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4월 16일 잊을 수 없는 그 날의 사고과정과 구조과정, 그리고 희생자분들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기억과 망각, 우리는 망각과 싸우고 있습니다.
잊지 않고 행동하기 위해서는 기억해야 하며, 기억을 보존해야 하고, 기억을 다른 사람과 나누어야 합니다.
살펴보시고 그날의 기억을, 304명 희생자의 삶을 기억해 주세요.

고해인 – 단원고 2학년 1반

해인이는 맏이입니다.집에서는 남동생과  사이좋게 지내며, 웃음이 많은 아이였습니다.

해인이는 책임감이 강했습니다. 맞벌이하는 부모님을 대신해 집안일을 도맡아 했지요.  늘 가족을 배려하는, 속 깊은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해인이의 엄마는 해인이를 “사춘기도 없이 자란 딸”로 기억합니다. 엄마가 힘들어 하면 꼭 안아주고 본인이 힘들 때면 엄마에게 안아 달라고 하던 애교 넘치는 아이이기도 했습니다. 해인이는 나중에 커서 돈을 벌면 엄마와 함께 세계 여행을 함께 가기로 약속도 했답니다.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모범생이였습니다.  동아리 활동으로 1학년때에는 교지 편집국을,  2학년 때에는 배드민턴 활동을 했습니다.

해인이와 친했던 친구는 아직 돌아오지 못한 조은화입니다.

 

해인이의 꿈은 간호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해인이는 세월호와 함께 침몰했습니다.
사고후 나흘 뒤인, 19일에 구명조끼도 착용하지 않은 채, 조카를 찾기 위해 구조현장에 뛰어든 민간인 잠수사에 의해 발견되었습니다. 지금 해인이는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해인이의 엄마는 친구 같던 딸을 잃고 가장 힘든 시간을 보내고 계십니다.

-해인이 부모님의 편지

해인아, 잘 있니? 너를 보고 싶고,안고 싶고, 네 목소리를 듣고 싶고. 사랑해 주고 싶고, 고맙다는 말도 해주고 싶은데…. 네게 할 수 있는 말은 잘 있으란 말 뿐이구나.

간호사의 꿈
시 : 신호현

 

사춘기 없이
사춘기를 보낸
속 깊은 아이

 

엄마가 힘들면 안아주며 위로하고
엄마에게
위로받던 아이

 

맞벌이 하는 부모
집안일을 맡아하고
불평없이 자란 아이

 

나중에 돈 벌어서
해외여행 시켜준다던
간호사의 꿈 해인아

 

조용히 말없이
친구들 함께 간 여행
널 기억하며 기다릴께

 

엄마 아빠는
여기보다 좋은 곳에서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김민지 – 단원고 2학년 1반

민지의 아버지께서는 혼자서 오빠와 민지를 길렀습니다.  아버지에게 민지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미안하고 예쁜 딸입니다.

민지는 활발하고 끼도 많은 아이였습니다.  음악과 춤을 좋아해서 아버지에게 음악 학원, 댄스 학원에 보내 달라고 하기도 했었습니다. 그리고 가수 오디션을 보기도 했습니다.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양요섭군을 좋아했던 민지의 꿈은 가수 겸 배우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민지는 아버지와 가까웠습니다. 하루에도 여러 번 아버지와 통화를 할 정도였습니다.

그런데, 4월 16일 사고 당일에 는 아버지에게 전화가 없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그 시간에 민지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그 상황에서 얼마나 무서웠을 지를 생각하면  아직도 마음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민지는  안산 하늘 공원에 친구들 99명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김민희 – 단원고 2학년 1반

민희는 어릴 때부터 손재주가 좋았습니다. 특히 점토로 공예품을 만드는 것을 잘해, 초등학교 때 점토 강사 자격증을 따기도 했습니다.

민희의  집안 거실은 지금도 민희가 점토로 만든 작품들로 채워져 있습니다.
하지만 손재주 좋던 민희는 제과, 제빵에는 서툴었습니다.

민희의 가족들은 민희가 만들던 빵과 과자가 너무 달아 먹기 거북했다고 기억합니다. 가끔씩 민희가 과자와 빵을 만드는 날,  그것을 억지로 먹어야 하는 가족들은 괴로워 했었습니다.

민희는 조용하고 차분한 성격이었습니다. 그리고 책 읽기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래서 꿈도 사서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민희는 수학여행에서 돌아오면, 생일 파티를 하기로 되어 있었습니다.그러나 민희는 세월호에서  결국  빠져나오지 못했습니다.

민희는 단원고 친구들 99명과 함께 안산 하늘 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수경 – 단원고 2학년 1반

수경이는 긍정적이고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웃음이 많아 자주 큰 소리로 깔깔 웃고는 했습니다.

수경이는 친구들의 고민도  잘 들어 주었어요.”이누야사”라는 애니메이션을 좋아해서 친구들이 고민을 이야기하면 “바람의 상처”라는 이누야사의 주문을 외우며 다 괜찮을 거라고 곧 자나갈 거라고 위로했지요.

 

배우 김재원과 빅스의 켄을 좋아하던 수경이는  배우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수학여행을 떠나기 전날, #한고운_김민지_정가현_김민희 친구들이 수경이네 집으로 놀러 왔었습니다. 아이들은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수경이네 부모님은 수경이와 친구들이 언제까지나 사이좋게 지내기를 바랐습니다.

그러나 수학여행에서, #한고운_김민지_정가현_김민희, #고해인, 수경이는 모두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김수진 – 단원고 2학년 1반

“엄마, 아빠는 수진이가 많이 그립단다. 수진이가 보고 싶고, 안고 싶어. 하지만 그럴 수 없는 것이 참 슬프구나.

전에 엄마, 아빠가 수진이 야간 자율학습 끝날 때 버스 정류장으로 마중 나가곤 했었지. 수진아, 엄마, 아빠가 수진이 보러 하늘나라로 찾아가면 예쁘게 웃는 얼굴로 마중 나와 줄래?

착한 우리 딸, 수진아, 진도 팽목항에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발만 동동 구르던 못난 엄마와 아빠를 용서해줘. 사랑한다.”

수진이는 사고 7일째인 4월 22일 바다에서 돌아와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영경 – 단원고 2학년 1반

“영경아,나비가 되어 어머니께 날아 온 너.하늘 하늘 날아라. 팔랑 팔랑 날아라
언젠가 나에게도 들러 안부 좀 전해줘.나비가 문득 나에게 오면 너 인줄 알게”

영경이는 위로 오빠가 둘이 있는 삼남매중에 막내였습니다. 영경이의 부모님께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사랑하는 막내딸이었지요.

 

부모님께서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용돈이 부족하지 않느냐고 묻자, 부모님을 생각해 괜찮다고 했던 연경이. 영경이는 늘 아버지를 생각하는 착한 딸이었습니다. 그리고 할머니,할아버지에게도 잘하는 손녀였습니다.

 

그렇게 착하고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예쁜 연경이는 참사 다음날인 4월 17일에 바다에서 돌아와 안산 하늘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고해인 – 단원고 2학년 1반

예은이는 밝고 긍정적이며  솔직한 성격이었습니다. 활달한 성격으로 어디든 분위기를 밝게 만드는 아이였습니다. 그런 예은이는 매일같이 삼선 슬리퍼를 신고  학교 복도를 전력 질주하곤 했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과 함께 즐거워하곤 했습니다.

 

예은이는 동영상을 촬영하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UCC를 만들어 “희망버스 꾸미르미”공모전에 응모하여 상을 받기도 할 정도로 재능 많은 아이였습니다.

 

예은이는 아이돌그룹 “비스트” 의 요섭을 좋아하고, 가수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예은이는  고기를 참 좋아했고, 나중에 프랑스의 베르사유 궁전에 꼭 가보고 싶다고 했었습니다.

김주아 – 단원고 2학년 1반

수학여행을 떠나기 닷새 전인 2014년 4월 10일 주아의 생일날, 엄마는 주아에게 미역국을 끓여주며 오래 살라고 말했습니다.

 

주아는  수학여행을 가기 전에 곱게 쓴 편지 두 통을 엄마 가방에 몰래 넣어뒀습니다. 주아 어머님은 나중에 이 편지를 다시 보며,   ‘주아는 이렇게 될 걸 미리 알고 있었나 봐요 . 바보 같이 착한 우리 딸,그 찬 바닷물로 왜 다시 들어갔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친구들의 증언에 따르면, 사고 당시 주아는 침몰하는 배 밖으로 빠져 나왔습니다. 그러나  빛을 보고 ‘살았다’고 생각하는 순간, 주아는  친구의 ‘살려달라’는  비명소리를 듣고 발길을 돌렸습니다.  친구가 ‘위험해, 어딜 가?’라며 붙잡았지만 뿌리치고  객실로 향했습니다.

이것이 주아의 마지막 모습이었습니다.

친구들은 ‘목숨을 무릅쓰고 친구를 구하러 뛰어든 행동이 참 주아답다.’ 라고 말했습니다.

‘딸 바보’ 주아 아버지는 ‘우리 딸은 학생증이 든 지갑을 양손에 꼭 쥔 상태로 발견됐다. 우리가 자기 찾느라 헤맬까봐 그렇게 지갑을 꼭 쥐고 있었던 것 같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다섯 살 터울인 주아의 언니는 주말에 게임을 하는 주아를 혼냈던 게 후회된다고 했습니다.

주아의 꿈은 서울에 있는 미대에 진학해 시각 디자인을 전공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주아는 그 꿈을 이루지 못하고, 평택 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김현정 – 단원고 2학년 1반

현정이는 학교에 다녀온 후 엄마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기를 좋아했습니다.
가끔은 엄마와 갈등이 있기도 했습니다.  엄마께 심통도 부렸고요.
하지만 곧 엄마에게 애교를 부리며 화해를 청하던 예쁜 딸이었지요.

 

현정이는 담임선생님이었던 유니나 선생님을 따랐습니다. 그리고 유니나선생님같은 교사가 되고 싶어했습니다.

 

사고 당시,현정이가 따랐던 유니나 선생님은 배가 기울자  제자들을 구하기 위해  4층 객실로 내려가셨습니다.  현정이도 친구들을 따라 밖으로 나왔지만, 끝내 사선을 넘지 못했습니다.

현정이는 4월 21일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좋은 음악이 있다며 이어폰을 엄마 귀에 꽂아주던 예쁜 딸. 나중에 아픈 언니를 돌보겠다고 했던 믿음직한 딸. 어머니는 그런 딸을 떠나 보내고 오늘도 현정이를 그리워하고 계십니다.

문지성 – 단원고 2학년 1반

지성이의 꿈은 비행기 승무원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승무원이 되려면 영어를 잘해야 한다며 영어 학원에 열심히 다녔습니다.

지성이는 언니랑 집에서 음악을 틀어 놓고 춤추기도 하고
남동생하고 같이 게임을 즐기던 명랑한 아이였습니다.

지성이는 열 살 때까지 제주도에서 살았습니다.제주도에는 지성이 어렸을 적 친구들도 있고 다녔던 교회도 있습니다.그래서 제주도로 수학여행을 떠나며, 지성이는 어릴 적 친구들을 만날 생각에 한껏 들떠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성이는 그 바람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지성이는 세월호와 함께 가라앉았습니다. 그리고 세월호가 가라앉은 지 일주일 후에야 바다에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박성빈 – 단원고 2학년 1반

성빈이의 꿈은 판사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성빈이는 공부를 잘했습니다. 중학생 때부터 고등학생 때까지 장학금을 받으며 전교 1등을 한번도 놓치지 않았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는 다섯 살 많은 언니와 통화를 할 때도 ‘좋은 문제집을 추천해 달라’ 고 할 정도로 열심히 였습니다.

성빈이는 항상 자기 보다 남을 먼저 배려하고 생각하는 아이였습니다.성빈이는 초등학교 때부터 준비물을 하나씩 더 챙겨가서 못 가져온 친구들에게 나눠주곤 했습니다. 엄마가 싸주신 삼각 김밥과 귤을 친구들과 나눠 먹었습니다.  스타킹이 찢어진 친구에게 아껴뒀던 새 스타킹을 주기도 했습니다.

착하고 공부 잘했던 성빈이는 세월호와 함께 사라졌습니다.
성빈이는 안산 하늘 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우소영 – 단원고 2학년 1반

소영이는 두 살 위 오빠가 있는 막내딸 입니다. 소영이는 부모님과 오빠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습니다.특히 오빠와는 친해서 오빠는 소영이를 “우쏘”라는 별명으로 불렀습니다.

 

소영이네 집은 친구들의 아지트였습니다.친구가 많았던 소영이는 학교 수업이 끝나면 친구들을 우르르 몰고 오곤 했습니다. 그러면 소영이의 엄마는  간식이며 저녁 식사를 차려주었습니다.

 

소영이는 편지쓰는 것을 좋아했습니다.엄마 아빠 생신이면 소영이는 예쁜 글씨로 생신축하 편지를 써서 드리곤 했습니다.

 

소영이의 꿈은 예쁜 그림을 그리는 일러스트레이터가 되는 것 이었습니다. 소영이는 일러스트레이터의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유미지 – 단원고 2학년 1반

미지는 초등학교 때부터 흉부 외과 의사가 되어 국제구호 활동을 하는 의사를 꿈꿨습니다.

미지는 단원고 봉사동아리 TOP에서 요양원봉사, 노인정봉사, 쓰레기줍기등 봉사를 열심히 했었습니다. 미지는 수학여행 후 여름방학에도 필리핀에 봉사활동을 가려고 예약을 해 두었습니다.

 

책임감 강하고 봉사 정신 투철했던 미지는 친구들에게 인기가 많았습니다. 생일부터 수학 여행 가기 전까지 한 달 내내 선물을 안고 들어와 엄마에게 자랑했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단원고 수학여행 학생들을 태우고 제주도로 항하던 세월호가 기울자 미지는 배 밖으로 나왔다가 인원 파악 후에 배 안으로 다시 들어갔습니다. 모두들 우왕좌왕 할 때 ‘우왕 좌왕 하지 말고 한 사람씩 나가자’며 한 사람씩 밀어 올려주며 친구들을 탈출을 도왔습니다.그러나 정작 본인은 물살에 휩쓸리고 말았습니다.

-미지 아버님 말씀

[미지가 나하고 농담을 잘해, 생전에 나랑 팔짱 끼고 드러누워서 ‘아빠, 이 다음에 내가 아빠 비행기 태워줄게’했어, 그 말 많이 하잖아, 딸 낳으면 비행기 탄다고, 한200번(시신 수습 순서)쯤 전까지는 엠블런스 타고 올라왔을 거야. 그 뒤부터는 훼손이 많이 돼서 바로 바로 올라가야 하니까 헬리콥터를 타고 간 거야, 헬리콥터를 딱 탔는데. 아유, 이 자식이 죽으면서 까지 비행기를 태워주는구나. 내가 왜 연관을 거기다 지었는지, 그러면 안되는 건데, 그때 딱 그 생각이 나더라니까,…..
그때 울음이 나더라고. 헬리콥터를 타고 올라오는 동안 내내 관 옆에서 울었어, 와, 이 자식이 죽으면서 까지도 약속을 지키려고 그랬을까.]
죽은 뒤 지킨 딸의 약속을 함께한 미지 아빠 유해종님은 진실은 사라지지 않는다고 믿으며 미지가 바라던 세상, 그 길을 가고 있습니다.

생존학생 증언

“세윌호에는 선장이 없었지만 우리에게는 미지라는 선장이 있었다. 미지가 선장역활 다했다. 반장 미지때문에 살 수 있었다”

 

자신을 던지고 친구들을 살렸던 미지,자기 것을 내려 놓을 줄 아는 미지,
미지는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친구들과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

이수연 – 단원고 2학년 1반

수연이는  97년 8월 12일 아침 10시 반에 세상에 나와 잘 웃고 사랑스럽고 명랑한 아이로 자랐습니다.

 

수연이는 외동딸입니다.수연이 부모님께 수연이는 희망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수연이 아버님은 매일 아침 수연이를 학교에 데려다 주었고, 저녁에는 학교에서 수연이를 데리고 오셨습니다. 수연이 어머님과는 날마다 눈을 맞추고 소통하곤 했습니다.

수연이는 부모님을 많이 사랑하고 위했습니다. 부모님께서  고생하시는 모습을 보고, 어른이 되면  돈을 많이 벌어 부모님께 드리겠다고 하곤 했습니다.

 

수연이의 꿈은 국어 선생님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서울 시립대 사범대학에 진학하는 것이 수연이의 목표였습니다. 그 꿈을 이루기 위해 수연이는 공부를 열심히 했습니다.

 

수연이는 아이돌그룹  인피니트와 블릭비를 좋아했습니다. 아이돌 그룹의 노래를 좋아해 자주 불렀으며 좋아하는 노래가 나오면 춤을 추기도 했습니다. 노래하고 춤추는 수연이는 밝고 명랑한 모습이었습니다.

 

수연이는 예쁜 필기구를 모으는 취미가  있었습니다. 색다른 필기구가 보이면 사곤 했습니다.

 

수연이 부모님은 수연이가 너무나 보고 싶다고 하십니다. 수연이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아프다고 하십니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는 딸,수연이가 황망히 떠나버리고 나니 삶의 낙이 사라졌다고 하셨습니다.

수연이의 친구는 세월호에서 탈출하려 애쓰던 때, 수연이가 했던 말이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합니다.

“정신력으로 버티자.꼭 나갈 수 있을 거야 울지 마. 우리 둘이  함께 있어서  너무 다행이야”

수연이는 친구에게 그렇게 말했습니다.

지금도 친구는 수연이가 너무 보고 싶습니다. 아직도 수연이가  이제 없다는 게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그리고 혼자만 나와서 미안합니다.

이연화 – 단원고 2학년 1반

연화는 커서 네일 아트를 하고 싶어했습니다. 가족들이나 친구들의 손톱을 예쁘게 정리해주거나 꾸며주는 것을 좋아라 했습니다.

연화는 밝은 성격이었습니다. 친구들이 많았고, 친구들의 고민을 잘 들어주었습니다.

연화는 사촌 언니와도 친하게 지냈습니다. 사촌 언니가 부탁을 하면 툴툴대면서도 잘들어 줬다고 합니다. 임신을 한 사촌언니가 떡꼬치가 먹고 싶다고 하자 온 동네를 다 뒤져 사 올 정도였습니다.

세월호가 침몰하던 날 아침, 사촌언니는 연화에게 제주도 감귤 초콜릿을 사오라고 부탁했습니다.하지만 연화는 초콜릿을 사오지 못했습니다.

연화는 세월호 참사 일주일 만에 바다에서 돌아왔습니다. 연화는 지금 경기도 화성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연화 친구의 편지

“나 두고 먼저 가는 게 어디 있어! 너와 같이 하고 싶었던 게 너무 많은데, 이렇게 가다니. 이럴 줄 알았다면 미루지 말걸. 연화야, 바다에서는 참 춥고 무서웠지. 하늘에서는 그렇지 않지? 그 곳에서는 네가 행복했으면 좋겠어.

연화야, 나만 돌아와서 미안해.  밤마다 네가 너무 생각나서 울다 자. .”

정가현 – 단원고 2학년 1반

가현이는 가족의 사랑을 듬뿍 받는 막내였습니다. 엄마, 언니와는 특히 사이가 좋았습니다.

가현이와 엄마, 언니. 셋은 항상 같이 다녔습니다. 같이 과일 주스 가게에 가서 뽑기를 하며 재미있게 놀곤 했습니다.

어머니는 가현이가 떠난 후, 셋이 같이 다녔던 그 길을 못 걷겠다고 하십니다.

가현이는  밝고 성격이 좋았습니다. 아이돌 그룹 “비스트”의 요섭과 “엑소”의 백현을 좋아해 친구들과 같이 노래방에 갈 때면 그들의 노래를 모두 부르곤 했습니다.
가현이는 아이들을 좋아해 유치원 선생님을 꿈꿨습니다.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도 열심히 했습니다. 그러나 가현이의 꿈은 세월호 침몰과 함께 물거품이 되고 말았습니다.

지금 가현이는 경기도 평택서호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가현이 친구의 편지

” 언제 오니?우리 약속 지키러 와야지.
우리 노래방에서 미친 듯이 노래 부르고,고기 뷔페 가서 배 터지게 먹고,
놀이동산 가서 신나게 놀고, 캠핑장도 가야지.
커서 결혼식장가서 축하해주고, 아이 낳으면 누구 어디 닮았네 하면서 까르륵 웃어야지. 남편이 속 터지게 하면 같이 흉도 봐야지……”

조은화 – 단원고 2학년 1반

은화와 어머니는 각별한 사이였습니다. 은화는 엄마의 껌딱지로 불릴 정도로 엄마를 따랐습니다.

은화는 엄마와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어찌나 좋아했던지,  샤워를 할 때마저도 학교에서 그날 있었던 일들을 종알 종알 이야기를 했다고 합니다.

엄마는 자주 은화를 무릎 위에 앉히고 다정하게 “예쁘다,예쁘다””사랑한다,사랑한다” 고 속삭이곤 했습니다.

 

-은화 친구의 편지

《은화야, 너를 본 지도 1년이 넘었다.사고 날, 마지막으로 본 너의 모습이 잊혀지지가 않아.네가 소정이 부르던 것도, 같은 반 아이들 침착하게 도와준 것도 생각난다.

난 네가 떠났다는 게 아직도 실감이 나지가 않아. 네가 어딘가에 살아 있는 것만 같아.그래서 이따금은 언젠가는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하곤 해.

은화야, 보고 싶어. 어서 바다에서 나와. 네 장례식을 잘 챙겨주고 싶어.》

 

은화는 1135일만에 부모님품으로 돌아왔습니다. 은화는 지금 경기도 화성 효원추모공원에 잠들어 있습니다.

한고운 – 단원고 2학년 1반

고운이는 사진과 영상 찍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2학년 때에는 친구들과 영상 동아리를 만들었고 졸업 후에는 서울예대 방송영상학과에 진학하고 싶어했습니다.

고운이의 꿈은 카메라 감독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키가 크고 몸이 튼튼해서 고운이는 무거운 영상 장비를 잘 메고 다닐 수 있을 거라고 엄마에게 늘 말했답니다.

고운이는 부모님께 응석꾸러기 귀여운 딸이었습니다. 어른이 되기 싫다고 엄마에게 어리광을 부리고, 강아지를 좋아해 부모님을 졸라 결국 허락을 받아내기도 했습니다.

-고운이 친구의 편지

“고운아 안녕, 잘 지내고 있니? 우리 1학년때도 짝꿍이였고 2학년 올라와서도 처음 짝꿍했잖아. 우리 처음 만났을 때, 내가 말을 걸까 말까 하다가 하고 있었는데 네가 먼저 말을 걸었어. 그래서 우리 친해졌는데 …기억나?
너 나중에 커서 방송국 pd가 되어 나 방송국 구경시켜 준다고 했었는데 ㅠㅠ
많이 보고 싶어. 사랑해♡”

 

고운이는 9반 오경미와  단짝 친구였습니다. 둘은 세월호가 침몰한 지 6일만인 4월 22일 함께 물 밖으로 나왔고, 장례식도 같은 날 같은 장소에서 치뤘습니다.

지금은 평택서호추모공원에 나란히 함께 잠들어 있습니다.