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고해인 – 단원고 2학년 1반

♧ 해인아, 잘 있니? 너를 보고 싶고,안고 싶고, 네 목소리를 듣고 싶고. 사랑해 주고 싶고, 고맙다는 말도 해주고 싶은데….네게 할 수 있는 말은 잘 있으란 말 뿐이구나.

해인이는 맏이입니다.집에서는 남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며, 웃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해인이는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했지요.  늘 가족을 배려하는, 속 깊은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해인이의 엄마는 해인이를 “사춘기도 없이 자란 딸”로 기억합니다. 엄마가 힘들어 하면 꼭 안아주고 본인이 힘들 때면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하던 애교 넘치는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해인이는 나중에 커서 돈을 벌면 엄마와 함께 세계 여행을 함께 가기로 약속도 했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범생이였습니다.  동아리 활동으로 1학년때에는 교지 편집국을,  2학년 때에는 배드민턴 활동을 했습니다.

해인이와 친했던 친구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조은화입니다.

 

해인이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인이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습니다.
사고후 나흘 뒤인, 19일에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은 채, 조카를 찾기 위해 구조현장에 뛰어든 민간인 잠수사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 해인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해인이의 엄마는 친구 같던 딸을 잃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간호사의 꿈
시 : 신호현

 

사춘기 없이
사춘기를 보낸
속 깊은 아이

 

엄마가 힘들면 안아주며 위로하고
엄마에게
위로받던 아이

 

맞벌이 하는 부모
집안일을 맡아하고
불평없이 자란 아이

 

나중에 돈 벌어서
해외여행 시켜준다던
간호사의 꿈 해인아

 

조용히 말없이
친구들 함께 간 여행
널 기억하며 기다릴께

 

엄마 아빠는
여기보다 좋은 곳에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 해인이 잘있니?그곳이 어느 곳인지 몰라도 잘있으란 말 밖에 할 수 없구나, 보고 싶고,
안아도 보고 싶고, 목소리 듣고 싶고. 사랑해주고 싶고, 고맙다는 말도 해주고 싶은데…..♧

 

해인이는 세살어린 남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맏이입니다.
티아라의 DAY BY DAY를 좋아하고 A형을 지닌 해인이는 수학여행을 떠나기전 동생에게 헤어드라이기를 빌려 떠났습니다.
집에서는 남동생과 함께 늘 얼굴에 웃는 미소 띠며 책임감 강한 아이였습니다.

 

맞벌이하는 엄마와 아빠를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했고 늘가족을 배려하는 속깊은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엄마는 해인이를 “사춘기도 없이 자란 딸”로 기억합니다.
늘 입버릇처럼 나중에 돈을 벌면 엄마와 함께 세계여행을 함께 가기로 약속도 했답니다.
엄마가 힘들어 하면 꼬옥 안아주고 반대로 자기가 힘이들면 엄마에게 안아달라던 애교 넘치는 아이기기도 했습니다.
해인이와 엄마는 늘 그렇게 서로 안아주고 위로하고 위로 받았습니다.
엄마는 그런 친구같은 딸을 잃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범생이였고 동아리 활동으로 1학년때에는 교지 편집국일과 2학년 때에는 배드민턴클럽활동을 하였으며
해인이의 짝꿍은 아직 돌아오지 못한 #조은화입니다.

 

해인이의 꿈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해주는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세월호와 함께 침몰해버렸고, 가장 많은 생존자가 돌아온 1반에서도 해인이는 살아 돌아오지 못한 채 사고후 나흘 뒤인 19일에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은 채, 조카를 찾기 위해 구조현장에 뛰어든 민간인 잠수사에 의해 발견되어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간호사의 꿈
시 : 신호현

 

사춘기 없이
사춘기를 보낸
속 깊은 아이

 

엄마가 힘들면 안아주며 위로하고
엄마에게
위로받던 아이

 

맞벌이 하는 부모
집안일을 맡아하고
불평없이 자란 아이

 

나중에 돈 벌어서
해외여행 시켜준다던
간호사의 꿈 해인아

 

조용히 말없이
친구들 함께 간 여행
널 기억하며 기다릴께

 

엄마 아빠는
여기보다 좋은 곳에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김민지 – 단원고 2학년 1반

민지의 아버지께서는 혼자서 오빠와 민지를 길렀습니다.  아버지에게 민지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미안하고 예쁜 딸입니다.

민지는 활발하고 끼도 많은 아이였습니다.  음악과 춤을 좋아해서 아버지에게 음악 학원, 댄스 학원에 보내 달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가수 오디션을 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양요섭군을 좋아했던 민지의 꿈은 가수 겸 배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민지는 아버지와 가까웠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아버지와 통화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4월 16일 사고 당일에 는 아버지에게 전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시간에 민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그 상황에서 얼마나 무서웠을을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민지는  안산 하늘 공원에 친구들 99명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희 – 단원고 2학년 1반

민희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특히 점토로 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잘해, 초등학교 때 점토 강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습니다.

민희의  집안 거실은 지금도 민희가 점토로 만든 작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손재주 좋던 민희는 제과, 제빵에는 서툴었습니다.

민희의 가족들은 민희가 만들던 빵과 과자가 너무 달아 먹기 거북했다고 기억합니다. 가끔씩 민희가 과자와 빵을 만드는 날,  그것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가족들은 괴로워 했었습니다.

민희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꿈도 사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민희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생일 파티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그러나 민희는 세월호에서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민희는 단원고 친구들 99명과 함께 안산 하늘 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수경 – 단원고 2학년 1반

수경이는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웃음이 많아 자주 큰 소리로 깔깔 웃고는 했습니다.

수경이는 친구들의 고민도  잘 들어 주었어요.”이누야사”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친구들이 고민을 이야기하면 “바람의 상처”라는 이누야사의 주문을 외우며 다 괜찮을 거라고 곧 자나갈거라고 위로했지요.

 

배우 김재원과 빅스의 켄을 좋아하던 수경이는  배우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한고운_김민지_정가현_김민희 친구들이 수경이네 집으로 놀러 왔었습니다. 아이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경이네 부모님은 수경이와 친구들이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수학여행에서,#한고운_김민지_정가현_김민희, #고해인, 수경이는 모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김수진 – 단원고 2학년 1반

“엄마, 아빠는 수진이가 많이 그립단다. 수진이가 보고 싶고, 안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참 슬프구나.

전에 엄마, 아빠가 수진이 야간 자율학습 끝날 때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가곤 했었지. 수진아, 엄마, 아빠가 수진이 보러 하늘나라로 찾아가면 예쁘게 웃는 얼굴로 마중 나와 줄래?

착한 우리 딸, 수진아, 진도 팽목항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던 못난 엄마와 아빠를 용서해줘. 사랑한다.”

수진이는 사고 7일째인 4월 22일 바다에서 돌아와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영경 – 단원고 2학년 1반

“영경아,나비가 되어 어머니께 날아 온 너.하늘 하늘 날아라. 팔랑 팔랑 날아라
언젠가 나에게도 들러 안부 좀 전해줘.나비가 문득 나에게 오면 너 인줄 알게”

 

영경이는 위로 오빠가 둘이 있는 삼남매중에 막내였습니다. 영경이의 부모님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막내딸이었지요.

 

부모님께서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용돈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묻자, 부모님을 생각해 괜찮다고 했던 연경이.

 

영경이는 늘 아버지를 챙기고 돕는 착한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할아버지에게도 잘하는 손녀였습니다.

 

그렇게 착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예쁜 연경이는 참사 다음날인 4월 17일에 바다에서 돌아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고해인 – 단원고 2학년 1반

예은이는 밝고 긍정적이며  솔직한 성격이었습니다. 활달한 성격으로 어디든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예은이는 매일같이 삼선 슬리퍼를 신고  학교 복도를 전력 질주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즐거워하곤 했습니다.

 

예은이는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UCC를 만들어 “희망버스 꾸미르미”공모전에 응모하여 상을 받기도 할 정도로 재능 많은 아이였습니다.

 

예은이는 아이돌그룹 “비스트” 의 요섭을 좋아하고, 가수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예은이는  고기를 참 좋아했고, 나중에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김주아 – 단원고 2학년 1반

수학여행을 떠나기전
5월11일에 다가 올 엄마생일에 깜짝 선물을 준비한 주아는 곱게 쓴 편지 두 통을 엄마 가방에 몰래 넣어뒀습니다.
이것이 엄마에게 남긴 마지막 말 이였습니다.
“주아는 이렇게 될걸 미리 알고 있었나봐요 . 바보 같이 착한 우리 딸,그 찬 바닷물로 왜 다시 들어갔니….”
친구들에 따르면 주아는 배 밖으로 거의 빠져 나왔었습니다.

 

1반은 배가 기운쪽 가장자리 객실을 쓴 덕분에 탈출하기 가장 쉬었습니다.
출구의 빛을 보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바닥으로 쓰러진 케비닛에 머리가 끼어 옴짝달싹 못하는 친구의 “살려달라”는 등뒤의 비명소리를 듣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앞서가던 친구가
“위험해, 어딜가?”
라며 붙잡았지만 뿌리치고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객실로 향했습니다.
주아의 마지막 모습입니다.

 

친구들은 “주아의 평소 모습을 생각하면 목숨을 무릎쓰고 친구를 구하러 뛰어든 행동이 어쩌면 당연한거다”라고 말합니다.
“딸바보 “아버지는
“우리딸은 학생증이 든 지갑을 양손에 꼭 쥔 상태로 발견됐다면서 우리가 자기 찾으러 헤맬까봐 그랬던 것 같다”고 말합니다.

 

주아의 꿈은
서울에 있는 미대에 진학해 시각디자인을 전공하는 것이였습니다.
엄마의 꿈에 나타나..
” 꼭, 다시 태어나 대학에 갈거야~!”
라던 주아의 다짐도..
공부하는 시간이 길어서 게임을 몰아서 했던 걸 혼냈던게 후회된다는 다섯살 터울 언니의 마음도..
이제 더이상 이세상에선 펼칠 수 없습니다.

 

주아는 4월 18일에 가족의 품에 돌아왔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닷새전인 2014년 4월 10일 주아의 생일날 엄마는 미역국을 끓여주며 오래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주아는 지금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현정 – 단원고 2학년 1반

현정이는
학교에 다녀온 후 엄마가 듣던 말던 쫑알 쫑알 수다 떨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다 가끔 엄마하고 말다툼을 하기도 했지요. 그리고는 친구들과 카톡으로 엄마의 흉을 보기도 하고 심통도 부렸고요.
하지만 10분도 안돼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며 화해를 청하던 예쁜 딸이었지요.

 

그런 현정이의 꿈은 일본어 교사가 되는 거였어요. 담임 이셨던 유니나 선생님을 보며 키운 꿈이었대요. 현정이는 일본 여행까지 함께 하기로 약속할만큼 유니나 선생님을 너무나 좋아하고 따랐던가 봅니다.

 

현정이는 4월 16일 세월호 침몰시 가장 많은 학생이 생존했던 1반이었지요.
그날,
현정이가 좋아하고 따랐던 유니나 선생님은 배가 기울자 사랑하는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탈출이 쉬웠던 5층 선실에서 아이들이 있던 4층 객실로 내려가셨습니다. 당황하는 아이들을 한자리에 불러모으고 침착하게 탈출시키셨던 유니나 선생님. 현정이도 구조됐던 친구들을 따라 밖으로 나오는 것이 목격됐지만, 끝내 마지막 사선을 넘지 못하고 침몰하는 세월호에 함께 차가운 바닷속에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4월 21일, 애타게 기다리던 가족들 품으로 돌아온 현정이~~현정이가 그토록 사랑했던 유니나 선생님은 제자들 19명을 탈출시켰지만, 본인은 끝내 살아오시지 못하고 한참의 시간이 흐른 6월 8일에야 돌아오셨습니다.
좋은 음악이 있다며 이어폰을 엄마 귀에 꽂아주던 이쁜 딸. 나중에 아픈 언니를 돌봐주겠다고 엄마와 약속했던 믿음직한 딸. 어머니는 그런 딸을 떠나 보내고 밥 먹는 것도, 자는 것도 미안해 하시며 오늘도 현정이를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문지성 – 단원고 2학년 1반

지성이의 꿈은 비행기 여승무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승무원이 되려면 영어를 잘해야한다며 영어 학원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제주도에서 태어나서 열살때까지 제주도에서 살았습니다.
제주도에는 지성이 어렸을적 친구들도 있고 성가대에서 활동했던 교회도 있습니다.
그래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면서 지성이는 제주도에가서 친구들을 만날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세월호가 가라앉고 나서 지옥같은 시간이 일주일이 지난후에야 사랑하는 부모님품으로 돌아 올 수 있었습니다.

 

지성이는
언니랑 집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춤추면서 놀기도 하고
남동생하고도 게임도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던 보물같은 아이였습니다.

박성빈 – 단원고 2학년 1반

화 한번 안낸 착한 아이.
성빈이의 꿈은 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나중에 크면 건물을 하나 사서 한 층은 언니의 병원, 한 층은 자신의 판사 사무실, 그리고 다른 한 층에는 부모님의 여가를 즐길 수 있는 시설을 만들겠다는 당찬 포부를 가진 아이였습니다.

 

성빈이는
머리도 좋고 공부를 열심히 해서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다섯 살 많은 언니와 통화를 해도 수다 대신에 “좋은 문제집 좀 추천해달라”고 말했다 합니다. 그러면서도 언니에게 “혼자 떨어져 살아 힘들지 않느냐”는 따뜻한 걱정의 말을 빼놓지 않았습니다.
웃으면 눈이 사라지는 귀여운 아이였습니다.

 

또한 성빈이는 항상 자기 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는 아이였습니다.

 

엄마가 사주신 삼각 김밥과 귤을 학원에 가져가서 배고파하는 친구들과 나눠먹고 친구 스타킹이 찢어졌다고 자기가 아껴뒀던 새 스타킹을 친구에게 주고 정작 본인은 한 켤레를 계속 팔아서 신기도 했습니다.

 

성빈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물을 하나씩 더 챙겨가서 못 가져온 친구들에게 나눠주었다고 합니다.
이처럼 착하고 공부 잘했던 성빈이는 짝꿍수진이와 유니나선생님등 친구들과 함께 세월호와 사라졌습니다.
성빈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우소영 – 단원고 2학년 1반

“소영아 웃음소리가 듣고 싶다.
개학 했는데 집가고 싶어.
속 마음 얘기 다 털어 놓고 싶은데
소영이가 없네…. 꿈에 나와서
내 얘기 좀 들어줘”

 

소영이는 두 살 위 오빠가 있는 막내딸 입니다.
딸바보 아빠와 무뚝뚝하지만 은근히 동생을 챙기는
오빠, 특히 오빠와는 친해서 오빠는 소영이를 “우쏘”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집에서 부모님과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은 언제나 활달하고 씩씩하고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소영이네 집은 친구들의 아지트였습니다.
친구가 많았던 소영이는 학교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오면
솜씨 좋은 엄마는 떡볶이 같은 간식도 만들어 주고 저녁밥도 뚝딱 한상 차려주기도 했습니다.

 

소영이의 꿈은
예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것 이었습니다.
글씨를 예쁘게 쓰는 것을 좋아했던 소영이는 편지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엄마 아빠 생신이면 소영이는 예쁜 글씨로 생신축하 편지를 써서 드리곤 했습니다.
소영이의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삼킨 세월호는 아직도 진도 앞바닷속에 잠겨있습니다.

 

소영이는 일러스트레이터의 예쁜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유미지 – 단원고 2학년 1반

미지의 꿈은초등학교때부터 “국제구호 활동 의사”를 꿈꿨습니다.
의사중에서도 흉부외과 의사가 적다고 흉부 외과 의사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단원고 봉사동아리 TOP에 들어가 임원을 역임하며 요양원과 노인정봉사와 쓰레기줍기등 봉사의 끈을 놓지 않던 미지는 수학여행후 여름방학에도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가려고 티켓팅까지 해 놓았었습니다.

 

16,
세월호의 모든 가족이 그렇겠지만 미지의 가족에겐 16이란 숫자는 삶과 죽음이 한 묶음으로 날아든 날입니다.
3월16일에 태어나고, 4월16일에 참사를 겪고, 5월16일에 못다 한 꽃으로 다시 만나고…

 

책임감 강하고
봉사정신 투철했던 미지는
1반 반장으로 친구들에게 인기 또한 많았습니다. 생일동안 수학여행가기전까지 한달 내내 선물을 안고 들어와 엄마에게 자랑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엄마,아빠의 좋은 점만 물려받은 미지,

 

2014년 4월16일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항하던 세월호가 기울자 미지는 배밖으로 나왔다가 인원파악후에 배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모두들 우왕좌왕 할 때
“지금 우왕 좌왕 하지 말고 지금 문을 못여니까 물이 좀 찬 다음에 한사람 한사람씩 나가자”며 한사람씩 밀어 올려주며 친구들을 탈출시키며 끝까지 반장의 역할을 다하던 미지….
정작 본인은 밀려드는 물쌀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미지가 나하고 농담을 잘해, 생전에 나랑 팔짱 끼고 드러누워서 ‘아빠, 이 다음에 내가 아빠 비행기 태워줄게’했어, 그 말 많이 하잖아,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고, 한200번(시신수습순서)쯤 전까지는 엠블런스 타고 올라왔을 거야. 그뒤부터는 훼손이 많이 돼서 바로 바로 올라가야 하니까 헬리콥터를 타고 간 거야, 헬리콥터를 딱 탔는데. 아유, 이 자식이 죽으면서까지 비행기를 태워주는구나. 내가 왜 연관을 거기다 지었는지, 그러면 안되는 건데, 그때 딱 그생각이 나더라니까,…..
그때 울음이 나더라고. 헬리콥터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내내 관 옆에서 울었어, 와, 이 자식이 죽으면서까지도 약속을 지키려고 그랬을까.]
죽은 뒤 지킨 딸의 약속을 함께한 아빠 #유해종님은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으며 미지가 바라던 세상,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미지이야기는 “금요일에 돌아오렴” 45p~64p에 실려 있습니다.

 

“세윌호에는 선장이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미지라는 선장이 있었다. 미지가 선장역활 다했다. 반장 미지때문에 살 수 있었다”
ㅡ 생존학생 증언 ㅡ

 

자신을 던지고 친구들을 살렸던 미지,
자기 것을 내려 놓을 줄 아는 미지,
다수가 섞여 있어도 소수의 마음을 살필 줄 아는 미지,
남자인 친구가 많았던 미지,
아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모두가 좋아했던 미지,
(마녀사냥)토크쑈를 좋아 했던 미지,
복도에서 만나면 달려들던 미지는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이수연 – 단원고 2학년 1반

“수연아. 우리 마지막까지 둘이 남았었는데…..
너가 나한테 해준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나.
“정신력으로 버티자”
“우리 둘이라도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꼭 나갈 수 있을거야 울지마 ㅇㅇ아”
이랬던 너가 없으니까 너무 보고 싶고 미안하다. 나 혼자만 나와서 너무 미안해.
내 뒤에 너 아직도 앉아 있을 것만 같은데 없으니까 너무 속상하고 마음아파.
앞으로 너자리 많이 와서 보고 갈께.
미안하고 사랑해.”

 

빼어날 “수” 예쁠 “연”
수연이는 머리를 풀어헤친 귀신이 나타나자 달려가 이단옆차기로 차서 넘어뜨리고 주먹으로 두둘겨 패서 쫒아내는 아빠의 태몽으로 97년 8월 12일 아침 10시 반에 세상에 나왔습니다.
잘 웃고 말도 빨리 배우고 귀여움이 넘쳐나는 사랑스럽고 명랑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엄마와는 날마다 조용히 몇초간 서로의 눈을 맞춰보며 인사를 나누곤 했습니다.

 

탈출직전까지 나왔다가 별이 된 아이.
분향소에 들어서면 해맑은 사진속 미소로 반겨주는 아이.
수연이는
무남독녀 외동딸입니다.
수연이 부모님께 수연이는 인생 그자체였고 미래의 희망이였습니다.
수연이 아버님은 매일 아침 출근 하면서 수연이를 학교에 데려다주었고, 밤에 야간 자율학습이 끝나면 학교에서 수연이를 데리고 오셨다고 합니다.
수연이도 학교가 끝나면 아빠가 학교 앞에서 기다릴까봐 야자가 끝나면 제일 먼저 달려 나왔다고 합니다.

 

수연이의 꿈은
국어선생님이 되는 것이 였습니다.
서울 시립대 사범대학에 진학하는게 목표였습니다.
수연이는 공부를 열심히하는 노력파였고 그중에서도 국어를 특히 잘했습니다.
예쁜 볼펜이나 연필을 모으는 취미가 있어서 수연이가 두고 떠난 물건중에는 볼펜이 유독 많이 남겨져 있습니다.

 

밝은 성격의 수연이 답게 “인피니트와 블릭비를 좋아했으며 노래도 잘 불렀으며 특히 아이돌 그룹의 고음부분을 잘 불렀습니다.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백화점 화장실 옆에서 춤도 추는 자신의 끼를 밖에서 보여주는 귀여원 동작과 애교가 넘치는 아이였습니다.

 

수연이는
밝은 성격에다 사춘기가 지나면서 생각하는 것도 성숙해져 부모님을 많이 배려하는 아이로 자랐습니다.
부모님이 일하시느라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면서 자기가 커서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께 이것저것 해드리겠다고, 어떻게 하면 돈을 많이 벌수 있는지 궁리하기도 했다합니다.
수연이 부모님은 수연이가 너무나 보고 싶고 , 생각만해도 마음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
수연이가 황망히 떠나버리고 나니 삶의 낙이 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이연화 – 단원고 2학년 1반

“나 두고 먼저 가는게 어디있냐 !
너가 하고 싶었던거, 아직 할 게 너무나 많은데 두고가면 어떻게…
이럴 줄 알았다면 미루지 말고 다할걸.
너무 미안해,너만 기다리고 있었는데..
거기서는 안 무섭고, 안추워?
거기서는 평생 행복했음 좋겠어.
항상 밤마다 네가 너무 생각나서 울다 자. .”

 

이쁘니 여니,
연화는활달하고 꾸미는 것을 좋아하던 아이였습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손톱을 예쁘게 정리해주거나 꾸며주는 것을 좋아라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댄스 동아리활동도 했구요.

 

연화의 꿈은
나중에 커서 네일 아트를 하고 싶었던 아이였습니다.
연화는 손가락이 가늘고 길어 예뻤던 아이 이기도 했답니다.
오빠 하나를 둔 연화는 사촌 언니와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사촌 언니가 부탁을 하면 툴툴대면서도 잘들어 줬다고 합니다.
임신을 한 사촌언니가 떡꼬치가 먹고 싶다고 하자 온 동네를 다 뒤져서 사다 준 연화였습니다.
초코릿을 좋아하고 먹고 싶어했지만 알레르기 때문에 먹지 못했던 연화이기도 했습니다.

 

학교에서도 밝은 성격답게 친구들이 많았습니다.
연예인 소지섭을 좋아해 늘 자신을 소지섭부인이라고 했던 연화였으며,
친구들의 고민상담사였던 흔적이 책상위 수북한 메모에서 발견됩니다.
4반 숑키승묵이 어머니의 메모도 발견되었는데요.
실은 강승묵은 연화의 좋은 남자친구였으며. 승묵이에게는 엄마에게 말하지 않은 여자친구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아침,
연화는 친구들과 SNS로 수다를 떨었습니다.
사촌언니는 연화에게 제주도 감귤 초콜릿을 사오라고 부탁했습니다.
하지만 연화는 초콜릿을 사오지 못했습니다.
사고 일주일만에 #이연화가 아닌 #111번으로 ,
출산후 26일만에 신생아를 안고 연화를 찾아나선 가족의 품에 4월 22일에야 돌아온 연화는
지금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정가현 – 단원고 2학년 1반

“소영, 가영 언제 오니?
우리 약속한 거 지키러 와야지.
우리 노래방에서 미친듯이 노래부르고,
고기 뷔페가서 배터지게 먹구,
놀이동산가서 신나게 놀구, 켐핑장도 가구,
우리커서 결혼하면 결혼식장가서 축하해주고 애기 낳으면 누구 어디어디 닮았네 하면서 까르륵 웃고 남편이 속터지게 하면 호프집에 모여서 님편 뒷담까고 나 가게 차리면 축하해주러 와야지…..”

 

가현이의 꿈은 유치원선생님이 되는 것이 었습니다.
아이들을 좋아해서 유치원선생님을 꿈꿨고 고등학교 2학년이 되면서 부터는 꿈을 이루기위해 공부도 열심히 하였지만 세월호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가족의 사랑을 듬뿍받는 막내였으며 특히 언니랑은 단짝이었습니다.
때론 동생인 가현이가 언니같고 언니가 동생같은 사이였는데 가현이는 언니가 해달라는 건 다 해주고 언니 얘기를 다 들어주었다고 합니다.
집에서 가현이랑. 언니, 엄마는 삼총사였다고 합니다.
두자매와 엄마 셋이서 항상 같이 다녔고 자주 다녔던 과일쥬스가게가 있었는데 거기서 반지나 목걸이 같은 조그만 물건등을 뽑기하며 노는게 너무 좋았고 재미있었다고 합니다.
어머니는 가현이가 곁에 없으니 이제는 같이 다녔던 그길을 못 걷겠다고 하십니다.

 

가현이는아주 밝고 성격이 좋았습니다.
어렸을적부터 손이 많이 안가는 아이였고 생각도 깊고 행동이 성숙해서 “애늙은이” 같았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현이는 사춘기 소녀답게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요섭과 “엑소”의 백현을 좋아했습니다.
친구들과 함께 노래방에 갈 때면 비스트의 노래를 모두 부르곤 했습니다.

 

학교에서는 #우소영과 절친이었으며 4월 21일 가족의 품에 돌아온 가현이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조은화 – 단원고 2학년 1반

“어머니, 은화가 좋아하는 걸 바다에 던지면 은화가 그걸 받고 돌아올 거예요.”
” 그럼 제가 들어가아 해요. 은화는 저를 가장 좋아했거든요”

 

.팽목에서 은화를 기다리는 어머니에게 자원봉사자가 던진말에 어머니의 답변입니다.
말씀처럼 은화와 어머니는 때론 친구처럼 각별할 모녀지간에 너무도 사이가 좋았습니다. 엄마의 껌딱지로 불리울 정도로 엄마를 좋아했고 늘 부모님께 기쁨을 주던 아이였습니다.
엄마도 은화를 무릎위에 앉혀놓고 다정스레 “예쁘다,예쁘다””사랑한다,사랑한다” 고 늘 속삭여 주었습니다.
그런 엄마를 은화도 무척이나 좋아했습니다.
엄마와 수다를 떠는 것이 너무좋아서 은화는 샤워를 할때도 엄마한테 화장실에 같이 들어와서 변기위에 앉아 계시라고 하고 자기는 샤워를하면서 학교에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종알 종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태어날 때 병약해 큰 수술을 받았던 오빠와 달리 건강하게 자라주었고 학교생활도 우수한 성적에 속 한번 썩이는 일없이 자랐던 은화였습니다.

 

《은화야 1년이 넘었다.
그날 마지막으로 본 너가 잊혀지지가 않아.
니가 소정이 부르던 것도, 반애들 침착하게 도와준 것도 기억난다. 보고 싶어…..
은화야 빨리 나와줘 ….보고 싶어….
민지 장례식밖에 못챙겨 줬었는데 …너라도 제대로 챙겨주고 싶어….
지금도 힘든데 그날은 더 힘든겠지?
난 아직 너가 어딘가에서 살아 있는것 같이느껴져….그래서 이사갔다라는 느낌으로 언젠가는 만날 수 있겠지라고 생각해》

 

기나긴 기다림의 끝.
세월호가 목포신항에 거치되고 오랜 수색끝에 마침내 은화는 1135일만에 부모님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진도앞 맹골수도에 잠긴 세월호속에서 세번째 생일을 맞았던 은화도 네번째는 부모님곁에서 맞게 되었습니다.
다윤이와 함께 이별식을 치른 은화는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은화는 화성효원추모공원까지 갈 수없는 저의 미안한 마음을 분향소에서 대신합니다.

 

감사드립니다.

한고운 – 단원고 2학년 1반

“고운아 안녕, 잘지내고 있니?
우리 1학년때도 짝꿍이였고 2학년 올라와서도 처음 짝꿍했었잖아. 처음너 봤을때 말걸까 말까 하다가 내가 원래 말을 잘 못 걸어서 그냥 가만히 있었는데 니가 먼저 말 걸어주고 어찌어찌하다가 친해졌었는데 …기억나?
너 방송국 pd해서 나 방송국 구경시켜준다고 했었는데 ㅠㅠ
많이 보고싶어. 사랑해♡”

 

고운이는 두살터울 남동생이 있는 남매중에 맏이 입니다.
고운이의 꿈은
사진과 영상 찍는 것을 좋아해서 카메라 감독이 되는 것이 꿈이였습니다.
키가 크고 몸이 튼튼해서 고운이는 무거운 영상 장비를 잘 메고 다닐 수 있을거라고 엄마에게 늘 말했답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기 싫다고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강이지를 좋아해서 3년간이나 부모님을 졸라 결국 허락을 받아내는 응석 꾸러기 귀여운 딸이기도 했습니다.
2학년 때에는 친구들과 영상동아리를 만들었고 서울예대 방송영상학과에 진학하여 방송사에 들어가고 싶어했습니다.
고운이는 9반 #오경미와는 둘도 없는 단짝 친구였습니다.
시간만 나면 서로의 집에 놀러다녔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한지 6일만인 4월22일 함께 물밖으로 나왔고, 장례식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치뤘으며, 지금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나란히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