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강한솔 – 단원고 2학년 10반

한솔이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 이였습니다.
처음 의사가 되고 싶긴하지만 그럴 자신이 없다며 대신 간호사가 되겠다고 했다합니다
한솔이는 10반 출입문 바로앞에 짝꿍 김민정과 함께 자리하고 있습니다

 

한솔이 친구들도,
한솔이 어머님도 가장 큰 소원은 한솔이가 꿈에라도 한 번 나타나 주는 것입니다 .
한솔이 어머님은 49재때 한솔이 옷을 태웠지안 한솔이가 금방이라도 나타날 것만 같아 교복만은 태우지 못하셨다고 합니다.
한솔이의 방도 그대로 있습니다.
방안에서는 한솔이가 기르던 *라올*이라는 고양이만이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한솔이는 세월호 참사 6일만인 4월21일에 엄마의 품에 돌아와 지금은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구보현 – 단원고 2학년 10반

“구보씨”, “뽀”로 불리우던
보현이는
오빠가 하나 있는 두남매의 막내딸 입니다.
“엄마랑 똑 같은 딸” 보현이는 손재주가 좋아서 집안 꾸미기를 좋아했습니다.

 

보현이의 꿈은 인테리어 디자이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공부도 잘해서 학교장학금을 받았고 기타도 드럼도 잘치고 비즈공예도 배우고 춤추는 것도 좋아했던 재주꾼이었습니다.

 

막내딸에 여섯 삼촌이 있는 집안의 귀염둥이 보현이,
아빠등에 매달려 코알라 놀이 나무늘보 놀이 등을 좋아 했고, 삼촌이 많아서 용돈을 많이 받는다고 좋아라했던 보현이였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좋아라 했던 엄마와는
늘 커플로 하는 걸 좋아했습니다.
커플 우산, 커플 목도리, 커플 가방등….
엄마랑 갖고 다니던 커플 우산은 보현이가 수학 여행 갈때 가지고 떠났던 캐리어 속에서 녹이슨채로 돌아왔습니다.
보현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권지혜 – 단원고 2학년 10반

지혜는
위로 언니가 있는 자매중에 막내입니다.
신앙심 깊은 가정에서 구김살 없이 밝고 건강하게 자랐습니다.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을 잊지 않고 케잌과 선물을 준비했던 아이,
잠자기전 불을 끄고 엄마와 함께 누워 친구이야기 학교이야기등 수다를 떨다가 엄마가 잠이 드는 것을 보고 슬며시 자기방으로 건너가는 아이,
얼마 안되는 용돈을 모아 엄마에게 양산과 화장품을 선물할 정도로 엄마를 끔직이도 생각했던 아이,
성당에서 피아노 반주를 했고 춤과 노래등 못하는게 없었던 아이,
소녀시대의 춤을 언니에게 배워 친구들에게 가르켜 주고 친구들을 배려하고 사랑하는 지혜였습니다.
성격도 밝아 주위 사람들에게 늘 웃음을 주고 공부도 전교에서 손 꼽힐 정도로 잘했던 지혜였습니다.

 

지혜의 장래 희망은
치과의사가 되는 것이였습니다.
이처럼 하루하루 즐겁게 살아가던 지혜가 18살이 되었습니다.
어느 봄날 지혜는 수학여행을 가기위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집을 나섰습니다.
“엄마, 나 보고 싶다고 울면 안돼, 내가 제주도에 가서 날마다 사진찍어 보내줄테니까 그거 보면서 웃어. 알았지?”
“알았어. 우리딸 잘 다녀와”
“내일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니까 내가 제주도에 도착해서 꼭 전화할거야. 그러니까 내 전화 기다려”
엄마를 향해 손을 흔드는 지혜의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습니다.

 

[불러도 대답없는 지혜야. 하루에도 몇 번을 부르고 불러도 지겹지 않은예쁜 우리 지혜가 다시 돌아올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여행떠나는 날 매일매일 있었던 일들 찍어서 보내준다 던 약속, 보고 싶어도 아빠랑, 언니, 루비랑 조금만 기다리라던 약속
,지금이라도 지켜줄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엄마이정숙 님-]

 

[4월16일 엄마와 아빠의 결혼기념일, 제주도 도착하면 전화주겠다던 그 약속 잊어버린건 아니지?
엄마 아빠의 희망, 미소천사, 우리 이쁜이 아직도 그모습이 눈앞에 생생하구나.
보고 싶다.
무능한 아빠 만나서 이렇게 된 것 같아 너무 가슴이 아프고 정말로 미안 하구나.
용서해 줄수 있지? -아빠-]

 

[요즘에 항상 느끼고 있는 건데 있을때의 소중함을 언니가 잘 느끼지 못한 것 같아.
언니는 아직도 너랑 못 해본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아주 많은데…
우리 나중에 만나서 꼭 다해보자.
그러니까 언니 만날 때까지 아프지 말고 잘지내고 있어야해. 사랑한다 내동생♥
– 언니-]

 

친구들에게는 아기같은 친구, 매력적인 친구, 미소 천사, 만능 엔터테인먼트, 애인같은, 선물같은 존재였던 지혜는 사고6일째인 4월21일에 엄마품에 돌아와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김다영 – 단원고 2학년 10반

3.15kg 으로 건강하게 터어난 다영이를 엄마도 “내 다영” 아빠도 “내 다영”이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이쁜 딸을 당신들은 만나 봤소?”
딸이 있는 지인들한테도 다영 아빠는 질문 아닌 질문을 할 정도로 다영이를 사랑했습니다.

 

다영이도
아빠 옷 입는 것을 좋아해서 평소 친구들을 만날때나 동네를 다닐 때는 아빠의 줄무늬 셔츠를 즐겨입곤 했습니다.

 

다영이는
위로 두명의 오빠가 있는 삼남매중의 막내입니다.
다영이는 군대간 큰오빠와 대학생인 둘째오빠의 손톱을 깍아주고.귀지까지 파주던 막내 여동생이였습니다.
큰오빠는 군대에서 받은 월급을 아껴 다영이의 옷과 신발을 사줄 정도로 막내 다영이를 아꼈다합니다.
또 다영이는 아빠가 늙어 보인다고 직접 염색을 해주기도 하였고 엄마에게 카드를 달래서 아빠 옷까지 사주기도 하였답니다.
이처럼 다영이는 엄마 아빠의 사랑을 독치지한 막내딸이고 오빠들의 영원한 “귀욤이” 였습니다.

 

“해야 함은 할 수 있음을 함축한다!

 

다영이가 생의 모토를 식탁 위 메모꽂이 밑에 꼿아두고 늘 다짐했던 글 입니다.

 

다영이는 공부도 잘했습니다.
초등학교 때에는 전교회장을 했고, 중학교 때도 과학 영재반에 들어갔습니다.
단원고에서도 줄곧 상위권이였구요.

 

다영이의 꿈은
성균관대 의과대학에 진학하여 소아과 의사가 되어 아픈 사람을 치료해주는 의사가 되는 것 이였습니다.
이처럼 사랑스런 막내딸 다영이는 엄마 아빠에게는 자부심 그 자체였고 세상의 중심이였던 것이였습니다.

 

당당하고 남을 배려할 줄 알면서도 똑똑했던 다영이는 아빠의 사업이 부도난 후에는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가족들을 보살피기까지 하였다합니다.
때론 또래 아이들처럼 아이돌그룹을 좋아했고 특히 “샤이니”의 열성 팬이였다합니다.
밝은 성격답게 텔레비젼에서 노래가 나오면 늘 따라서 춤을 추기도했다합니다.
샤이니의 종현이를 좋아했으며 사고후 종현이 또한 트위터를 통해 ” 다영아 함께가자” 라는 문구와 함께 노란리본 사진을 올려놓기도 한 일화가 있습니다.
지금도 다영이의 책상위에는 샤이니의 사진이 올려져 있습니다.

 

딸바보 아빠.
다영이 아버지 김현동님은 4월 15일밤 9시까지 다영이와 카톡을 주고 받았습니다.
배를 타고 여행가는 것이 너무 좋아서 들떠 있었고 9시에 드디어 출항한다고 사진을 찍어 아빠에게 보냈습니다.
그것이 다영이가 보낸 마지막 사진이였습니다.

 

의사의 꿈, 귀욤이 막내딸, 아빠의 분신을 태운 세월호는 4월16일 진도앞바다에 침몰하였고 다영이와 짝꿍 권지혜 포함 304명이 희생되었습니다.
4월 22일 가족의 품에 돌아온 다영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정 – 단원고 2학년 10반

“처음 꿈에서는 “엄마, 나 살아왔어”라며 우는 목소리만 들렸지. 두번째는 민정이가 멀리서 말없이 엄마만 바라봐주더라.
어제 세번째는 우리딸의 얼굴이라도 만져볼 수 있어서 엄마는 얼마나 좋았는지 모른단다.
우리 딸의 따뜻한 체온을 느꼈을 때 정말 네가 살아있다는 걸 믿을 수도 있을 것 만 같았단다.”

 

 

먼저
민정이 책상위에는 민정이 이름으로 아프리카 오지의 아이에게 지금도 후원하고 있는 사진이 놓여져 있습니다.
부모님은 민정이를 키우는 마음으로 이 아이를 후원하고 지원하고 계시는겁니다.

 

민정이는
언니가 하나 있는 두 자매의 막내입니다.
집에서는 엄마 아빠를 항상 껴안아 드리던 애교쟁이 귀염둥이 막내딸이었습니다. 조금 엉뚱한 면도 있어서 언니한테 ‘4차원’이라고 놀림 받기도 했습니다.
민정이는 피아노를 잘 쳤고, 학교에서 공부도 잘 하고 친구들하고 잘 지내는 활달한 아이였습니다.
민정이는 엄마 아빠 생신에는 언니랑 둘이서 직접 케이크를 만들어 드렸습니다.
주말에 엄마가 출근하시면 도시락을 싸 드리기도 했습니다. 민정이 꿈은 약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엄마한테 “나중에 내가 약국 차리면 같이 가게 봐 달라”고 늘 말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던 4월 15일은 엄마 아빠 결혼기념일이었습니다. 다음날 참사 소식을 듣고 가족 모두 애타게 전화했지만 민정이는 전화를 받지 못했습니다.
민정이는 참사 일주일 만에 가족들 품으로 돌아와서 지금은 친구들과 함께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송희 – 단원고 2학년 10반

송희의 꿈은
엄마를 도와 집안을 일으키는 것 이었습니다.

 

“엄마랑 행복하게 살거야. 결혼도 하지 않고 둘이서만 살거야”
“자격증을 따면 좋은데 취직시켜 줄 수 있냐”고 묻던 송희가 워드. 한글파워포인트. 멀티미디어제작. 정보통신상식. 인터넷정보검색. 프리젠테이션.스프레드시트.등 컴퓨터 쪽으로 딸 수 있는 국가공인 정보통신 자격증을 싹쓸이하자
“너 그렇게 돈 벌어서 뭐할 건데?”하고 묻는 외삼촌께 송희가 답한 말입니다.

 

송희는 여동생이 있는 자매중에 맏이입니다.
송희는 외가식구들에게 귀염을 받았습니다.
외가쪽 첫 손녀였고 첫 조카 였지만 어린 송희는 인형처럼 예뻤고 사람을 잘 따랐습니다.
그러나 초등학교 저학년때 제주도로 이사를 갔던 송희네는 초등학교 6학년때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제주도에서 아빠를 피해 몰래 뭍으로 빠져나와 안산에서 생활했습니다.

 

송희는 엄마에게 친구같은 딸이었습니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송희는 웃고 울고 보채는 또래들과 달리 감정의 완충장치를 갖게 되었습니다.
용돈을 줘도 싫다며 스스로 식당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벌어 쓰고 집에서 단원고까지 40여분의 거리를 버스비를 아끼기위해 걸어 다녔을 정도였던 송희였습니다.
반항도 말썽을 부린 적도 없는 송희는 타인에게는 배려심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사춘기도 몰랐던 송희의 유일한 일탈은 화장을 하고 친구들과 스티커 사진을 찍으며 빨리 어른이 되어 돈을 버는 것이었습니다.

 

제주도로 수학여행이 정해지자 송희는 제주도의 아픈 기억들이 떠올라 수학여행을 가지 않을 생각이었습니다. 장염이 심해져서 여행을 갈 수 있는 상황도 아니었지만 결국 4월 15일 세월호에 몸을 실었습니다.
그리고
5월 6일에서야 돌아왔습니다.

 

다음의 송희이야기는 송희 외삼촌이 들려줍니다.

 

“저도 그래요. 저만 봤어요.
송희가 항상하던 목걸이가 아니였으면 아마 알아보지 못했을 거예요.
그런데 송희가 115사이즈가 넘는 점퍼와 이상한 꽃무늬 긴 바지를 입고 나왔어요. 그게 무슨 뜻인지 아세요?
안에서 살아 있었다는 거예요.
추우니까 아무거나 꺼내서 입고 있었던 거예요.”

 

속깊고 엄마에게 효도하겠다던 아이 송희…

 

” 송희가 아버지 없이 자랐거든요.
게다가 엄마는 근무기력증이라는 불치병으로 고생하고 있어요. 그래도 예쁘게 커서 나중에 모델시키고 싶었거든요. 그런데 송희는 고생하는 엄마한테 항상 미안해서 돈을 많이 벌거라고 했었어요.
송희가요,

 

할아버지, 할머니, 삼촌들이 수학여행간다고 보내준 몇 십만원중에서 겨우 4만원 들고 간 아이에요.
짧아진 교복 사달라는 말을 못해서 그 돈으로 교복사겠다고….”

 

송희는 1분단 맨 뒷자리 창가에 이단비와 함께 짝꿍입니다.
교실칠판에 삼촌의 애절한 글귀가 눈에 들어옵니다.

 

“송희야 지켜주지 못해 미안하다.
삼촌이 얼마나 널 그리워하고 사랑 하는지 알지?
사랑한다.
삼촌을 용서해 다오”

 

하지만 이 글귀는 지난 학교재적사태전 누군가에 의해 지워졌습니다.

 

글짓기와 시에도 소질있었던 송희의 시를 옮겨드립니다.

 

우리 집 원더우먼
시 김송희

 

화려한 옷을 입은 원더우먼
허리띠를 조르는 우리 집 원더우먼
허리띠를 조르고 조르고
한 푼 모아 내 옷 한 벌 사 주는 우리 집 원더우먼
푸석푸석한 얼굴 구멍 뚫린 옷
괜찮다고 필요한 거 없냐고 물어보는 우리 집 윈더우먼

 

영화 속에선 악당을 물리치는 원더우먼
어렸을적 나를 괴롭히는 악당을 물리치는 우리 집 원더우먼
세계를 지키는 원더우먼이 아닌
가족을 지키는 든든한 원더우먼
영웅이 아니 우리 엄마.

 

10반은 단 한명의 아이와 담임선생님만이 살아 돌아왔습니다.
송희는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김슬기 – 단원고 2학년 10반

“슬기야 잘있어?
지나가다 너희 어머니 만나면 어떻게 인사하지?.내가 인사하면 아시려나?
어머니가 맞나?
이생각도 하고있어
넌 노래도 잘부르고 피아노도 잘치고
귀여웠는데 많이 보고 싶어.
기디렴 곧 갈게 그때까지 나 잊지마”

 

2.24kg 태어나 인큐베이터에서 세상을 본 슬기.
슬기는 남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맏이입니다.
머리에 커다란 리본이 잘어울리는 슬기,

 

슬기는 동물을 좋아하던 마음씨 따뜻한 아이였습니다.
슬기가 중학생때 아버지가 시골에서 강아지 네마리를 얻어왔고 그중에 슬기가 간청해 한마리를 집에서 키우기로 했습니다.
슬기는 강아지에게 ‘온샘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고 매일밤 온샘이와 잠이들 정도로 동물을 사랑했습니다.

 

슬기의 꿈도 수의사가 되는것이였구요.
그렇지만 주사바늘이 무서워서 진로를 고민하는 귀여운 열일곱살 소녀였습니다.
슬기는 요리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미역국, 과자, 초콜릿 등을 만들어서 친구들에게 먹으라고 가져다 주기도 하였고 또 한 살어린 남동생과는 어릴적엔 자주 싸웠지만 크면서는 친구처럼 친하게 지냈다합니다.
동생의 고민도 잘들어주는 착한 누나였습니다.

 

153cm. 48kg.키와 몸무게로도 다이어트를 한다고 (물론 작심삼일 이었지만) 하였지만 페스트푸드점 치즈스틱 할인하는 날을
달력에 적어 놓았다가 달려가 산처럼 쌓아 놓고 먹는 적이 있을 정도로 그또레 소녀이기도 했습니다.
수학. 요리. 동물을 좋아했던 슬기…

 

슬기는 이모님의 꿈에 자주다녀간다고 합니다. 최근에는 배에서 탈출했다며 밥을 제대로 못 먹었다고 허겁지겹 밥을 먹고가기도 했다며 마음 아파하십니다.

 

슬기는 4월 26일 가족의 품에 돌아와 지금은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유민 – 단원고 2학년 10반

유민이는
여동생이 하나 있는 자매 중 맏딸입니다.
활달하고 명랑한 동생에 비해서 유민이는 차분하고 속이 깊은 아이였습니다.
내성적이고 겁이 많은 성격이었고, 마음 맞는 친구와 깊게 사귀었습니다.
유민이는 특히 같은 반 김슬기 학생과 단짝이라서, 학교에 갈 때도 같이 가고,
학교 끝나고 집에 와서도 저녁까지 같이 놀곤 했습니다.

 

유민이는 치킨하고 고기를 좋아했습니다.
명절 때면 유민이네는 친척들이 다 모여서 할머니댁에서 고기 파티를 했습니다.
그럴 때면 아버지가 고기를 구워 주시고 유민이는 아빠 등뒤에 꼭 붙어서 아빠가 등 뒤로 넘겨서 먹여주는 고기를 열심히 먹었습니다.
친척들은 유민이가 아빠하고 사이가 좋아서 다들 부러워하셨다고 합니다.
평소의 내성적인 성격과는 다르게 아빠와 친척들 앞에서는 애교도 부리는 귀염둥이 딸이었습니다.

 

유민이는 공부를 아주 잘 했지만, 대학 등록금이 걱정돼서 진학보다는 빨리 취직을 해서 돈을 벌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다가 고등학교 1학년 여름에, 유민이 아버지가 직장에서 정규직 전환되셔서 대학 등록금 걱정을 안 하게 되었습니다.
유민이는 그제야 대학에 가고 싶다고, 가고 싶었다며 속을 털어놓았습니다.
유민이는 수학을 특히 잘 해서, 대학에서 수학을 공부하고 은행원이 되는 것이 장래 계획이었습니다.

 

유민이는 힘들게 일하시는 부모님을 언제나 먼저 생각했습니다.
아빠가 옷 사주려고 데리고 나가시면 유민이는 할인 판매하는 가판대에서 제일 저렴한 티셔츠를 딱 한 장만 골라올 정도로 알뜰했습니다.
세뱃돈이나 용돈도 모두 저금했습니다. 수학여행을 갈 때도 유민이는 용돈 필요 없다고, 자기가 모아 놓은 돈이면 충분하다고 했습니다.
엄마는 그래도 걱정이 돼서 5만원을 주셨습니다.

 

유민이는 참사 8일 만에 부모님 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유민이 지갑 속에는 엄마가 주신 5만원과 자기가 모은 용돈에서 가져간 만원, 이렇게 6만원이 들어 있었습니다.
유민이 아버님은 지금도 유민이가 남긴 그 만원을 지갑 속에 소중히 넣어 가지고 다니신다고 합니다.

 

유민이 아빠 김영오.
그토록 사랑하는 큰 딸을 잃고 광화문에서 43일간 단식투쟁을 하며 세계에 세월호참사를 알렸고
특별법을 제정하여 진실을 밝히고자 목숨 건 투쟁을 하였습니다.
보수 언론과 일베들의 숱한 음해와 공격으로 만신창이가 되었어도 오직 유민이와 친구들의 억울함을 풀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단식으로 회복되지 않는 몸으로 광화문에서 겨울 풍찬 노숙과 연대를 위해 전국의 투쟁현장을 누비고 계십니다.
아래 편지글 “언니가 아니라 나였으면 해” 라는 동생 유나의 글을 읽고 꿈속에서도 울었다는 “못난아빠”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이쁜 언니에게.
언니한테 편지 쓰는 거 처음인 것 같아…
언니 책상에 엄마가 글 많이 남겼더라고..
난 이제 고작 3번 왔는데… 진짜 나쁘지?
너무 미워하지 말고… 가끔 언니 생각 무지 많이 나서 혼자 울곤 해.
엄마 울 때 내가 힘이 되어주고 싶은데 그러지도 못하고 있어…
오히려 엄마 힘들게 하고…
언니 몫까지 내가 잘해야 하는데.. 가끔씩 언니가 아니라 나였으면 해…
언니가 나보다 착하고 듬직한데 왜 더 나쁘고 더 많이 놀아본 내가 아니라 언니야?
하늘이 잘못 알고 있나봐. 그치?
언니가 더 똑똑한데… 언니도 더 놀아보고 더 많은 친구 사귀어보고 해야 하는데…
언니가 엄마 옆에서 더 힘이 되어줄 것 같은데..
내가 많이 미안해… 언니 대신 가고 싶고 그래..
이 편지 언니가 봤으면 좋겠다! 난 언니가 내 언니여서 너무 좋고~
다음에도 언니가 내 언니 했으면 좋겠어.
앞으로 자주 들릴게. 오늘은 분향소에 꽃도 놓고 왔어.
언니 좋아하는 치킨 사서 갈게!!
많이 보고 싶다.. 많이 많이 사랑해
이상하게 엄마랑 있을 땐 눈물이 잘 안나면서 혼자 있으면 눈물 많아지더라..
다음에 또 올게! 사랑해
사랑해
2015.03.24 343일 유나가”

 

학교동아리 활동으로 볼링부에서 활동했던 유민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김주희 – 단원고 2학년 10반

주희는
꿈이, 마마걸, 마당발로 불리운 아이입니다.
엄마의 딸이자 친구, 엄마의 모든 것이었던 외동딸이었기에 엄마는 주희를 ‘꿈이’라고 불렀답니다.
친구들이 놀러가자 해도 항상 엄마에게 이야기 하고 늦으면 엄마가 걱정 할까봐 저녁 7시 이전에 집에 들어오던 아이에게 친구들은 ‘마마걸’이라는 별칭도 지어줬습니다.

 

학교에서는
‘마당발’ “안산에서 주희를 모르면 간첩”소리를 들을 정도로 교우관계가 좋았고 초중고시절 계속해서 반장을 할 정도로 추진력과 친구들을 향한 배려심도 남달랐던 주희였습니다.
또한 공부도 잘하며, 그림, 글짓기등에 다재다능 하기도 했으며, 태양광 자동차를 만들어 과학경진대회에 나가기도 했을 정도로 팔방미인 주희였습니다.

 

주희의 꿈은
“돈 많이 벌어서 엄마와 함께 평생 같이 사는 것”이였습니다.
이런 소박한 주희의 꿈을 태우고 제주도로 향하던 세월호는 2014년 4월 16일 진도 앞바다에 침몰하였고 주희의 꿈도 같이 침몰하여 버렸습니다.
친구들에게 제주도 감귤과 초콜릿을 사오겠다던 약속도 지킬수 없게 되었습니다.

 

“엄마에게 잘못했고 미안하다”
엄마는 오래전 주희랑 다퉜을 때 주희가 써놓은 메모를 주희방에서 발견했답니다.
주희와 친구들이 왜 죽었는지 진실을 밝히기위해 주희의 마지막 모습이 담긴 사진 또한 공개하기도 하였습니다.

 

주희의 별명은 “주름”입니다.
웃으면 입술끝에 주름이 생겨 그렇게 불리웠습니다.
주름이 생길 정도로 잘 웃고 덧니가 활짝보여 지켜보는 사람도 함께 웃고 싶게 만드는 주희였지만 그 미소속에는 초등학교 4학년때 자신을 끔찍히 사랑해주시던
아빠가 교통사고로 돌아가신 아픔이 숨겨있었던 사실은 주희의 장례식장에서야 밝혀졌습니다.
주변 누구에게도 사랑하는 아빠의 부재를 얘기하지 않고 늘 웃으며 엄마의 모든 것이었던 주희는 지금 하늘나라에서 사랑하는 아빠곁에 있습니다.

박정슬 – 단원고 2학년 10반

맑은 눈을 가진 아이라는 뜻의 이름으로 “정슬”이라는 이쁜 이름을 할아버지께서 지어주셨지요.
*정스리~정수리~메기*로 불리는
정슬이는 밝고 명랑한 성격탓에 주변에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팔팔이*
일학년때 일년동안 우정을 쌓았던 팔반급우들이였던 친구들이 2학년때에도 우정을 나누며 친한 친구들끼리 서로를 부르던 애칭입니다.
희생된 아이들은 1학년 일년동안 깊은 우정을 쌓았고 2학년에 오르며 문과, 이과로 배정이 바뀌며 한달반의 우정을 쌓다가 희생되었습니다.
*팔팔이* *금구모* 등이
1학년의 우정을 2학년까지 가져갔던 모임이였습니다.
정슬이는 학교에서 연극동아리에서 활동했습니다.
김빛나라 오경미 김시연 김도언 박정슬등이 연극부에서 희생된 아이들입니다.
“트와일라잇” 시리즈나 “늑대소년”등의 로맨틱한 영화를 좋아하고 귀여운 외모를 셀카에 담아 sns등에 올리는 것이 취미였던 평범한 10대소녀였습니다.

 

집에서는
할아버지 할머니의 꿈과 희망이였고,행복을 가져다 주었던 행복전도사였으며 엄마와 이모님에게는 친구같은 딸이자 귀엽고 예쁜 조카였습니다.
정슬이는 어릴때부터 바쁜 엄마를 대신해 할머니와 할아버지가 키웠습니다.
정슬이도 “할아버지아빠, 할머니엄마”로 할아버지와 할머니를 부르곤 했답니다.
늘 정슬이 편이 되어주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받고 자란 소녀였지요.
이모의 어린 조카들을 사랑하고 귀여워해주는 듬직한 언니이기도 했습니다.

 

*저는 애들 마지막까지 다보고 헬기타고 나왔어요.
아직도 애들이 없다는게 안믿겨요.
애들도 보고싶어요.
진실규명을 위해 봉사하시는 모습을 보며 가슴아파하기도 했습니다.
티비에 자주나오시는 걸 보았습니다.
너무 무리하지 마세요…슬퍼요 *

 

같은 연극부였다가 생존한 학생이 특별법을위해 투쟁하시는 희생학생어머니들을 위해 쓴 편지글의 일부입니다.
10반 2분단,
맨뒷자리 짝꿍 이경주와 함께 자리한 정슬이 자리에는 친구들과 후배들의 그리움의 글들과 마지막까지 아름다운 우정을 나눴던 남자친구와의 슬픈 인연등이 남겨져 있습니다.
우린 이 아이들을 지켜주지 못한 어른들입니다.

 

☆착한 우리 정슬이 할아버지 할머니의 꿈과 희망과 행복을 가져다준 정슬아 ~!
너무 원망스럽고 왜 이런일이 일어났는지 아직도 분통이 터져 잠을 이룰수가 없구나.
정슬아
너무너무 보고싶다
사랑한다 제대로 말도 못하고 안아주지도 못했는데….
왜~ 왜 ~왜 ~!!
이런일이 일어났는지
날이갈수록 더욱 분통이 터지는구나☆

 

정슬이의 생일인 오늘은 할아버지의 생신이기도 합니다.
더욱더 힘이 드실 오늘 입니다.
지금도 정슬이 할머니와 할아버지는 정슬이와 친구들을 위해 피켓을 들으시고 부모님들과 함께 투쟁을 하시고 계십니다.

 

정슬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친구들과 잠들어있습니다.

이가영 – 단원고 2학년 10반

이가영.
가영이는 네살위 오빠가 있는 남매중에 막내입니다.
어릴때부터 오빠를 잘 따랐고 오빠 또한 가영이의 든든하고 자상한 오빠로 알뜰살뜰 잘 보살펴 주었다고 합니다.
아빠와 오빠가
” 엄마의 껌딱지. 엄마의 진드기”로 놀릴 정도로 엄마를 좋아했고 고등학생이 되어서도 엄마가 옆에 있으면 어김없이 팔짱을 끼었답니다.

 

가영이의 꿈은
수의사가 되는것이였습니다.
가영이는 아기 자기한 인형들을 모아 창가와 침대 머리맡을 장식하는 평범한 열 일곱살 소녀였습니다.

 

그리고
달팽이를 키우는 취미가 있어서 플라스틱 통안에 흙을 깔고 분무기로 물을 주면서 자기손으로 달팽이를 두마리나 키웠습니다.
3년동안 가영이는 단 하룻밤도 달이와 팽이와 떨어져 지낸 적이 없었다고 합니다.
이때부터 가영이는 수의사의 꿈을 키웠다고합니다.

 

집에서는
가영이는 오빠하고 자주 토닥 거리면서 싸우곤 했지만 오빠가 군복무를 하게 되자 오빠가 제대해서 집에 돌아올 날을 손꼽아 기다렸다고 합니다.

 

세월호 참사로 가영이를 잃고 부모님은 특별법제정과 진실규명,
책임자처벌을 요구하며 국회 농성에 참여 하셨을때 가영이 오빠는 이”나쁜나라”의 부름을 받고 의경으로 복무하고 있었습니다.

 

10반은 단 한명의 생존자만이 돌아왔고 선생님은 생존하셨습니다.
가영이 짝꿍은 김유민 입니다.
가영이는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경민 – 단원고 2학년 10반

경민이는 3자매의 막내입니다.
큰언니와는 띠동갑, 12살 차이가 날 정도로 늦둥이 귀염둥이였죠,
집안에서는 리더십있고, 똑똑하고, 고민도 서로나누는 자매였으며, 때론 삶의 방향도 재시해주는 어른같은 믿음직한 동생이였다고 합니다.
언니들과 나이 차이가 많다보니 경민이네 큰언니와 둘째언니 모두 결혼을 하여 조카가 셋입니다.
세조카중에서도 이제 다섯살 된 큰조카는 경민이가 학교 끝나고 돌아오면 계속 돌봐쥐서 거의 경민이가 키우다시피 했다고 하네요.
큰 조카는 경민이 이모를 제대로 발음하지 못해서 “갱이모”라고 불렀답니다.
큰조카는 경민이가 학교에서 끝나면 돌봐주러 오던 것을 기억하며
참사후 1년여 동안 저녁마다 창문을 열어놓고.
“갱이모 보고싶다~!.”
“갱이모 빨리와~!”….
라며 창밖으로 외쳤디고 합니다.

 

“굥민”이는 학교에선
춤도 잘추고 수다떨기를 좋아하고
친구들의 고민상담을 잘들어 주는 친구였습니다.
10반 2분단 맨앞자리가 경민이 자리입니다.
선생님과 바로 앞에서 눈 마주쳤을 경민이와 친구들은
아직도 그날,
제자들의 마지막 일들을 증언하기를 거부하고 있는 생존해 오신 담임선생님의 싸늘한 외면을 받고 있습니다.

 

엄마의 꿈에도
아픈 모습으로만 나타나는 경민이는 2014년 4월16일 기우는 세월호 안에서 다리를 다쳤습니다.
생존 친구의 증언에 따르면 큰 객실안에 경민이와 친구 다섯명이 마지막에 남았을때에도 경민이는 울지 않았습니다.
자기가 울면 다른 친구들도 울기 시작하고 그러면 모두 무서워 할태니까요.
그러나 누군가 울기 시작했고,
그러자 경민이도 목놓아 통곡을 하였다합니다.
이 친구들과 단원고 아이들은 마지막까지 구조대가 오기만을
얼마나 간절히 바라고 있었을까요,
그것이
경민이 생전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통곡하며 어른들이 구조해주기를 바라는 간절한 기다림의 모습…
그러나….

 

끝내 “가만히 기다리라”며 방송하던 짐승들은 쥐새끼처럼 빠져나갔고
구조대는 오지않았습니다.
경민이와 친구들 250명, 선생님과 일반인까지 포함하면 304명의 영혼들은 그렇게 사라졌습니다.

 

끔찍히 조카들을 사랑했던 경민이….
경민이의 셋째 조카는 경민이가 수학여행을 떠나기 몇일전에 태어났습니다.
귀엽고 사랑스런 조카의 모습을 눈에 담고 수학여행을 떠났던 경민이는 이제 갓 돌이 지난 조카의 모습을 더이상 볼 수 없습니다.

 

“갱갱이” “굥민”아이돌그룹”EXO”를 좋아했던 경민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경주 – 단원고 2학년 10반

“잘해줄걸. 사랑한다고 많이 말할걸, 내 옆에 꼭 잡고서 놔두지 말걸, 너무 많은 아쉬움과 후회가 엄마 자신을 용서할 수 없게 만들고 있어.
미안해. 너무너무 미안해.
사랑해. 너무너무 사랑해.
다시 엄마에게 딸로 와달라면 와줄 거지?
우리 예쁜 공주, 경주야.엄마 힘내서, 경주 만날 때 떳떳하게 만날 수 있게 열심히 행동할게. 지켜봐줘.
사랑한다. 내 딸 이경주”

 

경주는 춤추는 것을 좋아 했습니다.
1학년 때부터 댄스 동아리에서 활동했으며 유명 가수의 댄스팀에서 댄서로 활동하고 싶어 했습니다.

 

엄마와는 좀 티격태격하며 자랐습니다.
예능에 관심과 재능이 많아 공부는 뒷전이었기 때문이였습니다.
하지만 주관이 뚜렸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후배들을 잘 챙겨주는 착한 아이였습니다. 지난해 안산 ‘이웃’치유센타에서 열린 경주의 생일잔치에서 친구들과 후배들이 말하는 경주에 대한 한 줄 평들을 모아봤습니다.

 

1:힘들때 생각나는친구,
2:진짜친구를 만났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생각이 들었던 친구.
3:언니같은 친구.
4:밝은 친구.
5:와동에서 제일 예쁜 친구.
6:후회가 남는 친구
7:미안한 친구
8:따뜻한 친구.
9:꿈이 통하는 친구
10;전화하면 바로 나올 것 같은 친구등
경주는 웃는 모습이 예쁘고 친구들을 배려할줄 알고, 챙겨줄 줄 아는 친구였습니다.

 

2014년 4월16일
오전10시 11분
“엄마 나 경준데 지금 배가 기울였어. 구조대원 온다는데 언제 구출될지 몰라.핸드폰도 잘 안터져.”
오전10시 14분
“알았어.너무 겁 먹지 말고 선생님 인솔에 잘 따르고 구조되는 데로 엄마한테 꼭 연락하고”.
오전10시16분
“엄마 물 올라와”

 

하지만,
경주는 마지막 문자를 친구 장주이의 휴대폰으로 문자를 보낸후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경주는 7일이 지난 4월 23일에야 부모님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그날은 엄마, 아빠의 결혼기념일 하루 전 날 이였습니다.

 

경주의 장례를 치르고 한참후,
자신의 생일을 앞두고 사고후 150일 지나서야 경주의 여행가방은 엄마곁으로 돌아왔습니다.
경주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다혜 – 단원고 2학년 10반

“너는 하늘나라로 떠난 뒤 엄마 꿈속에 네 차례 찾아왔어. 너는 웃으며 “엄마, 나 잘 있어” 라고 한 뒤 사라졌지.
꿈속에라도 나타나줘서 고마웠고 그렇게라도 볼 수 있어서 좋았어. 꿈에서 깨어나고 싶지 않은 엄마의 마음.
우리 공주는 알까? 너를 꿈속에서밖에 못 본다는 현실이 억울하기만 해”

 

“다혜곤듀. 이쁜 공주”
다혜는 수학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추억을 쌓아주고 싶었기 때문이었답니다.
다혜는 선생님과 친구들을 좋아했고 학교생활을 즐거워 했습니다.
금구모속의 다혜의 밝게웃는 모습이 떠오릅니다.

 

다혜는 집에서는 똑 부러지고 야무진 맏딸이었습니다.
중학생인 남동생과 붙어 다니며 엄마처럼 자상하게 돌봐줬기에 맞벌이 하시는 부모님은 이런 다혜가 늘 듬직했습니다.
다혜는 교회에도 열심히 다니며 신앙생활도 열심히 했습니다.

 

2014년 4월 15일 다혜는 여행가방에 먹을 것을 가득 채우고 수학여행을 떠나며 제주도에 빨리 가고 싶다고.흥분을 감추지 못했습니다.
그날 저녁 7시께 다혜는 안개때문에 배가출발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시무룩하게 전화를 걸었지만 두 시간뒤 다시 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신나는 목소리로 “배가 제주도로 출발한다”고 말했습니다.

 

“내일 제주도에 도착하면 전화할게”

 

다혜가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말입니다.
엄마는 아직도 다혜의 전화를 기다립니다.
하지만.
다혜는 제주도에 도착하지 못하고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었습니다.
다혜는 대신에 엄마의 꿈 속에 가끔씩 다녀간다고 합니다.

이단비 – 단원고 2학년 10반

단비는 여동생이 하나있는 자매중에 맏이입니다.
엄마를 좋아하고 가족을 위해 헌신하는 아빠를 좋아하고 늘티격태격하지만 세상에 하나뿐인 동생을 좋아하는 단비.
새집으로 이사한 뒤 처음 맞은 엄마 생일날 네가족이 모두모여서 소원을 빌때 단비는 아빠의 건강을 빌었답니다.
“엄마 아빠의 땀위에 서있는 우리가족, 아빠, 이다음에 크면 내가 아빠랑 같이 술 마셔줄게, 특별히! 그리고 운전도 해줄게. 아빠 음주운전하면 안되니까.좋지?”

 

“의사가 되고 싶어. 할아버지를 낫게하고 싶어”

 

단비의 꿈은 응급구조사 였습니다.
의사도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SBS<심장이 뛴다>프로그렘을 좋아했던 아이,
15일 수학여행을 떠나면서도 배안에서 이프로그렘을 볼 거라고 말했답니다.
단비라는 이름은 큰엄마가 지었다고 합니다.

 

단비는 조용하면서도 밝은 소녀였습니다.
씩 웃는 미소가 늘 입에 걸려 있었답니다.
자라면서 크게 말썽 한번 부리지 않았고 가수 ‘케이윌’과 ‘휘성’을 좋아하는 열여덟 소녀였습니다.
단비가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단비방을 청소하고 옷가지를 새탁했던 엄마는 단비의 숨결이 닿았던 옷들을 새탁한 걸 후회합니다.

 

세월호 참사없이 수학여행이 예정대로 진행되었다면
수학여행후 돌아 온 4월21일 월요일 학교급식 점심식단은 카레라이스, 파인에플, 순대국, 비엔나 케찹볶음이었습니다.

 

그러나
수학여행을 떠났던 단원고 2학년들중 이 식단을 맛 본 학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단비가 속한 10반은 생존학생은 한 명 뿐입니다.
단비는 절친 다혜와 함께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소진 – 단원고 2학년 10반

소진이는
위로 언니와 아래로 열두살 차이가 나는 남동생이 있는 삼남매중에 가운데 입니다.
띠동갑 다섯살 남동생을 맞벌이로 바쁜 엄마,아빠를 대신해 어린이집에 데려다 주고 학교에서 오면 밥과 간식을 먹이고 가르치면서 유치원 교사가 되는게 꿈이였던 소진이….

 

친구들이 “동생 때문에 너의 인생은 없다”라고 말할 정도로 끔찍이 사랑했다고 합니다.
젤리를 좋아하고,
노래방에서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고,
수학을 좋아하고, 빙수를 좋아하고,
과일을 밥보다 좋아했던 소진이…

 

[넌 추위를 많이 타는데 얼마나 추웠을까,
나 만큼이나 겁이 많던 넌데 얼마나 무서웠을까,
아직 해보지 못한것도 많고
해볼것도 많고,
하고 싶었던 것도 많은데 얼마나 살고 싶었을까,
구조하러 와주기만을 얼마나 믿고 기다렸을까,
가슴이 뭉개진다는 말 솔직히 이해 못했는데 이제는 매우 잘알것 같아]

 

사촌이자 친구인 승희의 글입니다.
소진이는 사랑하는 부모님과 언니,너무나 아꼈던 동생과 이별한 채 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단짝 친구 사촌
신호현
나 사는 동안
죽을 만큼 힘들어도
가족이랑 네가 있어서 살아
네가 남겨준 그 말
귓가에 아직 쟁쟁한데
나 혼자 어떻게 살아가지
우리 함께 한 추억
평생 잊을 수 없는데
너 없이 내가 어떻게 살아
네 두려움 생각하면
내 안타까움 생각하면
가슴이 미어지고 뭉개져버려
단화신고 싶다던 말
내가 슈즈디자이너 되어
예쁜단화 만들어 찾아갈게
나도 사는 동안
힘들어 포기하고 싶을 때
네 생각하며 당당히 이겨나갈께

이은별 – 단원고 2학년 10반

은별이 어머니는 참사이후 몇번이나 병원에 후송됐다 퇴원하기를 반복했습니다.
은별이 이모님이 아픈 어머니를 대신해 은별이 학생증을 목에 메달고 싸움에 나섰습니다.
그건 아픈 은별이 엄마를 때문이기도 했지만 어려서부터 이모네 언니들과 친자매처럼 같이 지내며 은별이가 딸같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은별이는 사촌언니들과 매일밤 만나서 산책도 다니고 이모네 집에서 피아노도 같이 치면서 놀았다고 합니다.
평소 말이없고 조용한 아이였는데도 사촌 언니들과는 속깊은 이야기도 나누었다고 합니다.

 

이모님이 국회에서 세월호 특별법으로 싸우실때 경찰에게 폭행당했던 일이 떠오릅니다.
또 이번 특별법 개정과 특조위 연장을 요구하며 국회앞에서 기자회견을 할 때도 똑같은 일을 반복해 당해야 했습니다.
아이들의 죽음의 진실을 찾고자 하는 유가족을 폭행한 공권력과 일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감추려고만 드는 정권,
우린 이런 괴물과 싸우고 있습니다.

 

은별이는
운명의 4월 16일 제자 은별이와 친구들을 집어삼킨 그날의 기억을 아직도 증언조차 않고 있는 선생님의 교탁 바로 앞자리에 이경민과 짝꿍으로 자리하고 있습니다.
은별이는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해주 – 단원고 2학년 10반

해주는 언니가 하나 있는 두 자매의 막내입니다.
해주는 애교가 아주 많은 귀여운 막둥이였습니다. 맞벌이하시는 엄마가 늦게 들어오시고 언니는 학교 기숙사에 있어서 해주는 집에서 아빠하고 친했습니다.
해주가 워낙 애교가 많고 붙임성이 좋아서 아빠한테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막내였다고 합니다.
해주는 손재주가 좋아서 재봉틀을 잘 다뤘습니다. 자기 옷도 고쳐 입고, 친구들 옷도 천원, 이천 원씩 받고 고쳐주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한테 받은 돈으로 친구들이랑 같이 간식을 사 먹었습니다. 해주는 아빠한테 자기가 직접 만든 가방도 자랑하고, 친구들이 옷 리폼해달라고 난리라며 솜씨를 뽐내기도 했습니다.
해주 방에는 해주가 실 색깔대로 곱게 정리해둔 반짇고리가 주인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부모님은 해주가 수학여행을 다녀오면 해주 방을 새로 꾸며주실 계획이었습니다.
그래서 여행을 떠나기 얼마 전부터 벽지도 조금씩 뜯고 커튼도 새로 달려고 떼어 두었습니다. 그러나 해주는 빈 방만 남긴 채 영영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세월호 참사 1년이 지나도록, 해주 방은 떠나기 전에 벽지를 뜯고 커튼을 뗀 그 모습 그대로 남아 새로 방을 꾸며줄 해주가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해주야 오늘은 엄마,아빠에게 한없는 기쁨과 행복을 안겨준 날 이란다.
그 즐거운 나날들을 열일곱해를 누리다
이제 씻을 수 없는 죄를 짓게 되었구나.
이 죄를 씻을 수 있을지 모르겠구나,
너무나도 큰죄라…
아마 열일곱해를 열일곱배는 더 큰 고통속에 지내야 이마음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려나…

 

해주야 엄마아빠의 죄를 용서하지 않아도 돼,
엄마,아빠는 기쁨준 너만 행복하면돼…
사랑해 보고싶다~!”
2015년3월3일

 

해주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장수정 – 단원고 2학년 10반

수정이는
한 살 많은 오빠가 있는 남매중에 막내입니다.
수정이의 생일인 오늘은 오빠의 생일이기도 합니다.
수정이와 오빠의 생일이 똑같이 8월 22일인 셈이죠.
그래서 생일날엔 늘 케이크에 켜진 촛불의 나이도 두가지 였습니다.
오빠와는 뭐든 늘 함께 나눠서 하곤 했답니다.

 

토요일이면 엄마와 함께 대형마트에 함께가 장을 보고 무거운 짐도 엄마를 대신해서 들고 오곤 했습니다.

 

수정이의 꿈은
요리 만드는 것을 좋아해서 음식과 커피를 함께 팔 수 있는 전문점을 열고 싶어 했습니다.
수학여행후 여름방학에는 바리스타학원에 다닐 예정이었습니다.
부드러운 크림이 넘쳐나는 카라멜마끼아또를 좋아했던 수정이,
빅뱅의 노래 (천국)을 햇살처럼 가게 안에 가득채워 넣고 싶어 했던 수정이였습니다.

 

“너를 사랑해 너를 부르네 너를 기억해 너를 기다리네
그대의 말 한마디 사랑한다는 그 한마디
너를 사랑해 너를 기억해
기쁨 슬픔 눈물 하늘 별 그리고 천국”
-빅뱅의 (천국)중에서

 

“수정아.
엄마야.
울 수정이를 위해서 싸워야 하는데
엄마역활 못해 미안해
엄마는 자격이 없나봐.
착한 딸 수정이는 엄마 겁 많은 거 알지…
미안해 수정아.” 엄마가..

 

“어머니 힘내세요
진실은 거대한 힘앞에서 작아지고 위축될 수 있습니다. 힘이 되어 드리겠습니다.
수정아 힘내렴. 항상 응원할게.”

 

*수정이 어머니 힘내세요.
저도 같은 상황이였으면 너무나 무섭고 겁이 나서 숨어버렸을지도 모릅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우리 어른이. 나라가 모두가 잘못하여 아이들이 희생된 겁니다.
힘내시고 항상 뒤에서 응원하는 사람들이 더 많다는 것을 알아주세요.*

 

수정이는 10반 3분단에 짝꿍 장혜원과 함께 자리 하고 있으며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장혜원 – 단원고 2학년 10반

☆너가 수학여행 갔다가 좀 늦게 다시 돌아왔을때
널 사진으로 밖에 못 보는게 너무 믿기지도 않고 슬프고…
사진속 너가 너무 예뻐서 보는게 힘들어서….
너 마지막을 오랫동안 지켜주지 못해서 미안해..☆

 

긴 목에 또렷 한 이목구비를 지닌 혜원이는 고등학교 1학년때 윤리적 리더 육성프로그램에 발탁되었습니다.
경기평생교육진흥원과 가톨릭대학교가 함께 운영하는 청소년 창조인재 육성사업입니다. 경기도 전체에서 선발된 인원중에 단원고에서는 같은반 구보현 과 1반 박성빈 학생까지 세명이였습니다.
1학년때 함께 가톨릭대학교 캠프를 수료했지만 혜원이도 보현이도 성빈이도 수학여행에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초코라떼를 맛있게 먹었는데 딱 한입 마시고 둘다 우와~ 이 표정이 였는데 아직도 믿기지가 않아. 다 거짓말 같고 전화하면 받을거 같아.
왜 하필 너희들일까. 왜 이런 생각도 그 배가 너무나 원망스러워. 착한 너희들이 뭘 잘 못했다고….네가 나한테 물어보던 질문들..
제주도 날씨는 어때?
옷은 머 입을까?
맛있는거 많아? 이 내용을 칠때 니가 얼마나 기대를 많이 했을지 너 표정이 상상되더라..정말 좋아했잖아.
배타고 간다고,
밤에 불꽃놀이도 한다고,
기대된다고 빨리 가고 싶다고 도착하면 연락한다고 했잖아….
그날 아침에 왜 문자 보냈을까 전화라도 해볼걸 버튼만 누르면 되는건데…
혜원아,
너무 보고 싶고 나랑 친구해줘서 고맙고 우리 평생친구 우정하자~사랑해.
혜원이는 안산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