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강수정 – 단원고 2학년 2반

“예쁜 웨딩드레스를 디자인하고 만들어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신부로 만들어 드리고 싶어요.”
그림을 잘그려서 웨딩드레스 디자이너가 꿈이였던 수정이.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인 4월 14일 아르바이트를 끝내고 엄마와 목욕탕에 갔다가 엄마에게 남자친구가 생겼다여 털어났던 수정이는 자기가 좋아서 대시해 성공하였다고 자랑삼아 털어 놓았습니다.
세월호 참사가 일어난 4월16일 엄마는 진도팽목항에서” 제발 딸은 살려달라”고 기도하였지만 끝내 기도는 이뤼지지 않았습니다.
수정이는 4월 20일 4층 선실에서 발견되었습니다.
수학여행을 함께 갔던 남자친구도 세월호에서 빠져 나오지 못했습니다.

 

《안녕수정아 우리 수정이 벌써 생일이네~~19살된거축하해 우리벌써 못본지 무려 1년반?지낫나 많이보고싶퍼 너잇을때 자주자주 연락하고 만낫어야햇는데 그러지도못하고 정말미안해 너가 자주자주 챙겨주고 엄마처럼 잘챙겨줫엇눈데 너무 허전하고 보고싶퍼
저번에 애들이랑 갓는데 여전히 이쁘더라
정말 누구친구인지 ㅋ
우리도 벌써 안지무려 5년이나댓네!!!!!ㅎ이제 애들은 대학갈 준비하고 잇고 지연이랑 나는 열심히 공부할려고 노력중이야!ㅎㅎㅎ
매번 내생일날 챙겨주고 같이 잇어주고 같이놀고 그랫엇는데 이젠 그러지도못하고 너 생일날에도 같이잇어 주지도 못하고 같이 놀지도 못하네 보고 싶고 그리워ㅠㅠ 중학교때 특별한날 아니면 맨날맨날만나서 놀앗던 우리가 너무오랫동안 못보게댓네 그래도 항상 같이잇다고 생각하면서 지낼거야 나 되게 공부못해서 그런가 말도 되게 뒤죽박죽이네 하무튼 항상 보고 싶고 그리워 우리만날때까지 아프지말고 건강하게지내거잇어야돼 수정아 많이많이보고싶고 생일축하해❤️ 》

 

《수정이는 선부초에서 초3때 담임을 했어요. 딸셋인 집에 둘째딸로 조용한듯 하면서도 활달한, 성격 좋은, 얼굴도 마음도 예쁜 아이였습니다…
그당시 그림그리기를 좋아했고 그 분야에 재능을 보였던 아이였어요. 유독 수채화를 잘그리던 감수성 풍부한 아이였는데 재능을 살려 그당시는 디자이너가 되고싶어 했어요. 커서는 꿈이 변했을까요?
효원공원에 있는 수정이를 몇번 만나고왔지만 아직까지도 실감이 나질않아요…》

 

수정이 친구와 수정이 초등학교 담임선생님이 저에게 보내준 편지 사연입니다.
수정이 짝꿍은 #길채원이며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강우영 – 단원고 2학년 2반

우영이는 언니가 한 명있는 자매중에 막내입니다.
할머니와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과 함께 행복한 가정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엄마는 언니랑 찰떡궁합, 아빠는 우영이 하고 찰떡궁합일 정도로 사이가 남달랐습니다.
아빠랑 축구경기를 보는걸 좋아도 했구요.
늘 청바지에 헐렁한 티셔츠를 즐겨입었고,
학교에서는 주말이면 학교 봉사단에서 노인정이나 복지관에 가서 봉사를 하거나 길에서 휴지줍기를 하곤 했습니다.

 

우영이의 꿈은
직업군인이 되는것이었습니다.
어려서부터 운동을 잘했고 특히 달리기는 운동회때면 1등을 놓친적이 없었고 인라인도, 자전거도 또래 아이들보다 빨리 배웠다고 합니다.

우영이는 같은 반에서 12월에 생일이었던 #박정은 학생, 그리고 #길채원 학생과 친했습니다.
다른 반에도 우영이와 아주 친했던 학생들이 많았습니다. 친구들은 쉬는 시간마다 우영이 자리에 와서 방명록에 우영이를 그리워하는 글을 남겼습니다. 매일매일 생각나고, 네가 여기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항상 생각한다고, 꿈에서 보고 나면 더 그립고 보고 싶다고, 친구들은 우영이를 보고 싶은 마음을 또박또박 적은 꼼꼼한 편지 속에 차곡차곡 남겼습니다.

 

친구들의 기억속에 우영이는 착하고 다정한 아이였고 멍하니 생각에 잠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교실 안에서도, 화장실 앞에서도 멍하니 서 있는 귀여운 모습을 친구들은 생생하게 기억합니다. 고등학교 1학년 우영이 생일 때는 여러 반에서 우영이를 좋아하는 친구들이 복도에서 깜짝 생일 파티를 열어 축하해 주기도 했습니다.
가수 “태현”을 좋아해 친구들과 함께 콘서트장을 다녀 오기도 했던 우영이 태현의 노래가사가 뇌리에 남습니다.

 

“내 곁에 있어야 할 넌 지금 어디에
난 별을 보고 있어
넌 무얼 하고 있니
내 곁에 있어야 할 넌 지금 어디에”

길채원 – 단원고 2학년 2반

#길채원에스텔
<엄마 없는 세상을 살아갈 딸을 걱정했는데 딸을 먼저 보냈어요>

 

<금요일에 돌아오렴>
p210~p235까지 길채원에스텔(세례명)의 어머니허영무님의 이야기가 실려있습니다.

 

친구, 후배, 선생님이 기억하는 채원이는 어떤 아이였을까요?

 

고작 18년을 살다 떠나보낸 아이…
디즈니를 좋아해 <언더더씨>를 즐겨부르던 아이,
겨울왕국의 Let it go를 잘 불렀던 아이,
정의롭고 카리스마 넘치는 언니,
청순하고 예쁜 언니,
장난기 있고 주변사람들에게 웃음주며 배려심 많은 친구,
4차원의 끼를 가진친구,

 

옷과 외모에도 관심이 많았던 친구였고
선생님들께는
밝고 착하고 좋은 리더쉽을 지닌 제자였으며 주변 모든이들에게 엔돌핀 같은 아이였습니다.

 

동생을 잘 챙겨줬던 (길채) 채원이는 동생에게서”남들이 누나들이 나쁘다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는 소리를 듣는 건 어쩜 당연한 것이구요.

 

침몰하는 세월호에서
마지막까지 같이 있었던 친구에게 기우는 배안에서 ” 이것도 추억이다. 살아 나갈 수 있다”며 끝까지 안심시켰던 낙천적인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유치원선생님을 꿈꾸었던 채원이의 꿈은 세월호침몰과 사라져 버렸습니다.

 

채원이는
편찮으신 어머님과 어린 동생을 위해서 항상 양보하는 아이였습니다.
언제나 가족을 먼저 생각하고 자기 하고 싶은 걸 겉으로 드러내지 않는 배려 깊은 아이였습니다.

 

채원이 어머님은 그래서 부모님이 채원이를 돌보는 게 아니라 채원이가 부모님을 돌봐주고 있다고 느끼신 적이 많았다고 하십니다. 채원이는 엄마한테 언제나 “든든한 내 편”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 채원이는 가족여행을 또 갈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나 채원이는 세월호 참사 2주째인 4월 29일에야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하늘의 가장 밝은별 #길채원에스텔은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지 – 단원고 2학년 2반

볼링부의 우상 민지는
크리스마스때는 직접 만든 카드를 돌려 볼링반 선후배들에게 환호성을 받고 학급의 환경미화일을 도맡아 할 만큼 민지는 유난희 손재주가 많았습니다.
직접음식을 만들어 가족과 오손 도손 먹는게 제일 좋다는 민지였습니다.

 

민지의 꿈은
그림그리기를 좋아해 화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수학여행을 앞두고 피구시합을 하다가 손가락을 다친 민지는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수학여행을 택했습니다.
초등학교때는 수학여행이 없어져서, 중학교때는 신종플루때문에 가지 못했기에 꼭 가겠다고 나섰습니다.

 

하지만
수학여행 첫날밤 선상에서 불꽃놀이중이라는 들뜬 목소리를 남기고 민지는 먼곳으로 영원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4월 21일에 돌아 온 민지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소정 – 단원고 2학년 2반

소정이는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과 남동생이 하나 있는 남매중 맏이 입니다.
주말이면 엄마를 대신해 집안일을 하고 밥을 하고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했으며 남동생도 챙겼습니다. 또 남동생에게 밥물 맞추는 법과 세탁기 돌리는 법등도 가르치곤 했다고 합니다.
소정이는 집에서나 학교에서도 맏딸스러운 아이였다고 합니다.
조용히 자기의견을 밝힐 줄 알고 우직하고 성실한 학교생활을 해왔습니다.
소정이의 꿈은
동국대 미술학부에 진학하여 애니메이션 만화가의 꿈을 꾸었습니다.

 

만화덕후 소정이는 (쿠로쿠의 농구) (듀라라라) (흑집사) (금지소년)등을 좋아했고, 일본만화가 사쿠라가메이, 나츠메이사코, 요네다 코우의 팬이었으며 소위 BL (Boys Love)장르에 꽂혀 있었다고 합니다.
학교에서는 만화동아리 카툰 플레이어에서 활동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는 여름방학때 일본에 가서 애니메이션을 공부할 계획을 세워두고 우직하고 성실하게 차근 차근 벽돌을 쌓아가고 있었습니다.
만화 쿠로코의 명대사
“나는 그림자입니다. 그림자는 빛을 두드러지게 만들어 줍니다” 처럼 소정이는 어떤 일을 주도하거나 리드하길 좋아하지는 않았지만 조용히 훌륭한 파트너가 될 재능을 가진 아이였습니다.

 

“나는 신간 도서 사기를 좋아한다.
슬픈 글이나 영화에서 슬픈장면을 보면 눈물을 잘 흘린다.
나는 아름다운 풍경을 보는 것이 좋다.
아름다운 것이 없으면 세상은 끔찍한 곳이 될 것이다.”

 

소정이의 삶은 아름다운 것을 찾는 짧은 여행이 되고 말았습니다.

 

만화가의 꿈
시 : 신호현

 

하늘 나라에서
하이얀 구름으로 양을 그리면
음메에
양떼 구름 달려오겠지요

 

빨주노초파남보
무지개 다리 건너와
푸른 하늘 달려서 오면
푸른 풀을 그려 주겠지요

 

세월호 타고 간
하늘 나라 소정이는
붓으로 양떼 몰아 놓고
물감으로 양떼 먹이겠지요

 

이 땅에 미대 꿈도
저 멀리 유학의 꿈도
친구들이랑 선생님이랑
하늘에선 모두 이루겠지요

 

엄마 어쩌면
하늘나라 유학에서
나 집에 못 갈지도 몰라
엄마 사랑하는 거 알지

 

“내딸 소정아,
네가 그린 그림처럼 낮엔. 하얀 나비가 되어,저녁엔 제일 반짝이는 천사가 되어 아빠,엄마 동생에게 빛이 되어 주어야해”
어머니 #김정희님의 글입니다.

 

소중하고 귀한 소정이는 수학여행후에 친구들과 같이 맞춘 시계를 차고 롯데월드를 놀러가자는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우리곁을 떠나 경기도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김수정 – 단원고 2학년 2반

☆학교 올라오는 길 보면 매일 야자 끝나고 집에 빨리 가려고 너랑 뛰던거 생각나고 매점 존보면 거기서 놀고있는 너 생각나고
운동장 방송 스피커보면 음향체크하느라 뛰어다니던 니 생각이나.. 지금도 니 번호로 전화하면 니가 받을 것 같은데 신호만가네
언니 이제 대학생이라서 너한테 해줄게 많은데 정말해주고 싶은게 너무 너무 많은데 해줄수가 없어서 자꾸 눈물만 나.
사랑하고 또 사랑하고 또 사랑해 내 동생 수정아
언니 동생이어서 고마워 사랑해♡

 

넓은 청보리밭에 나타난 귀여운 곰세마리가 너무 귀여워 쓰다듬으려 손 내밀자 아빠의 가운데 손가락을 깨무는 바람에 놀라 꿈에서 깨는 태몽으로 수정이는 세상과 만났습니다.
그리고 곰에 물려 피가 난 가운데 손가락의 아픔과 태몽의 의미를 아빠는 오내도록 알지 못했습니다.
수정이는 위로 언니와 아래로 여동생이 있는 세자매중에 둘째입니다.

 

“넌 우리집 큰 아들이야”
셋중에 유독 활발한 운동을 좋아하고 씨름이메 권투며 몸싸움도 마다하지 않는 수정이에게 아빠는 종종 이렇게 말하며 아들처럼편하게 대하였습니다. 그래서인지 학교에서 피구시합이 열리면 급우들은 서로 수정이와 같은 편이 되려고 했답니다.

 

엄마에게도 수정이는 의지가 되는 딸이었습니다.
가녀린 언니나 동생에 비해 그중 튼튼하고 건강했던 수정이는 시장 볼때나 쓰레기를 버린
릴때나 힘든일을 도맡았고 심지어 쌀자루도 번쩍 들어 나르곤 했답니다.

 

“야, 쓰레기 빨리 주워 수정이 보면 어쩌려고 그래?”
“맞아 , 맞아”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고 기본 질서를 중시하는 반듯한 성품이었으나 그렇다고 꽉 막힌 아이는 아니었습니다.
웃기도 잘하고 장난도 잘치는 수정이는 친구들과 가족에게 해피바이러스 였습니다.

 

“방송부가 있는 고등학교에 갈래요”
중학교때부터 VJ가 되겠다는 꿈을 꾸었던 수정이는 단원고를 선택하여 입학후 방송부에도 합격하며 정말 좋아 했습니다.
학교내 촬영은 물론 안산.경기 영상 제작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전국 규모인 “청소년영상제작동아리MFS”에 가입하여 운영진까지 맡았던 수정이였습니다.
고등학교 스물네시간이 부족할 정도로 바쁘게 생활했던 수정이는 “금요일 함께 점심을 먹는 9반 모임”인 “금구모”의 일원이기도 합니다.

 

대나무 숲의 바스락거림을 좋아했던 수정이.
수정이는 학교에서도 “엄마같은 학생”이였습니다. 늘 소외된 아이들과 짝꿍이 돼 친구들을 보살폈다고 합니다.
딸만 셋인 수정이네는 저마다 방이 있지만 수정이와 언니 열다섯 살짜리 여동생은 날마다 거실에서 까르르 수다를 떨다 함께 잠이들곤 했는데 2014년 4월16일 이후,
엄마 아빠는 더이상 딸들의 수다를 들을수 없습니다.

 

“출발 장면부터 찍으려면 서둘러야해”

 

4월 15일에도 수정이는 꼭두새벽에 일어났습니다. 행여 식구들이 깰까봐 현관문을 조용히 닫고, 일곱 살 때부터 오르내리던 계단을 사뿐사뿐 걸어 내려 갔습니다.
그길로 수정이는 새가 되어 훨훨 날아갔습니다.
태몽처럼 아픈 손가락이 되어 버린 수정이가 보고 싶으면 아빠는 옥상에올라가 하늘을 바라봅니다.

 

수정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주희 – 단원고 2학년 2반

주희는 무남독녀 외동딸이였습니다.
어머니가 몸이 좋지 않아 주희의 동생을 보는걸 포기하셨고 주희만을 귀하고 소중하게 키웠습니다.
주희는 어릴때부터 혼자서 색종이로 종이학을 만들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만큼 손재주도 뛰어났고 그림그리기나 글짓기를 좋아했습니다.

 

“엄마 내가 만든 종이학 하늘로 날려 보내려가자. 왠지 훨훨 잘 날아 갈 것 같아. 나도 종이학 따라 훨훨 날고 싶어”
주희가 어느날 종이학을 접으며 엄마에게 한 말입니다.
또한 주희는 혼자인 것이 익숙해서 평소에 어른들이 일일이 챙겨주지 않아도 알아서 잘하는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자라면서 한번도 속썩이는 법없이 자라던 아이였는데 수학여행을 떠나기 몇일전에는 마음이 들떠서였는지 사춘기 소녀들이 하고 싶었던 화장을 했다가 엄마한테 들켰습니다.
주희어머니는 그런 사소한 일로 혼낸것을 너무나 미안하다고 합니다.

 

단원고에 진학하며 삼성에서 제공하는 학업 장학금을 받을 정도로 공부도 열심히 하던 주희의 꿈은
“끼와 재능을 고루 갖춘 광고디자이너가 되어 소비자에게 거짓없는 멋진광고를 만들고 싶어요”
라며 광고 디자이너를 꿈뀠습니다.
박꽃처럼 환한 미소를 남기고 떠난 수학여행, 멋진 디자이너 김주희는 어쩌면 어린 시절 자신이 접은 종이학을 따라 하늘을 날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늘 사랑하는 엄마, 아빠, 친구들의 모습을 그리며…

 

생일 이틀전에야 뭍으로 나와 자신의 생일날인 2014년 5월23일에 하늘여행을 떠났습니다.

김지윤 – 단원고 2학년 2반

“누나? 보고 싶어 천국에서 잘 지내고 있지? 여태까지 시비 걸어서 미안해, 누나,

 

우리 나중에 가족끼리 웃으면서 만나자. 그때까지 아프지 말고 행복하게 있어야해.”

 

지윤이 첫째동생 ㅇㅇ이가.

 

“꿈은 높게 갖고 최선을 다해라. 그러나 마음먹은 대로 일이 안돼면 포기하고 받아들일 줄도 알아야 한다”
지윤이에게 엄마는 늘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윤이의 꿈은 연세대학교 영어영문학과에 들어가 영어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적이 최상위권은 아니었지만 영어를 좋아했습니다.
중2. 초등4학년 두 남동생을 둔 지윤이는 부모님 말을 잘 듣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맞벌이를 하는 엄마를 위해 설거지와 청소를 했고 두 동생들을 잘 돌봤습니다.
두 남동생과는 달리 비싼 옷도 없었습니다.
엄마가 비싼 옷을 사주려고 하면 늘 “필요 없다”고 손사래 치던 아이였습니다.
4월 15일 아침. 지윤이는 여행 가방을 끌고 집을 나섰습니다.
그때 본 지윤이의 뒷모습이 지윤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침 사고 소식을 전해들은 엄마는 지윤이에게 애타게 전화를 걸었지만 끝내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지윤이는 4월 29일에 친한 친구였던 1반 #박성빈양과 함께 세월호 5층 로비에서 발견됐습니다.

 

“누나.천국은 어때? 천국은 행복해? 누나와 함께한 추억들이 그리워. 누나.
보고 싶어. 누나 .
나중에 천국에서 날 마중 나와 있어줘. 누나에게 꼭 갈게. 누나. 기다려줘.
지윤이 둘째 동생 ㅇㅇ이가.”

남수빈 – 단원고 2학년 2반

☆수빈아 잘지내지,..?
내가 이렇게 널 그리워하며 편지를 쓸 자격이 있는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너무 보고싶다.
이젠 영원히 너에게 용서 받을 수 없지만
그냥 그건 내 몫인것 같아,..
수빈아 하늘에서 부디 행복하길 바라.
난 너와 함께한 1년 동안 무척이나 행복하고 즐거웠어 영원히 그 소중한 시간들을 잊지 않을께.☆

 

*성균관대 사학과를 졸업한 후 이 땅의 역사를 연구하는 학자가 되고 싶어요*
수빈이의 꿈은 역사학자가 되는 것 이였습니다.
세월호 참사로 수빈이의 꿈이 깨져버린지 1년이 되던 2015년 4월 16일
교실 수빈이의 책상위에는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생회에서 못다한 수빈이의 꿈을 이루고자 명예학생증서가 놓여졌습니다.
같은날 서울광화문광장에서는 경찰의 차벽에 가로막힌 가운데 수빈아버님은 경찰버스위에 올라

 

“수빈이를 너무 허망하게 보내버렸다” 며 울분을 토하셨습니다.

《우리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생들은 얼마전까지 수빈학생이 느꼈을 감정을 똑같이 느끼던 고등학생이였습니다.
수빈학생과 함께 답사도 가고 공부도 하고축제도 즐기며 수빈학생이 꿈꾸던 대학생활을 함께하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수빈학생이 꿈 꿀 기회조차 앗아가 버린 이번사고가 하염없이 원망스럽기만합니다.
이제갓 날개를 펴고 날아갈 준비를 하던 수빈학생이 마치 우리 후배인 마냥 너무나 보고 싶습니다.
2015.4.16 성균관대학교 사학과 학생회》

 

꿈을 펼쳐보지도 못한 수빈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있습니다.

남지현 – 단원고 2학년 2반

하늘 빛이 그대로 들어와 앉은 바닷가.
맑고 깨끗한 물 아래 빛나는 돌맹이를 줍는 태몽으로 보석처럼 빛나는 지현이가 태어났습니다.

 

지현이는
세자매 중 늦둥이 막내딸이었습니다.
“울라울라”
거울 앞에서 엉덩이를 오른쪽 왼쪽으로 흔들며 춤을 추는 세 살배기 지현이.
두 언니는 새로 태어난 귀여운 막둥이 지현이를 정말 정말 예뻐하고 사랑했습니다.

 

부모님에게도, 언니들에게도 많은 사랑을 받아 늘 구김없고 밝았던 지현이는
발라드 음악을 좋아했고 그 중에서도 블락비의 ‘넌 어디에’ 라는 곡을 참 좋아했답니다.

 

지현이는
유머도 풍부해서 엄마, 아빠에게 효도 쿠폰과 상장을 재미있게 만들어 세상에서 하나밖에 없는 이름의 상을 선물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학교 임원 선거할 때
귀엽다고 말해준 친구들 이야기를 작년 반 애들에게 자랑했을 정도로 순수한 소녀였습니다.

 

커다란 대접으로 두 그릇을 뚝딱 먹을 정도로 미역 수제비를 좋아했고,
연예인 이민호를 좋아했으며, 나중에 커서 모델과 결혼한다고 할정도로 모델들을 좋아했고요.

 

옛날 이야기 듣는 거 같이 재미있어서 한국사를 좋아했고
엄지 손가락을 닮았다고 별명이 ‘엄지’였던 지현이.

 

2013년 어버이 날 ‘엄마가 없으면 저는 단 하루도 행복할수 없어요’ 라는 편지를 보냈던 지현이는 4월 15일 친구들과 함께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났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새벽, 아빠는 지현이가 탄 배가 안개속으로 사라지는 꿈을 꾸셨고,
불길한 예감을 느낀 아빠는 기분이 안좋다고 하셨지요.

 

그 후 침몰 소식을 접하신 엄마는 지현이에게 계속 전화를 거셨지만,
끝내 지현이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지현이의 꿈은
“방송일을 하며 여러곳을 다니며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공감하고 싶어했던
#PD_방송기자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교실의 지현이 자리를 보면 또 지현이가 친구들에게 얼마나 많은 사랑을 받는 아이였는지 알 수 있습니다.
책상 한가득 넘쳐나는 지현이에 대한 그리움의 메시지들….

 

늘 웃음이 넘쳐나고 친구들 사이에서 고민상담사 역활을 한 지현이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의젓하고 생각이 깊은 존재로 자리했습니다.
친구들과 변함없는 우정을 나누고자 하는 반지에는 친구들이 생각해낸 글귀가 새겨져 지현이의 마음에 울림을 주고 있습니다.
“We always exist around you”
(우리는 항상 너의 주변에 있다)
그 울림은 작은 원에서 시작된 둥근 소리였지맛 하늘과 땅,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떨림이 되고 있습니다.

 

지현이가 희생된 이후 부모님과 언니들의 힘든 투쟁을 우린 또 지켜 봐야 했습니다.
지현이 가족을 응원합니다.

귀여운_늦둥이
시 : 신호현

 

엄마 없으면
단 하루도 행복할 수 없어요
너의 마지막 편지

 

너 없는 지금
엄마는 하루도 행복하지 못해
어린 너는 어찌 알았다지

 

귀염둥이 늦둥이
엄마 아빠의 보석으로
행복을 선물하던 지현아

 

집 안 곳곳
너의 흔적 어루만지며
중얼거리는 엄마의 일상

 

함께 할 땐 몰랐지
시간이 많은 줄 알았기에
사무치는 후회만 남는구나

 

4.16 아빠의 꿈속에서
안개 속으로 사라져 간
엄마아빠의 귀염둥이 늦둥이

박정은 – 단원고 2학년 2반

“날마다 엄마 맘에 엄마 눈에 가득한 내사랑 정은이….
세상을 다 녹여버릴것 같은 맑고 평화로운 그 웃음이 사무치게 그리워.
엄마 가슴에 그 미소로 가득 품고 또 품는 단다.
고맙고 사랑스러운 딸,”

 

1년의 마지막날에 태어난 정은이,
태어 나자마자 두살을 먹은 정은이,
친가쪽 외가쪽 첫손주인 정은이는 겨울에 태어나서 그런지 추위에 강했습니다.
더운 날씨보다는 지금처럼 시원하고 차가운 날씨를 좋아했고 날이 너무 추워서 감기에 걸리지도 않는 건강하고 씩씩한 아이였습니다.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좋은 프로그렘을 제작하는 방송국 PD가 되고 싶어요.”

 

정은이의 꿈은
방송국 PD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격도 밝고 활달하고 잘 웃는 아이였습니다. 주변의 친구들도 많고 또 많은 친구들로 부터 사랑받는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는 희생된 같은반 #강우영과 #김주아하고 친했으며 또한 많은 생존학생들과도 친했습니다.
학교후배들도 잘 챙겨주는 자상한 선배였지만 수업시간에는 책상위에 책을 쌓아 놓고 그 뒤에 숨어서 잠을 자기도 하는 명랑하고 평범한 여고생이었습니다.

 

학교에 있는 정은이 자리에는 친구들이 쉬는 시간마다 찾아와서 책상위에 남긴 편지들로 가득합니다.
시간이 갈수록 보고 싶고 날씨가 추워지면 더욱 생각 난다고 합니다.
“네가 지금 옆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거기서도 잘 지내고 맛있는 거 많이 먹고 건강하고 씩씩하라”고 친구들의 절절한 그리움의 편지글들이 가득합니다.

 

엑소(EXO)좋아하고, 디오를 좋아했던 정은이는 친구들과 함께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박주희 – 단원고 2학년 2반

☆어려운 이웃을 돌보겠다던 속깊은 막내,
보배로운 믿음, 천국에서도 반짝이겠지.
주님이 기뻐하시는 딸이 되기를 기원하며 지은 이름 주희☆

 

주희는 일기장에
“미래의 꿈을 키우며 성공하고 부자가 되면 어려운 이웃을 돌보며 살겠다” 라며 예쁜 꿈을 키우던 아이였습니다.

 

교회 목사인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서 성실하고 검소했으며 자기관리가 철저해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것을 스스로 생각해서 행동했습니다.
삼남매 가운데 막내딸이였지만 무척 어른 스러웠고 하물며 유명상표 옷을 사준다 하면 늘 싫다고 했으며 시간이 날때 놀러가자고 해도 “지금 필요한게 아니다”라며 거절했다 합니다.
용돈을 아껴서 늘 책을 살 정도로 자기관리가 철저했기에 엄마에게는 잔소리할 기회조차도 주지않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주희도 사춘기 소녀였고, 짝사랑했던 선배 또한 있었다고 합니다.
주희는 완벽하다는 말을 들을 정도로 모범생이였지만 짝사랑으로 고민하는 평범한 여학생이였고, 꿈많은 소녀였습니다.
주희의 집에는 주희가 떠난 자리에 반려견”벼루”가 들어와 주희의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습니다.
열 일곱소녀와 꿈을 태운 세월호는 4월16일 침몰하였으며 주희는 4월19일에 사랑하는 가족에게 돌아와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있습니다.

나눔부자의 꿈
시 : 신호현

 

주님의 기뻐하시는
막내딸이 되길 원하며
아빠가 지어주신 주희야

 

성공하고 부자가 되어
어려운 이웃 돌보며 살겠다던
보배로운 믿음의 이쁜 주희야

 

성실하고 검소했으며
스스로 자기관리 철저했기에
잔소리할 기회도 주지 않았지

 

입는 옷 사치가 싫어라
주어진 시간 낭비가 싫어라
서투른 사랑도 미루어 두어라

 

그렇게 큰 마음 공부하며
멋진 꿈 이루길 기약하더니
이젠 천국에서 해같이 빛나리라

박혜선 – 단원고 2학년 2반

“엄마, 배가 흔들려. 구명조끼 입고 대기하래……….,”

 

세월호가 기울고 있던 2014년 4월 16일 오전 9시 3분 ,
혜선이는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했습니다.

 

엄마는
“친구 손 잡고 선생님 곁에 있어 ” 라고 말했답니다.
시력이 좋지 않은 혜선이가 행여나 안경을 잃어 버릴까 봐 걱정스러웠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게 마지막 통화였습니다.

 

혜선이는 세월호가 침몰한지 19일만인 5월 5일 어린이날에야 돌아왔습니다.

 

엄마는 혜선이의 얼굴을 끝내 보지 못했습니다. 엄마가 충격을 받을까 주위사람들이 극구 만류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엄마의 기억 속에는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난 4월 15일 아침.
낑낑대며 여행가방을 끌고 집을 나서던 혜선이의 모습이 마지막으로 남아있습니다.

 

혜선이는
태어날때부터 라식도 라섹도 할 수 없을정도로 눈이 나빴다고 합니다.
열여덟 살이 되도록 가스불도 잘 켜지 못하고 엄마나 언니를 무수리처럼 부려먹었다고합니다.
그래서 같이 하늘나라로 간 단원고 친구들에게 엄마는 기도했다고합니다
“혜선이 밥 부탁한다고…..”

 

혜선이는
엄마가 해준 밥이 가장 맛있다고 하였으며 아이들 보느라 힘든 엄마를 위로 한다며 엄마가 좋아하는 음료수를 사다 안기기도 하였으며
아빠 머리에 원형탈모가 생겼다며 속상하다고 눈물짓던 착하고 예쁜 딸이였습니다.

 

혜선이의 꿈은
동국대 국어 국문학과에 진학하여 방송작가나 #전수영 담임선생님처럼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였습니다.
그러나
혜선이는 그 꿈을 그려보지도 못하고 하늘 나라로 떠나고 말았습니다.
부모님은 혜선이가 하늘 나라에서라도 그꿈을 이루기를 기도합니다.

 

“엄마, 아빠, 언니가 이곳에서 응원할게.
엄마는 하늘만 보면 네가 나를 볼 수 있다고 생각해. 좋겠다.
너는 엄마를 볼 수 있어서.
착하고 예쁜 내 딸.
하늘에선 성모님이 엄마야. 자애로운 분이야.
지켜주지 못해 너무도 미안한 엄마가.”
혜선이는 세월호에 타고 있던 15일 밤 9시에 엄마에게
“사랑해. 벌써 보고 싶다”
라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혜선이 초등학교때 담임선생님이 저에게 글을 보내주셨습니다.
옮겨드립니다.

 

《2004년 선부초 근무당시 혜선이 담임을 했었고 혜선이는 초등학교 1학년생이였습니다.
키가 우리반 여자 아이들중에 제일 작았고 그 작은키와 덩치에 안경을 쓰고 다니는 참 가녀린, 어린새와 같은 아이였지요.
그 당시만해도 1학년들은 어머님들이 학교에 오셔서 급식을 도와줄때라 엄마가 당번이여서 학교에 오시면 바로 위에 학년이였던 언니는
엄마를 찾아와 재잘재잘 떠들고 까불었던 반면에 혜선이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으로 엄마와 언니뒤에 늘 숨어있는 얌전한 아이였어요.
우리 혜선이는 이런 내성적인 성격이였음에도 불구하고 가슴에 품었던 꿈은 ‘모델’이였습니다.
그 당시 저도 열정이 넘쳤던지라 어린이날이 되면 기념으로 아이들 각각에게 사진과 꿈을 넣어서
그 꿈을 꼭 이루라고 책갈피를 만들어 나누어 주곤했는데 그걸 잘 간직하고 계시는 혜선이 엄마를 보니
더 정성들여 예쁘게 만들어줄걸 하는 후회를 했습니다.
십여년이 흐르고 성장한 우리 혜선이의 발자취를 찾다보니 고등학교에 진학해서 좋은 선생님을 만나 국어 선생님을 꿈꾸고 있었더군요.
여리고 꿈많던 우리 혜선이…
세월호에 탑승했던 저의 여덟 제자중에 가장 늦게 수습이 되어 마음 졸이게 했던 혜선이는 5월 연휴…
유난히 예쁘게 햇살이 비추던 그날… 그 예쁜 햇살처럼 우리 곁으로 되돌아왔습니다.
혜선아~!
하늘에서 보고 있지? 너의 꿈이 아픔없는 그곳에서라도 꼭 이루어지길 선생님은 늘 기도한단다.
뒤늦은 후회라 할지라도 오늘도 선생님은 너를 생각하며 말썽쟁이 녀석들 한번이라도 더 쓰다듬으며 두고 두고 마음의 빚 갚으며 살아갈게.
미안해… 그리고 사랑해 우리 혜선이…》

송지나 – 단원고 2학년 2반

지나는 생후 6개월만에 심장 수술을 받았고, 엄마에게는 껌딱지처럼 늘 옆에 두고 지켜주어야 할 보석처럼 귀하면서도 안쓰러운 딸이었습니다.
또래에 비해 속이 깊었던 지나는
엄마가 메이커 옷을 사주지 못해 미안해 하시면 “엄마, 그거 비싸니까 안사줘도 돼. 난 괜찮아.” 라며 오히려 엄마를 위로하던 착한 딸이었지요.
살아생전 메이커 옷 한 벌 입지 못했어도 엄마를 원망하지 않고, 엄마가 힘드실 때 유일하게 숨을 쉴 수 있게 해주고, 의지가 되어주던 지나~

 

직장에 다니시던 엄마와 항상 함께 장을 보고, 집 근처 공원에서 배드민턴을 치던 지나~
건강이 좋지 않은 엄마가 힘들어 하시면 등을 쓰다듬어 주고 안아주던 이쁜 딸 지나~
이럴 때면 오히려 지나가 엄마처럼 느껴졌을 정도로 어머니에게 지나는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존재였지요.

 

4월 15일 저녁 8시 45분,
수학여행을 떠난 지나에게 친구들과 좋은 추억 많이 만들고 오라는 문자를 보낸 엄마는 그게 딸과의 마지막 문자가 되리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못하셨겠지요.
다음날인 16일 아침, 세월호 침몰 소식을 듣고 지나와 수도 없이 많은 통화를 시도했던 엄마는 끝내 딸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렇게 지나는 세월호 속에서 스러져갔고, 4월 24일에야 사랑하는 가족의 품에 돌아와 지금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지나의 꿈은 웹툰작가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양온유 – 단원고 2학년 2반

2014년 4월 19일 팽목항.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온유부모님은 오늘은 온유가 꼭돌아 올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부모님의 믿음대로 온유는 서른 한 번째로 돌아왔습니다. 검시관의 확인을 거쳐 부모님곁에 돌아온 온유는 꽉 굽어있던 손가락을 스르르 펼치며 가족품에 안겼습니다. 이를 바라보던 검시관도 부모님도 모두 놀랬지만 온유는 부모님께 안긴 안도감을 그렇게 나타냈습니다.
어렸을때부터 교회에서 독학으로 피아노를 배워 교회내의 거의 모든 예배의 피아노연주를 도맡아 하다시피 연주했던 온유의 가녀린 손가락이였습니다.

 

#양온유…
태몽이 바다였던 온유가 짧은 삶을 바다에서 마치는 순간까지 돌아보겠습니다.
온유에게 있어서 교회와 믿음과 봉사. 배려와 책임감은 빼놓을 수 없습니다
교회사택에 거주하시는 부모님과 교회와 함께 서울,인천,안산까지 열한번의 이사를 거치는 동안에도 온유는 맏이로서의 책임을 다했습니다.

 

4남매의 맏이로 책임감 강했던 아이,
해외 봉사를 위해 방과후 친구들은 학원에 간 시간에도 학교앞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나갔던 아이,
피아노를 독학으로 배워 교회 찬송가 연주를 했으며 음악으로 심리치료하는 음악심리치료사가 꿈이였던 아이.
1학년 때는 선생님들의 만장일치 추천으로 학년대표로 책임과 봉사를 다했고.
2학년때는 친구가 학년대표로 출마한다고 하자 친구와 경쟁할수 없다며 양보하고 2반 반장으로 모든면에서 솔선수범했던 그런 아이였습니다.
중학교 친구가 제주도로 이사가 다시 볼 수 있는 기회가 된다며 수학여행을 들뜬 마음으로 출발했던 온유였습니다.

 

4월16일 오전 7시쯤 엄마에게 “배에서 자고일어났다”며 메시지를 보냈던 온유는,
세월호가 침몰하는 순간
“온유야 아빠다.너를 위해 모두 기도하고 있다.이럴때 침착해야 하는거야. 친구들에게도 동요하지 말고 차분히 기다리면 구조될 거라고 용기를 주렴…”
아빠의 문자에도 답이 없던 온유가 그때 뭘하고 있었는 지는 닷새 뒤에야 밝혀졌습니다.

 

가족에게 돌아온 온유의 장례식장에 많은 친구들이 찾아왔습니다.
“갑판까지 나왔다가 다시 배안으로 들어갔어요. 방에 남아 있는 친구들 구한다고”.
배 아랫쪽 선실에서 터져나오는 친구들
울음소리를 듣고 구명조끼도 입지 않고 다시 선실로 들어갔던 온유에게
“걔는 그럴줄 알았어, 친구들이 배안에 있는데 그냥 나올 애가 아니어서…..”
온유를 기억하는 모든이들의 이구동성입니다.
친구들은
“온유는 주변사람들에게 힘을 주는 ‘비타민’같은 존재”로.
이웃주민은
“제일 예쁜 친구가 살아오지 못했어, 온유는 마음도 얼굴도 예뻤어”
“참 어른스러워 배우는게 많아”
선생님은
“성격좋고 밝고 따뜻해 친구가 많았다. 또래보다 성숙하고 반듯한 온유를 애들은 많이 따랐다. 마음이 따뜻해서 어려운 친구를 보면 당연히 도와주는 것으로 생각했고 늘 자신의 생각과 행동이 일치했던 아마 그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는 이시대의 가장 모범적인 아이 일겁니다.”
1학년 담임선생님의 기억입니다.
친구들을 사랑하고 배려할줄 알고 책임감이 몸에 벤 온유로서 어쩌면 당연한 결정이었습니다.

 

온유의 장례식을 치른후 맞이한 주일예배 주보에는 온유가 수학여행가기전에 낸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은 돈의 십일조헌금이
기록되어져 있었습니다.
많은 이들을 감동시키고 끝까지 책임을 다했던 온유를 우린 구조의 손길 한번 써보지 못하고 떠나보냈습니다.
학교앞에 위치한 온유가 다녔던 “명성교회” 4층에는 온유와 친구들을 기념하는 정원 “온유의 뜰”이 꾸며져 있으며 온유는 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학생 삼박자 온유
시 : 신호현

 

교회에서
독학으로 피아노 배워
새벽기도 반주를 했어요

 

나보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
아름다운 하늘나라 소망하며
신실한 믿음키우며 살았어요

 

가정에서
넉넉지못한 살림에
평일엔 편의점 알바했어요
노래로 병든 마음치유하는
서울대 음악심리상담사 꿈꾸며
행복전파사로 살고 싶었어요

 

학교에서
2학년 2반 반장으로
학년대표 친구에게 양보하고
친구들의 고민상담 들어주는
꼭 필요한 바타민같은 친구되어
친구 행복이 내 기쁨됨을 느꼈어요

 

수학여행 세월호속에
친구들이 위험에 빠졌어요
생명 갑판으로 불러내야 해요
학생삼박자로 더 없이 예쁜 온유
친구 살리려고 힘껏 달려 갔어요

오유정 – 단원고 2학년 2반

*우리 돌쇠 ! !(유정이)
너 매일 과자 갖고 와서 나눠 먹었잖아.
내 생일 때 내가 크게 한턱 쏘려고 했는데…
바보야….보고 싶어….
우리 민지랑 다윤이랑 지나랑 소정이랑 나랑 이번에 친해져서 방도 같이쓰고 좋았는데….
근데 왜 나만 남았을까….
보고 싶어 … 미안하고….
사랑해 ..바보야….*

 

유정이는
남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맏이입니다.
유정이는 편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엄마 아빠 할머니 동생 생일이면 선물과 함께 또박 또박 몌쁜 글씨로 편지를 쓰곤 하였답니다.
할머니 집에는 유정이 편지만 따로 모아 놓은 편지 상자가 있을 정도입니다.

 

유정이 부모님은 작은 제과점을 운영하셨습니다.
유정이도 과자를 좋아해 늘 학교에 과자를 가져오던 유정이.

 

유정이의 꿈은
“제가 만든 빵과 과자에 직접 쓴 손글씨로 pop로 향긋한 빵냄새 가득한 예쁜 가게를 꾸미고 싶어요”
윗 글처럼 제과제빵사가 꿈인것은 어쩜 당연한 것인지도 모릅니다.

 

유정이는
3분단 맨 뒷자리, 교실 뒷문 바로 앞에 아직 돌아오지 못한 #허다윤과 함께 나란히 앉았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난 세월호에서도 다윤이와 민지,소정,지나등 친구들과 함께 한방을 사용했다합니다.
그러나
돌아온 아이는 반에서 11명뿐.
#전수영 선생님과 #강수정_강우영_길채원_김민지_김소정_김수정_김주희_김지윤_남수빈_남지현_박정은_박주희_박혜선_송지나_양온유_윤민지_윤솔_이혜경_전하영_정지아_조서우_한세영_허다윤_허유림 등 반친구들은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새가 우네
신옥철
이별이 다가와 슬픈 음성으로 말한다
원래는 사랑과 하나였다고
그래서 매번
가슴으로 파고드는 제초제 흉내를 내는 것이라고
그래서 생이별은
몸 후비고 지나는 컷터날이 되는 것이라고
헤어져도 아프지 않는 것은 이별이라 말하지 않는다고
그가 말한다.

 

무르익은 봄날
하얀 꽃잎 사방으로 날리는 나무에서 새 한 마리 울고 있네
먹이 찾아 물고 와
텅 빈 둥지 바라보며
어미 새 피를 토해 울음우네.

 

하늘공원에 전시된 시입니다.
열달을 가슴에 품었다 세상에 내어놓고
애지중지 키운 유정이 입니다.
유정이를 잃고 가슴 아파하시는 어머님의 편지글을 소개하며 오늘 누구보다도 아파할 가족분들을 위로합니다.

 

*이세상에 유일한 내딸 유정아
너무너무 보고 싶구나.
딸을 생각하면 어느새 눈물이 고이는 구나
옆에 있을때 많이 많이 사랑못해주고 잘해주지 못해서 항상 미안한 마음 뿐이구나.
사랑한다 내딸!
유정아 사랑해~!*

 

유정이는 4월 24일에야 가족품에 돌아와 친구들과 함께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윤민지 – 단원고 2학년 2반

♧ 나는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유치원 선생님이 되어 아이들을 많이 사랑할꺼야 ♧

 

침대 머리맡에 작고 귀여운 동물인형을 모아놓고, 직접 만든 분홍색 “사랑해” 모빌을 걸어두고,
,”우리 민지의 꿈은 유치원교사” 라는 문구를 걸어 유치원 교사를 꿈꾸었던 민지,
아이돌그룹 “비스트”를 좋아하고 브렌드 옷 한번 사달란 적 없는 착한 딸.

 

수학여행 가기전 “옷 필요 없느냐?”고 묻자 “가지고 있는 옷 만으로도 충분하다”며 말하지 않아도 집안 형편을 생각해서 부모님께 부담주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착한 딸이였습니다.

 

진도에서 수습된 학생들의 인상착의 및 옷 브렌드가 불릴때 마다 또 아빠는 고개를 떨구어야만 했습니다.
늦은 나이에 결혼하여 어렵게 얻은 민지였기에 민지를 잃은 부모님의 아픔은 더욱 컸습니다.
사고후 팽목항에 매일 삼시새끼 민지가 좋아하는 음식을 차려놓고 돌아오기만을 기원한던 엄마에게 민지는 73일째되는 날 293번째 천사로 비로소 돌이왔습니다.

 

어른이 되고 싶었던 아이들을 어른들의 잘못으로 강제로 천사로 만들어 버린 못난 어른들의 잘못으로 열 일곱 꿈도 펼쳐보지 못한채 비로소 돌아온 것입니다.
민지는 지난해 6월24일 자신의 생일을 사흘 앞두고 돌아와 생일날 장례를 치루는,
생일과 기일이 같은 아이로 남게 되었습니다.
유치원선생님의 꿈을 꿈꾸었지만 세월호는 그 꿈마져 같이 침몰시켜 버렸습니다.
민지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참들어 있습니다.

윤솔 – 단원고 2학년 2반

“이쁨”이 솔이,
이쁨이는 집에서 부르는 솔이의 애칭입니다
솔이네는 음식을 잘만드시는 아빠와, 엄마 두 명의 언니, 그리고 반려견 요크셔테리어 “샤크”가 한 식구입니다.

 

솔이네는
아래로 흐르는 내리사랑이라고 합니다. 아빠의 사랑은 엄마에게 흐르고 큰언니를 거쳐 작은언니를 적시고 마지막으로 솔이에게로 모여 아주 커다란 “이쁨”이 되었다고 합니다.
언니 둘은 엄마를 닮았는데 솔이는 아빠를 닮아서, 집에서 솔이는 아빠하고 친했습니다. 솔이는 “나만 아빠 닮았으니까 나는 언제나 아빠 편”이라고 말하던 애교쟁이 막내였습니다. 아빠도 솔이 편이었습니다. 솔이가 아빠가 만든 밥을 좋아해서, 아빠가 돈가스도 튀겨주고, 삼겹살도 구워주고 계란말이도 해 주셨습니다.
특히 솔이는 아빠가 만들어 주시는 계란 말이를 좋아 했다고 합니다.
아빠는 지금도 밥상을 차릴 때 솔이가 없는 걸 잊어버리고 솔이 밥도 같이 차리십니다.

 

솔이는 공부 욕심이 많았습니다.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 못해서 학원도 다니지 못했지만 솔이는 자기 혼자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집이 좁아서 언니들이랑 같이 방을 쓰거나 거실에 나와서 공부하면서도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아빠 돈 많이 벌면 큰 집으로 갈 거잖아” 하고 웃어주던 속 깊은 아이였습니다.

 

솔이 아빠는
딸 셋을 육해공군이 되는것을 원하셨다고 합니다. 하지만 두 언니는 포기하였고 솔이라도 공군 직업군인이 되는 것을 원하셨지만 솔이 또한 맹장수술 경험때문에 포기하여야만 했습니다.
대신에
솔이는 멋져보이는 제복과 빠른 운동신경을 앞세워 경찰관이 되고자 했습니다.
솔이는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성격이었습니다. 아빠는 경찰은 언제나 위험한 상황에 처할 수 있어서 걱정을 하셨습니다. 솔이는 수학여행 가서 깊이 생각해보고 결정하겠다고 했습니다. 아빠는 솔이 결정을 존중해주지 못한 것, 아빠 눈치보게 만든 것이 한이 된다고 하십니다.

 

세월호 참사후
솔이 장래희망이 경찰이었던 것을 알고 안산시 단원경찰서에서는 ‘윤솔’이라고 이름을 새긴 경찰 제복을 합동분향소에 전달해 주셨습니다.
한편 유가족분들과 부모님들은 국회에서, 청운동에서, 광화문에서 또다른 경찰들에 둘러쌓여 한발자국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경찰의 벽에 가로막혀 주져앉았습니다.

 

솔이는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분주하게 준비하며 아빠에게 계란 말이릍 먹고 싶다고 부탁했습니다.
아빠는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해주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솔이는 아빠가 만든 계란말이를 이제 더이상 맛 볼 수 없게 되었습니다.
솔이는 절친 #조서우_박혜선_정지아_김주희_김지윤등 절친들과 함께 별이 되었습니다.

 

이쁨이 막내딸 솔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이혜경 – 단원고 2학년 2반

“긍이”
혜경이는 긍이라고 불리었다고 합니다.
작은 키지만 깜찍하고 예쁜아이 입니다.
위로 언니가 있는 막내딸입니다.

 

*희망대학교 1: 명지전문대학교 2:성신여자대학교
*장래희망: 메이크업 아시스트
혜경이의 꿈은 메이크업 아시스트가 되어 엄마의 주름살을 펴주는 것이었습니다.
수학여행가기 며칠 전에도 엄마에게 ” 엄마, 조금만 고생해. 내가 엄마, 아빠 가이드 붙여서 해외여행 시켜 줄께”라며 밝게 웃던 아이였습니다.
혜경이 책상에는 아직도 2만원이 남아 있다고합니다. 수학여행가서 맛있는거 사먹으라며 5만원을 쥐어 줬지만 혜경이는 3만원만 가져갔습니다. 나머지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자마자 출전할 미용대회 재료비로 쓸 생각이었습니다.

 

혜경이는 맞벌이하는 부모님의 부담을 덜어드리겠다고 30분이 넘게 걸리는 등교길을 매일 걸어다니며 버스비를 아꼈다고 합니다.
세월호 침몰후 4월 17일 저녁까지만 하여도 혜경이는 생존자 명단에 있었습니다 하지만 “빨간색 운동복을 입은 아이의 얼굴을 확인해달라”는 당국의 요청에 엄마는 결국 주저앉고 말았습니다.

 

친구처럼 지내던 대학생인 언니와 엄마의 화장품을 직접 골라 발라주고 코치까지 해주던 혜경이….

 

혜경이는
빨강색 트레이닝복을 입고 “금구모”친구들과의 마지막 단체 사진을 남기고 우리곁을 떠나 경기도 평택 서호 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하늘에서_지켜_보고_있다!!!

 

이말은 작년에 혜경이가 언니의 꿈에 나타나 했던 말입니다.
600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진척없는 세월호 참사..
이 아이들의 죽음이 결코 헛되지 않기 위해서도..

 

위에서 지켜보고 있을 혜경이와 친구들을 위해서도 결코 포기하지 말아야 할 일입니다.
혜경이 아버님은 저의 직장 선배이기도 했습니다. 아버님이 보내주신 혜경이의 성장사진은 고등학교 2학년에 멈춰섰습니다.

전하영 – 단원고 2학년 2반

“겹겹이” 전하영.
하영이는 엄마와 세살터울 동생이 하나 있는 자매중에 맏딸입니다.
초등학교때부터 춤추기를 좋아해서 학교에서든 교회에서든 행사가 있을때면 혼자, 또는 여럿을 모아 춤 연습과 공연을 했습니다.
겹겹이는 하영이의 쌍꺼풀이 어느날은 드겹 또 어느날은 세겹 , 다섯겹으로 변하기 때문에 친구들이 지어준 별명이라고 합니다. 게그프로의 케릭터를 절묘하게 흉내내어 친구들을 웃게 하기도 했고, 단지 “먹을것 많이 나온데” 라고 해서 특별활동으로 배구부에 들어가 경기도 대회 준우승을 이끈주역이기도 했습니다.

 

엄마에게는 친구처럼 의지하게 된 존재였습니다. 직장일로 바쁜 엄마 대신에 동생을 알뜰하게 보살폈고 학교를 빠지거나 숙제를 거르는 일 한 번 없었다고합니다.
가리는 것 없이 잘 먹고 잔병치레없는, 때론 아파도 좀체 티를 내지 않는 큰 딸이었습니다.

 

하영이는
유니세프나 유엔 등 국제기구에서 세상의 어려운 사람들을 돕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원래는 사회복지사가 되는 것이 꿈이었는데, 사회학자 장 지글러의 [세상의 절반은 왜 굶주리는가]라는 책을 읽고 이웃들뿐 아니라 세상 전체를 돕는 사람이 되기로 폭을 넓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영이는 고등학교 1학년 겨울방학 때 한국외국어대 외교통상스쿨을 1기생으로 수료했습니다. 고등학교 2학년 봄, 수학여행을 떠나기 직전에는 여성가족부에서 주관한 청소년 국제교류네트워크 과정에도 참여할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춤은 여전히 하영이의 중요한 몫이였습니다. 1학년 내내 학교 댄스 동아리인 (플레시봅)동아리와 교회의 (파워댄스부)에서 활동했습니다.
수학여행에서도 같은 반 친구들과 함께 장기자랑으로 댄스를 보여 줄 예정이었습니다.
학교앞 올림픽기념관 입구에 있는 전면 거울 앞에서는 2반 친구들인 #양온유_한세영_남지현_김수정. ㅇㅇ, ㅇㅇ등이 흥겨운 음악에 맞춰 춤연습을 하던 곳입니다.
하영이는 이렇게 꿈이 크고 생각이 넓은 아이였습니다. 그렇지만 자기 전에 스탠드 끄는 걸 잊어버리기도 하고, 겁이 많아서 야간자율학습이 끝나면 밤에 집에 가는 게 무서워서 엄마한테 데리러 와 달라고 부탁하는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날에 하영이는 여행 가방을 들고 친구와 함께 신이 나서 뛰어갔습니다. 4월 15일 저녁에 하영이는 엄마한테 전화해서 평소처럼 사랑한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이 엄마가 들은 하영이의 마지막 목소리였습니다.

정지아 – 단원고 2학년 2반

★어디 아프지 말고,평생 죽지 말고, 나랑 같이 살아,
엄마 없인 아무것도 못하는 나 두고 일찍가면 안돼, 사랑해 ★

 

“나는 시간이 갈수록 커지지만
때를 밀어주는 엄마의 등은 변함이 없다.
나는 머리 모양을 매일 바꾸지만
그 독한 냄새의 파마머리는 변함이 없다.
나는 짜증이나 낼 때나 주름이 모이지만
엄마의 이마에는 매일 하나씩 주름이 늘어난다.”
<변함없는 것(엄마 시리즈)정지아>

 

때론 엄마를 힘들게 하면서도 늘 친구같았던 딸,
지아의 꿈은 박물관 큐레이터였습니다.

 

​글쓰기를 좋아해 엄마와 친구들과 놀이하듯 편지를 주고 받고 소설과 시도 즐겨쓰던 아이였습니다.

 

​한 살 무렵 부부가 결별하면서 지아와 엄마는 서로 깊이 의지하는 사이가 됐고 삶의 전부였으며
지아에게 엄마는 자신을 이해하고 받아주는 유일한 안식처 였습니다.

 

​엄마의 재혼후 많이 방황하고 고민하던 사춘기 지아에게 엄마는 편지를 쓰기 시작했고
지아도 차츰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엄마가 여태까지 써준 편지들을 모아둔걸…컴퓨터로 저장할 겸 하나씩 다 써봤어..
난 울지 않으려고 했지만 결국 울었다”

 

​지아가 엄마가 없는 세상에서 그 편지들을 읽으며 엄마를 그리워 할 모습을 상상했는데
현실은 그 반대가 되어 버렸습니다

 

​지아와 친구들이 수학여행가기 이틀전 나눈 편지 내용입니다.

 

​”열 여덟살이 되니까 되게 생각이 많아 지는 것 같다 그치?
정말 울고 싶을 때 항상 옆에 네가 있었는데”
이 아이들은 영원히 열여덟 소녀로 남게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딸
시 : 신호현

 

엄마!
나 사랑해?
나 얼만큼 사랑해?

 

물어보고
또 물어보면서 하는 말
내가 이만큼 엄마를 사랑해

 

커피 마시던 너의 말
이 순간이 얼마나 행복한지
얼마나 감사한지 몰라

 

그런 외동딸이
친구 같은 엄마 떠나
하늘 공원에 잠들어 있다

엄마 삶의 전부
하늘이 무너지는 아픔으로
너의 모든 것을 기억해

 

엄마 곁에서 그렇게
엄마를 껴안고 뽀뽀하고
엄마 사랑해 속삭이는 말

 

모두 들린단다
모두 느껴진단다
사랑하는 내 딸 지아야

조서우 – 단원고 2학년 2반

서우는 띠동갑 남동생이있는 맏딸입니다.
어릴 때부터 보는 사람마다 예쁘다고 감탄했습니다.
크고 동그란 눈에 잘 웃고 애교를 잘 떨고 아무한테나 잘 안겨서 귀여움을 많이 받았었지요.

 

섬세하고 내성적인 성격에 조용한 성격이어서 학교에서는 친구가 많지는 않았습니다.
가끔은 학교생활을 힘들어 하기도 하였답니다.
어머니는 사춘기의 고민쯤으로 여기고 다독여주지 못했던 부분을 아쉬어 하십니다.
서우의 어릴적 꿈은 하늘을 나는 스튜어디스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서우는 텔레비젼에서 수화로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소리를 들을 수 있는 사람이지만 듣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소리를 손짓으로 통역해주는 수화통역사를 보고
서우가 꿈꿔 왔던 세상이 저 손짓에 함께 있는 것 같았습니다.
이후에 서우는 하루에 하나씩 수화를 익혔습니다.
어린아이가 말을 처음 배우듯 더디고 서투른 손짓이었지만 한 글자씩 익힐때마다 서우의 눈 빛은 빛이 났답니다

 

서우는
십대 소녀답게 집에서는 혼자 랩송도 부르고 엄마와 함께 영화도 보고 쇼핑도 하면서 친구처럼 지냈다고 합니다.

 

수학여행을 다녀온 뒤에도 겨울방학이 되면 엄마와함께 기차여행을 떠날 계획이었습니다.
수학여행전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을 정도로 감기가 심했던 서우는 더 많은 친구들을 사귀기 위해 수학여행을 가고 싶어 했습니다.

 

“친구들 한 명씩하고 선생님하고 사진을 찍어”
엄마는 준 폴라로이드 사진기와 필름 30장을 챙겨주었습니다.
“응, 알았어, 엄마”
서우는 수화로 엄마에게 “사랑해”라고 말했습니다.
경쾌하고 밝으면서 따뜻한 손짓이었습니다.
몸으로는 춤을 추지 못했지만 수화를 하는 손짓은 춤추듯 아름다웠습니다.
엄마는 빙그레 웃으며 서우를 꼭 안아줬습니다.
“잘 다녀와 나도 사랑해”
“응. 나도.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해”

 

하지만 서우는 참사가 일어난지 16일 만인 5월 2일에야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한세영 – 단원고 2학년 2반

“누나, 잘 지냈어?
어느덧 벌써 100일이 지나고 더 지났네. 왜 이리 빨리 갔어?
아직 할 것도 많고 꿈도 많았잖아? 부디 여기서 이루지 못한꿈. 거기서는 다 이루고 살길 바랄게. 내 꿈에 한 번이라도 나와줘.
우리 다시 만나면 여기서 있었던 일들 다 이야기해줄게.
누나 너무 보고 싶다. 잘 지내야 해. 편히 쉬어, 누나 사랑해.”

 

“세공” “한세”
한세영은 아래로 두 살 어린 남동생이 있는 맏이입니다.

 

“적당한 크기의 계란형 얼굴에 어떤 헤어스타일도 다 어울릴듯한 반듯한 이마, 얇고 세련된 쌍커풀에 새까만 눈동자와 커다란 눈매, 그린듯 자연스러운 눈썹과 긴 속눈썹, 높지도 않게 오똑하고 매끄러운 콧날과 라인이 또렷하고 두툼한 선홍색 입술, 입술 밖으로 살짝 보이는 하얗고 가지런한 치아, 보일 듯 말 듯한 보조개, 쫑긋 솟은 귀와 피어싱이 잘 어울리는 귓볼, 뾰족하지 않은 턱선과 솜털이 뽀송뽀송한 가냘프고 긴 목선, 하얗고 긴 손가락, 윤기 있고 굵은 흑발과 하얀 피부…..”

 

세영이 추모 영상에 나오는 엄마가 기억하는 세영이 입니다.

 

세영이의 꿈은 한문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중학교 때 한문 선생님을 너무 좋아해 이런 꿈이 생겼다고 합니다.
세영이는 그림을 잘 그렸지만 돈이 너무 많이 들어간다고 해서 화가의 꿈을 포기해야만 했습니다.
집에서는 내성적인 성격이었지만, 밖에서는 친구없이 못 사는 활달한 아이였습니다.
학교에서는 “그린레인져”동아리 활동을 하였습니다.

 

세월호가 기울고 물이 차오를 때 가까스로 탈출한 한 생존 학생이 복도에 떨어진 세영이의 휴대전화를 부모님께 전했습니다.
휴대전화 안에는 세영이가 그동안 찍었던 사진과 동영상이 들어있었습니다.
세영이 아빠는 딸의 휴대전화에 있던 사진과 동영상등으로 그해 6월 7일에 10여 분짜리 추모 영상을 만들었습니다.

 

사고 소식을 듣고 진도 팽목항으로 달려온 아빠의 모습과 세영이의 어린 시절, 부모님이 보낸 영상편지등을 담아 온 국민의 마음을 울렸습니다.
휴대전화를 먼저 부모님께 보낸 세영이는 4월 20일에야 부모님품에 돌아왔습니다.

 

인피니트,B.A.P를 들으며 친구들과 춤추는 것을 좋아했던 세영이,

 

안산에서 어린시절을 보냈고 화성고등학교로 전학했다가 고등학교 1학년 11월에 안산 단원고로 전학을 와서 단원고 2학년에 재학중이었습니다.

 

2반 3분단 맨끝에 자리했던 세영이는 절친인 3반 유혜원과 함께 서울 동작구 흑석동 달마사 봉안당에 잠들어 있습니다.

허다윤 – 단원고 2학년 2반

허다윤….
부모님의 껌딱지 허다윤, 민트향 호올스를 좋아하고, 이모님이 선물해준 강아지 깜비를 좋아하던 소녀.

 

다윤이는
아버지가 퇴근해 오는 길이면 거의 매일 전철역으로 아버지를 마중 나가던 아이였습니다.
아버지의 모자가 멋있다며 아버지의 모자를 받아 수학여행을 떠났던 아이.
깊은 신앙심으로 교회활동을 열심히 하던 다윤이는 교회 주일학교 어린이반에서 아이들을 돌보거나 다문화 가정 어린이들을 돌보는 봉사활동을 열심히 하기도 하였습니다.

 

다윤이의 꿈은 유치원 선생님이 되는 것 이였습니다.

 

다윤이는 언니와는 달리 겁이 많고 내성적인 아이였습니다.
낯을 많이 가리고 얌전한 성격이라 친구가 많지는 않았지만 강아지 깜비와 노는 것을 좋아했고 가끔 용돈이 생기면 언니와 옷을 사러 가는것을 가장 좋아 했다합니다.
이런 다윤이에게도 남자 친구가 있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아침에도 다윤이 어머니는 다윤이를 기다리고 있는 남자친구를 태워서 학교까지 같이 바래다주었습니다.

 

정겹게 잘다녀오겠다고 인사하고 떠난 다윤이는 사고후 3년이 지난 1129일만에와 서울시청에서 다윤이를 찾을수 있도록 도와준 시민들과의 이별식을 치른후 1반 조은화와 함께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안치되었습니다.

허유림 – 단원고 2학년 2반

“앞으로 너없이 살아가야할 날은
이렇게나 많은데,
야속하게도 너 없이도
시간은 흘러가고 세상은 변해가.
너와 보내고 나서
난 그자리 그대로 있고 싶은데….”

 

“우리가 비록 2학년 짧은 시간동안 만나왔지만 난 그잛은 시간이 너무 좋고 행복했어~!꽃나무 밑에서 사진도 많이 찍고 얘기도 많이 해서 너무좋아~! 앞으로도 쭉 너랑 더 많은 추억 쌓았으면 좋았을 텐데!!!
나는 나쁘고 이기적인 사람들때문에 너희를 못 본다는게 너무 화나고 맘이 아파ㅠㅠ”

 

*허뮤리미*
유림이는 세 살 많은 언니가 있는 자매중에 막내입니다.
토핑이 안올라간 치즈피자를 좋아했고,
키우던 강아지 찌부를 엄청 좋아했던 유림이,
2반 3분단 맨 앞자리 교실문 바로앞이 유림이가 공부하던 자리입니다.

 

유림이는,
친구와 급식 먹으러 갈 때 팔짱끼고 걸어가면서 얘기도 많이하고 책상위에는 빗이 맨날 있고, 5분마다 거울을 한번씩 올려다보는 평범한 십대 소녀였습니다.

 

소소한 꿈을 꾸며 행복했던 아이였고 소외된 친구들의 마음을 어루만져 주고 힘들어 하는 친구들이 있으면 옆에서 토닥토닥 다독여 주던 아이, 유림이는 그런 아이였습니다.
밝고 명량한 성격답게 주변에 친구들 또한 많았습니다.
하고싶은게 너무 많아 특별히 꿈을 정할 수도 없었던 유림이였지만 수학여행을 떠나기전 인터넷에서 온라인패션몰을 차리고 싶다는 꿈을 피력하였다고 합니다.

 

“Don’t / forget / to / remember ”

 

중학교때부터 유림이와 친했던 세명의 친구들은 네개의 반지를 맞췄습니다.
유림이의 생전의 소원대로 절대로 유림이를 잊지 말자는 뜻에서 이렇게 네개의 반지가 합쳐져야 문장이 완성되는데 유림이 반지는 납골함에 넣어두고 셋이서 반지를 끼고 다닙니다.

 

학교에서는 “폴라리스”라는 과학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4월 21일에 가족의 품에 돌아온 유림이는 그중에서도 친했던 아이들 네명과 함께 하늘공원에 나란히 잠들어 있습니다.
유림이 짝꿍은 #이혜경입니다.

 

“학교가는 하루하루가 즐겁고 행복했어, 2-2반 친구들 전부 좋았고,
전수영선생님도 너무너무 좋았어.
네자리 누구도 대신 할 수 없어,
내주지도 않을꺼고 그러고 싶지도 않아. 그러니까 나중에 하늘나라가면 다시 친구해주고
그 빈자리 채워줘야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