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강한솔 – 단원고 2학년 10반

한솔이 친구들과 한솔이 어머님의 가장 큰 소원은 한솔이가 꿈에라도 한 번 나타나 주는 것입니다. 한솔이 어머님은 한솔이 교복과 한솔이 방을 그대로 남겨 두었습니다. 한솔이 방에는 고양이 라올만 남아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솔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구보현 – 단원고 2학년 10반

보현이는 막내딸로 사랑 받으며 자랐습니다. 친척들에게 용돈을 듬뿍 받았고 아이처럼 아빠에게 매달리곤 했습니다.

 

보현이는 학교 장학금을 받을 만큼 공부를 잘 했습니다. 기타 연주 실력과 드럼 연주 실력이 좋았고  춤도 잘 췄습니다. 집안 꾸미기를 좋아했던 보현이의 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보현이는 엄마와 똑같은 물건을 쓰는 걸 좋아했습니다. 똑같은 우산, 똑같은 목도리,  똑같은 가방… 그 중 우산은 보현이가 수학 여행 갈 때 가지고 떠났던 캐리어 속에서 녹이 슨 채로 돌아왔습니다.

권지혜 – 단원고 2학년 10반

지혜는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밝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밝은 성격으로 주위 사람들에게 늘 웃음을 주었습니다.

 

지혜는 다재다능했습니다. 성적이 우수했고, 피아노를 잘 쳤고, 노래를 잘 하고, 춤도 잘 췄습니다.

지혜는 가족을 사랑했습니다. 얼마 안 되는 용돈을 모아 엄마에게 양산과 화장품을 선물했고, 부모님의 결혼 기념일마다  케이크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가족들과 많은 대화를 나누기도 했습니다.

지혜의 장래 희망은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지혜는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지혜 어머니의 편지

불러도 대답 없는 지혜야. 하루에도 몇 번을 부르고 불러도 지겹지 않은 예쁜 우리 지혜가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 떠나는 날 매일매일 있었던 일들 찍어서 보내준다던 약속, 보고 싶어도 아빠랑, 언니, 루비랑 조금만 기다리라던 약속, 지금이라도 지켜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 이정숙 님-

 

-지혜 아버지의 편지

[4월16일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 제주도 도착하면 전화 주겠다던 그 약속 잊어 버린 건 아니지?
엄마 아빠의 희망, 미소 천사, 우리 이쁜이. 아직도 그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구나.보고 싶다. 무능한 아빠 만나서 이렇게 된 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프고 정말로 미안 하구나.용서해 줄수 있지? -아빠-]

 

-지혜 언니의 편지.

[요즘에 항상 느끼고 있는 건데 있을때의 소중함을 언니가 잘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언니는 아직도 너랑 못 해본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아주 많은데…
우리 나중에 만나서 꼭 다해보자.
그러니까 언니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고 잘지내고 있어야해. 사랑한다 내동생♥
– 언니-]

김다영 – 단원고 2학년 10반

다영이는 삼남매 중 막내였습니다. 다영이는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오빠들은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아껴 다영이의 옷과 신발을 사줄 정도로 막내 다영이를 아꼈습니다. 다영이 아버지는 지인들에게  다영이를 자랑하며 ‘이렇게 이쁜 딸을 당신들은 만나 봤소?’ 자랑하곤 했습니다.

 

다영이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다영이는 아빠에게  염색을 해주기도 하였으며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위해 집안일을 하기도 했습니다.

 

다영이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중학교 때에는 과학 영재반이었고, 단원고에서는 줄곧 상위권이었습니다. 그런 다영이의 꿈은 성균관대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소아과 의사가 되는 것 이었습니다. 다영이의 부모님은 다영이를 자랑스러워했습니다.

 

다영이는 아빠 옷 입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특히 아빠의 줄무늬 셔츠를 즐겨 입곤 했습니다. 또래 아이들처럼 아이돌 그룹을 좋아했고 특히 샤이니의 열성 팬이었습니다. 샤이니 종현을 좋아했으며, 사고 후 종현 또한 트위터를 통해 “다영아 함께가자” 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리본 사진을 올려놓은 일화가 있습니다.
지금도 다영이의 책상 위에는 샤이니의 사진이 올려져 있습니다.

 

다영이 아버지는 4월 15일 밤 9시까지 다영이와 카톡을 주고 받았습니다. 다영이는 배를 타고 여행 가는 것이 너무 좋아서 들떠 있었고, 9시에 드디어 출항한다고 사진을 찍어 아빠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다영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정 – 단원고 2학년 10반

민정이는 애교쟁이 귀염둥이 막내딸이었습니다. 민정이는 활달하고, 약간 엉뚱한 성격이었습니다. 공부를 잘 했고, 피아노를 잘 쳤고, 친구들과도 잘 지냈습니다.

 

민정이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부모님의 생신에는 언니와 같이 케이크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주말에 출근하는 엄마를 위해 도시락을 만들곤 했습니다.

그런 민정이의 꿈은 약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4월 15일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결혼기념일 다음날, 참사 소식을 듣고 가족 모두 애타게 전화했으나 민정이는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민정이는 참사 일주일 만에 가족들 품으로 돌아와서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민정이 어머니의 편지

“처음 꿈에서는 “엄마, 나 살아왔어”라며 우는 목소리만 들렸지. 두번 째는 민정이가 멀리서 말없이 엄마만 바라봐주더라. 어제 세번 째는 우리 딸의 얼굴이라도 만져볼 수 있어서 엄마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단다. 우리 딸의 따뜻한 체온을 느꼈을 때 정말 네가 살아있다는 걸 믿을 수도 있을 것 만 같았단다.”

김송희 – 단원고 2학년 10반

송희는 아버지 없이 근무기력증이라는 불치병을 앓는 엄마, 그리고 여동생과 함께 자랐습니다.

송희는 속이 깊고 어른스러웠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해서 돈을 벌었고, 버스비를 아끼기 위해 먼 거리도 걸어 다녔습니다.

송희의 꿈은 엄마와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돈을 많이 벌어 집안 살림을 돕고 싶어했습니다.

 

송희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 송희 삼촌의 편지.

“송희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삼촌이 얼마나 널 그리워하고 사랑 하는지 알지? 사랑한다. 삼촌을 용서해 다오”

이소진 – 단원고 2학년 10반

소진이는 삼남매 중 둘째였습니다.

소진이는 동생을 끔찍하게 위했습니다. 맞벌이로 바쁜 엄마, 아빠를 대신해 어린 남동생을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저녁마다 동생에게 밥과 간식을 먹이고,  공부를 가르치곤 했습니다.

 

소진이는 젤리를 좋아하고,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수학을 좋아하고, 빙수를 좋아하고, 과일을 좋아했습니다. 그런 소진이의 꿈은 유치원 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소진이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언니, 너무나 아꼈던 동생과 이별한 채 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소진이 친구의 편지.

넌 추위를 많이 타는데 얼마나 추웠을까,겁이 많던 넌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직 해 보지 못한 것도 많고, 해 볼 것도 많고,하고 싶었던 것도 많은데……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구조하러 와주기만을 얼마나 믿고 기다렸을까,
가슴이 뭉개진다는 말 솔직히 이해 못했는데, 이제는 매우 잘 알 것 같아

 

-소진이 사촌의 편지.

‘가족이랑 네가 있어서 살아’ 네가 남겨준 그 말 귓가에 아직 생생한데, 나 혼자 어떻게 살아가지.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네 두려움 생각하면 내 안타까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뭉개져버려.
단화 신고 싶다던 네 말.
내가 슈즈 디자이너 되어 예쁜 단화 만들어 찾아갈게
나도 사는 동안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네 생각하며 당당히 이겨 나갈게.

우리 함께 한 추억 평생 잊지 않을게.

김주희 – 단원고 2학년 10반

주희는 ‘마당발’, ‘안산에서 주희를 모르면 간첩’ 소리를 들을 정도로 교우 관계가 좋았습니다. 초중고 내내 반장을 할 정도로 리더십도 남달랐습니다.

 

주희는 공부, 그림, 글짓기, 발명까지, 모두 잘하는 다재다능한 학생이었습니다.주희 어머니에게 주희는 친구 같은 딸이었습니다. 주희 어머니와 주희는 친밀했으며, 모녀는 많은 대화를 함께 나눴고 많은 시간을 같이 보냈습니다.

어머니를 사랑했던 주희는 어머니께서 걱정할까 봐 친구들이 더 놀자고 해도 일찍 집에 들어가곤 했습니다. 어머니께 대든 후 반성과 사과의 뜻을 담은 편지를 쓰곤 했습니다.

 

주희는 웃음이 많고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그런 주희의 별명은 “주름” 이었습니다.  웃을 때 입매에 주름이 생겨 그렇게 불리었습니다. 주희의 꿈은 돈을 많이 벌어서 엄마와 함께 행복하게 사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 침몰하였고 주희의 꿈도 같이 침몰하여 버렸습니다. 제주도 감귤과 초콜릿을 사오겠다는 약속도 지킬 수 없게 되었습니다.

주희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아빠 곁에 있습니다.

김슬기 – 단원고 2학년 10반

슬기는 동물을 좋아했습니다. 키우는 강아지에게 온샘이란 이름을 지어주었고, 매일 밤 온샘이와 함께 잠 들 정도로 사랑했습니다.

슬기의 꿈은 수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또한 슬기는 요리를 좋아했습니다. 자신이 만든 음식을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곤 했습니다. 슬기는 치즈스틱을 좋아했습니다. 패스트푸드점 치즈스틱을 할인하는 날에는 치즈스틱을 듬뿍 사들고 와서 먹곤 했습니다.

또한 슬기는 동생과 동생은 친구처럼 가깝게 지냈습니다. 이야기를 많이 했으며, 고민을 나누는 사이었습니다.

 

슬기는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슬기의 이모는 은 꿈에서 슬기를 자주 만납니다. 한 번은 슬기가 배에서 탈출하느라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하며 허겁지겁 밥을 먹고 가기도 했습니다. 슬기 이모는 그런 슬기의 모습이 마음 아픕니다.

 

-슬기 친구의 편지

“슬기야 잘 있어? 넌 노래도 잘 부르고 피아노도 잘 치고
귀여웠는데. 많이 보고 싶어. 기다려 곧 갈게 그때까지 나 잊지마”

김유민 – 단원고 2학년 10반

유민이는 자매 중 맏딸로 차분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습니다.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성격이었고, 마음 맞는 친구와 깊게 사귀었습니다. 유민이는 같은 반 김슬기 학생과 단짝이었습니다. 둘은 매일같이 같이 다니고 함께 놀곤 했습니다.

 

명절 때면 유민이네는 친척들과 할머니 댁에서 고기 파티를 했습니다. 고기 파티 때마다 유민이는 아빠 등 뒤에 꼭 붙어서 아빠가 먹여주는 고기를 열심히 먹었습니다.

유민이는 수학을 특히 잘 해서,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은행원이 되는 것이 장래 계획이었습니다.

유민이는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언제나 먼저 생각했습니다. 집안 형편을 생각해 돈을 아껴 썼고, 성실하게 저금 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때도 유민이는 용돈 필요 없다고, 자기가 모아 놓은 돈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걱정이 돼서 5만원을 주었습니다.

차갑게 식어 돌아온 유민이 지갑 속에는 엄마가 주신 5만원과 자기가 모은 용돈에서 가져간 만원, 이렇게 6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민이 아버님은 지금도 유민이가 남긴 그 만원을 지갑 속에 소중히 넣어 가지고 다니십니다.

 

유민이 아버지께서는 광화문에서 43일간 단식투쟁을 하며 세계에 세월호참사를 알렸고,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실을 밝히고자 목숨 건 투쟁을 하였습니다. 보수 언론과 일베의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오직 유민이와 친구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최선을 다하셨습니다.

 

-유민이 여동생의 편지.

“사랑하는 우리 이쁜 언니에게.
언니한테 편지 쓰는 거 처음인 것 같아…
언니 책상에 엄마가 글 많이 남겼더라고..
난 이제 고작 3번 왔는데… 진짜 나쁘지?
너무 미워하지 말고… 가끔 언니 생각 무지 많이 나서 혼자 울곤 해.
엄마 울 때 내가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어…
오히려 엄마 힘들게 하고…
언니 몫까지 내가 잘해야 하는데.. 가끔씩 언니가 아니라 나였으면 해…
언니가 나보다 착하고 듬직한데 왜 더 나쁘고 더 많이 놀아본 내가 아니라 언니야?
하늘이 잘못 알고 있나 봐. 그치?
언니가 더 똑똑한데… 언니도 더 놀아보고 더 많은 친구 사귀어보고 해야 하는데…
언니가 엄마 옆에서 더 힘이 되어줄 것 같은데..
내가 많이 미안해… 언니 대신 가고 싶고 그래..
이 편지 언니가 봤으면 좋겠다! 난 언니가 내 언니여서 너무 좋고~
다음에도 언니가 내 언니 했으면 좋겠어.
앞으로 자주 들릴게. 오늘은 분향소에 꽃도 놓고 왔어.
언니 좋아하는 치킨 사서 갈게!!
많이 보고 싶다.. 많이 많이 사랑해
이상하게 엄마랑 있을 땐 눈물이 잘 안 나면서 혼자 있으면 눈물 많아지더라..
다음에 또 올게! 사랑해
사랑해
2015.03.24 343일 유나가”

박정슬 – 단원고 2학년 10반

정슬이는 밝고 명랑한 성격으로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정슬이는 1학년 때 같은 반이었던 8반 친구들과 서로를 팔팔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친하게 지냈습니다.

 

정슬이는 로맨스 영화 <트와일라잇 시리즈>, <늑대소년>을  좋아하며 자신의 사진을 SNS에 올리는 것을 즐겼던 평범한 10대였습니다.

 

정슬이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엄마에게 정슬이는 친구 같은 딸이었고, 이모에게는 귀여운 조카였습니다. 조카들에게는 듬직한 언니였습니다.

정슬이는 할머니와 할아버지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 정슬이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애교를 많이 부렸습니다. 할아버지를 ‘할아버지아빠’ 라고,  ‘할머니를 ‘할머니엄마’라고 부르곤 했습니다.

 

-정슬이와 같이 연극부 활동을 하던 친구의 편지

저는 애들 마지막까지 다 보고 헬기 타고 나왔어요.
아직도 애들이 없다는 게 안 믿겨요.
애들도 보고 싶어요.
진실규명을 위해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며 가슴 아파하기도 했습니다.
티비에 자주 나오시는 걸 보았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 슬퍼요

 

-정슬이 할머니, 할아버지의 편지

착한 우리 정슬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꿈과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준 정슬아 ~!
너무 원망스럽고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분통이 터져 잠을 이룰 수가 없구나.
정슬아, 너무 너무 보고 싶다. 사랑한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안아주지도 못했는데….왜, 왜 ,왜! 이런 일이 일어났는지……날이 갈수록 더욱 분통이 터지는구나

이가영 – 단원고 2학년 10반

가영이는 막내로, 가족들의 사랑을 많이 받고 자랐습니다.

가영이는 아빠, 오빠에게 ‘엄마 껌딱지’, ‘엄마 진드기’라고  놀림 당할 정도로 엄마와 가까웠습니다. 모녀는 팔짱을 끼고 함께 걷곤 했습니다.

또, 가영이는 오빠와도 친했습니다. 둘은 이따금 싸우기도 했지만 금세 화해했습니다.

 

가영이는 아기자기한 인형을 좋아했습니다. 침대 머리맡을 동물 인형으로 장식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키우던 달팽이를 좋아했습니다. 매일 먹이를 주고 분무기로 물을 뿌리며 소중하게 달팽이를 돌보았습니다.

 

동물을 좋아하던 가영이의 꿈은 수의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가영이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한 채,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가영이  부모님은 특별법제정과 진실규명,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며 국회 농성에 참여 하셨습니다.

이경주 – 단원고 2학년 10반

경주는 춤을 좋아했습니다.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댄서가 되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친구들과 후배들은 경주를 힘들 때 생각 나는 친구, 언니 같은 친구, 밝은 친구,따뜻한 친구, 밝고 예쁜 친구, 꿈이 많은 친구로 기억합니다.

 

2014년 4월 16일 오전 10시 11분, 경주는 엄마에게  “엄마 나 경준데 지금 배가 기울었어. 구조대원 온다는데 언제 구출될지 몰라.핸드폰도 잘 안 터져.” 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오전 10시 16분, “엄마 물 올라와”라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마지막이었습니다.

경주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경주 어머니의 편지.

“잘해줄걸. 사랑한다고 많이 말할걸, 내 옆에 꼭 잡고서 놔두지 말걸, 너무 많은 아쉬움과 후회가 엄마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들고 있어.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해.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다시 엄마에게 딸로 와 달라면 와줄 거지?
우리 예쁜 공주, 경주야.엄마 힘내서, 경주 만날 때 떳떳하게 만날 수 있게 열심히 행동할게. 지켜봐 줘.
사랑한다. 내 딸 이경주”

이다혜 – 단원고 2학년 10반

다혜는 똑부러지고 야무진 성격이었습니다. 듬직하게 어린 남동생도 잘 돌보아 주었습니다.

 

다혜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했고 학교생활을 즐거워 했습니다.

다혜의 꿈은 아이들에게 좋은 경험을 많이 주는 수학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2014년 4월 15일 아침, 다혜는 간식을 잔뜩 들고 신나게 수학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리고 그날 저녁 7시쯤  엄마에게 전화해 시무룩한 목소리로 안개 때문에 배가 출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했습니다.

그  후 두 시간 뒤, 다혜는 엄마에게 또 전화를 걸어 신나는 목소리로 “배가 제주도로 출발한다”고 말했습니다.

“내일 제주도에 도착하면 전화할게” 다혜가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하지만 다혜는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하고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었습니다.

 

-다혜 어머니의 편지.

“너는 하늘나라로 떠난 뒤 엄마 꿈속에 네 차례 찾아왔어. 너는 웃으며 “엄마, 나 잘 있어” 라고 한 뒤 사라졌지.
꿈속에라도 나타나줘서 고마웠고 그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좋았어.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
우리 공주는 알까? 너를 꿈 속에서 밖에 못 본다는 현실이 억울하기만 해”

이단비 – 단원고 2학년 10반

단비는 가족들을 사랑했습니다. 네 가족이 모두 모여서 소원을 빌 때, 단비는 아빠의 건강을 빌었습니다.

“아빠, 이다음에 크면 내가 아빠랑 같이 술 마셔줄게, 특별히! 그리고 운전도 해줄게. 아빠 음주운전 하면 안되니까. 좋지?”

 

단비는 밝은 성격이었고, 웃음이 많았습니다.

단비는 SBS <심장이 뛴다> 프로그램을  좋아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면서도 배 안에서 이 프로그램을 볼 거라고 말했답니다.그리고 가수 ‘케이윌’과 ‘휘성’을 좋아했습니다.

단비의 꿈은 의료인이었습니다. 의사나 응급구조사가 되어 아픈 사람들을 살리고 싶어했습니다.

 

단비는 절친 다혜와 함께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단비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단비 옷가지를 세탁하신 단비 어머니께서는 단비의 숨결이 닿았던 옷들을 세탁한 걸 후회합니다.

이은별 – 단원고 2학년 10반

은별이 어머니는 참사 이후 몇 번이나 병원에 후송됐다 퇴원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은별이 이모님이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은별이 학생증을 목에 메달고 싸움에 나섰습니다. 그건 아픈 은별이 엄마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려서부터 이모네 언니들과 친자매처럼 같이 지낸 은별이가 딸 같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은별이는 사촌언니들과 매일 밤 만나서 산책도 다니고 이모네 집에서 피아노도 같이 치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평소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였는데도 사촌 언니들과는 속 깊은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모님이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으로 싸우실 때 경찰에게 폭행 당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또, 이번 특별법 개정과 특조위 연장을 요구하며 국회 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도 똑같은 일을 반복해 당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죽음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유가족을 폭행한 공권력과 일 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추기만 하는 정권, 우린 이런 괴물과 싸우고 있습니다.

 

은별이는
운명의 4월 16일, 제자 은별이와 친구들을 집어삼킨 그날의 기억을 아직도 증언조차 않고 있는 선생님의 교탁 바로 앞자리에 이경민과 짝꿍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은별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장수정 – 단원고 2학년 10반

수정이는 화목한 가정에서 자랐습니다.

오빠와는 뭐든 늘 함께 하곤 했고, 주말이면 엄마와 같이 장을 보며 수다를 떨곤 했습니다.

 

수정이는 요리를 좋아했습니다. 그리고 부드러운 크림이 가득한 카라멜마끼아또를 좋아했습니다. 그런 수정이의 꿈은 레스토랑을 운영하는 것이었습니다.

 

수정이는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해주 – 단원고 2학년 10반

해주는 언니가 하나 있는 두 자매의 막내입니다.

해주는 애교가 아주 많은 귀여운 막둥이였습니다. 맞벌이하는 엄마는 늦게 들어오고, 언니는 학교 기숙사에 있어 해주는 집에서 아빠와 친했습니다. 해주는 애교가 워낙 많고 붙임성이 좋아서 아빠한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였다고 합니다.

해주는 손재주가 좋아서 재봉틀을 잘 다뤘습니다. 자기 옷도 고쳐 입고, 친구들 옷도 천 원, 이천 원씩 받고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받은 돈으로 친구들과 같이 간식을 사 먹었습니다. 해주는 아빠한테 자기가 직접 만든 가방을 자랑하며 친구들이 옷 리폼해달라고 난리라며 솜씨를 뽐내기도 했습니다.
해주 방에는 해주가 실 색깔대로 곱게 정리해둔 반짇고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해주가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해주 방을 새로 꾸며줄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부터 벽지도 조금씩 뜯고 커튼도 새로 달려고 떼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해주는 빈 방만 남긴 채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참사 1년이 지나도록, 해주 방은 떠나기 전에 벽지를 뜯고 커튼을 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새로 방을 꾸며줄 해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주야 오늘은 엄마, 아빠에게 한없는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날이란다.
그 즐거운 나날들을 열일곱해를 누리다
이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었구나.
이 죄를 씻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너무나도 큰죄라…
아마 열일곱해를 열일곱배는 더 큰 고통 속에 지내야 이 마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려나…

 

해주야 엄마아빠의 죄를 용서하지 않아도 돼,
엄마,아빠는 기쁨 준 너만 행복하면 돼…
사랑해 보고 싶다~!”
2015년 3월 3일

해주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경민 – 단원고 2학년 10반

경민이는 명랑하고 발랄한 성격이었습니다. 춤 추는 것을 좋아했고 친구들과  수다 떠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똑똑하고 속이 깊은 면이 있어 친구들과 언니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늦둥이 막내였던 경민이에게는 세 조카가 있었습니다. 경민이는 조카들을 끔찍히 사랑했습니다. 특히 큰 조카는 경민이가 자주 돌봐 주었습니다. 큰조카는 참사 후 1년 여 동안 저녁마다 창문을 열어 놓고 서툰 발음으로 “갱이모 보고싶다~!.”, “갱이모 빨리 와~!”라고 창 밖으로 외쳤습니다.

 

경민이는 2014년 4월 16일, 기우는 세월호 안에서 다리를 다쳤습니다. 생존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큰 객실 안에 경민이와 친구 다섯 명이 마지막에 남았을 때에도 경민이는 울지 않았다고 합니다. 자기가 울면 다른 친구들도 울기 시작하고 그러면 모두 무서워 할 것을 걱정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누군가 울기 시작하자, 경민이도 목 놓아 통곡을 하였습니다.

 

통곡하며 어른들이 구조해주기를 간절히 바라는  모습.
그것이 경민이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러운 조카의 모습을 눈에 담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경민이는 이제 조카들을 더는 볼 수 없습니다.

 

아이돌 그룹 EXO를 좋아했던 경민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장혜원 – 단원고 2학년 10반

☆ 네가 수학여행 갔다가 좀 늦게 다시 돌아왔을 때
널 사진으로 밖에 못 보는 게 너무 믿기지도 않고 슬프고…
사진 속 네가 너무 예뻐서 보는 게 힘들어서….
너의 마지막을 오랫동안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긴 목에 또렷한 이목구비를 지닌 혜원이는 고등학교 1학년 때 윤리적 리더 육성프로그램에 발탁되었습니다. 윤리적 리더 육성 프로그램은 경기평생교육진흥원과 가톨릭대학교가 함께 운영하는 청소년 창조인재 육성사업입니다. 경기도 전체에서 선발된 인원 중, 단원고에서는 같은 반 구보현 과 1반 박성빈 학생까지 총 세 명이었습니다. 1학년 때 함께 가톨릭대학교 캠프를 수료했지만, 혜원이도 보현이도 성빈이도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초코라떼를 맛있게 먹었는데, 딱 한입 마시고 둘 다 우와~ 이 표정이었는데 아직도 믿기지 않아. 다 거짓말 같고 전화하면 받을 것 같아. 왜 하필 너희들일까. 왜 이런 생각도 그 배가 너무나 원망스러워. 착한 너희들이 뭘 잘 못했다고… 네가 나한테 물어보던 질문들..
제주도 날씨는 어때?
옷은 뭐 입을까?
맛있는 거 많아? 이 내용을 칠 때 네가 얼마나 기대를 많이 했을지 너 표정이 상상 되더라..정말 좋아했잖아.
배 타고 간다고,
밤에 불꽃놀이도 한다고,
기대된다고 빨리 가고 싶다고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했잖아….
그날 아침에 왜 문자 보냈을까 전화라도 해볼걸 버튼만 누르면 되는 건데…
혜원아,
너무 보고 싶고 나랑 친구 해줘서 고맙고 우리 평생친구 우정하자~ 사랑해.”

혜원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