱한 눈망울과 환한 미소를 그리고있을
열여덟 꿈 많은 소녀가 떠오릅니다.
밝고 꾸밈없고 활달한 성격의 주이를 보고 엄마도 가끔씩 주이를 섬머슴 같다고 놀리며
” 차분한 오빠와 성격을 바꿨으면 좋겠다”라곤 했다고합니다.

 

주이는
두살 터울인 오빠와 가끔씩 티격태격했지만
다툰지 10분도 안 돼 까르르 웃으며 화해하곤 했습니다.
그래서 엄마는 주이를 “아들 같은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마치 사내아이 같았지만 주이는 감성이 풍부한 소녀였습니다.
학교 기타 동아리에 들어가 아름다운 선율을 연주했고 감성어린 춤도 잘 소화했다고 합니다.

주이의 꿈은
여군 장교가 되는 것 이였습니다.
​친구도 많고 학교 일이라면 소매를 걷어 붙이고 나섰습니다.
학교 축제 때는 춤 경연대회에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나갔고,
학교 선도부에 들어가 적극적으로 활동하며 단체생활의 규율과 규칙을 몸에 익혔습니다.
작년 수학여행을 다녀온후 여름방학 때는 사촌 언니가 다니는 대학 학군단ROTC을 찾아가
여군 장교가 될 수 있는 방법을 꼼꼼하게 알아보려던 참이었습니다.

 

하지만
세월호는 주이의 꿈을 무참히 수장시키고 말았습니다.
​사고 일주일째인 4월 23일 엄마 품에 돌아온 주이는 절친 ‪#고하영과‬
나란히 경기도 안산 하늘공원에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엄마는 지금도 가끔씩 군복을 입고 거수경례를 하는 주이의 모습을 상상해보곤 합니다.
” 엄마는 이제 슬퍼하지 않을 거야.
분명 내 딸은 친구들과 선생님과 함께 좋은 곳으로 갔을 거라 믿고 있기 때문이야.
부디 좋은 곳에서 친구들과 선생님과 행복하게 잘 지내렴.
엄마도 씩씩하고 건깅하게 열심히 살거야.
내 딸이 바라는 거니까…..이다음에 우리는 꼭 만날 수 있으니까 슬퍼하지 않을게.”

고해인 – 단원고 2학년 3반

영수는
엄마가 마흔살에 태어난 늦둥이 막내딸입니다.
과일과 고기를 좋아하고 이해심 많고 배려심 많은 아이였습니다.
168cm 늘씬한 몸매에 환한 미소로 친구들에게도 인기가 많았습니다.

 

엄마에게 영수는 종교나 마찬가지였다고 합니다.
온 영혼으로 믿는 딸이상의 존재였습니다.
엄마가 요리사자격증 시험을 보러갈땐 조막손으로 그림과 글로써 부적을 만들어주고 그 힘들다는 사춘기도 지나가는 줄도 모르고 지나갈정도로 지나갔다고 합니다.

 

“애들이랑 잇을때면 놀릴때 반응 좋은 친구엿구여 YG패밀리를 되게 좋아하는데 그중에서 GD를 좋아해서 노래방가면 항상 GD노래를 꼭 부르는데 부르는 모습이 너무재밋어서 혜진이가 꼭 동영상을 찍어둿어요. 공부도 어느 정도하는 친구엿고 목소리톤이 높아서 그런지 되게 특이하고 마르고 중학생 3학년 만낫는데 그때부터 나이 속여서 알바하고 애들이랑 놀때면 분위기를 더 재미나게 해주는 그런 친구엿어요~!!
이목구비도 되게 뚜렷해서 얼굴이 예뻣어요!”
영수친구가 알려준 영수에요~!!♡
“다른 애들이랑 같이 노래방가면 권지용 노래틀어서 랩하면서 춤추고 중학생때 신하균이랑 결혼해서 애8명인가 낳는다고 하고~
영수네 언니가 자기 항상 놀린다고 그런 얘기
하곤 했데요”
친구들이 이야기하는 영수는 그 시절의 여느 소녀처럼 밝고 쾌할한 소녀였습니다.

 

영수의 꿈은
복잡한 역사 용어를 노래처럼 부르곤하며 역사 선생님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교실을 방문 할때마다 횡하니 썰렁한 영수의 자리…
영수의 자리에 메모가 하나 놓여있습니다.
오늘은 영수 자리에 놓인 편지글을 소개합니다.

 

“영수야! 잘 지내지?
지난 날 기억하면 너랑 진지한 얘기도 못하고 너한테 장난만 쳐서 너무 미안한 마음뿐이야…
단지 너라고 하면 떠오르는건…GD뿐이라던가.
생일, 너의 얼굴, 너의목소리….
그닥 많이 얘기를 못한 것 같아 너무 슬프다….
.
.중략
.
진짜..너에게 하고 싶은 말 .다 하고 싶은데
따질것도 되게 많고 !
진지한 얘기도 많이 하고.이제와서 후회하는 나 자신이 밉다….
너가 연락을 잘 안 받아도.
계속계속 끈질기게 할 걸…
미안해 영수야.
다음 생에는 꼭 다시 만나 못했던 것들 다하자!
사랑해♡♡
—ㅇㅇ친구—

 

영수는 하늘 공원에 오늘 생일인 주희와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정예진 – 단원고 2학년 3반

1997년 12월 11일
소가 점심을 먹고 한참 낮잠을 잘 시간에 소띠라 팔자가 좋다는 아이는 커다란 알밤 꿈으로 3.7kg의 몸무게로 태어 났습니다

 

“슈퍼스타의 꿈”
“엄마, 나 꼭 동방신기하고 같은 무대에 설 거예요.슈퍼스타가 돼 엄마 호강시켜드릴 테니 그땐 목에 힘주고 다니세용~”

 

꿈 많은 열 여덟살,
예진이는 엄마를 끔찍이 위하던 “친구같은 딸”이었습니다.

 

“무대 체질”이라고 불릴 정도로 성격이 활달했던 예진이의 장래희망은 안산에 있는 서울예술대학교에 진학하여 장래에는
방송계에서 일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를위해 날마다 연기학원에 다녔고 지난해 4월14일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밤에도 자정까지 연기학원에서
연습할 정도로 자신의 꿈을 위해 열성적으로 달리던 아이였습니다.
뮤지컬을 유난히 좋아했던 예진이,
예진이가 있는 곳엔 노래와 춤이 빠지지 않았습니다.

 

희생학생중에 많은 사진과 영상이 남아있는 예진이는 교정 곳 곳, 교실 곳 곳에 예진이의 흔적이 남아 있습니다.
예진이는 마음씨 또한 착한 아이였습니다.
1학년때부터 학교 봉사동아리 TOP에서 활동하며 주말이면 요양원을 찾아 할머니들 목욕을 시켜주거나
청소를 하고 음식을 만들어 주곤했습니다.

 

단원고의 대장!!!!
정.예.진.
가장 키가 크고, 가장 목소리가 컸고, 가장 열심히 모든 대회를 설렵했고, 늘 친구들을 거닐었고, 가장 성격이 좋았고,
긍정과 씩씩함의 대명사였던 예진이.
최고의 성격 미인 예진이,
친구들의 추천으로 상중에 제일 인정해준다는 봉사상을 받은 예진이,
영어UCC대회. 팝송대회, 포스터대회, 장기자랑대회, 각종경시대회를 휩쓴 예진이.
멋지게 무대에서 댄스로 친구들을 열광케 했던 예진이였습니다.

 

또한 예진이는 주변에 친구들이 많아 순간 순간 행복한 나날들을 보냈습니다.
“금구모”가 대표적인 친구들의 모임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동방신기 맴버 유노윤호와 함께하는 공연을 꿈꿨던 예진이는 세월호 침몰 엿새만인 4월 22일, 동생 의찬이의 생일날에 엄마품에 안겼습니다.
예진이는 같은반 #김도언과 나란히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최수희 – 단원고 2학년 3반

“쑤희 쑤희 귀염둥이 쑤희 잘지내지?
많이 보고싶다 ㅠㅠㅠㅠㅠ
너가 많이 보고싶다ㅠㅠㅠㅠ
너 생각하면 아직도 너가 나한태 편지 써준게 눈에 아른거려. 애교 가득한 말로 써줬는데 받으면서 진짜 기뻤는데 ..
그런 니가 없는게 너무 슬프다.
니 목소리 듣고 싶고 니 웃음소리도 그립고
얼굴도 보고 싶고…보고 싶다…. 보고 싶어…”

 

“스희스” “할멈” “쑤희” 라고 불리던 최수희는 1998년 8월 4일 강원도 원주에서 체중 2kg 저체중으로 태어났습니다.
체중미달을 달래려는 듯 잘먹고 수다쟁이로 자랐다고 합니다.
귀여운 여동생도 생기고 누구 못지 않게 행복하게 자랐지만 호사다마라고나 할까.
잘 자라주던 동생이 심장이식수술을 하는 병에 걸리고 수술후 6개월을 채 못채우고 10월 4일 1004가 되어 하늘로 떠났습니다.

 

중학교때의 힘들고 어려운 시기를 이겨내고 단원고에 진학한 수희는 착하고, 귀엽고 피부도 좋아 친구들의 부러움을 샀다고합니다.
때론 예은, 예진이랑 주크박스처럼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추는 발랄한 소녀였습니다.
또래 친구들처럼 아이돌 스타를 좋아 했으며 그중에서도 지드레곤(권지용)VIP였을 정도로 왕팬이였던 수희의 책상위에는 지드레곤의 프로필 사진들이 붙여져 있으며, 수희의 페이스북 바탕화면 또한 지드레곤VIP로 자신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수희의 꿈은
유치원선생님이 되는 것이였습니다.
꾸미는 것과 만드는 것을 좋아할 정도로 손재주가 뛰어났다고 합니다.
고1때는 *다누리* 라는 다도동아리에서 활동하였고.
1년후 자신과 맞지않는 것 같다고
2학년부터는 *그린레인저*라는 교내 청소와 매점지킴이 활동동아리에서 활동하였습니다.
성격 또한 털털하고 친화력도 무지 좋았으며 밝고 재미있는 아이였다고 친구들은 전합니다.
맛있는 걸 앞에 두고도 다이어트한다고 굶는 영락없는 사춘기 소녀모습 그대로 였습니다.
수희는 때론 친구들에게 어른스럽게 조언을 하기도 합니다.
《너한테 아쉅고 이런것 보다는 그냥 5년동안 고마웠다고 하고싶었어. 공부 열심히 하고, 부모님 속썩이지 말고, 나쁜 친구들이랑 어울리지 말고, 나쁜 생각 하지말고 학원도 꼬박 꼬박 잘 댕기고 암튼 잘지내.》

 

운명의 4월 16일 ,
초콜릿 사온다고, 제주도 간다고 좋아 하던 수희를 태운 세월호는 진도앞바다에서 기울기 시작하였습니다.
“가만 있으라”는 선내방송과 함께 수희는 같은반 #박예슬양의 동영상속에서 울먹이는 모습을 마지막으로 남기며 하늘로 수학여행을 떠나고 맙니다.

 

“많이 무서웠지 울지마. 울지마.
나도 너무 슬프다.
울지마 수희야
친구들이랑 잘 지내고 있어
알겠지.”
수희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보고 싶은 수희
너희 친구들 모두 한자리에 모여서 꿈을 키워야 할 때 어디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거니….
아빠는 항상 수희가 보고 싶고 너무 보고 싶고 말로는 표현 할수가 없구나.
수희는 동생하고 착하게 잘 있으리라 아빠는 믿고 세월이 흘러 먼 훗날 너의 곁에서 못다한 우리들의 이야기를 꽃피워 보자꾸나 ㅡ 사랑하는 아빠ㅡ”

 

수희부모님은 수년전 수희동생을 잃고 이번 세월호참사로 유일한 수희 마져 잃어버렸습니다.

최윤민 – 단원고 2학년 3반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쁜아이.

 

*오늘은 네 생일이야. 원래 네 생일 땐 네가 더 생일이라고 떠들고 다녔을텐데…
너 대신 언니들이랑 엄마가 네 생일이라고 알리고 있어. 거긴 어때?
잘 놀고 있는거지? 축하는 많이 받았고?
언니들 선물은 마음에 들어?
궁금한게 너무 많은데….언니 혼자 네 반응을 추측해야해서 좀 그래…
그러니까 언니 꿈에 나와서 네가 직접 말해줘.
사랑하는 내동생 윤민아.
생일 정말 축하하고…너무 보고 싶다.*

 

닭강정,아이스크림,마늘햄.우유, 찐 감자등을 좋아하고 갈비를 좋아했던 윤민이.
160cm.40kg의 자그마한 채구의 윤민이는 성격 또한 조용한 아이였습니다.
학교생활을 기억하는 선생님께서도 윤민이는 단정한 모습에 행동도 말도 바르고 착했고, 늘 조용하고 낮은 목소리로 조곤 조곤히 이야기하고 늘 성실이 몸에 배어 있으며 누구와도 다툼없이 평화롭고 사랑스러웠던 아이로 기억하고 있습니다.
엄마를 닮아 가늘고 긴 손가락과 발가락이 예뻤고 손톱과 발톱에 매니큐어를 칠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전에도 발톱에다가 분홍색 매니큐어를 바르고 흰색 꽃 모양을 넣었답니다.
세월호 사고가 난지 일주일 만인 4월 23일, 엄마는 “발톱에 꽃무니 매니큐어”가 칠해진 아이가 나왔다는 소식을 전해 듣고 그 아이가 윤민이인 것을 금방 알았다고 합니다.
오늘 교실에서 뵌 어머니는 윤민이가 조용하고 특출난 재능으로 드러나지 않았기에 윤민이를 알리고자 하신다고 하였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윤민이를 알고 기억해주는 것이 곧 윤민이가 영원히 사는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아이들의 생일을 기억하고 여러분들과 함께 축하하는 것과 마찬가지 이겠지요.
윤민이 언니 최윤아 님과 어머니의 윤민이와 친구들을 위한 진실규명을 위한 발걸음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제는 윤민이 짝꿍 #김지인의 생일이였습니다.
윤민이는 4월 23일에 가족의품에 돌아와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한은지 – 단원고 2학년 3반

“1년전 딱 오늘 우리 수학여행간다고 각자 장기자랑 연습하다 중앙동 갔잖아.ㅎ
그때가 엇그제 같은데….
시간이 지나면 괜찮아 진다고 했는데
그리움은 더 커지는것 같아…
너한테 많이 못해준거 같아 되게 미안해ㅠ
은지야 항상 보고 싶어 나중에 내꿈놀러와(오늘 와도돼ㅎㅎㅎ)
내가 많이 사랑해 보고 싶다”♡
2015.4.15

 

두루미, 헌은지, 한지로 불리운 은지는 전주 예수병원에서 2녀 1남 중 첫째로 오전 8시 44분 2.64kg으로 때어났습니다.
은혜 “은” 지혜로울 “지”
은혜롭고 지혜로울 아이가 태어났으면 하는 부모님의 희망대로 은지는 고집이 세고 의무감이 남다른 아이로 자랐습니다.
은지의 막내 동생은 식도폐쇄증을 안고 태어났습니다. 행복했던 가족에게 닥친 최대 위기였습니다.
“오늘 의자를 잡고 일어 섰어요”
“동생이 코에 달린 튜브 줄을 뗐어요”
“드디어 혼자서 음식을 먹을 수 있게 됐어요”
은지는 동생을 자주 칭찬하는 성정이 밝은 누나였고 부모님에게는 든든한 맏딸 이었습니다.

 

은지는
단원고 YMCA 봉사동아리 TOP 회원 이였습니다.(T:재능,O:의무,P:열정)
2학년 TOP회원 열명중에서 일곱명이 세월호 참사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유미지_김주희10반_김영은_박성복_성민재_김제훈, 은지도 그중 한 명이니다.
여행가방을 끌며 다녀오겠다고 신나게 인사하던 모습이 마지막이였습니다.
은지는 학교에서 예슬이와 혜원이와 절친이었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 16일은 담임이신 김초원선생님의 생일이기도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전 3반 아이들은 #김초원선생님께 작은 선물을 드리고 각자의 마음을 담아 편지를 썼습니다.
은지는 “저희가 준비한거 기쁘게 받아 주셨으면 해요.다른 선생님 한테 아주 많이 자랑해주세요”라고 해맑은 부탁을 드렸습니다.
김초원선생님은 은지를 비롯해서 #김담비_김도언_김빛나라_김소연_김수경_김시연_김영은_김주은_김지인_박영란_박예슬_박지우_박지윤_박채연_백지숙_신승희_유예은_유혜원_이지민_장주이_전영수_정예진_최수희_최윤민황지연등 26명과 함께 하늘나라 수학여행중입니다

 

은지는
1학년말 학교축제때 춤추는 모습이 정말 예쁘다고 2학년 오빠에게 익명으로 고백을 받기도 하였습니다.
하늘나라로 떠나버린 은지의 지갑에서는 코팅된 연애편지가 발견되었습니다.
그 편지의 주인공은 경기도 시흥장례식장에서 치러진 은지의 장례식에서 은지의 영정앞에서 눈물을 펑펑 흘렸답니다.

 

뺨이 오동통했던 서너 살의 한은지.
다리가 쭉쭉 길어지던 열 살 무렵의 한은지.
호기심 많은 중학생 한은지.
친구들과 잘 어울리던 명랑한 고등학생 한은지. 엄마 아빠와 동생들 가슴 속엔 그 모든 한은지가 영원히 각인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은지는 그토록 아끼던 TOP봉사동아리 후배들의 배웅을 받으며 영영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났습니다.

 

3분단 맨뒷자리 영은이와 짝꿍인 은지는 안산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너의 빈자리가 너무커서 계속 기다리게되.ㅠ.ㅠ
근데 너 빈자리 아무한테도 안줄거야.
나중에 너랑 나랑 만나는 날 그때 너한테 다시 내줄거야.
그럼 그때 그 빈자리 다시 채워줄래?
다시 채워줄거지?
우리는 너를 진짜 사랑하고 기억해…그래서 어느 누구랑도 못바꿔.
누가 100억을준대도 안바꿀거야. 절대~!!
그니까 너가 계속 우리 친구해줘야해. 알겠지?
항상 사랑하고 너무 미안하고 평생 우정해 내친구.
나같은 애랑 친구해줘서 고맙구 !!!♡》

황지현 – 단원고 2학년 3반

“황지”. “동동이”로 불리는 지현이는
부모님이 결혼 7년 만에 귀하게 얻은 외동딸입니다.

 

첫아이 유산후에
“특별한 아이를 바라지도 않고. 예쁜아이, 잘난아이도 바라지 않고, 내가 사랑하는. 나를 사랑하는 보통의 행복한 아이 하나면 충분하다”고 기도해서 얻은 아이입니다.

 

친가쪽으로는 막내로 태어났고 외가쪽으로는 첫 손녀라 양쪽 집안의 귀여움을 독차지하며 모두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랐습니다.
게다가 지현이는
성격도 좋아서 삐지는 법이 없었고 멋을 부리거나 꾸미는 법도 잘 모르고 털털하게 다녔다고 합니다.

 

지현이는 어릴때부터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해 지금도 집안 곳곳에 놓여있는 지현이 스케치북에는
지현이가 그린 그림, 만화케릭터들이 있다고합니다.

 

또한
공포영화나 추리소설들을 좋아했고 중국어도 배우고 싶어 했던 꿈 많은 소녀였습니다.
사랑할 줄 아는 아이,
말이 아닌 행동으로 부모님의 힘듦을 헤아려 청소와 집안일을 하고 음식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지현이는
지금까지 수습된 희생지들 중에서 가장 늦은 2014년 10월 29일,
자신의 생일날이 되어서야 비로서 가족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모두가 힘들어 할때 기젹적으로 돌아왔습니다.
지현이를 찾은 위치는 4층 선내 중앙 여자화장실 이었으며 그동안 십여차례 이상 수색이 이뤄졌었다는 곳이였습니다.
부모님은 이날 팽목항에서 지현이가 좋아했던 음식으로 생일상을 차렸고 지현이는 295번째로 197일만에 돌아왔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