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김지윤 – 단원고 2학년 2반

지윤이는 두 남동생을 둔 지윤이는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부모님을 위해 설거지와 청소를 했고 두 동생들을 잘 돌봤습니다.

지윤이의 꿈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들어가 영어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윤이는 4월 29일에 친한 친구였던 1반 박성빈양과 함께 세월호 5층 로비에서 발견됐습니다.

-지윤이 첫째 동생의 편지

“누나? 보고 싶어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지? 여태까지 시비 걸어서 미안해, 누나,

우리 나중에 가족끼리 웃으면서 만나자. 그때까지 행복하게 있어야 해.”

 

-지윤이 둘째 동생의 편지

“누나.천국은 어때? 천국은 행복해? 누나와 함께한 추억들이 그리워. 누나.
보고 싶어. 누나 .나중에 천국에서 날 마중 나와 있어줘. 누나에게 꼭 갈게. 누나. 기다려줘.”

오유정 – 단원고 2학년 2반

유정이는 남매중에 맏이입니다.

유정이는 편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가족들의 생일이면 선물과 함께 예쁜 글씨로 쓴 편지를 건넸습니다.
할머니 집에는 유정이 편지만 따로 모아 놓은 편지 상자가 있을 정도입니다.

 

유정이 부모님은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셨습니다. 유정이도 나중에 제과점을 운영하고 싶어했습니다.

 

유정이 어머님의 편지

*이 세상에 유일한 내 딸 유정아.너무 너무 보고 싶구나.
딸을 생각하면 어느새 눈물이 고이는구나.옆에 있을 때 많이 많이 사랑 못해주고 잘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 뿐이구나.사랑한다 내 딸!유정아 사랑해~!*

 

유정이 친구의 편지

*우리 돌쇠 ! !(유정이)
너 매일 과자 갖고 와서 나눠 먹었잖아.내 생일 때 내가 크게 한턱 쏘려고 했는데…바보야….보고 싶어….
우리 민지랑 다윤이랑 지나랑 소정이랑 나랑 이번에 친해져서 방도 같이 쓰고 좋았는데….
근데 왜 나만 남았을까….보고 싶어 … 미안하고….사랑해 ..바보야….*

유정이는 친구들과 함께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수정 – 단원고 2학년 2반

수정이는 활발하고 운동을 좋아했습니다. 수정이의 아빠는 수정이를 ‘큰아들’이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엄마에게도 수정이는 의지가 되는 딸이었습니다.
튼튼하고 건강했던 수정이는  힘든 일을 도맡았고 심지어 쌀자루도 번쩍 들어 나르곤 했답니다.

수정이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기본 질서를 중시하는 반듯한 성품이었습니다. 친구들을 잘 챙기는 성격이기도 했습니다.

중학때부터 VJ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던 수정이는 방송부가 있는 단원고를 선택하여 진학했습니다. 그리고 입학 후 방송부에 들어가  학교 내 촬영은 물론 안산,경기 영상 제작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전국 규모인 “청소년영상제작동아리MFS”에 가입하여 운영진까지 맡았습니다.

수정이는 “금요일 함께 점심을 먹는 9반 모임”인 “금구모”의 일원이기도 했습니다.

 

딸만 셋인 수정이네는 날마다 거실에서 수다를 떨다 함께 잠이 들곤 했는데 2014년 4월16일 이후,엄마 아빠는 더 이상 딸들의 수다를 들을 수 없습니다.

 

4월 15일, 수정이는 꼭두새벽에 일어났습니다. 행여 식구들이 깰까 현관문을 조용히 닫고, 일곱 살 때부터 오르내리던 계단을 사뿐사뿐 걸어 내려 갔습니다.

그리고 그 길로 수정이는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갔습니다.

수정이는 지금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수정이 언니의 편지

☆학교 올라오는 길 보면 매일 야자 끝나고 집에 빨리 가려고 너랑 뛰던 거 생각나. 학교 매점을 보면 거기서 놀고 있는 네가 생각나.방송 스피커를 보면 음향 체크하느라 뛰어다니던 네 생각이나.

네가 세상을 떠났다는 게 잘 실감이 나지 않아. 지금도 네 번호로 전화하면 네가 받을 것 같은데 신호만 가네.
언니는 이제 대학생이 되었어. 네게  정말 해주고 싶은 게 너무 너무 많은데, 해 줄 수가 없어서 자꾸 눈물만 나.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해, 내 동생 수정아,
언니 동생이어서 고마워 사랑해♡

남지현 – 단원고 2학년 2반

지현이는 세 자매 중 늦둥이 막내딸이었습니다. 부모님과 두 언니는 귀여운 막둥이 지현이를 정말 예뻐하고 사랑했습니다.

지현이는 구김 없고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웃음이 많았고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지현이는 발라드 음악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블락비의 ‘넌 어디에’ 라는 곡을 좋아했습니다.

한국사를 좋아했고,수제비를 좋아했고, 연예인 이민호를 좋아했으며, 나중에 모델과 결혼한다고 할 정도로 모델들을 좋아했습니다.

‘엄마가 없으면 저는 단 하루도 행복할 수 없어요’ 라는 편지를 썼을 정도로 엄마를 따랐습니다. 엄마, 아빠에게 효도 쿠폰과 상장을 재미있게 만들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름의 상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지현이의 꿈은 방송 일을 하며 여러 곳을 다니고,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PD, 방송기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새벽, 아빠는 지현이가 탄 배가 안개 속으로 사라지는 꿈을 꾸었습니다. 불길한 예감에 엄마는 지현이에게 계속 전화를 거셨지만,끝내 지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귀여운_늦둥이
시 : 신호현

 

엄마 없으면
단 하루도 행복할 수 없어요
너의 마지막 편지

 

너 없는 지금
엄마는 하루도 행복하지 못해
어린 너는 어찌 알았다지

 

귀염둥이 늦둥이
엄마 아빠의 보석으로
행복을 선물하던 지현아

 

집 안 곳곳
너의 흔적 어루만지며
중얼거리는 엄마의 일상

 

함께 할 땐 몰랐지
시간이 많은 줄 알았기에
사무치는 후회만 남는구나

 

4.16 아빠의 꿈속에서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간
엄마아빠의 귀염둥이 늦둥이

송지나 – 단원고 2학년 2반

지나는 생후 6개월만에 심장 수술을 받았고, 엄마에게는 껌딱지처럼 늘 옆에 두고 지켜주어야 할 보석처럼 귀하면서도 안쓰러운 딸이었습니다.
또래에 비해 속이 깊었던 지나는
엄마가 메이커 옷을 사주지 못해 미안해 하시면 “엄마, 그거 비싸니까 안사줘도 돼. 난 괜찮아.” 라며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던 착한 딸이었지요.
살아생전 메이커 옷 한 벌 입지 못했어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엄마가 힘드실 때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게 해주고, 의지가 되어주던 지나~

 

직장에 다니시던 엄마와 항상 함께 장을 보고, 집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지나~
건강이 좋지 않은 엄마가 힘들어 하시면 등을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던 이쁜 딸 지나~
이럴 때면 오히려 지나가 엄마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어머니에게 지나는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존재였지요.

 

4월 15일 저녁 8시 45분,
수학여행을 떠난 지나에게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오라는 문자를 보낸 엄마는 그게 딸과의 마지막 문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셨겠지요.
다음날인 16일 아침,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지나와 수도 없이 많은 통화를 시도했던 엄마는 끝내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나는 세월호 속에서 스러져갔고, 4월 24일에야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돌아와 지금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지나의 꿈은 웹툰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박주희 – 단원고 2학년 2반

☆어려운 이웃을 돌보겠다던 속깊은 막내,
보배로운 믿음, 천국에서도 반짝이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딸이 되기를 기원하며 지은 이름 주희☆

 

주희는 일기장에
“미래의 꿈을 키우며 성공하고 부자가 되면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살겠다” 라며 예쁜 꿈을 키우던 아이였습니다.

 

교회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성실하고 검소했으며 자기관리가 철저해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것을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했습니다.
삼남매 가운데 막내딸이였지만 무척 어른 스러웠고 하물며 유명상표 옷을 사준다 하면 늘 싫다고 했으며 시간이 날때 놀러가자고 해도 “지금 필요한게 아니다”라며 거절했다 합니다.
용돈을 아껴서 늘 책을 살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했기에 엄마에게는 잔소리할 기회조차도 주지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희도 사춘기 소녀였고, 짝사랑했던 선배 또한 있었다고 합니다.
주희는 완벽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모범생이였지만 짝사랑으로 고민하는 평범한 여학생이였고, 꿈많은 소녀였습니다.
주희의 집에는 주희가 떠난 자리에 반려견”벼루”가 들어와 주희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열 일곱소녀와 꿈을 태운 세월호는 4월16일 침몰하였으며 주희는 4월19일에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와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있습니다.

나눔부자의 꿈
시 : 신호현

 

주님의 기뻐하시는
막내딸이 되길 원하며
아빠가 지어주신 주희야

 

성공하고 부자가 되어
어려운 이웃 돌보며 살겠다던
보배로운 믿음의 이쁜 주희야

 

성실하고 검소했으며
스스로 자기관리 철저했기에
잔소리할 기회도 주지 않았지

 

입는 옷 사치가 싫어라
주어진 시간 낭비가 싫어라
서투른 사랑도 미루어 두어라

 

그렇게 큰 마음 공부하며
멋진 꿈 이루길 기약하더니
이젠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라

강수정 – 단원고 2학년 2반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수정이는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가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고 자랑삼아 털어 놓았습니다.

그러나 수정이도, 수학여행을 함께 갔던 남자친구도 세월호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수정이는 4월 20일 4층 선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수정이  친구와 수정이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이 보낸 편지

《안녕 수정아 우리 수정이 벌써 생일이네. 19살 된 거 축하해.예전에는 네가 매년 내 생일을 챙겨주었는데 이제 그러지를 못하네. 네 생일날에도 같이 있지 못하고 같이 놀지도 못하네. 네가 많이 보고 싶고 그리워.

우리 벌써 못 본지 무려 1년 반이네. 거의 맨날 만났던 우리가 너무 오랫동안 못 보게 되었어.

많이 보고 싶어. 너 있을 때 자주 연락하고 만났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정말 미안해. 네가 나를 엄마처럼 잘 챙겨줬었는데……너무 허전해.

그래도 항상 너와 같이 있다고 생각하면서 지낼 거야. 우리.만날 때까지 잘 지내고 있어야 돼. 수정아, 많이 많이 보고 싶고 생일 축하해❤️》

 

《저는 수정이가  초등학교 3학년 때 담임 선생님이었요. 딸 셋인 집에 둘째 딸로 조용한 듯 하면서도 활달한, 성격 좋은, 얼굴도 마음도 예쁜 아이였습니다…
수정이는 그림 그리기를 좋아했고 그 분야에 재능을 보였던 아이였어요. 유독 수채화를 잘 그리던 감수성 풍부한 아이였어요. 커서 디자이너가 되고 싶어 했어요.
효원공원에 있는 수정이를 몇 번 만나고 왔지만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질 않아요…》

박혜선 – 단원고 2학년 2반

“엄마, 배가 흔들려. 구명조끼 입고 대기하래..”

세월호가 기울고 있던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3분 ,혜선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혜선에게 “친구 손 잡고 선생님 곁에 있어 ” 라고 말했습니다.시력이 좋지 않은 혜선이가  안경을 잃어 버릴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 통화였습니다.혜선이는 세월호가 침몰한지 19일만인 5월 5일 어린이날에야 돌아왔습니다.

엄마의 기억 속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4월 15일 아침. 낑낑대며 여행가방을 끌고 집을 나서던 혜선이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남아있습니다.

 

혜선이의 꿈은 동국대 국어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전수영 담임선생님처럼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그러나  혜선이는 그 꿈을 펼치지 못하고 하늘 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혜선이는 힘든 엄마를 위해 엄마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오고, 아빠에게 원형 탈모가 생겼다며 속상해하던 착하고 예쁜 딸이었습니다.

 

혜선이는 늘 엄마가 해준 밥이 가장 맛있다고 했습니다. 혜선이 자신은 가스불도 켤 줄 몰라, 엄마는 매일 혜선이를 위해 요리를 했습니다.

더 이상 혜선이에게 밥을 차려줄 수 없는 지금, 엄마는 기도했습니다. 같이 하늘나라고 간 단원고 친구들에게 혜선이 밥을 부탁한다고 말입니다.

-혜선이 엄마의 편지

 

“엄마, 아빠, 언니가 이곳에서 응원할게. 엄마는 하늘만 보면 네가 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좋겠다.너는 엄마를 볼 수 있어서.착하고 예쁜 내 딸.
하늘에선 성모님이 엄마야. 성모님께서는 자애로운 분이야.

지켜주지 못해 너무도 미안한 엄마가.”

 

-혜선이 초등학교때 담임선생님의 편지

 

《2004년 선부초 근무당시 혜선이 담임을 했었고 혜선이는 초등학교 1학년생이였습니다. 혜선이는 키가 우리 반 여자 아이들 중에 제일 작았고 그 작은키와 덩치에 안경을 쓰고 다니는 참 가녀린, 어린 새와 같은 아이였지요.
그 당시만 해도 1학년들은 어머님들이 학교에 오셔서 급식을 도와줄 때라 엄마가 당번이여서 학교에 오시면 바로 위에 학년이었던 언니는 엄마를 찾아와 재잘재잘 떠들고 까불었던 반면에 혜선이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엄마와 언니뒤에 늘 숨어있는 얌전한 아이였어요.
혜선이는 이런 내성적인 성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품었던 꿈은 ‘모델’이였습니다.
그 당시 저도 열정이 넘쳤던지라 어린이날이 되면 기념으로 아이들 각각에게 사진과 꿈을 넣어서 그 꿈을 꼭 이루라고 책갈피를 만들어 나누어 주곤했는데 그걸 잘 간직하고 계시는 혜선이 엄마를 보니 더 정성들여 예쁘게 만들어줄걸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십여년이 흐르고 성장한 우리 혜선이의 발자취를 찾다보니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국어 선생님을 꿈꾸고 있었더군요.
여리고 꿈 많던 우리 혜선이…
세월호에 탑승했던 저의 여덟 제자중에 가장 늦게 수습이 되어 마음 졸이게 했던 혜선이는 5월 연휴…유난히 예쁘게 햇살이 비추던 그날… 그 예쁜 햇살처럼 우리 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혜선아~!
하늘에서 보고 있지? 너의 꿈이 아픔 없는 그 곳에서라도 꼭 이루어지길 선생님은 늘 기도한단다. 뒤늦은 후회라 할지라도 오늘도 선생님은 너를 생각하며 말썽쟁이 녀석들 한번이라도 더 쓰다듬으며 두고 두고 마음의 빚 갚으며 살아갈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우리 혜선이…》

길채원 – 단원고 2학년 2반

채원이는 친구들에게 웃음을 주며 배려심 많은 친구,4차원의 끼를 가진 친구였습니다.

후배들에게는 정의롭고 카리스마 넘치는 언니였고 청순하고 예쁜 언니였습니다.
선생님들께는 밝고 착한, 리더쉽있는 제자였습니다.

 

채원이는 편찮으신 어머님과 어린 동생을 위해서 항상 양보하는 아이였습니다.
언제나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배려 깊은 아이였습니다. 채원이는 엄마한테 채원이는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후, 채원이는 가족 여행을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채원이는 세월호 참사 2주째인 4월 29일에야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채원이는 지금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허다윤 – 단원고 2학년 2반

다윤이는 부모님을 많이 따랐습니다. 매일 전철역으로 아버지를 마중 나갈 정도였습니다.

깊은 신앙심으로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던 다윤이는  봉사활동도 열심히 하였습니다.

 

다윤이의 꿈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것 이였습니다.

 

다윤이는 겁이 많고 내성적인 성격이었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고 얌전한 성격이었습니다.

 

민트향 홀스, 강아지 깜비를 좋아했고 언니와 옷을 사러 가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다윤이 어머니는 다윤이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친구를 태워서 학교까지 같이 바래다주었습니다.정겹게 잘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떠난 다윤이는 사고후 3년이 지난 1129일만에야 돌아왔습니다.

 

다윤이는 1반 조은화와 함께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안치되었습니다.

윤솔 – 단원고 2학년 2반

이쁨이 솔이.이쁨이는 집에서 부르는 솔이의 애칭입니다,
아빠를 닮은 솔이는 아빠하고 친했습니다.

 

솔이는 “나는 언제나 아빠 편”이라고 말하던 애교쟁이 막내였습니다. 솔이는 아빠가 만든 음식을 좋아했습니다. 아빠를 솔이를 위해 솔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많이 해 주었습니다. 아빠는 지금도 밥상을 차릴 때 솔이가 없는 걸 잊어버리고 솔이 밥도 같이 차리곤 하십니다.

 

솔이는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학원도 다니지 못했지만 솔이는 혼자 열심이였습니다. 집이 좁아 거실에 나와서 공부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그 대신 “우리 아빠 돈 많이 벌면 큰 집으로 갈 거잖아” 하고 웃어주던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솔이 아빠는 딸들이 모두 직업군인이 되는 것을 바라셨습니다. 하지만 솔이는 경찰이 되고 싶어했습니다.

아빠는 경찰은 언제나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어서 걱정을 하셨습니다. 솔이는 수학여행 가서 깊이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솔이 결정을 존중해주지 못한 것, 아빠 눈치 보게 만든 것이 한이 된다고 하십니다.

 

세월호 참사 후, 안산시 단원경찰서에서는 못다 이룬 솔이의 꿈을 기리는 의미로  ‘윤솔’이라고 이름을 새긴 경찰 제복을 합동분향소에 전달해 주셨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 솔이는 아빠에게 계란 말이릍 먹고 싶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솔이는 아빠가 만든 계란말이를 이제 더 이상 맛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솔이는 절친 #조서우_박혜선_정지아_김주희_김지윤등 절친들과 함께 별이 되었습니다.이쁨이 막내딸 솔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강우영 – 단원고 2학년 2반

우영이는 자매 중 막내입니다.
우영이는 아빠와 친했습니다. 아빠랑 축구 경기를 같이 보곤 했습니다.

우영이는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했습니다. 특히 달리기는  1등을 놓친 적이 없었습니다.

 

우영이는 늘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즐겨 입었고,주말이면 학교 봉사단에서 봉사를 하곤 했습니다.

 

우영이의 꿈은 직업군인이 되는것이었습니다.

 

우영이는 박정은 학생, 길채원 학생과 친했습니다. 친구들의 기억 속,우영이는 착하고 다정한 아이였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교실 안에서도, 화장실 앞에서도 멍하니 서 있는 우영이의 귀여운 모습을 친구들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우영이의 생일 때는 우영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복도에서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 축하해 주기도 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좋아하는 가수 태현의 콘서트장을 다녀 오기도 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이후,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우영이 자리에 와서 방명록에 우영이를 그리워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매일매일 생각나. 네가 여기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너를 항상 생각해., 꿈에서 보고 나면 더 그립고 보고 싶어. ‘친구들은 우영이를 보고 싶은 마음을  편지 속에 차곡차곡 남겼습니다.

이혜경 – 단원고 2학년 2반

깜찍하고 예뻤던 혜경이의 별명은 긍이였습니다.

혜경이의 꿈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어 엄마의 주름살을 펴주는 것이었습니다.수학 여행 가기 며칠 전에도 엄마에게 ” 엄마, 조금만 고생해. 내가 엄마, 아빠 가이드 붙여서 해외여행 시켜 줄께”라며 밝게 웃던 아이였습니다.

혜경이는 맞벌이하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기 위해 버스를 타는 대신 매일 걸어서 등하교를 했습니다.

혜경이 책상에는 아직도 2만원이 남아 있습니다. 수학여행 가서 맛있는 거 사먹으라며 5만원을 쥐어 줬지만 혜경이는  3만원만 가져갔습니다. 나머지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출전할 미용 대회 재료비로 쓸 계획이었습니다.

 

세월호 침몰후 4월 17일 저녁까지만 하여도 혜경이는 생존자 명단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빨간색 운동복을 입은 아이의 얼굴을 확인해 달라”는 당국의 요청에 엄마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혜경이는 빨강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친구들과의 마지막 단체 사진을 남기고 떠나 경기도 평택 서호 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지 – 단원고 2학년 2반

민지는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민지가 직접 만든 카드를 보고 선후배들이 환호성을 지를 정도였습니다.

민지의 꿈은 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민지는 가족들과 같이 음식을 만들어 먹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피구 시합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친 민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초등학교 때는 수학여행 행사가 없어져서, 중학교때는 신종플루 때문에 가지 못했기에 꼭 가겠다고 했습니다.

난생 처음 가는 수학여행에 너무나도 들떴던지 첫날 밤 선상에서 불꽃놀이에 신난 목소리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민지는 그 수학여행에서 끝내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민지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소정 – 단원고 2학년 2반

소정이는 맏딸입니다. 주말이면 맞벌이를 하시는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했으며 남동생도 챙겼습니다. 또 남동생에게 밥물 맞추는 법과 세탁기 돌리는 법등도 가르치곤 했다고 합니다.

소정이는 만화를 좋아했습니다. 소정이는 (쿠로쿠의 농구) (듀라라라) (흑집사) (금지소년)등을 좋아했고, 일본만화가 사쿠라가메이, 나츠메이사코, 요네다 코우의 팬이었으며  BL장르에 꽂혀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만화 동아리 카툰 플레이어에서 활동했습니다.

 

소정이의 꿈은 애니메이션 만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소정이는 우직하고 성실하게 노력했습니다.

 

만화가의 꿈
시 : 신호현

 

하늘 나라에서
하이얀 구름으로 양을 그리면
음메에
양떼 구름 달려오겠지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다리 건너와
푸른 하늘 달려서 오면
푸른 풀을 그려 주겠지요

 

세월호 타고 간
하늘 나라 소정이는
붓으로 양떼 몰아 놓고
물감으로 양떼 먹이겠지요

 

이 땅에 미대 꿈도
저 멀리 유학의 꿈도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하늘에선 모두 이루겠지요

 

엄마 어쩌면
하늘나라 유학에서
나 집에 못 갈지도 몰라
엄마 사랑하는 거 알지

 

“내딸 소정아,
네가 그린 그림처럼 낮엔. 하얀 나비가 되어,저녁엔 제일 반짝이는 천사가 되어 아빠,엄마 동생에게 빛이 되어 주어야해”
어머니 #김정희님의 글입니다.

 

소중하고 귀하다는 뜻의 이름을 가진  소정이는 같이  롯데월드를 놀러가자는 친구들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습니다.

소정이는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김주희 – 단원고 2학년 2반

주희는 외동딸이었습니다.어머니께서는  주희를 귀하고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주희는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종이접기도 잘했고 그림도 잘 그렸습니다.

 

주희는 독립적인 성격으로, 삼성에서 제공하는 학업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도 스스로 열심히 했습니다.

 

주희는 광고디자이너를 꿈꿨습니다. 미래에 재능있는 광고 디자이너가 되어 멋진 광고를 만들고 싶어했습니다.

어느 날, 주희는 종이학을 접다가 엄마에게 말했습니다.

“엄마, 내가 만든 종이학 하늘로 날려 보내려 가자. 왠지 훨훨 잘 날아 갈 것 같아. 나도 종이학 따라 훨훨 날고 싶어”

주희는 어쩌면 자신이 접은 종이학을 따라 하늘을 날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주희는 자신의 생일날인 2014년 5월23일에 하늘여행을 떠났습니다.

전하영 – 단원고 2학년 2반

하영이는 초등학교때부터 춤추기를 좋아해서 행사 때면 춤 공연을 했습니다.1학년 내내 학교 댄스 동아리인 (플레시봅)동아리와 교회의 (파워댄스부)에서 활동했습니다.수학여행에서도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장기자랑으로 댄스를 보여 줄 예정이었습니다.

수학여행 공연을 위해 하영이는 학교 앞 올림픽 기념관 입구에 있는 전면 거울 앞에서 2반 친구들 양온유,한세영, 남지현, 김수정 등과 춤 연습을 하곤  했습니다.

“겹겹이” 전하영. 겹겹이는 하영이의 쌍꺼풀을 보고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입니다. 하영이는 친구들과 잘 어울렸습니다. 개그 프로의 캐릭터를 절묘하게 흉내 내어 친구들을 웃게 하기도 했습니다.

 

하영이는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세상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고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을 꿈꿨습니다.

하영이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한국외국어대 외교통상스쿨을 1기생으로 수료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에는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한 청소년 국제교류네트워크 과정에도 참여할 계획이었습니다.

 

하영이는 엄마에게는 듬직한 큰딸이었습니다. 하영이는 직장 일로 바쁜 엄마 대신에 동생을 알뜰하게 보살폈습니다.

4월 15일 저녁에 하영이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평소처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엄마가 들은 하영이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정지아 – 단원고 2학년 2반

지아와 엄마는 서로 의지하는 사이었습니다.엄마에게 지아는 친구 같은 딸이었습니다. 지아에게 엄마는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유일한 안식처였습니다.

 

지아는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편지, 소설, 시를 즐겨 썼습니다.

지아가 쓴 시입니다.

“나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지만
때를 밀어주는 엄마의 등은 변함이 없다.
나는 머리 모양을 매일 바꾸지만
그 독한 냄새의 파마머리는 변함이 없다.
나는 짜증이나 낼 때나 주름이 모이지만
엄마의 이마에는 매일 하나씩 주름이 늘어난다.”
<변함없는 것(엄마 시리즈)정지아>

 

​사춘기 시절, 많이 방황하고 고민하던 사춘기 지아에게 엄마는 편지를 여러 통 썼습니다. 지아는 그 편지를 받고  차츰 긍정적으로 변화했습니다.

지아가 엄마에게 쓴 답장입니다.

​”엄마가 여태까지 써준 편지들을 모아둔 걸,컴퓨터로 저장할 겸 하나씩 다 써봤어..난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울었다. 어디 아프지 말고,평생 죽지 말고, 나랑 같이 살아,엄마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나 두고 일찍 가면 안돼, 사랑해”

‘죽지 말고 나랑 살아’ 라는 말에서 보여지듯, 지아는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엄마가 남긴 편지를 읽을 미래를 상상했습니다.

그러나 지아의 상상과는 달리, 엄마가 남겨졌습니다.

사랑하는 딸
시 : 신호현

 

엄마!
나 사랑해?
나 얼만큼 사랑해?

 

물어보고
또 물어보면서 하는 말
내가 이만큼 엄마를 사랑해

 

커피 마시던 너의 말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그런 외동딸이
친구 같은 엄마 떠나
하늘 공원에 잠들어 있다

엄마 삶의 전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너의 모든 것을 기억해

 

엄마 곁에서 그렇게
엄마를 껴안고 뽀뽀하고
엄마 사랑해 속삭이는 말

 

모두 들린단다
모두 느껴진단다
사랑하는 내 딸 지아야

조서우 – 단원고 2학년 2반

서우는 섬세하고 내성적이며 조용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래서일까, 서우는 학교 생활을 가끔 힘들어했습니다. 서우 어머님은 지금도 서우의 고민을 가볍게 여기고 잘 다독여주지 못한 것을 안타까워하십니다.

 

서우는 엄마와 함께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면서 친구처럼 지냈습니다. 겨울방학이 되면 엄마와 기차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습니다.

 

어느 날 ,서우는 텔레비전에서 수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손짓으로 통역해주는 수화 통역사를 보고
서우가 꿈꿔 왔던 세상이 저 손짓에 함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에 서우는 하루에 하나씩 수화를 익혔습니다.어린아이가 말을 처음 배우듯 더디고 서투른 손짓이었지만 한 글자씩 익힐 때마다 서우의 눈 빛은 빛났습니다.

 

수학여행 날 아침, 엄마는 수학여행의 추억을 사진으로 담으라고 서우의 가방에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필름 30장을 챙겨주었습니다.

그러자 서우는 수화로 엄마에게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서우를 꼭 안아줬습니다. 그리고 잘 다녀온다고,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서우는 엄마를 다시 만나지 못했습니다. 서우는 참사가 일어난 지 16일 만인 5월 2일에야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남수빈 – 단원고 2학년 2반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이 땅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어요’
수빈이의 꿈은 역사학자가 되는 것 이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수빈이의 꿈이 스러진 지 1년이 되던 2015년 4월 16일.
수빈이의 책상 위에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생회에서 발급한 명예학생증서가 놓였습니다.

같은 날, 수빈이 아버님은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경찰의 차 벽에 가로 막힌 가운데  경찰 버스 위에 올라 ‘수빈이를 너무 허망하게 보내버렸다’며 울분을 토하셨습니다.

수빈이는 안산 하늘 공원에 잠들어있습니다.

-성균관대 사학과 학생회에서 수빈이에게 쓴 편지

《우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생들은 얼마 전까지 수빈학생이 느꼈을 감정을 똑같이 느끼던 고등학생이였습니다.
수빈 학생과 함께 답사도 가고 공부도 하고 축제도 즐기며 수빈 학생이 꿈꾸던 대학 생활을 함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수빈 학생이 꿈 꿀 기회조차 앗아가 버린 이번 사고가 하염 없이 원망스럽기만합니다.
이제갓 날개를 펴고 날아갈 준비를 하던 수빈학생이 마치 우리 후배인 마냥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2015.4.16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생회》

-수빈이 친구가 쓴 편지

☆수빈아 잘 지내지? 내가 이렇게 널 그리워하며 편지를 쓸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그래도 너무 보고 싶다.
이젠 영원히 너에게 용서 받을 수 없구나. 많이 후회돼는구나. 하지만 그냥 그건 내 몫인 것 같아……
수빈아, 하늘에서 부디 행복하길 바라.너와 함께한 1년 동안, 무척이나 행복하고 즐거웠어. 영원히 그 소중한 시간들을 잊지 않을게.☆

 

양온유 – 단원고 2학년 2반

온유는 사 남매의 맏이로 책임감 강한 아이었습니다. 교회 사택에 거주하시는 부모님, 교회와 함께 서울,인천,안산까지 열 한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온유는 맏이로서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온유는 독실한 기독교신자였습니다. 기도를 열심히 했고 주일마다 예배를 드렸습니다. 주일 예배 주보에는 온유가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의 십일조헌금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온유가 다녔던 “명성교회” 4층에는 온유와 친구들을 기념하는 정원 “온유의 뜰”이 꾸며져 있습니다.

 

온유는 봉사하는 아이였습니다. 해외 봉사를 떠날 돈을 모으기 위해 학교 앞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온유는 1학년 때는  학년 대표로 봉사했고, 2학년때는  반장으로 모든 면에서 솔선수범했습니다.

 

온유는 음악을 좋아했고 피아노를 잘 쳤습니다.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워 교회 찬송가 연주를 했을 정도입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아빠는 온유에게 “온유야. 아빠다.너를 위해 모두 기도하고 있다.이럴 때 침착해야 하는 거야. 친구들에게도 동요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면 구조될 거라고 용기를 주렴…” 이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러나 답은 없었습니다.

그 시각, 온유는 남아 있는 친구들을 구하기 위해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시 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친구들은 온유룰 주변 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비타민같은 존재로,
이웃들은 온유를 배울 점이 많았던 사람으로 기억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온유를  마음이 따뜻해서 어려운 친구를 보면 당연히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했고 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했던, 모범적인 아이로 기억합니다.

2014년 4월 19일, 부활절 날. 온유는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검시관의 확인을 거쳐 부모님곁에 돌아온 온유는 꽉 굽어있던 손가락을 스르르 펼치며 가족 품에 안겼습니다.

지금 온유는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학생 삼박자 온유
시 : 신호현

 

교회에서
독학으로 피아노 배워
새벽기도 반주를 했어요

 

나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아름다운 하늘나라 소망하며
신실한 믿음키우며 살았어요

 

가정에서
넉넉지못한 살림에
평일엔 편의점 알바했어요
노래로 병든 마음치유하는
서울대 음악심리상담사 꿈꾸며
행복전파사로 살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2학년 2반 반장으로
학년대표 친구에게 양보하고
친구들의 고민상담 들어주는
꼭 필요한 바타민같은 친구되어
친구 행복이 내 기쁨됨을 느꼈어요

 

수학여행 세월호속에
친구들이 위험에 빠졌어요
생명 갑판으로 불러내야 해요
학생삼박자로 더 없이 예쁜 온유
친구 살리려고 힘껏 달려 갔어요

한세영 – 단원고 2학년 2반

“사랑하는 예쁜 딸.” 엄마가 기억하는 세영이 입니다.

 

세월호가 기울고 물이 차오를 때 가까스로 탈출한 한 생존 학생이 복도에 떨어진 세영이의 휴대전화를 부모님께 전했습니다.

휴대전화 안에는 세영이가 그동안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이 들어있었습니다.
세영이 아빠는 딸의 휴대전화에 있던 사진과 동영상등으로 그해 6월 7일에 10여 분짜리 추모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온 아빠의 모습과 세영이의 어린 시절, 부모님이 보낸 영상편지를 영상에 담았습니다.

그 영상은 많은 사람들을 울렸습니다.

휴대전화를 먼저 부모님께 보낸 세영이는 4월 20일에야 부모님품에 돌아왔습니다.

 

인피니트,B.A.P를 들으며 친구들과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세영이.

세영이는 절친인 3반 유혜원과 함께 서울 동작구 흑석동 달마사 봉안당에 잠들어 있습니다.

 

-세영이 동생의 편지.

“누나, 잘 지냈어?
어느덧 벌써 100일이 지나고 더 지났네. 왜 이리 빨리 갔어?
아직 할 것도 많고 꿈도 많았잖아? 부디 여기서 이루지 못한 꿈. 거기서는 다 이루고 살길 바랄게. 내 꿈에 한 번이라도 나와줘.
우리 다시 만나면 여기서 있었던 일들 다 이야기해줄게.
누나 너무 보고 싶다. 잘 지내야 해. 편히 쉬어, 누나 사랑해.”

박정은 – 단원고 2학년 2반

정은이는 밝고 활달하고 잘 웃는 아이였습니다. 친구들도 많았습니다. 학교 후배들도 잘 챙겨주는 자상한 선배이기도 했습니다.

정은이의 빈 자리는 친구들과 후배들이 절절한 그리움을 담아 남긴 편지들로 가득합니다.

엑소(EXO)좋아하고, 디오를 좋아했던 정은이는 친구들과 함께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은이 어머님의 편지.

“엄마 마음에, 엄마 눈에 가득한 내 사랑 정은이….세상을 다 녹여버릴 것 같은 맑고 평화로운 그 웃음이 사무치게 그리워.엄마 가슴에 그 미소로 가득 품고 또 품는다.고맙고 사랑스러운 딸,”

윤민지 – 단원고 2학년 2반

유치원 교사를 꿈꾸었던 민지.

작고 귀여운 동물 인형을 모으고, 직접 만든 분홍색 “사랑해” 모빌을 걸어두었던, 아기자기한 물건을 좋아하던  민지.

아이돌 그룹 “비스트”를 좋아하던 민지.

 

민지는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부모님께 부담을 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착한 딸이었습니다. 민지 아버지는 그게 미안해, 진도에서 수습된 학생들의 인상착의 및 옷 브랜드가 불릴 때 마다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사고 후 팽목항에 매일 삼시세끼 민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 놓고 돌아오기만을 기원하던 엄마에게 민지는 73일째 되는 날 293번째 천사로 비로소 돌아왔습니다.

민지 부모님께서는 늦은 나이에 결혼해 어렵게 얻은 민지를 잃은 것에 마음아파하였습니다.

민지는 이제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허유림 – 단원고 2학년 2반

유림이는 세 살 많은 언니가 있는 자매중에 막내입니다.
토핑이 안올라간 치즈피자를 좋아했고,  강아지 찌부를 엄청 좋아했던 유림이.

 

유림이는 친구들과 팔짱끼고 걸어가면서 수다를 떨고, 책상 위에는 늘 빗이  있고, 5분마다 거울을 한 번씩 보는 평범한 십대 소녀였습니다.

 

소소한 꿈을 꾸며 행복했던 아이였고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옆에서 토닥토닥 다독여 주던 아이.
밝고 명량한 성격답게 주변에 친구들 또한 많았습니다.

 

“Don’t / forget / to / remember ”

중학교때부터 유림이와 친했던 세명의 친구들은 네개의 반지를 맞췄습니다.
유림이의 생전의 소원대로 절대로 유림이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이렇게 네 개의 반지가 합쳐져야 문장이 완성되는데 유림이 반지는 납골함에 넣어두고 셋이서 반지를 끼고 다닙니다.

4월 21일에 가족의 품에 돌아온 유림이는 그중에서도 친했던 아이들 네명과 함께 하늘공원에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유림이 친구들의 편지.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어, 2-2반 친구들 전부 좋았고,
전수영선생님도 너무 너무 좋았어.
네 자리 누구도 대신 할 수 없어.그러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까 나중에 하늘나라가면 다시 친구해 주고 그 빈자리 채워줘야 해..”

 

“앞으로 너 없이 살아가야 할 날은 이렇게나 많은데,
야속하게도 너 없이도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변해가.
난 그 자리 그대로 있고 싶은데….”

 

“우리가 비록 2학년 짧은 시간 동안 만나왔지만 난 그 짧은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했어~!꽃나무 밑에서 사진도 많이 찍고 얘기도 많이 해서 너무 좋아~! 앞으로도 쭉 너랑 더 많은 추억 쌓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나쁘고 이기적인 사람들 때문에 너희를 못 본다는 게 너무 화나고 맘이 아파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